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휴 동안 안동 하회마을을 가족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이전부터 꼭 한번은 들리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번에는 아침과 밤도 느껴보고 싶어서 마음 먹고 마을에 숙소를 잡고 1박2일로 다녀왔습니다.
안동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민속 마을 입니다. 1984년 1월 10일 중요 민속자료 122호로 지정이 되었고 2010년 8월 경주의 양동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전통 한옥 가옥이 잘 보전 된 풍산 류씨의 씨족 마을로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배우 류시원의 본가인 담연재에서 생일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제게는 둥글게 굽이치는 낙동강 줄기에 둘러싸인 마을의 전경 자체가 참 아름답고 수 백년 된 가옥들 사이의 고즈넉한 골목을 걷는 것도 좋은 색다른 경험을 안겨주는 곳 이었습니다.
오늘 포스팅에는 사진이 좀 많습니다. 스크롤의 압박이 좀 있긴 하지만 한번 천천히 담아온 하회마을의 풍경을 여행한 시간 순서대로 풀어 볼까 합니다.
하회마을 하면 제게 떠오르는 이미지는 낙동강의 굽이치는 강변에 위치한 마을의 전경과 볼 때마다 마음을 빼앗기는 독특한 굴곡의 주름과 웃고 있는 모습이 해학적인 뛰어난 조형미를 가진 하회탈이 떠오릅니다. 고려중기에 형성되었다는 이 하회탈의 원본은 긴 세월 마을에서 잘 보전해 오다가 현재는 국보 제 121호로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풍천 읍내
하회마을로 가기 전 가까운 풍천 읍내에 들렀습니다. 이제는 도시에서는 보기 힘들어진 낡은 이발관이 보여서 반가운 마음에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하루를 숙박할 예정이라 이 곳에서 하루 묵을 준비를 하였습니다. 고기도 사고 간식도 사고 했는데 경상도 특유의 무뚝뚝해 보이면서도 막상 무언가를 사면 아닌 듯 이것저것 더 챙겨주는 이곳 분들에게서 참 친근감이 느껴집니다. 요즘 인터넷 상에 유행하는 말로는 츤데레라고 해야 할까요?
장이 열리면 북적북적하고 볼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은 곳이라는데 제가 간 날은 장날이 아니라서 조용했습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말도 있는데 살짝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이곳 풍산장터도 장날을 맞추어서 방문하시면 여행지의 또 다른 재미있는 볼 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 숙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낮 시간대 외에도 하회마을의 정취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서 하회마을 안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결과부터 말한다면 사람들이 북적이던 시간보다 6시 이후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난 후의 고즈넉한 하회마을의 밤과 이른 아침의 모습과 느낌이 제게는 참 좋았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아이들이 한옥에서 자는 체험도 해보길 원해서이기도 했습니다. 하회마을 안에서 숙박을 하시려면 여러 고택들에 민박을 할 수 있는데 제 경우에는 하회마을 정 중앙에 위치한 "가온당"으로도 불리는 석고 고택 사랑채에서 민박을 하였습니다.
가온당이 마을 중앙에 있다 보니 하회마을 초입부터 조금 걸어야 했는데 걷는 동안 보이는 마을 초입의 풍경과 여러 고택들과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이 이날 따라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참 보기에 좋았습니다.
숙소는 가온당 또는 석고고택으로도 불리는 곳으로 약 250년이난 된 조선 후기의 전통 가옥입니다. 안채와 사랑채, 중문간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 승지를 지낸 석고(石皐) 류도휘(柳道彙)가 살던 집으로 초밭댁 또는 삼강댁이라고도 합니다.
이미지 출처 : 가온당 웹사이트 (https://www.gaondang.kr)
부모님을 모시고 갔기에 사랑채에 사랑방과 문간방을 예약 하였습니다. 사랑방 문간방 중간에 있는 마루도 마음에 들었고 툇마루에서 조그마하게 꾸며진 정원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곳을 예약한 이유 입니다. 각 숙소 별 민박 예약 비용 등은 위에 링크를 방문해 보시길 바랍니다.
