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 영제와 십상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

2016.10.23 16:57 Story of Kings & History

오늘은 저 유명한 삼국지의 시대를 연 원인 중 하나인 후한의 영제와 십상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부제로 "암군과 문고리 권력을 쥔 간신들"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간신의 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는 멍석은 항상 암군이 깔아주는 법이라는 생각 입니다. 재미있게도 역사는 시대가 바뀌어도 늘 반복되고 뛰어난 임금 밑에서는 두드러지지 못하고 숨죽이던 간신. 척신들도 늘 폭군이나 암군이  등극하면 활개를 치기 시작합니다.


환관은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라기 보다는 왕의 신변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궁의 일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내직에 종사하는 거세된 남자를 뜻합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인 황제나 왕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보니 때때로 암군을 만나 권세를 얻어 한 나라, 한 왕조의 사직과 운명에 해악을 끼친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가까이에 있고 늘 내 비위를 맞추며 듣기 좋은 말을 속살거리는 사람들을 멀리하기란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역사상의 뛰어난 왕들로 평가 받은 이들은 결코 자신의 권위를 환관이나 간신배가 남용하도록 허락 하지 않은 왕들 이기도 합니다. 즉 역사속 명군들의 치세란 측근의 참언이나 비난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로 적재 적소에 인재를 배치하고 바른 정치를 수행하고 나라의 사안들을 올바르게 판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국지의 군웅할거 시대를 여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십상시

이미지 출처 : http://inpyohong.khan.kr/217


역사상 간신배들이 득세한 시대의 왕들은 국정에 대한 명확한 주관과 생각이 없고 현명한 자들의 말을 멀리하고 가까운 이들의 참언이나 달콤한 말만 들으며 사람의 벽에 갖힌 암군인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나라를 멸망시킬 적군이 코 앞에 당도할때 까지도 모두가 아는 그 사실을 혼자만 몰랐던 왕들도 있습니다.


이전에 소개한 지록위마의 고사에서 보듯 암군의 경우는 권력을 얻은 신하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면서 자신을 바보 취급해도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호해는 나라를 운영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진나라 조정은 결국 조고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권력을 가지게 되자 점점 대담해지고 야심을 가지게 된 조고는 어느날 자신의 힘을 시험해 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폐하, 저것은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폐하를 위해 구했습니다.”

라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승상은 무언가 잘못알고 있는것 같소. ‘저것은 분명 사슴인데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니[指鹿爲馬(지록위마)]’ 무슨 소리요?” 호해가 어리둥절 하며 묻자 조고는 짐짓 “아닙니다. 말이 틀림없습니다.” 라고 강하게 말했다.


조고가 이처럼 사슴을 말이라고 우기자, 호해는 결국 중신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아니, 제공들 보기에는 저게 뭐 같소? 말이오, 아니면 사슴이오?”


그러자 대부분은 조고가 두려워 ‘말이 옵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나마 이꼴을 볼 수 없었던 일부 중신들은 ‘사슴입니다.’ 라고 똑바로 대답했다.


조고는 사슴이라고 대답한 자들은 모두 기억해 두었다가 후에 죄를 씌어 죽여버렸으니 이후 진나라 조정에는 감히 조고의 말에 거역하는 자들이 없어졌다.


관련 글

[Story of Kings & History] - 지록위마(指鹿爲馬) 유래, 환관 조고 이야기


하지만 뛰어난 명군들은 신하가 문고리 권력을 잡고 흔들지 않도록 항상 소통의 문을 열어두고 그 싹을 잘라 버립니다.


