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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20대 그 찬란한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절에 대해서.

 

1992년 영화 "연인" 에서는 영화가 시작하는 처음 부분의 독백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의 외모를 떠올리며 그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예찬하며 시작한다. Skin... (아 피부... 뭐 이런 대사 였던 것 같다.)

 

 

사실 이 영화. 내 나이 또래 세대들이라면 아마도 영화의 예술성보다 그저 베드신으로 더 기억에 남아 있는 영화일 것이다.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 학습을 용감하게 째고 도망친 친구들 중 유난히 노안인 녀석을 시켜 하고 비디오 샵에서 빌리는데 성공했는데, 맞벌이로 부모님이 집을 비운 한 친구집에 옹기종기 모여 않아 당시만 해도 그 화려한 베드신을 빨리 감기를 하며 보던 기억 뿐이다. 그러다 비디오가 씹혀서 데크에서 빠지지 않아 난감했던 기억도 있다. 친구 부모님의 퇴근 시간은 다가오던 그 긴박했던 순간들...

 

사실 이 영화가 전달해 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에 그 당시의 나와 내 친구들은 그저 호기심이 왕성한 사춘기 애들일 따름이었다.

 

다음날 전날의 집단 탈주극에 분노해 손목 시계까지 풀어헤친 담임 선생님의 사랑의 매 타작은 엉덩이와 영혼까지 털린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 때를 추억하면 아직도 얼얼하게 엉덩이의 환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나중에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우연히 케이블 영화 채널을 통해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제서야 영화속에 숨겨져 있던 내용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아련한 감상을 느꼈던 것 같다.

 

마치 여 주인공이 중국인과 완전한 이별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것이 단순한 계약적인 관계가 아니었음을 깨닫고 독백하며 흐느끼는 장면에서 처럼 말이다.

 

 

 

간혹 20대 때의 사진들을 보면 촌스러움 사이에서도 "젊음" 이라는 단어가 주는 싱싱함과 파릇함이 아련하게 느껴진다.

 

훈련소에서 조금전까지 조교들에게 발길로 걷어 채이고 얼차려를 받다가 집에 보낼 사진을 찍는다고 늠름하던 체하던(실제는 바짝 얼어 있던) 얼굴만 검게 탄 군복이 어울리지 않는 어리버리 뻣뻣한 훈련병 때의 사진에서 조차도 젊음과 앳됨이 그리울 정도로 묻어난다.

 

이등병은 모자를구겨 쓰는게 허락되지 않지 말입니다.jpg

 

 

20대 후반 아내와 연애를 하며 담았던 그 촌스런 사진에서도 아 어렸구나... 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정도이다. 어느새 빨리 찾아온 새치에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하고 흰 수염이 돋아나는 턱, 눈 밑 주름과 깊게 파인 선이 그어진 이마를 보면 이게 불과 15여년 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최근에 앨범과 물건 정리를 하다가 아직 아내가 여자친구이던 20대에 끝자락 어느 여름날에 작은 스티커 사진관에서 담았던 사진 한 장이 툭 떨어졌다.

 

여기 저기 벗겨지고 구겨진 낡아빠진 사진이었지만 문득 들여다보니 정말 젊다... 스튜디오 사진 보정빨도 있지만 피부도 정말 곱고, 이제는 다시는 돌아 갈 수 없는 나와 아내의 20 대 시절.... 어쩐지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한동안 사진을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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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의 힘으로 이 눈빛 느끼한 사진으로 현재의 모습을 상상하는 건 다행히 불가능(?)에 가깝다.

피부는 고왔네.jpg

 

이처럼 20대는 누구에게나 가장 빛나던 이른바 리즈 시절 일 것이다. 가장 싱싱하고 젊고, 대부분이 건강에 자신이 넘치는 나이, 저녁 6시에 나이트 클럽에 입장해 다음날 아침 6시에 비틀거리며 12시간을 춤추고 나와도 한시간 자고나면 9시 첫 강의를 들을 수 있었던 어메이징 한 체력이 있던 시절, 20대

 

 

소리질러~.jpg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PC방에서 게임으로 밤을 세워도 의자에 기대어 한잠 자고 나면 친구들과 "한 게임 더" 를 외칠 수 있을 만큼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체력이 넘치던 시절....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완벽한 사랑과 연예를 꿈꾸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거칠고 투박한 연예와 헤어짐을 통해서 실연의 아픔도 배워가던 시절.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그래도 군복무기간을 빼면 20대 초 중반까지의 그런 행복하던 시기를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고민하던 시절의 기억은 참 어두웠다.

