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어느시대나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요즈음의 한국사회에서 육아라는 것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시대 같습니다.
요즘 슈퍼맨이 돌아왔다나 아빠 어디가와 같은 육아와 관련된 프로들이 많습니다. 이런 간접적인 프로들을 통해서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이나 너무 귀여운 모습들도 많이 보지만 간간히 화면에 잡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들이 겪는 어려움을 볼때면 아직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 누구보다 공감이 가는 장면들도 있습니다.
필자는 올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어 이제는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을 키워가야 할 과정이 더 많고 성인이 된 자식들을 키워낸 선배 부모님들에 비해 새파란 초보에다 아직도 겪어나갈 부분이나 배워야 할 일들이 많겠지만 이쯤에서 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겪었던 부분들에 대한 감상을 정리해 두려 합니다.
둘째가 태어났을 당시의 사진
아이가 태어난 후 어려움을 겪는 이유들은 흔히들 생각하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돌아보면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합니다.
부모가 되어가는 과정
우리는 누구도 사실 부모가 되는 것을 연습해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제 세대는 이전 세대들 보다 비교적 물질적인 어려움이나 고생을 하지 않고 자란 세대의 시작과도 같습니다. 형제가 하나 정도 있거나 독자로 자라다 보니 사실 윗세대 보다 누군가에게 양보하거나 희생하여야 하는 일들을 거의 겪지 않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가 태어나고 최초의 고생스러움을 겪을때가 되어서야 나 자신이 아닌 무수히 돌보아주어야 할 일들이 많은 어린 생명에게 자신의 삶의 대부분을 거의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닿게 되면서 조금 당황하게 됩니다.
저 역시 갓난 아이나 조금 컸다고 느끼는 유아에게도 이렇게 많은 생활의 일부분들을 포기하게 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던것 같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개월씩 밤에 수시로 깨어서 졸린 눈을 비비며 물을 데워 분유를 타거나 하다보면 어느새 부부 모두 너무 지치고 잠이 부족해 집니다. 서로가 몸이 너무 힘들다 보니 알아서 해줬으면 하는 생각에 사람에 따라서는 그토록 사랑스러웠던 배우자가 미칠듯이 원망스럽거나 싫어질 수도 있는 시기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은 드물지만 일부의 남자들은 육아는 여자의 몫이라 생각하고 외면하여 평생을 원망받을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따지고 보면 아내도 결혼 전에는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잠을 희생하고 자신의 밥한끼 챙겨먹을 정신이 없을 정도의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본 경험이 없다는 걸 모르고 말입니다.
갓난 시기를 지나고 젖을떼면 끝날것 같았던 부분들도 사실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합니다. 토요일 아침 두 아이에게 물을 떠다준 횟수를 시험삼아 한번 세어 보니 30회가 넘었습니다. 물만 그렇고 밥을 먹이고 두유를 가져다 주고 나서 귀저기를 가는 사이 다른 녀석이 엎어버린 음식을 치우고 온몸에 음식 칠벅을 해서 옷을 갈아입히고 둘이 싸우는 걸 말리고 넘어져서 우는걸 달래고 쉴새 없이 뒤치닥거리를 하다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 어른 둘이 아이 둘을 보는데도 둘다 저녁때쯤 되면 말이 없어집니다. 그저 한 20~30분만 소파에 조용히 앉아 있을수 있다면 어떤 댓가라도 치루고 싶은 마음뿐이지요. 그러다 아이들이 잠들어도 부모는 쉬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하루동안 어질러둔 것들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입니다. 그것들을 정리하고 낮동안 못했던 일들을 조금하고 자리에 누우려 하면 간혹 한잠 푹잔 녀석들이 깨어나서 잠에 취한 부모들을 깨우려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합니다. 때때로 이유를 알수 없이(흔히들 배앓이라고 하는) 아이가 밤새 울기라도 하면 이미 날카로울대로 날카로워진 신경의 끈들이 툭 끊기기도 하지요.
유튜브 유명한 동영상. 매일 이정도 까지는 아니라도 아이가 둘 정도 있으면 정갈한 집은 사실상 포기입니다.
그러다보니 많은 엄마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스트레스로 폭발하거나 하는 일들이 많고 특히나 누군가를 둘보는데 여성들보다 훨씬 덜 적합한 남자라는 성을가진 아빠들 역시 집에 들어가기 싫은 유횩을 느끼기도 합니다. 필자 역시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첫째가 어릴때는 집안일을 해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 하였습니다.
사실 아이를 기르는 일들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지지 않았건만 이러한 일들에 부부가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사회구조가 변했기 때문인것도 같습니다. 과거의 대가족 사회나 씨족부락과 같은 형태의 사회에서는 아이는 집안의 어른들이나 형제가 대신 돌보아 줄수도 있었고 이미 부모가 되는 과정을 거친 할머니 할아버지, 친척, 동네의 아낙네들과 같이 아이를 잠시 돌보아주거나 맡아주는 역활을 해줄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핵가족 사회에서는 아이는 온전히 부부만이 책임지고 돌보아야 될 대상입니다.
