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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림, 무협의 세계 - 일상의 쓸데 없는 잡담

지후대디 2021. 4. 23. 23:21

서양에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가 있다면 그 대척점으로 동양에는 "신조협려" 같은 무협이 있다는 말을 흔히들 합니다. 실제로 RPG 게임의 소재로 대부분 엘프나 드워프, 마법사 기사 등이 나오는 판타지 기반과 주로 중국, 대만, 한국 등 동아시아권에 국한되긴 하지만(일본은 찬바라라는 사무라이 물이 그 자리를 대체) 정파와 사파, 새외무림등이 등장하는 무협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무협, 무림이라는 중국을 배경으로 한 상상력으로 창조된 가상의 세계는 그 근원은 중국 협의 소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도 어떤 측면에서는 무협물적 요소가 일부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장비의 고함에 놀라 죽는 하후걸, 의기상인?, 사자후?)

 

지금과 같은 그 정체성이 어느 정도 형성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1910년대 중국으로 보고 있습니다. 최초의 무협지로 알려진 것은 1922년 평강불초생(平江不肖生)이란 필명을 쓰는 상개연(向愷然)이란 작가가 <홍잡>에 『강호기협전』이라는 소설을 6년 동안 연재한 것을 그 시초로 한다고 합니다.

 

중화권의 와룡생, 김용, 양우생등의 저도 익히 하는 유명한 무협작가들을 통해 어느 정도 현대의 무협지의 기틀이 잡혔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동아시아, 아니 적어도 한국에서는 웹 소설과 게임, 웹툰에서 판타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소재가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무협의 세계

판타지가 아예 가상의 세계, 가상의 세상, 이계등을 무대로 하는데 비해서 무협물에 등장하는 무림은 역사 시대의 중국을 배경으로는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지명과 시대만 빌려온 가상 세계가 배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역사 인물을 기반으로 한 경우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실제의 중국이 아닌 창작자가 만들어낸 가상의 중국이 주로 무대입니다.

 

그래서 무협의 배경인 세상인 무림 또는 강호는 실제 하지 않는 상상속의 사물들도 많이 등장합니다. 특이한 기능을 가진 독이나 내단, 영약, 신병이기 같은 물건들과 강시, 영물, 과 같은 판타지의 몬스터에 해당하는 것들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때로는 판타지로 무대를 바꾸면 바로 마법이 될 주먹질이 아닌 특이한 무공이 나오기도 합니다.

 

결국 그 근본을 보면 판타지나 무협이나 창작자가 상상력을 펼치기 좋은 주인공의 모험 활극을 그리기 위한 가상의 세계이자 배경인 셈입니다. 오늘날은 한국에서 확대 재생산되는 많은 무협물에서도 볼 수 있듯 대부분 작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구파일방, 정파와 사파의 대립 등은 대만 작가인 와룡생의 소설 설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그 외 김용(금용?)과 같은 걸출한 무협작가들로 인해서 마교(명교)와 각 문파별의 절기, 개방의 타구봉 등 오늘날 대부분의 무협의 배경은 어느 정도 자리잡아 정형화된 무협의 세계관이 자리잡았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만화방과 같은 대본소 형태의 가게에서는 수많은 국내 작가들이 양산한 무협지들도 역시 많이 빌려 가는 시대였습니다. 이 무협지들의 전성시대에는 사실 저는 무협지에는 크게 재미를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사실 이런 대본소에 있는 무협지들은 대부분 비슷한 내용이 속성으로 양산된 모양새여서 크게 재미를 보장하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어떤 경우는 최초 설정이 어느 시점에 붕괴해서 전혀 다른 내용으로 결말을 맺는 졸작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무협물에 재미를 붙인건 고등학생 때 접한 영웅문 시리즈(김용의 이른바 사조삼부곡,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시리즈를 묶어 국내 출간되었던 시리즈)였습니다. 제가 읽은 건 고려원에서 출간한 본입니다. 

 

제본이나 상태가 너무 좋았는데 고려원 본은 원작가 동의 없는 해적판이었다는 소문이...

