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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놓치기 싫은 인생의 순간들. 아빠사진사

시간이 지나 돌아 보니 사진에는 1g도 관심이 없던 제가 카메라를 들게 된 것은 아마도 여느 아빠들 처럼 아이들이 생기면서 부터 인 것 같습니다.


큰아이가 어릴때는 익시라는 똑딱이 디카로 나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아이들을 담다가 부족함을 느껴서 당시 없는 형편에 큰 마음 먹고 미러리스 카메라를 결국 지르게 됩니다. 카알못(카메라 무식자) 이었기에 당시 막 나온 신품인 캐논 미러리스 EOS M을 TV CF만 보고 덜컥 샀는데 당시에 아내가 "내 생에 100만원 가까이 되는 카메라 사게 될 줄은 몰랐다" 라고 감격했을 정도로 카메라와는 인연이 먼 사람들 이었습니다.


뭐 사실 나중에 6개월 만에 EOS M 신품이 반값도 채 안되는 가격에 더블 렌즈킷이 팔리게 될 줄도 그때는 몰랐습니다.(ㅜㅡ).

애증의 EOS M 이긴 한테 아직도 미러리스용 망원렌즈(EF-M 55-200 F/4.5~6.3 STM) 또는 22mm 펜케익을 물려서, 오막삼에 표준이나 85mm단렌즈를 물려서 들고 나갈때 투바디 처럼 잘 사용하고 있긴 합니다.


사실 더 나중에 급격한 뽐뿌로 지른 오막삼 신품과 구입한 L렌즈들을 생각하면 100만원 운운이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아마도 어쩌면 그쯤에서 지름이 멈췄어야 했는지도....


결국 저는 카메라 광고멘트에 가장 충실한 사람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그 "놓치기 싫은 인생의 순간들"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으니까요.



그렇게 제가 담아두고 싶었던 순간들은 돌이나 입학/졸업 같은 큰 행사뿐만 아니라 좀더 소소한 일상의 순간들도 포함됩니다.

돌이나 입학 졸업 같은 굵직한 행사는 꼭 제가 담지 않아도 어떤 형태로든 동영상이나 사진이 남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비교적 개인적이고 소소한 기념들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처음으로 씽씽카를 타던날, 자전거 타던 날 같은 정말 아주아주 작은 것들 입니다. 보통은 기억속에서도 희미해질 그런 순간이 사진이나 영상으로 남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은 아빠 사진사들에게 카메라를 손에 들게하는 동력이기도 한것 같습니다.






영상 말미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이들은 네발 자전거도 처음 탈 때는 페달 밟은 것부터 어려워 하는 부분, 자전거를 무거워 하는 모습, 첫 페달질을 하게되기 까지의 과정 같은 것은 같이 하지 않으면 영영 모르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카메라나 사진에 좀더 빨리 관심을 가졌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것은 나름 열심히 100만 화소 150만 화소 휴대폰 카메라로 담았던 첫째 아이의 낮은 해상도의 사진을 가끔 볼때 마다 입니다. 또는 사진이 아예 없어서 동영상에서 일부 추출해낸 사진들의 낮은 해상도를 가끔 TV로 볼 때마다 늘 아쉬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카메라를 선택할때 당시 기준으로 일반인 레벨에서 선택할 수 있었던 가장 높은 사양의 오막삼을 한방에 질러서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도 아이들 담는 사진에 이렇게 투자를 해야할까? 하는 고민을 잠시 하긴 했었는데 바로 그 놓치기 싫은 인생의 순간들은 언제나 시시각각 지나가고 있으며 내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초보 주제에 다소 과한 투자를 감행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돌아보면 그래도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싼 비용을 들였기에 본전 생각에 더 열심히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녔고 더 열심히 아이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커가는 순간 순간의 소소한 모습들을 거의 대부분 사진으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유치원 가방을 받아온 유치원 오리엔테이션 이후에 가방을 메고 신나하는 아이의 모습도




어느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같이 나갔던 산책의 기억도...