예를 들자면 정조는 즉위 전부터 자신을 보필해 왔던 홍국영이 단시간에 많은 권력을 얻고나서 교만해지자 수족과 같던 그를 유배 보내어 실질적으로 은퇴 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아래와 같이 이와 같은 사단이 벌어진 것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는데 애당초 현명한 왕이 정국을 주도할 때 간신은 그 싹이 자라 나다가도 잘려서 발을 붙이기 힘든 법입니다. 홍국영이 간신인가 아닌가에는 이견이 있지만 많은 공을 세운 후 권력을 얻은 후의 그의 후반부 행보는 석연치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홍국영(洪國榮)이 죽었다. 경자년2664)  봄부터 정신(廷臣)들이 일제히 홍국영의 하늘까지 닿은 큰 죄에 대해 성토하였는데도, 임금이 끝내 주벌(誅罰)을 가하지 않았었다. 처음에는 횡성현(橫城縣)으로 방축시켰다가 다음에는 강릉부(江陵府)로 방축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죽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통분스럽게 여기지 않는 이가 없었다. 임금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이런 죄에 빠진 것은 참으로 사려(思慮)가 올바른 데 이르지 못한 탓이다. 그가 공을 세운 것이 어떠하였으며, 내가 의지한 것이 어떠하였었는가? 처음에 나라와 휴척(休戚)을 함께한다는 것으로 지위가 중하지 않으면 위엄이 서지 않았기에 권병(權柄)을 임시로 맡겼던 것인데, 그가 권병이 너무 중하고 지위가 너무 높다는 것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며 스스로 삼가는 방도를 생각하지 않고서 오로지 총애만을 믿고 위복(威福)을 멋대로 사용하여 끝내는 극죄(極罪)를 저지르게 된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이는 나의 허물이었으므로 이제 와서는 스스로 반성하기에 겨를이 없으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9월 이전의 죄는 우선 논하지 않더라도, 9월 이후의 죄에 대해서는 더욱 할 말이 없다. 내가 만약 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런데 중신(重臣)의 한 차자(箚子)에 그의 죄가 남김 없이 드러났으니, 공의(公議)는 숨기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니, 예조 판서 김익(金熤)이 말하기를,

“권간(權奸)의 신하가 예로부터 한정할 수 없이 많았습니다만, 홍국영처럼 손으로 나라의 명운을 움켜쥐고 권세가 임금을 넘어뜨릴 정도에 이른 자는 전적(典籍)이 있은 이래 없던 바입니다. 그리고 전하께서 홍국영에 대해 작위(爵位)를 높여 주고 은수(恩數)로 총애하여 주신 것 또한 전적이 있은 이래 없던 것이었습니다. 권병(權柄)이 한번 옮겨지자 국세(國勢)가 거의 위태할 뻔하였으니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하여 보면 써늘하여 가슴이 떨립니다. 이는 실로 전하의 과실인 것인데, 신이 전석(前席)에서 자신을 책망하는 하교를 우러러 받드니, 삼가 우충(愚衷)에 스스로 격동되는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하자, 임금이 말하기를,
“예판의 말이 옳다. 한마디로 포괄하여 말한다면, 이는 곧 나의 과실인 것이다.”
하였다.

조선왕조 실록 정조 11권, 5년(1781 신축 4월 5일)
홍국영 졸기

 

관련 글

[Story of Kings & History] - 정조, 홍국영과 규장각 -2-

 

윗 인용글에서 김익이 서슴없이 왕에게 간하고 있는 바는 분명합니다. "권세가 임금을 넘어뜨릴 정도" 즉, 임금보다 높은 권력을 가지도록 한것은 임금 자신의 과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받아들여 수긍하는 정조의 말 또한 군주의 그릇을 보여줍니다. 아마도 암군이었다면 이런 듣기 싫은 말을 간한 이를 오히려 찍어내었을 터 입니다.

 


후한 영제


후한의 영제(靈帝)의 시호인 영(靈)은 시호나 묘호를 붙이는 법칙인 시법에 의하면 "어지럽지만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을 이라 한다.(亂而不損曰靈)" 라고 되어 있지만 이는 완곡한 표현으로 어리석은 임금에게 붙이는 시호 중 하나였는데 영제 이후로는 완전히 암군에게 주는 시호가 되었습니다.


환제의 5촌 조카로 원래는 황제의 집안과 거리가 멀어 제위와 연이 없을 정도로 그 배경이 한미 하였기에 황제가 되었다는 측면에서 조선의 철종과 닮은 부분이 있습니다. 환제의 양자가 되어 환제 사후 13세라는 나이에 황제가 되었습니다. 입궁 한후 환제때 부터 세력을 굳힌 십상시들에게 훈육되다 보니 십상시의 우두머리인 장양을 아버지 -“장상시는 내 아버지()”-, 조충을 어머니라 부를 만큼 따랐다고 합니다.


장양은 궁궐에서 의지 할 곳 없던 외로운 어린 황제에게 접근하여 어릴때는 말타기와 수레 놀이, 공놀이를 권하며 같이 놀아주었고 성인이 되자 여자를 권하여 황제를 주색에 빠지게 만드는 등 왕도가 아닌 파락호의 길로 인도하는 잘못된 교육의 표본과 같은 훈육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황제를 놀이와 주색잡기에 빠지게 만든 후 장양은 절대적인 권력을 누렸습니다.


