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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효종은 정말로 북벌을 꿈꾸었나?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왕자 시절엔 봉림대군으로 불리웠습니다. 인조의 첫째 아들인 소현세자가 죽은 후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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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終), 소현세자의 죽음과 꽃들의 전쟁

 

 

효종, 즉 봉림대군 역시 형인 소현세자와 같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가 볼모 생활을 해야했는데 이때 형인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천주교 사제들과 만나거나 새로운 문물 습득에 열심이었던 반면 그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청나라를 정벌할것을 다짐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부왕인 인조에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먼저 귀국했던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2달만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자 봉림대군 역시 청나라로 부터 귀국했습니다. 능력은 없어도 청나라에 대한 복수심만은 불타던 인조의 생각에 적극적으로 동의하였고 당시 인조의 총애를 받던 귀인 조씨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 결국 인조의 강한 주장에 의해 세자로 책봉이 되었고 1649년 5월에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위에 오른 그는 인조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반정 공신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송시열과 송준길을 발탁하고 서인 내에서 비 공신 세력이던 산림계열을 적극적으로 영입하였습니다.

 

그가 북벌계획을 가진 이상주의자였던 아니던 제위기간 동안 왕으로써는 아버지인 인조보다는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김육을 발탁해 제위기간 내내 대동법 실현과 확대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결국 대동법은 현종과 숙종대에 와서야 자리를 잡지만 효종때 부터 시작된 노력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효종의 글

 

하지만 무엇보다 효종은 북벌을 꿈꾸었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김상헌·김집·송시열·송준길 등 서인계 대청(對淸) 강경파를 중용하여 친청파를 몰아내고 북벌계획을 추진 하였고, 이들은 청을 군사적으로 응징하는 것은 군부국(君父國)인 명에 대한 신자국(臣子國)의 당연한 의무라는 복수설치(復讐雪恥)의 논리로 효종의 북벌을 이념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송시열

 

효종은 이완을 중용하여 군사양성을 맡겼는데 이완은 무신 출신으로 보통 이는 문신이나 종척에게 맡기던 관례에서 벗어난 인사정책으로 성공적인 북벌정책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군제개혁을 통해 군사를 양성하고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로 하여금 조총의 개량등을 하도록하고 이로인해 이후 나선정벌에서 보여지듯 어느정도 군비강화의 성과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모든 쇠붙이는 조총과 화포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총포 중심의 군사를 양성하고 나름 군사력 강화에 성공했지만 당시의 국제 정세는 도저히 조선의 힘으로 청나라를 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청나라의 영토 확장

 

결국 효종은 과로로 인하여 의원의 진료를 받던 중 갑자기 사망하였습니다.(이때문에 후대에는 독살 의혹도 제기 되었습니다.) 1659년, 왕위에 오른지 10여년 만에 일이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효종이 10년을 더 살았다면 그는 북벌을 이룰 수 있었을 까요? 중학생 무렵 효종의 북벌계획을 책으로 접했을때는 그가 오래 살아서 북벌의 꿈을 이루고 중국을 정벌했다면 우리 역사가 얼마나 멋진 역사가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면서 당시 역사와 국제정세를 좀더 알게되면서는 거의 불가능 했을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만 그저 상상 만으로도 멋지고 가슴이 뛰는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함 같은것은 보통 어리고, 젊으면 잘 모르거나 외면하게 되는 법이니까요.

 

사실 이 시기에 청나라는 섭정왕 도르곤 사후 순치제를 거쳐 강희제의 이른바 강건성세로 일컫어지는 최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삼번의 난과 같이 청나라에서 벌어졌던 내전은 효종이 오래 살았다면 조선이 기회를 엿볼 수 있었던 순간들도 있었음은 분명하지만 잘 훈련된 조선군 정예로 요동을 정벌하면 청나라를 완전히 꺽을 수 있다는 효종의 생각은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생각됩니다. 이미 청은 중국을 완전히 차지하고 몽골을 정벌하여 청나라의 황제는 동시에 몽골의 대칸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의미의 평가는 효종의 북벌정책이 정치적 명분이 포함된 방어 중심의 현실적인 정책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봉림대군 시절에 볼모의 신분으로 청나라의 군대와 함께 대륙을 누비면서 그들이 북경을 정복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자신의 형수인 강빈과 그녀의 아이들이 정치의 비정함에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현실의 이해관계에 대해 잘 알게된 그가 과연 당시 동아시아의 최강국이었던 청나라에 대한 정벌을 추진할 수는 없었으리라는 의견 입니다.

