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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성종, 비극의 시작. 폐비 윤씨 -3(完)- 드디어 유교적 이상향 군주라 칭송 받고 신하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러나 후일 분란의 씨앗을 남긴 성종에 대한 마지막 글 입니다. 유교적으로 이상적이었던 군주 성종, 그는 간관들의 다소 불손한 언행들 마저 받아 넘길정도로 너그러움을 보인 왕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교질서 안에서의 사대부에 대한 너그러움에 그쳤습니다. 실제로 그의 치세에 사대부들에 대한 유배는 있었지만 목숨까지 앗는 사사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잘못을 적당히 넘어가려 한 사례들이 보입니다. 이런점은 똑같이 유학에 통달한 군주지만 여성과 노비에 대해서도 궁휼한 마음을 가졌던 세종대왕과는 달리 성종의 경우 유교적 질서를 벗어나는 여성의 투기나 재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드러난 일들은 재가한 과부의..
성종, 사대부들이 꿈꾸던 완벽한 군주 -2- 성종의 이름은 이(李) 혈(娎) 입니다. 기쁠 혈(娎) 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 그리고 신하들, 이들 모두를 기쁘게 만드는 존재 였습니다. 단 폐비 윤씨와 아들 연산군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시법에 "백성을 편하게 하고 정사를 바로 세운 것"을 成이라 하는데 성종의 사후 시호는 이러한 뜻을 지닐 정도로 성종의 치세는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효성스러우며 유교적 군주의 덕목을 갖춘 왕으로 후대에도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런 성종도 앞의 글에서 다루었듯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의문스러운 점이 많은 즉위 과정 이었습니다. 이전 글 [Story of Kings & History] - 성종, 연산군이라는 파국을 잉태한 성군 -1- 원칙적으로는 왕위를 이을 수 없었던 계승 서열 3위의 자..
성종, 연산군이라는 파국을 잉태한 성군 -1- 성종은 그 치세에 신하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랑 받은 군주였습니다. 율곡 이이는 "그 영특함과 슬기로움이 우리나라 천년에 우뚝 솟아오를 만큼 참으로 성스러운 주상" 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극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연산군은 조선 역사에서 최초로 반정으로 폐위된 폭군의 상징이기도 하고 성종 본인도 현대에 와서는 신하들에게 성군으로 추앙 받지만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은 왕으로 그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는 양면성을 가진 왕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이번 왕이야기는 조선의 사대부가 사랑한 성군이지만 폭군이라는 연산군을 잉태하게 된 이 성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다루어 볼까 합니다. 성종은 세조의 왕비였던 할머니 정희왕후와, 세조의 공신이었던 장인 한명회, 그리고 어머니 인수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