이처럼 영제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황제가 스스로 직접 나서 매관 매직을 할 정도로 돈 벌이와 그렇게 벌은 돈으로 모의 시장을 만들어 장사꾼 흉내를 내는 놀이를 한다거나 주색잡기에 몰두하였습니다. 황제가 직접 나서서 벼슬을 팔다보니 거금을 들여 벼슬을 얻은 자들은 가렴주구로 그 본전을 백성들에게서 빼내려 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결국 영제의 시대에 민중은 관리들에게 수탈당하고 또 나라에서 부과하는 무거운 부역에 시달리는 이중고를 겪으며 민심이 완전히 이반하게 되어 황건적의 난이 발생하였고 이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규군의 무능이 드러나고 지방의 군벌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한나라가 사실상 망하고 삼국지의 시대로 들어서는 "군웅할거"의 시대를 연 황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결국 주색에 빠져 건강을 해친 영제는 189년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게 되었고 하태후의 오래비인 하진과 십상시간의 암투 과정에서 하진이 십상시의 흉계에 빠져 죽고 분노한 하진의 부하 오관, 원소와 조조등 교위들에 의해 십상시들도 대부분 척살 당하는 이른바 십상시의 난의 혼란의 와중에서 동탁이 헌제를 옹립하게 되면서 마침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삼국지 난세의 시대가 오게 됩니다.


황건적의 난

이미지 출처 : https://namu.wiki/w/황건적의 난


십상시


동양에서 즐겨 읽는 고전인 삼국지연의에서 십상시는 건석, 곽승, 단규, 봉서, 장양, 정광, 조절, 조충, 하운, 후람 10명 이고 후한서에서는 12명으로 장양, 조충, 하운, 곽승, 손장, 필람, 율숭, 단규, 고망, 장공, 한리, 송전이 등장 합니다. 이중 양쪽에 공통적인 이름은 굵은 글로 표기된 5명입니다. 정사인 후한서의 기록을 따르는게 옳지만 아마도 십상시란 권력을 쥔 환관 무리들의 대표격들을 칭하는 것으로 실제는 더 많은 환관의 집단을 지칭하는것이 아니었나 추측해 봅니다.


어느쪽에서나 장양이 수장이고 부수장이 조충인 부분은 동일합니다. 사실 영제의 선제인 환제 역시 당시 환관의 우두머리인 "조등"에 의하여 옹립되었을 정도로 한 말기에 어린 황제가 자주 등극하면서 세력을 얻은 환관 세력과 외척 세력이 자주 권력을 잡기 위한 힘겨루기를 벌렸습니다.


후한의 경우 어린 황제가 자주 집권하다보니 외척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황제가 자라면 전권을 휘두르는 외척을 숙청하려고 했는데 이를 위해 가까이에 있는 환관들을 친위 세력화 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결과 필연적으로 환관들의 권력이 커져서 황제의 눈과 귀를 틀어막아 권력을 마음껏 휘두르고, 황제가 요절하면 또다시 어린 황제가 즉위해 외척들이 다시 반격을 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황제가 바뀌거나 성장하면 힘을 읽게되는 외척세력과 달리 환관 세력은 대를 이어 그 힘을 축적하게 되면서 결국 환제 이후 후한 말기는 이들이 외척과의 다툼에서 우위를 보이게 됩니다.


이들의 대표적인 전횡은 매관매직이었는데 관직을 팔아도 그 임기를 인정해 주지는 않아서 관직에 임명되면 본전을 뽑기 위해 백성들을 쥐어짜듯 수탈해야 했습니다. 계속된 매관매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수시로 독우가 파견되어 이 자리가 거의 1년 단위로 교체되어야 했는데 삼국지 연의에서 평원 현령이된 유비에게 뇌물을 요구하던 독우을 장비가 매달아 매를 치는 장면이 나올정도 입니다.