 

당시 산림 세력은 소현세자나 세손이 보위를 이어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고, 강빈의 역모사건에 대해서도 불신하였습니다. 즉, 애초에는 산림세력 역시 효종의 권력의 버팀목이 되어주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러한 산림세력을 끌어들이기에 가장 좋은 명분으로 북벌론을 택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의 근거로 실제로 북벌과 관련한 대부분의 정책이 강화도 보루나 남한산성 보수와 같은 사례들을 볼때 정벌을 위한 것보다는 장기적으로 방어전을 벌이는 성격에 가까웠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즉, 효종의 북벌정책은 한창 떠오르는 세력이었던 산림 세력과 손을 잡기 위해 택한 것이었으며, 북벌 정책의 실제는 장기적인 방어전을 염두에 두었던 현실적인 정책이었다는 주장 들 입니다.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효종이 북벌을 추진하였다는 것을 모두 전제로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사실 후대에 효종이 북벌을 꿈꾸었다는 역사적 통설의 바탕이 된 이야기는 송시열의 송서습유에서 언급한 악대설화(독대설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악대설화 내용 링크

http://blog.naver.com/zxcvbnm7997?Redirect=Log&logNo=10073551515

 

효종은 양병()에 치중한 북벌 방책을 토로했으며, 송시열은 원칙론을 내세워 격치성정()과 양민()을 강조하였다. 또한 당시 중요 인물들의 북벌에 대한 태도를 평가하였다. 그리고 송시열은 공론임을 내세워 이이·성혼의 문묘종사와 강빈·김홍욱 문제의 해결을 강조하였다.

당시의 정치 운영과 송시열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사관까지도 내보낸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송시열이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사실과 달리 기록되었을 수도 있으며 송시열 쪽으로 치우치게 기술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독대설화獨對說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효종의 묘호도 송시열이 금에 대한 북벌을 주장한 송나라의 효종으로 사용하자고 제안한데서 비롯 되었습니다.

 

조선왕조 실록이나 그 어떤 공식적인 기록에도 북벌에 대한 언급이나 의제가 기록된 적이 없어 사실상 효종의 북벌에 대한 의지는 송시열이 밝힌 왕과의 독대에서 나누었다는 기록 외에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물론 효종이 정말로 북벌을 추진 하였다면 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는 철저히 비밀리에 이루어 졌을것 입니다. 하지만 이 기록만으로 효종이 북벌을 추진했다는 부분을 완전한 역사적인 사실처럼 다루기에는 근거가 너무 약하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이 악대설화는 효종이 죽은지 15년 후 송시열이 정치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던 와중에 공개 되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을 덧 붙이자면 역사적으로 현실적인 감각의 처세와 정치를 보여주었던 효종의 행적에 대한 기록(인조의 생각에 공감을 하고 귀인 조씨와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했던 점들)을 볼때 그는 어쩌면 다소 허무맹랑한 북벌의 꿈 보다는 과거의 나라의 힘이 약해 겪었던 치욕을 다시는 겪지 않기 위해 나라의 국방을 튼튼히 하려고 불철주야 노력한 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악대설화의 내용도 송시열에게 북벌을 명분으로 이야기 하면서 군사력 강화에 대한 송시열의 협력을 구하고 있습니다. 만약 북벌을 정말로 입에 담았다면 이는 단순히 명분을 내 세우기 위해서 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송시열이 사실 그대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효종은 북벌을 처음 입에 담은지 3개월 뒤 세상을 떠난 셈이 됩니다.(독살 의혹이 있는)

 

효종의 북벌계획은 어쩌면 궁지에서 벗어나려던 단 한 사람의 창작일 수도 있고, 효종이 기록에 남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숨기며 비밀리에 추진한 원대한 꿈 일 수도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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