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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감성이 묻어나는 꽃 편지지 만들기

추석 명절이 코 앞이라 그런지 주변에서 조금씩 가을 느낌이 납니다. 가을이 오면 어린 시절 사촌 누나들이 잠시 학교를 다니느라 우리집에 머물렀을때 어느 가을날 오후 단풍잎을 주워와서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두고 잘 말려두곤 했던 일이 종종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이라 잘 기억은 안나지만 사촌 누나들과 함께 단풍잎을 주우러 가끔 동네 뒷산에 오르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른 아른한 기억이지만 따사로운 가을 햇살에 빨갛게 또는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주워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같은 어쩐지 누나들도 잘 읽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제목 부터가 가을 느낌의 낭만이 묻어나는 두터운 양장책 사이에 끼워 두었던 것 같습니다.

 

얼마전 블친이신 빈티지매니아님의 블로그에서 본 라벤더 편지지에서 문득 어린 시절의 그런 감성과 향수가 떠올랐던것 같습니다. 딸 아이에게 우리도 이런것 만들러 꽃 주우러 가 볼까? 했더니 아직 어려서 인지 그저 좋아하며 "가자, 가자"합니다.

덩달아 꼬맹이 아들도 "나도 나도" 해서 두 아이를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나서는 길에 딸 아이 친구도 만나 같이 데려가게 되었습니다.


 

아파트 주변 하천 길을 따라 걸으며 떨어진 꽃잎과 이름 모를 들꽃을 조금 꺾었습니다. 날 벌레가 좀 많긴 했지만 아이들은 그저 밖에만 나오면 신이나는 모양입니다.

 


 

까불 까불, 까르르 웃으며 쉴새 없이 뛰는 통에 원래 목적인 꽃 채집은 다소 뒷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멈춰서서 흐르는 물에 나뭇잎들을 띄우고 노는데 더 정신이 팔렸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나뭇잎 배 라는 동요 가사가 떠오릅니다.

 

나뭇잎 배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가는
연못에서 살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어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박홍근 작사, 윤용하 작곡


 


 

약 1시간 반 정도 산책을 하고 팥빙수와 아이스크림으로 마무리 된 이 꽃 채집 산책의 결과는 영 시원찮습니다. 그나마 제대로 모양을 갖춘 꽃은 5송이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하천 끝 무렵에 있는 토끼장 앞에서 토끼들에게 꽃까지 몽땅 줘 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애초의 목적보다는 나뭇잎배 띄우기를 더 오래 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꽃을 주으라고 독려를 했지만 아직 초가을 이라 그런지 길가에는 꽃보다는 풀만 무성하고 아이들 관심은 이미 나뭇잎 배 띄우기로 가 버렸기에 아주 초라한 수확이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요.

 

빈티지매니아님의 블로그에서는 아주 멋진 편지지로 쓸만한 종이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 종이를 구할 수 없어 아쉬운대로 펜시페이퍼를 하나 샀습니다.
 

 

A4지 펜시페이퍼 절반을 잘라서 편지지로 쓰려 합니다. 할아버지, 외 할아버지 댁에 보낼 편지를 쓸 편지지 입니다.

 

 

주로 떨어진 꽃이다 보니 예쁘다기 보다는 참혹한 수확물인데 그래도 일단은 테잎으로 붙여 봅니다.

 

 

빈티지매니아님 작품을 흉내내 단추와 실로 꿸 생각이어서 뒷면에도 같은 위치에 테잎을 붙여 둡니다.

 

 

아무래도 남자인 아빠의 손에서는 예쁜 모양은 나오지 않습니다. 일단 빈티지매니아님 같은 이쁜 실도 없을 뿐더러 흉내로 저도 단추를 붙여보았는데 보통 실이다 보니 늘어뜨리기 보다 그냥 붙여둔다에 의의를 두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관전 모드로 핀잔만 주는 군요....

 


 

빈티지매니아님의 편지지 마냥 의도한 모양이 나오지 않아서.... 아니 완전히 달라져 버려서 좀 아쉽지만 맨날 키보드나 마우스만 쥐는 남자 손이 원래 그렇죠 뭐~ 여튼 잘 고정을 해서 두터운 책 사이에 끼워서 말려볼 생각 입니다. 전혀 가을의 낭만이 느껴지지 않게도 제가 고른 책은 그저 두껍다는 이유로 선택된 앨빈 토플러 저 -부의 미래- 입니다. 무척 두꺼워서 읽으려 노력 할 때마다 아주 숙면에 들게 만들었던 책 입니다.

 

원래의 제 머리속에 있던 제작 의도를 보시려면 여길 방문해 보세요

빈티지매니아님의 라벤더 편지지

 


이 꽃 편지지들은 책 사이에 끼운 뒤 두꺼운 책들을 쌓아서 눌리게 해 두었습니다. 잘 눌러지고 어느정도 마르면 여기다 아이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편지를 쓰게 할 생각 입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저 처럼 가을날의 따스한 기억으로 떠 올릴수 있는 순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들 키우다 보니 그런건지 안 하던 짓을 요즘 종종 하게 되는군요. 어쩌면 남자 40대에 늘어난다는 여성호르몬 때문인지도 모르고 아직은 감수성 예민한 갱년기 40대 아재처럼 드라마보고 눈물 짓곤 하진 않지만 요즘 따라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도 눈에 들어오고 어릴적 느꼈던 감성이 문득 문득 폭발하는 가을날. 마치 질풍 노도의 시기를 다시 맞은 위기의 중년이 된 모양입니다.

 

 

아이고 뭐 큰일을 했다고 시간은 어느새 가을날 오후의 햇빛이 거실에 길게 드리우고 기분 좋은 따스함이 있을 무렵이 되었습니다.

 

 

 

꽃 편지지를 책에 눌러두고 그 위에 책들을 쌓아두고 돌아서 나오니 아빠야 뭘 하거나 말거나 따사로운 가을날 오후의 꽃 따느랴 나뭇잎 배 띄우느라 피곤했던 아이들은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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