당고의 금으로 일컫어지는 관료층과의 충돌에서도 승리한 이 환관 세력들은 외척인 두무 그리고 관료파인 진번을 없애는데도 성공하여 이후에는 황제의 눈과 귀를 감싸고 거리낄것 없이 권력을 누리고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당고(黨錮)의 옥(獄)이라고도 한다. 후한 10대 황제 환제(桓帝:재위 147∼167)는 외척 양기(梁冀)를 쓰러뜨리기 위하여 환관의 힘을 빌어 살해하게 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환관은 내정에 간섭하고 자기들의 일족을 지방으로 파견시켜 토지겸병(土地兼倂)을 행하는 등 횡포를 자행하였다. 한편 당시의 호족이나 관료 사이에는 유교주의가 성행하여 환관의 진출을 증오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정세하에 지방관과 태학(太學)의 학생들은 진번(陳蕃:?∼168) ·이응(李膺:?∼169) 등을 옹립하고 시정(時政)을 비판하여 환관세력에 대항하였다. 때마침 이응이 환관과 친히 지내던 장성(張成)의 아들을 살인죄로 처형하자, 이에 앙심을 품은 장성은 환관과 결탁하여 이응을 무고(誣告)하였다.

166년 환제는 국정을 문란하게 한다는 이유로 이응 ·범방(范滂) 등 반대파 관료 200여 명을 체포하고 이어 종신금고(終身禁錮)에 처하였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을 청절(淸節)의 선비로서 존경하였다.

환제가 죽고 외척 두무(竇武:?∼168)가 영제(靈帝)를 옹립하여 세력을 잡자 그는 진번 ·이응 등을 중임(重任)하였으며, 168년 환관세력을 일거에 제거하려고 하였으나 오히려 환관세력에게 역습을 당하여 진번이 살해되고 두무는 자살하였다.

이와 같은 관료파 당인에 대한 대탄압으로 이응 ·두밀(杜密) 등 100여 명이 살해되고, 600∼700명의 관료파 당인들이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졌다. 금고란 관리의 신분을 빼앗아 서인(庶人) 이하의 신분으로 내리는 것이었다.

두 차례의 탄압으로 관료층이 동요한 데다가 환관들이 정치를 농락하여 부패가 극심하여, 184년 지방에서 황건적(黃巾賊)의 난이 일어났다. 이때 당고령은 해제되었지만, 결국 후한은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고의금 (두산백과)


이처럼 십상시들은 매관매직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으며 그로 인한 사치와 향락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작위를 양자를 통해 세습하게 되자 그 권력이 더 공고화 되었고 십상시 세력의 부모 형제, 친척 들도 그들의 위세를 믿고 날뛰며 백성들을 착취하니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각지에서 난을 일으키고 결국 황건의 난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황건의 난중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십상시들은 오히려 이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정적들을 황건적이나 다른 난을 일으킨 자들과 연루시키는 모함을 저질렀고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는 지휘관에게는 싸울 의지가 없고 오히려 적과 내통한다는 식으로 무고였는데 대표적인 피해자가 과거 유비와 공손찬에게 글공부를 가르쳤던 노식이었습니다.

십상시들의 권력은 실제 전장에서 황보숭, 주준, 노식, 손견, 조조 등의 활약으로 황건적의 난을 간신히 진압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적은 다른 혐의를 만들어서라도 지워버리고 본인들이 그 공적을 가로채어 스스로를 열후에 봉하는 등 황건의 난 이후 더 공고해 졌습니다. 그러다 결국 외척인 하진과 대립하게 되었고 하진을 암살하면서 십상시의 난을 일으켰지만 분노한 원소와 그 휘화의 교위들에 의해 결국 대부분 살해당했습니다.


이들 십상시야 말로 국정을 농단하고 온갖 방법으로 백성들을 착취함으로써 황건의 난을 유발하고 삼국지의 난세를 열게 만드는데 일조한 주인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문고리 권력


그 정확한 어원의 출처를 찾기는 어려웠습니다만 권력자에 가까운 문을 관리하는 자의 권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황제의 주변에서 십상시들의 권력의 근원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로 정의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즉 스스로의 힘이 아닌 권력자, 이른바 때마침 나타난 암군의 권력에 기대어 그 눈과 귀를 막고 전횡을 일삼는 행위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서양을 통틀어 경계하지 않으면 언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콜린 파월에 따르면, 존 캐스터는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과의 친분을 이용해서, 카터 시절 미국 국방부의 문고리 권력 역할을 했다. 캐스터를 거치지 않고는 서류가 장관에게 전달되지 않았고, 심지어 캐스터는 군의 인사문제에도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인사문제에서 캐스터의 힘은 육군 참모총장의 그것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존 캐스터는 자신의 문고리 권력을 어떻게 행사했을까?