밤에 갑자기 열이 펄펄나는 아이를 껴 안고 황망히 응급실로 달려가거나 심한 열로 눈이 뒤집히며 경련을 하는 이른바 경기라는 현상에 너무 놀라 아이를 들쳐업고 운전 할만한 정신도 없는 황망함에 난생 처음 119 구급차를 타봤던 날은 아이가 어떻게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다 아이가 열이 내리고 멀쩡히 깨어 엄마를 찾을때 안도감에 눈물이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날은 어쩐지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리고 싶어졌습니다.
이처럼 서로 성인인 부부 두 사람만 알콩달콩 살때보다 너무나도 많은 일들을 겪으며 우리는 서서히 부모가 되어 가는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경제적인 부분
요즘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노후를 대비하기는 커녕 그냥 살아가기도 어려운 시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이를 낳게되면 대신 돌보아 줄수 있는 최상의 카드인 친정 엄마. 아니면 아쉬운대로 시어머니라도 아이를 돌봐 줄수 있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면? 보통은 아내들이 휴직하거나 일자리를 그만두게 됩니다. 출산부터 산후조리원등에 꽤 많은 비용이 들었고 때때로 농담으로 분유값이라도 벌어야 겠다고 하지만 그 분유값이 한달에 수십만원 들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저 같은 경우 둘째는 아토피가 있어 특수 분유를 먹여야 했기에 분유값이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들어가는 돈은 늘었는데 한 사람이 벌던 수입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아이를 가질때쯤 나이의 아빠의 경제력이나 사회적 위치는 사실 탄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둘이 벌던 수입중 하나의 수입이 끊기지만 지출은 늘고 혹은 미래를 생각하여 도우미를 두고 엄마가 일을 그만두지 않더라도 두 사람중 한사람의 수입은 도우미 비용과 육아비용으로 들어가게 되니 결국 수입이 줄어드는것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해마다 출산등에 정부의 지원들이 조금씩은 늘고 있지만 정상적으로 직장을 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 지원을 받는 자격이 되지 않거나 자격이 되어도 유명 무실한 부분이 많다는걸 알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산후 도우미 서비스의 경우 신청 후 신청자가 많아서 몇달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결국 포기하고 개인 비용을 들여서 해야했습니다. 물론 과거보다는 육아에 대한 지원이 많이 늘긴 했지만 과거보다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일하는 엄마들, 즉 워킹맘의 경우 과거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남성 위주의 회사와 사회 문화에서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당장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아야 하거나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린 애처러운 표정의 아이를 보는 순간 직장을 계속다닐 의지가 꺽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얼마전 지인의 카카오스토리에서 새벽 같이 일어나 이유식 만들고 떨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출근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아마도 한국의 대다수 워킹맘들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뛰어! 어린이집 데려다 주고 얼른 지옥철로 출근해야~
그래서인지 이미 꽤 오래전 부터 경제적인 이유로 아이를 갖는 시기를 부러 늦추는 부부들이 많이 보입니다. 드물지만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겠다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개인적인 경험상으론 모든걸 감수하고 아이는 최대한 빨리 가지는게 좋다는 생각입니다.
출산 장려보다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바뀌는게 먼저가 아닐지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요즘은 정부도 출산 장려 대책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합니다. 보통은 출산 장려금이나 육아 지원등을 말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개인적 으로는 사회 문화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과거 보다는 나아졌지만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 휴가를 내거나 휴직을 하는 경우 예전의 직장들 일부에서는 부정적인 반응들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또는 6시 반까지 아이를 찾으러 가야하는 한 워킹맘은 6시 칼퇴근을 해야 했는데 매일 같이 저녁먹고 야근하는 팀 문화에서 주는 눈치를 견디다 못해 결국은 퇴직을 선택하는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꼭 워킹맘이 아닌 남편들도 집에서 파김치가 되어 있을 아내를 위해 일찍 칼 퇴근이라도 할라치면 뒤통수에 꼿히는 편치 않은 시선을 아직도 느끼는것이 한국의 직장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한국의 직장인들이 유난히 배려심이 없어서 일까요? 아마도 본인들 역시 OECD 최고라는 노동시간의 강도에 고양이 손이라도 필요한 형편이다 보니 알면서도 이해하고 배려해 줄 여유가 본인 부터 없기 때문은 아닐런지요. 얼마전 해외에 사는 블로그의 글에서 워킹맘이나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부모의 경우 직장의 배려로 4시나 5시에 퇴근이 가능한 제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글을 본적이 있습니다. 한국의 워킹맘들은 아마도 4시 퇴근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6시에 칼퇴근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해 할것 같습니다.