보일러와 에어컨 등이 설치되어 있고 TV도 있지만 요즘의 편리하게 개축된 한옥들과 달리 예전 한옥에 있는 방의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과 세면장은 외부에 있습니다. 이런 부분 때문에 호불 호가 갈리겠지만 제 경우에는 너무 현대식으로 내부를 개량한 한옥이 아니라서 오히려 더 좋았습니다.
먹거리
하회마을 안에서는 간단한 차와 간식 정도 말고는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려면 하회마을 매표소 근처에 있는 식당까지 나와야 합니다. 민박을 하는 경우는 아침에는 간단하게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매표소 까지는 셔틀버스가 다니는데 별도로 비용을 받지 않았습니다.
안동에 왔으니 간고등어와 안동 찜닭을 당연히 맛 보아야 겠지요?
교통이 여의치 않던 시절 영해·영덕 지역에서 잡은 고등어를 내륙 지방인 안동으로 들여와 판매하려면 영덕에서는 육로로 황장재를, 영해에서는 창수재로, 울진 쪽에서는 백암을 거처 구주령을 넘어 진보를 지나 꼬박 하루가 걸려야 임동면 채거리 장터에서 물건을 넘길 수 있었다.
이때 고등어는 뜨거운 날씨를 견디면서 뱃속의 창자가 상하게 되므로 이곳에서 창자를 제거하고 뱃속에 소금을 한 줌 넣어 팔았는데 이것이 얼간재비 간고등어이다. 임동면에서 다시 걸어서 안동장에 이르러 팔기 전에 한 번 더 소금을 넣은 것이 안동간고등어이다.
생선은 본래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효소가 맛을 좋게 하기 때문인데, 영덕에서 임동면 채거리까지 하루가 넘게 걸리며 오다 보면 얼추 상하기 직전이 되며, 이때 소금 간을 하게 되면 가장 맛있는 간고등어가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현대 시설에서 체계적으로 생산되어 전국에 유통되면서 안동의 특산물로 각광받게 되었고, 특히 안동과학대학교 교수와 기능 보유자 이동삼을 주측으로 안동간고등어가 특허를 받으면서 명성이 더욱 높아졌다.
안동간고등어 [安東간고등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역적인 위치와 해산물 운송이 여의치 않던 시절에 만들어진 이 간고등어는 지금은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어있습니다. 안동 찜닭의 유래도 한번 볼까요?
안동찜닭의 유래에 관한 설은 다양하다. 조선시대 안동의 부촌인 안(內)동네에서 특별한 날 해먹던 닭찜을 바깥 동네 사람들이 보고 '안동네찜닭'이라 부르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고, 1980년대 중반 안동 구시장 닭 골목에서 단골손님들이 닭볶음탕에 이런저런 재료를 넣어 달라고 요청하면서 재료가 더해져 지금의 '안동찜닭'으로 변모했다는 설이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설은 서양식 프라이드 치킨점의 확장에 위기를 느낀 안동 구시장 닭 골목의 상인들이 그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맛을 찾던 중 생긴 퓨전요리가 '안동찜닭' 이라는 것이다.
안동찜닭 (두산백과)
따로 맛집이라기 보다는 매표소 가장 가까이에 있어서 들렸던 터줏대감이라는 집입니다. 5월의 뜨거운 햇살과 그늘진 평상에 않아서 막걸리 한 되와 함께 간고등어와 안동찜닭을 먹었습니다.