케스터는 배우였다. 나는 국방부의 모든 중요한 권력의 줄이 그의 손을 거친다는 것을 곧 발견했다.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해럴드 브라운 장관이었다. 그러나 케스터가 너무나 주도면밀하게 처리를 하여서 어느 누구도 혹은 어떤 서류 한 장도 그를 먼저 거치지 않고는 브라운 장관에게 도착하지 않았다.


출처-
2차 : http://egloos.zum.com/kk1234ang/v/3036329
1차 : 콜린 파월, 콜린 파월 자서전, 339-344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문고리 권력인 문졸에 대해서 적고 있습니다.


문졸이란 가장 천하고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손아귀에 틀어잡은 권리는 모두 합해 다섯 가지가 있으니, 혼권(閽權), 장권(杖權), 옥권(獄權), 저권(邸權), 포권(捕權)이다. 이런 권력을 지녔기 때문에 백성들은 그를 승냥이처럼 두려워하는 것이고, 목민관은 그들이 제멋대로 포학하는 것을 내버려두니 이에 백성들이 괴로움을 당하게 된다.


혼권’ : 백성이 억울한 사연을 적어서 관청에 들어왔는데, 그 내용에 관청 아전들의 잘못에 관한 부분이 있으면 가로막고 원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권한을 말한다. ‘장권’ : 잘못한 사람에게 곤장으로 때리는 권한인데, 잘잘못을 가리지 않고 문졸 스스로 판단대로 매질을 남용할 수 있는 권한,

‘옥권’ : 범죄자를 옥에 가두는 집행권,

‘저권’ : 세금 받는 권한 

‘포권’ : 범죄자를 체포하는 권한


출처 : http://blog.daum.net/1tksong/3774319


역사는 언제나 돌고 도는것이라는 생각이 과거의 역사를 읽을때마다 느껴지는 감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를 대변한다는 만평 만화들을 보고 있자면 현재가 중국의 후한 말기와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쩐 일일까요?


이미지 2차출처 :

http://cafe.naver.com/booknbeanstalk/524593

http://cafe.naver.com/soopoong/13446


PS.

난세의 간옹이라도 해먹을까 보다.... 물론 현실은 황건적 칼에 맞는 백성1이 되지 않았으면....

블로그 또 한동안 저품질 되는거 아닌가 모르겠음...

요즘은 왕들의 이야기만 쓰면 절묘하게 한 동안 저품질 되는 듯한 징크스의 느낌적인 느낌...

뭐 그럴리 없겠지 나 같은 변방 블로거에게...


내용 참조

후한서
국내도서
저자 : 범엽 / 이미영역
출판 : 팩컴북스 2013.04.10
상세보기

http://www. wikipedia.org

http://blog.daum.net/dsgim2/12737527

http://blog.naver.com/jufotao/220202802450


-6월25일자 업데이트-


10월18일 부터 포스팅을 조금씩 끄적이다가 10월 23일에 마무리해서 발행을 했는데 10월 24일 부터 시작해서 모든 것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군요... 무엇을 상상했던 상상 이상의 일들이라 충격 입니다. 이건 후한 때 장양이 보았다면 울고갈 것 같습니다.








한나라땐 매관매직을 했다지? 21세기에는 좀더 스마트하게 재단부터 만들지.jpg


온나라가 밝혀진 사실들에 충격에 빠져 있습니다. 한나라 영제는 그나마 호탕함이라도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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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참 씁쓸하지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변한건 없다라는게 더 맘이 그래요. 그x이 대선 출마 했을때부터 환관정치가 될거란 말은 많았는데 정말 그렇게 돼 버리니, 참 암울합니다. 우리에겐 훌륭한 군주를 만날 기회가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오늘 아침엔 개헌하겠다고 공식 선언하는 꼴을 보니 더 복창이 터집니다. 아이고 암튼 우리.. 모두 훌륭한 선조들 처럼. 멋진 민초가 되어야지요!
    • 이 지경까지 왔는데 또 딱히 변하는게 없어 보이는 것도 답답한 일인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어영부영 시간이 가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최순실 지겹다 그만해라 이런말 나오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2. 역사는 정말 돌고도는 것이란 생각을
    역사를 볼때마다 느끼게 되네요.
    그래서 역사를 거울이라고도 하나봅니다.
    잘못된 역사가 더이상 반복되지 않길 빌어봅니다...
    • 참 요즘 뉴스를 보면 시대가 변해도 권력자들은 변하기 어려운가 봅니다. 이렇게 대 놓고 해먹기도 어려운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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