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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과 을사조약이 체결된 중명전 둘러보기 전주에 따뜻한 날씨에 외출해서 덕수궁을 둘러보고 중명전까지 돌아 보고 왔습니다. [Travel & Delicious] - 봄날 덕수궁과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중화전을 돌아보며 중명전은 덕수궁을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정비하는 과정에서 황실의 서적과 보물들을 보관하는 황제의 서재로 2층 양옥의 형태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1904년 덕수궁에서 큰 불이 나 정전등이 소실되자 고종은 잠시 이곳으로 이어하여 임시 편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1905년 11월 일제의 강압으로 인한 을사늑약(乙巳勒約) 또는 을사조약(乙巳條約)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그 주권을 크게 흔드는 조약으로 국권을 읽는 과정에서주요한 조약중 하나인데 바로 이곳 중명전에서 강제로 체결되었습니다. 고종은 이후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
덕수궁(경운궁)을 아들과 함께 둘러보다.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덕수궁(德壽宮)의 원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입니다. 덕수궁은 세조의 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저택이었던 자리를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에서의 몽진에서 돌아온 후 정릉동행궁(貞陵洞行宮)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장소가 협소하여 주변의 계림군의 집을 포함하여 개축이 이루어졌습니다. 선조는 이곳을 행궁으로 삼은뒤 죽을때까지 이곳에서 머물렀습니다. 이후 광해군이 창덕궁을 보수하여 거처를 옮긴 후에는 이곳은 경운궁이란 이름의 행궁으로 남습니다. >이후 이곳은 인목대비를 유폐한 장소가 되기도 했고 인조반정 당시 인조가 경운궁에서 즉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오랫동안 쇠락을 거듭하듯 경운궁은 1896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에 보호를 요청했던 아관파천 당시에 왕가의 일원들은 러시아 공사관과 가까운 이곳 경운궁으로 옮겨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