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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좋은 왕 나쁜 왕 이상한 왕 3. 강화도령 철종

좋은 왕 나쁜 왕 이상한 왕에서는 메이저급 왕들 보다는 좀더 마이너한 왕들을 더 많이 다루려 합니다.


사실 조선시대 왕들은 왕족 출신으로 아무리 먼 왕족이라도 사대부가에서 고급 교육을 받으며 왕위에 올랐는데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철종은 조선의 25대 왕으로 나무꾼에서 왕이 된 재미있는 사연을 가진 왕입니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유명한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이인의 아들인 전계대원군 이광의 아들입니다. 대원군은 조선 시대에 왕의 아버지를 지칭하는 작위 입니다. 유명한 대원군으로는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있습니다.

 

 

백성으로서의 삶


 

철종 불에탄 어진

 1954년 부산 보관 창고 화재로 1/3이 소실된 어진(御眞)

출처 : Wikipedia

 

서자의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에 왕족도 예외는 아니었으므로 서자의 아들의 아들인 철종은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왕위를 이을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다가 숙부 상계군 이담이 홍국영에 의해 정조의 양자로 입적되어 후계자로 내정되었다가 홍국영의 실각으로 역모로 몰리게 되며 할아버지 은언군의 부인과 며느리가 천주교 신봉 문제로 신유박해때 강화도로 유배후 사사 당하고 그 이후에도 정쟁에 휘말려 은언군의 자손들은 결국 강화도로 유배됩니다. 

 

쉽게 말하면 그의 집안은 왕위계승에 관여하였다가 실각 하였고 당시 조정의 입장에서는 사교인 천주교 신자를 두었다는 죄와 외척과의 정쟁에서도 밀려나 사실 일가가 모두 목숨을 부지 하기 힘든 처지 였습니다.

 

그래도 왕족인 은언군의 자손들을 살리려고 노력한 순조의 노력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그의 집안은 신분이 격하되고 양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철종도 강화도에서 나무꾼, 행상,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며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순조의 양자 자격으로 왕위를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왕위 계승도 조선시대의 기본 왕위계승 절차를 무시한 계승으로 당시의 외척이자 세도가 였던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입장에서 힘 없는 왕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왕위 계승 이었습니다. 

 

철종 복구 어진

 

1989년에 석영 최광수에 의해 그려진 표준 영정

출처 : 민족 문화 홈페이지 http://nationalculture.mcst.go.kr/index.jsp

 

철종의 사랑

철종은 강화도에 양민으로 살때 봉이라는 천민 처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봉이와 혼약을 맺은 사이였으며 부부 사이가 좋았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름에서 부터 그녀는 성도 가지지 못한 천민으로 궁녀조차 될 수 없는 신분이었기에 궁궐에 왕을 따라 들어올 수가 없었습니다.

철종은 봉이를 매우 사랑해서 그녀를 잊지 못하고 상사병을 앓았습니다. 왕이 되어 수많은 여인들을 취할 수 있는 신분 임에도 그의 상사병은 순박한 성격과 의리(?)를 알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법입니다. 왕이 그녀를 잊지 못하여 시름에 빠져있자 왕가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봉이를 은밀하게 죽여 버립니다.

철종이 비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된데는 봉이의 죽음에서 원인을 찾기도 합니다.

 

 

치세

즉위 초반은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사실상 실권이 안동김씨에게 있었습니다. 철종의 왕후로도 안동 김씨인 김문근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또한 평민으로 살아와서 사대부로써의 기본 소양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학문적인 소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무가 안동김씨에 의해서 모두 처리 되었습니다.

 

안동김씨의 전횡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안동 김씨에게 뇌물을 주어 변방의 수령이 된 무식한 북청 물장수가 있었습니다. 이 물장수가 임명장을 받기 위해 한성부로 상경하였는데 철종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이 군수가 되었다고 자랑했다고 합니다. 다른 설로는 알아보지 못한 것이 아니라 "임금님 나으리 내가 바로 북청군수에 부임하는 사람이야" 라고 말을 놓았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허약해진 왕권과 안동김씨의 전횡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볼 수 있습니다.