잘 짜인 스토리와 읽기 시작하면 책을 손에서 놓기 힘들게 만드는 이 시리즈를 대체할 무협소설은 이후로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인이 되던 시기에는 소설보다는 열혈강호 또는 용비불패 같은 국내 무협 만화가 제게 큰 재미를 주었더랬습니다. 지금과 같은 웹 소설의 전성기에는 가끔 국내 작가의 무협소설을 종종 봅니다. 요즘은 무협도 판타지도 너도나도 전부 회귀나 게임 시스템과 결합한 "시스템"물이 대세로 무협물도 많이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쓸데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일본을 제외한 동아시아에서 톨킨의 판타지 세계관만큼 거대한 세계관으로 성장한 무협지의 배경인 무림, 또는 강호... 합쳐서 강호무림이라고도 하는 가상의 세계관에 대해서 잡담을 풀어 볼까 합니다.

 

정통 무협물이나 조금씩 변동이 있지만 대부분의 무협물에는 팩션, 이른바 세력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으로 9파 1방이라는 정통 정파 세력이 대부분 등장합니다.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대략 다음의 세력들이 구파일방으로 등장합니다.

 

9파 : 소림사, 무당파, 아미파, 화산파, 곤륜파, 종남파, 공동파, 점창파, 청성파, 형산파, 해남파 

1방 : 거지들의 조직인 개방

 

9파가 9파가 아닌 12개인 이유는 무협 작가에 따라 위의 9파들이 약간씩 변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위에 언급한 문파들 중 9개가 등장하는데 소림사와 무당파, 화산파는 대개 필수적으로 등장하고, 위에 언급하지 않은 약간은 마이너 하지만 검후를 등장시킬 경우 보타문이 나올때가 있고 설산파, 천산파, 숭산파 등 작가의 재량에 따라 변동이 있을 수 있습니다.

 

1방은 거의 이론의 여지없이 늘 개방이 등장하며 보통 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보통 사파를 등장시키면 개방에 대응하는 조직으로 하오문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구파일방의 기원이 김용의 작품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 근원이라고 많이 언급되는 의천도룡기에는 사실 육대문파만 나옵니다.(소림사, 무당파, 아미파, 곤륜파, 공동파, 화산파) 대부분 구파일방의 기원은 또다른 무협 작가인 와룡생에서 비롯된 것으로 봅니다. 와룡생의 작품 중 "비연경룡"에 구파일방이 등장합니다. 사실 실질적 구파일방의 등장 보다는 무림의 여러 세력들이 서로 경쟁하며 세력다툼을 벌이는 클리셰 자체가 와룡생의 작품들의 특징으로 보기에 와룡생을 그 기원으로 보는 주장들이 많습니다.

 

국내의 소설들에도 구파일방 외에도 그 다음가는 위상으로 무림세가들이 필수적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은 5대세가 정도가 등장합니다. 재미있게도 무림세가의 명칭은 한자4개로 구성되는게 필수인것 같습니다. 이 때문에 제갈세가, 남궁세가, 모용세가 같이 복성이거나 사천당문, 하남팽가, 진주언가등 지역명을 붙인 경우도 있습니다. 어느정도 고정된 클리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갈세가는 지략이 뛰어난 군사 집단으로, 사천당가는 독과 암기가 늘 필수적인 가문의 능력으로 등장하며 남궁세가는 대부분 검술, 모용세가는 연나라였던 중국 동북지방을 근거로 늘 등장합니다. 진주언가의 경우 때때로 강시술을 가진 가문으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무협물에서 이들 정파에 해당되는 세력들, 구파일방과 무림세가들이 연합해 무림맹이라는 연맹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정에 따라서는 이른바 정파의 반대편에 사마련 같은 사파조직이 존재하거나 또는 사파도 무림맹의 일원인 설정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무림맹의 대척 세력은 사파연합이거나 아니면 마교인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 정통 무협에서는 정도가 아닌 악인의 길을 걷는 악역이자 사악한 무공을 쓰는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등장했으며 정파와 정사대전을 벌이는 구도도 자주 등장합니다. 최근에는 이 역할을 대부분 마교가 대신하고 딱딱하고 재수없는 위선자 이미지의 정파와 대립하는 자유분방하고 얽매이지 않는 대인배 이미지로 신무협물에서 자리 잡은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창작물에서는 마교도 사파의 일종이 되기도 하지만 최근에 무협물 작가들은 정,사,마 와 같이 세력이 삼각관계를 이루는 구도를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다양한 팩션과 3분할된 세력이 다양한 암투와 이야깃거리를 만들기에 좋기 때문일 것입니다.