IMF의 여파로 그 전까지 대학만 졸업하면 그냥 당연하게 되는 줄 알았던 취업 이란게 그리 사람을 우울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하는 것인 줄 몰랐었다고 해야 할까?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뭘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라는 미래에 대한 막연함, 결혼은 할 수 있을까? 명절이면 왠지 손가락질 받는 듯 느껴지던 친척들의 시선.

지금 보다야 덜 했겠지만 그 때도 참 청춘들에게 어려운 시기였었나 보다.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더구나 어른들이 좋다고 하던 첫 취업한 직장을 너무나도 답답한 마음에 6개월만에 때려 치고 나오기는 했는데 닷컴 버블 붕괴로 수 많은 회사들이 무너지고 불경기로 재취업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약 1년간의 시간 동안 어둡고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울함이 늘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나 보다.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그 때나 지금이나 대학을 갓 나온 신입에게 권위적이고 답답하고 시대에 따르지 못한 회사의 조직 문화는 때때로 숨통을 조여오는 사슬 같이 느낄 것 같다.

지금은 내가 젊은 신입들 에게는 그 사슬의 한 조각으로 여겨질지도 모르지만...

 

찬란했던 20대 초반과 달리 나의 20대 후반은 많은 고민과 걱정 불안감이 가득하던 어두운 시절로 기억한다. 아마도 역사상 가장 취업하기 어렵다는 요즘의 20대 후반들은 또 그 때 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더 치열한 20대 후반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어찌 혼자 서울에 올라와 하루 종일 해도 비치지 않는 반 지하방에서 살며 다시 직장인이 될 수 있었고 정신 없는 야근과 밤샘의 세월을 보내고 어느새 40대를 넘기고, 가장이 되고 나서는 그래도 그 시절이 가끔 그리워 지는 건 왜 일까?

아마도 취업과 결혼,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했던 청춘, 그래도 그 때를 떠올리며 그리운 마음이 드는건 드문드문 머리에 내린 흰 눈 때문 인지, 인정하긴 싫지만 점점 침침해지는 눈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두려움과 방황이 뒤섞였던 20대 시절, 그래도 누구에게나 허락된 젊음으로 인생의 찬란함과 희망이 있던 20대 시절.

 

그렇다고 "노오력이 필요하다" 같은 꼰대 같은 노력론이나 그저 위로를 하고자 하는게 아니다.

지금의 20대의 어려움은 개 개인이 잘못이 아닌 그 동안의 잘못된 사회 구조의 적폐에서 오는 구조적인 문제로부터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누군가의 다소 무책임한 "다 잘 될거야" 에 뜻밖에 마음이 좀 편해졌던 적이...

나도 그저 그렇고 무책임하게 "이젠 다 잘 될거야"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누군가 에게도, 나의 20대에게도, 아직 마음은 20대인 현재의 나 에게도...

 

혹시 지금 괴롭고 힘들다면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고 못나서도 아니고 그저 인생의 어렵고 고난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옛날 노래에도 있잖아. "쨍하고 해뜰 날..." 미안하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나도 이젠 아재가 된 거 같다.

 

그래도 대선은 끝났고 두 여자는 재판을 받고 있다. 작년보다는 희망적인 한해가 될 것 같다.

이제 앞으로는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아주 옛날에도 젊음은 늘 고민하고 괴로웠나 보다. 좋아하는 옛 글귀로 이 뻘 글을 마무리해 본다.

 

괴로울 때가 있고 즐거울 때가 있다. 고락이 서로 접하고 교대하는 가운데 심신이 연마되어 간다.

행복과 평화의 경지는 끊임없이 서로 접하는 경험에서 얻은 것 이라야 생명이 긴 법이다.

아직 깊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고통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성과는 기초 없이 세운 집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인생은 고락이 서로 접해 흐르는 물 속에서 떠내려가는 한 조각의 나무는 아니다.

고락이 교대하여 흘러가는 동안에 숭고한 정신을 얻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채근담-

명말()의 환초도인() 홍자성()의 어록().

괴로울 때가 있고 즐거울 때가 있다. 고락이 서로 접하고 교대하는 가운데 심신이 연마되어 간다. 행복과 평화의 경지는 끊임없이 서로 접하는 경험에서 얻은 것이라야 생명이 긴 법이다. 아직 깊은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어찌 깊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인가. 고통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성과는 기초 없이 세운 집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 인생은 고락이 서로 접해 흐르는 물 속에서 떠내려가는 한 조각의 나무는 아니다. 고락이 교대하여 흘러가는 동안에 숭고한 정신을 얻게 되는 것이 인생의 모습이다. -채근담

출처: https://lucy7599.tistory.com/250 [지후대디의 Favo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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