 

철종은 출신이 서출인데다가 나무꾼으로 있다가 안동김씨의 필요에 의해 억지로 왕이 되다보니 양반가에서는 강화도령이라는 별명으로 뒤에서 조롱하였고 조정에서 처벌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일반 백성들 까지 서자, 서출, 강화도령이라 비하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연약하고 아둔하다는 당대의 평가와 달리 그는 친정을 하게된 이후에는 관리들의 부정, 비리를 지적하고 정치에 참여하려 애씁니다. 왕권 강화를 위해 반대를 무릅쓰고 안동 김씨의 입김이 덜 미치는 훈련도감 소속의 마보군과 별기군의 군사를 이용하여 궁궐 숙위 강화를 시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안동 김씨의 세력이 너무나 강하였기에 철종은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없었고 관리 한명도 안동 김씨의 허락이 없으면 임명하기조차 힘든 왕이었습니다.

 

 

왕이 아니었다면 행복했을 남자

결국 안동 김씨 세도가의 힘을 꺽지 못하고 번번히 좌절을 겪은 왕은 주색을 가까이 하며 건강을 해치기 시작 하였고 겨우 33살의 나이로 후사 없이 죽게 됩니다.

 

이후에 등장하여 집권하는 사람이 바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 입니다.

안동 김씨 세력들은 "상가집 개" 라는 별명을 가진 흥선대원군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기에 그가 신정왕후(조 대비)와 그의 어린 아들(고종)을 후계자로 선정되게 밀약을 맺고 재빠르게 선수를 쳐서 고종을 즉위시키고 섭정을 하게되자 우왕 좌왕 하다가 대원군의 철퇴를 맞게 됩니다.

 

철종은 외척 및 세도가에 의해 아둔한 왕, 꼭두각시 왕이 필요했기에 나뭇꾼 강화도령에서 궁궐로 끌려와 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아둔하지는 않았고 순박하고 어진 성격으로 자신의 천민 아내를 잊지 못한 데다가 정치 참여 및 왕권 강화 실패에 따른 좌절과 비탄속에 건강을 해쳐 이른 죽음을 맞이한 왕 으로 생각 됩니다.

그가 정말 아둔한 사람이었다면 외척과 세도가들이 마련해준 편안한 생활과 주색잡기를 즐기며 마음 편하게 장수 했을지도 모를 일 이지요.

원래 병약했다고는 하나 스트레스와 좌절, 슬픔은 사람을 빨리 죽게 만드는 법이니까요

 

아마도 그는 조금은 궁핍 했을지 몰라도 자유롭게 돌아다닐수 있고 예절 지적하는 사람 없는 곳에서 편하게 방귀도 뀌고 트림도 하고 사랑하는 천민 아내 봉이와 알콩달콩 아이를 낳고 늙어가서 손자를 보는 삶이 더 행복하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역사를 보면 왕이라고 해서 일반 백성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는것 같지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힘과 권력은 무언가를 희생해서만 얻어지는 부분이기 때문 입니다.

그러니 내가 재벌가의 아들이 아니라서 정치가나 권력자의 자식이 아니라서 어쩌면 그들 보다 훨씬 행복할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내 옆에는 누군가가 강제로 맞이 하게한 사람이 아닌 내가 사랑해서 내가 선택한 사람이 있을테니까요.

 

-양순의 이름은 조선왕조 500년 드라마에 등장한 이름으로 이후 잘못 알려진 이름으로 알려져서 실제 기록상의 이름인 봉이로 정정 합니다.

 

-무식한 물장수의 에피소드는 아래 블로그에 더 재미있고 상세한 에피소드가 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youltae?Redirect=Log&logNo=20162172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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