 

 

녹림, 장강십팔채, 혈교, 하오문, 사흑련, 첨부파,  호협련, 오독교, 마교 등, 정파 문파에 비해서는 도둑 무리나 사이비 종교 등이 그 자리에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파의 범주 안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최근의 무협물에서 마교는 제3의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중국 신강지역에 기반을 두고 거의 대부분의 작품에 근거지로 십만대산이 언급됩니다. 교주와 무력을 담당하는 천마가 따로 있는 설정도 있고 천마가 곧 교주인 설정도 종종 있습니다. 사실 이 마교의 개념은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온 명교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천도룡기에서도 마교(명교)는 악독하기만 한 집단이 아닌 생각이 자유롭고 세상 규범에 얽매이지 호쾌한 집단으로 그려졌기에 그 영향으로 의외로 무협물 주인공의 팩션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외에 세력 다툼과 스토리의 복잡도를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예를 들면 삼국지에서의 외부세력인 오환이나 맹획의 세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새외무림(塞外武林) 또는 간혹 세외무림(世外武林)으로 표기하는 팩션이 존재합니다. 이른바 중국을 벗어난 중화사상속에서 오랑캐라는 개념이 존재하듯 이들 역시도 중권 밖의 오랑캐 무림 세력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설정에 따라서는 마교도 새외무림이 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무협물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새외무림에는 북해빙궁, 대막 또는 북원(몽고), 동영(일본), 포달랍궁(서장, 티베트)이 있고 때때로 장백산장(해동, 고려) 최근에는 유럽이 소드 마스터라는 설정으로 등장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력 설정 외에 어느 정도 굳어진 무협지의 설정들을 살펴보면 판타지에 등장하는 몬스터나 오크, 엘프 같은 아인종의 개념은 없으나 영물, 신수라는 설정으로 일부 괴물을 등장시키기도 합니다. 또 주인공을 급성장시키기 위한 장치로 공청석유나 소림사의 대환단 같은 내공을 증가시켜주는 영약이 아이템으로 등장합니다. 또 기연을 얻는 장치로 놀라운 무술 또는 내공의 극의를 담은 무림기서가 늘 등장합니다. 이러한 무림기서나 영약, 또는 신검이나 신병이기의 위치가 담긴 보물지도인 장보도가 소설 속 사건을 이끌어가는 중심이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협의 주인공은 보잘것없거나 불우한 환경의 소년이거나 최근의 한국 퓨전 무협에서는 회귀자 또는 이 세계에서 전이해온 전생자라는 설정이 많이 사용됩니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클리셰는 불우한 환경 속의 주인공이 기연을 얻어 절세의 고수가 되어 무림에 군림하거나 보통 베일에 싸인 제3의 세력의 음모를 분쇄하거나 하는 스토리가 많습니다. 최근에는 무협물과 판타지물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면서 퓨전 무협물 작품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몇 년전만 해도 게임에서도 RPG하면 대부분 배경은 서양식 판타지물을 배경으로 한 게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흥미롭게도 무림을 배경으로 한 RPG, MMORPG 게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네이버 웹툰에서도 무협물은 늘 2개 이상 연재가 되고 있구요. 무협소설이 인기를 얻어서 그를 기반으로 웹툰화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흥미로운 컨텐츠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동양식 판타지 세상을 버려만 둘 수 없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은 개인적으로 흥미가 있는 무림, 무협의 세계에 대해서 잡담을 풀어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여러 무협물을 보지만 아직까지도 제가 가장 재미있게 보았던 것은 역시 소설로 읽은 "의천도룡기"입니다. 단순한 무협소설상의 주인공의 성장과 펼치는 무위를 통해 대리 만족하는 카타르시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인 장무기와 그를 둘러싼 다양한 성격의 여인들과 묘사된 인간 군상들의 캐릭터 하나 하나 입체적이었던 소설적인 재미가 무척 컸던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보았던 무협물 중에 어떤 무협물을 최고로 치시는지 궁금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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