할아버지가 선물해준 피아노가 너무 좋아서 아침에 눈뜨자 마자 달려와서 쳐보던 설레임 가득해 하던 첫째의 모습 같은 일상의 소소하고 아 그랬지 하는 기억의 단편들의 모습들을 정말 풍부하게 남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아이들과의 소소한 추억들을 사진으로 남기고 저장하고 관리하는 일이 어느새 내게는 주된 취미가 되었는데 가끔은 무언가를 남기고 추억을 정리하는 이런 부분은 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성향 같기도 합니다.

제 어머니도 넉넉치 않는 형편에다 카메라도 없었지만 (카메라가 가보 같이 여겨지던 시절) 그래도 무언가 기념할 일이 있을때는 옆집에서 카메라를 빌려와서라도 꼭 사진을 남겼고 인화를 해서 앨범에 곱게 차곡차곡 우리 형제 사진을 잘 정리해 남겨두셨습니다.


사실 사진뿐 아니라 아직도 부산 본가에는 형제가 아기 때 쓰던 배냇저고리, 유치원복 같은 추억의 물건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여기저기 잘 갈무리 해 보관해 두셨습니다. 여러번 이사를 했는데도 이런 오래된 물건들을 가지고 계신걸 보면 정말 특별히 신경을 쓰신게 분명합니다.



일상의 아이들의 모습을 평소에도 카메라로 남기다 보니 어느새 하드디스크의 사진 수는 10만장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건강 할 때나 아플 때, 행복하거나 슬플 때, 그 겨울에 첫눈이 펑펑 온 날 같은 기억이 모두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꼭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하라는 지름을 독려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진에 취미를 가지면서 역시 사진 보정에도 취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대부분의 스마트폰도 RAW 촬영이 가능해지면서 아직 DSLR에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최근 스마트폰 카메라의 발전과 RAW 보정을 통해 꽤 괜찮은 화질의 사진을 남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일상의 순간을 남기는 순발력에서는 스마트폰을 따라갈 카메라가 없습니다. 아래 두 사진은 모두 아이폰 6S 플러스로 RAW 촬영하고 보정한 일상의 순간들 입니다.




이처럼 꼭 고가의 카메라가 아니라도, 스마트폰 정도로도 "놓치기 싫은 인생의 순간들"을 담는데 제약은 있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결국 장비 이야기를 한것이 아니라 이런 순간을 남기고 담고 정리하는 아빠 사진사의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쓴 글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내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의 그 평범한 순간, 그 순간 들은 너무나 평범해서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두번 다시는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들입니다.

그 순간들을 소중히 하고 같이하려 노력하는 일이 요즘의 아빠들에게 참 중요합니다. 아니 사실 앞서 이야기한 사진을 남기는 것, 추억을 남기는 것 같은 구체적인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그저 아이들 기억속에 함께한 것만 남아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물론 글쓴이도 직장인이고 누구나 그렇듯 자주 야근이 있습니다. 더구나 한국 사회나 대부분의 직장의 환경이 가정에서의 아버지의 역할을 아직 충분히 존중하지 않는 환경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현실적인 상황을 고려해서 적어도 주말 만큼은 꼭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갖는게 참 소중하다는 생각 입니다.


적어도 제게는 이전 직장들 중 딸 아이의 유치원 졸업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한 것 같은 경직된 회사 분위기 (회사 일이 더 중요하지! 아빠가 유치원 졸업식 같은 사소한 것으로 휴가를 내나? 같은 반응) 같은 부분이 제게는 다른 직장으로 이직을 고려 할 때의 한 요인이 될 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습니다. 내 첫 아이의 유치원 졸업 행사 참석은 보시는 분들이 어떻게 느끼실지 몰라도 제게는 참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혹시 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술 약속으로, 회사가 늘 야근이라서, 가끔이 아닌 상례화된 주말 출근 등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빠라면 당장 그 상황을 개선하지 못하면 인생에서 두번 다시 오지 못할 순간들을 이미 하나 하나 놓치고 있는것일 수 있습니다. 아빠들이 놓치지 싫은 인생의 순간들을 누구나 아무 부담 없이 누릴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바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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