직장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배려가 필요한 부분 입니다. 얼마 전 아이 둘을 데리고 혼잡한 지하철을 탄 적이 있습니다. 분명히 눈앞에 임신부와 유아를 동반 배려석이라고 적혀 있는 자리였고 유아들을 위해 양보하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적혀 있건만 자리를 차지하고 않은 사람들은 대부분 데이트를 위해 쏟아져 나온 젊은 연인들이었는데 누구하나 4,6세 아이들이 30~40분간 서서 가는데도 뻔히 쳐다보면서도 자리 양보하는 경우가 보이지 않더군요. 사실 그날 조금 열 받아서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생각 같아서는 확 사진을 공개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혹여 마녀 사냥이 될까봐 참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무지해서 또는 생각이 짧아서 그랬을테지요.
불과 며칠전에는 아이 엄마가 아이 하나는 업고 하나는 간신히 손을 쥐고 위태롭게 지하철을 타는걸 보았습니다. 누구하나 자리를 양보하지 않더군요. 거의 끝과 끝으로 멀리 떨어져 있던 제가 제 아내도 저럴것 같다는 생각에 그 아이 엄마를 불러서 자리를 양보해 주어야 했습니다.
지하철 양끝 좌석뿐만 아니라 이 표시가 있는 좌석은 교통 약자 배려석입니다.
임산부와 유아 동반자, 장애인등 교통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좌석임을 숙지합시다.
사실 이런 표시를 꼭 해야 한다는것 자체가 안타깝습니다.
필자는 시대에 뒤쳐진 아직도 흡연을 하는 부족한 사람이긴 하지만 혹 야외에서 정해진 흡연 장소라도 흡연을 하다가 아이들이 지나가거나 엄마와 아이가 근처에 오면 가능한한 담배를 끄거나 여의치 않으면 멀리 자리를 피합니다. 그런 제눈에도 때때로 아이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에서 당당히 담배를 꺼내 무는 강심장들이 많이 보여 답답함을 느낍니다.
또 제가 실제로 본 다른 경우는 아직 12개월도 안되어 보이는 아기를 안고 지하철을 탄 아기 엄마에게 아이가 칭얼되고 운다며 공공장소에서 아이를 단속하지 못한다고 나무라는 아저씨 한사람과 동조하는 사람들이 보여 어이가 없었습니다. 말귀를 알아듣고 꽤 큰 아이라면 모를까 우는것만이 유일한 의사표현인 아기에게 어떻게 그런 잣대를 들이 댈수 있는걸까요? 물론 다 큰 아이가 공공장소에서 전혀 통제받지 않는 행동을 하는것도 사회문제가 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듣고 어른들의 말을 이해하고 순응하는 나이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많아야 된다는걸 알았으면 합니다.
미국에서 자폐아가 식당에서 소란을 피우는 상황 설정에 미국인들의 반응을 본 몰래카메라
위의 동영상은 앞서의 어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와는 경우가 다릅니다만 사회적인 관용과 이해에 대해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에 첨부를 해보았습니다. 저는 공공장소에서 개인의 권리를 침해 받는 것에 더 민감하다고 생각한 미국에서 저런 반응을 보인것이 의외이기도 하고 감동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한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아이와 아이 엄마에 대한 배려나 관용, 이해가 부족한 점들과 워킹맘과 육아를 위한 아버지의 퇴근후 자리를 빼앗는게 다반사인 한국의 사회 문화와 근로 문화를 바꾸는게 재정적인 지원확대보다 더 중요한 일이 아닐까요? 아이들에게 아버지를 돌려 주라는 의도의 이야기를 담은 공익광고가 얼마전 있었는데 야근을 위한 저녁식사를 하는 식당 TV에서 흘러나오니 모두들 무언으로 쳐다보는 모습이 참 아이러니 했습니다.
아이에 대한 범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딱 한마디만 하자면 어째서 아이들의 미래를 짓밟는 아동 성범죄에 대해 처벌이 그처럼 관대한지 정말로 이해할수 없는 부분을 떠나 때때로 분노를 느낍니다. 목숨은 빼앗지 않았기 때문인가요? 인공 항문으로 평생 배변에 고통을 받아야하는 아이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 줄수 있는건가요? 인권을 그렇게 따지는 나라들에서도 아동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어떤 처벌과 감시체계를 가지는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맺으며
위에서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것이 참 어려운 일이라는 약간은 개인적인 엄살도 섞인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때때로 아이 갖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개인적으로는 어떤 어려움이 있든지 "아이를 빨리 가지라"는 말을 합니다. 아이를 키우고 커가는 과정에서 부모의 마음도 성장하고 커 가기때문이기도 하고 그 어떤 어려움 속에도 아이가 주는 기쁨은 세상에 어떤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삶에서 마주치는 워킹맘들과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이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부모들에게 화이팅을 보냅니다. 또한 지금의 우리를 사람 구실하게 무탈하게 길러주신 이땅의 모든 부모님들께도 감사를 전하고 싶어 집니다.
다음 메인에 올랐습니다. 추천 주시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