종종 여행을 하면서 음식을 먹으면 나중에 블로깅을 하던 안 하던 음식 사진을 꼭 찍어두는데 이번 안동여행에서는 아예 음식 사진을 담지 못했습니다. 어찌된 영문인지 사진에 담는다는 생각도 하기전에 혼을 빼놓고 이미 먹고 있어서 이기도 합니다. 먹다가 생각나서 한두장 담긴 했는데 너무 지저분한 모습이라 아쉬운 대로 다른 곳의 사진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ZGjE
이미지 출처 : https://blog.daum.net/_blog/BlogTypeMain.do?blogid=0ZGjE
음식 사진은 없지만 안동에 가셨다면 간 고등어와 안동찜닭은 꼭 드시고 오시길 바랍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너른 마당에 널뛰기와 그네를 탈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부용대
하회마을에 오셨다면 북적이는 마을만 돌아보시지 말고 반드시 강을 건너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전체를 한번 조망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어우러진 마을의 모습을 놓친다면 무척 아쉬울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기분이 좋아진 둘째 입니다. 업어주는 사람이 많아서 걷지 않으려는 어리광쟁이가 되었습니다.
5월의 하회마을은 하늘이 참 곱습니다. 솜털 같은 구름들과 시원한 바람이 어딘가 앉아서 한가로움을 잠시 즐기고 싶어지게 합니다.
하회 마을쪽에서 바라본 부용대의 모습입니다. 이곳에 오르면 하회마을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하회마을 강변에 있는 주차장에서 나오면 백사장 쪽에 배를 타고 부용대로 건너갈 수 있는 나루터가 있습니다.
배에 태울 수 있는 인원이 20명 남짓이라 나루터에서 줄을 서야 합니다. 거기다 배의 엔진의 출력이 좀 약한 것 같습니다. 흘러가는 강을 거스르기가 위태위태 해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하회마을의 전경을 보기 위해서 부용대를 오르지만 부용대 그 자체로도 꽤 멋진 풍경이 되어 줍니다.
부용대로 오르는 길은 아이들이 있어서 약 30분 가량 천천히 올라가는 길인데 중간에 화천서원이 있으니 들렸다 가시길 바랍니다. 서원 안에 시원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하나 있으니 잠시 땀을 식히고 가기에 딱 알맞습니다.
부용대에 오르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습니다. 아이들도 웃으며 약 20분 안에 오를 수 있는 길이니 조금 덥더라도 산림욕을 한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오르면 정상에서 멋진 하회마을의 전경을 볼 수 있습니다.
참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입니다. 강과 산이 어우러진 곳에 자리 잡은 하회 마을, 나이가 좀더 들어 은퇴하게 된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화천서원에서의 주변으로 가는 갈림길에 서있는 표지판 입니다. 옥연 정사는 부용대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길에 들렀는데 서애 류성룡이 바로 이곳에서 징비록을 집필했다고 합니다.
옥연정사까지 둘러보고 다시 배를 타기 위해 나루터로 이동했습니다. 가족들과 천천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저녁 무렵이 되었습니다.
해가 기울어가는 시간대의 강변은 쨍쨍한 볕이 내리 쬐는 한 낮과는 또 다른 감성을 건드리는 색다른 풍광을 보여 줍니다. 어디를 향해 셔터를 눌러도 그림 같은 느낌이 듭니다.
해질 무렵 하회 마을의 풍경
배를 타고 다시 하회마을로 돌아오니 어느새 시간은 저녁 6시 반. 한 낮의 북적이던 관광객들이 모두 썰물처럼 사라지고 사람 그림자 없이 고요한 마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대 입니다. 이 시간대의 고즈넉한 마을의 모습은 하회 마을 내 숙박을 하는 사람들 만 볼 수 있는 낮과 다른 하회 마을의 풍경 입니다.
가족들이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카메라를 들고 아내와 함께 조용하다 못해 고요하게까지 느껴지는 이곳을 조용히 산책 하였습니다. 마을의 고택들을 담기에도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이 시간이야 말로 딱 알맞은 시간이 아닐까 합니다.
너른 들판에 해가 지는 이런 모습. 글쓴이가 어린 시절 할아버지 댁에 들리면 멀리 들판 사이로 소를 끌고 오는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할아버지의 모습 뒤로 이런 붉으스름한 석양을 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르는 듯 하여 어쩐지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지금은 하회 마을에도 소 대신 트렉터가 있지만 하회 마을의 이런 모습들을 담을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밤과 아침 무렵의 모습 들
가온당의 본당 밖에는 넓게 야외 카페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숯불을 피우고 준비해 둔 음식들을 차려서 남아 있는 석양과 여명을 보며 가족과 맛있는 식사를 하였습니다.
