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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

수원 화성행궁, 정조대왕의 탕평과 상생의 꿈이 어려있는 어소 수원이라는 도시는 사실 조선후기 정조에 의해 수원화성이 건설되면서 도시의 근간이 된 부분도 큽니다. 수원에 살다 보면 종종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장안문을 보게되고 수원 화성의 성벽들을 여기저기서 늘 보면서 정조의 많은 흔적들과 만나게 됩니다. 오늘 제가 둘러보았던 화성행궁 또한 바로 그 정조가 남긴 흔적의 일부입니다. 행궁이란 왕이 잠시 머물던 임시처소를 뜻하는데 화성행궁의 경우에는 평소에는 부사, 또는 유수가 머물면서 집무를 보는 곳으로 활용되기도 했습니다. 임시 거처이긴 하지만 그래도 왕이 머무는 궁이기 때문에 종종 서울에 있는 경복궁 같은 고궁들과 유사한 건축 양식들을 만나게 되기도 합니다. 해마다 재현되는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는 올해는 정말 최대 규모로 재현되었고 해마다 축제의 장이되고 있습니다...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 -2- 이전 글에서는 영조가 사도세자를 죽이게 된 원인에 대해서 당쟁의 과정에 의해 희생 되었다는 관점 중심으로 서술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도세자의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는 후대에도 이견이 분분한 상황 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사도세자의 죽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그 과정을 다시 한번 살펴 보려 합니다. 이전글 [Story of Kings] -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나? -1- 최근 드라마 "비밀의 문" 에서의 영조, 한석규 분 영조 이전 글에서도 언급하였지만 영조는 경종의 독살설과 어미의 신분에 대한 컴플렉스에서 평생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왕이 되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학문으로 자신을 갈고 닦은 왕입니다. 그는 아들 역시 자신처럼 학문으로 신하들 보다 우위에 서길 바랬고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