배 부른 식사를 마치고 낮은 마치 여름 같으면서도 밤에는 아직 꽤 쌀쌀해서 가벼운 겉옷을 걸치고 마루에 앉아 서늘한 바람을 느껴 봅니다. 우리 가족 외 다른 손님들도 밤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옥 마을의 밤이 깊어 갑니다.
원래는 식구들 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 강가에서 새벽의 일출을 담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전날 꽤나 피곤했었나 봅니다. 눈을 뜨니 장지문 밖이 훤해서 깨어서 마루로 나와보니 마루외부 나무문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동이 터 오는 모습은 놓쳤지만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아직 관광객이 들이 닥치기 전의 이른 아침의 하회 마을을 다시 산책해 보았습니다. 저녁 무렵과는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곳은 산책을 하다가 발견한 곳인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생일상을 받았다는 바로 담연재 입니다. 탤런트 류시원의 생가이기도 한데 문패에도 자세히 보시면 아래쪽 조금 밝은 색 명패에 류시원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내부를 볼 수가 없으며 일본 관광객 등 특별한 손님이 있을 경우만 개방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에 내부를 담은 사진이 있는 링크를 공유해 봅니다.
https://blog.naver.com/cher_/220333300311
전일 저녁에는 보지 못했던 긴 방들이 이어진 이 집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에도 들렸습니다. 서애 유성룡은 은퇴 후 풍산현의 초가집에서 생을 마쳤지만 그의 손자인 류원지가 유림과 제자들과 함께 그의 학덕을 기리고자 지은 집이라고 하는 군요. 12간의 긴 행랑채는 류성룡의 8세손인 류상조가 병조판서를 제수 받고 군사들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진 행랑이라고 합니다.
충효당 앞쪽에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었다는 구상나무가 있는데 실제로 엘리자베스 여왕이 심은 구상나무는 1년만에 고사했고 현재는 같은 품종의 어린 구상나무를 심어 두었습니다. 구상나무는 이식 후 성공적으로 살리기 쉽지 않은 수종인가 봅니다. 충효당 안쪽에는 류성룡 선생의 유물 등을 전시하는 영묘각이 있습니다.
나선 김에 전일 가보지 못했던 하회 마을 주변을 좀 더 둘러 보았습니다.
하회 마을을 떠나며
아마도 20대에 왔다면 큰 감흥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이런 전통 한옥과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마을과 집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게 참 다행으로 생각됩니다. 어쩌면 우리 눈에는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한옥마을 일지라도 잘 가꾸어 놓으면 외국인들의 시선에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마을로 기억에 남을 곳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유네스코 지정된 곳 답지 않게 역사 마을의 풍광을 해치는 사소한 부분들이 아쉽게도 느껴집니다. 건물 밖에 눈에 잘 띄게 이곳 저곳 설치된 소화기, 당연히 문화유산인 만큼 화재를 관리하기 위해서 소화기는 필요하겠지만 좀더 마을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게 잘 배치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종종 보이는 지붕위로 솟은 커다란 안테나와 에어컨 실외기 등도 마을의 아름답고 미려한 모습에 옥에 티 같이 느껴집니다.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무분별하게 아무 곳에나 설치되지 않고 조금더 잘 안 보이는 곳에 놓을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있었습니다.
부모님들을 모시고 비록 1박2일의 짧은 시간이지만 같이 여행할 수 있어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에 남을 안동 하회마을, 이번 여행에서는 생각보다 짧게 느껴지는 일정 때문에 이번에는 여러 공연이나 아이들에게 여러 종류의 체험을 해보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서 여유롭게 하회 별신굿 탈놀이 공연도 꼭 보고 와야 할 것만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