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신용 카드 업계는 적어도 2014년 초 까지는 늘 지속적으로 성장이 기대되는 산업이었습니다. 물론 현재도 그 성장세는 꺽이지 않았습니다. 과거의 경험상 금융위기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 닥쳤을때도 카드 사용액이나 사용횟수가 줄어들은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카드 사용액과 수수료가 기반인 카드사 뿐만 아니라 결제를 중계하며 건수당 수익 구조를 가진 VAN 사도 사용 횟수가 늘 증가하는 산업이었고 PG사 역시 인터넷 상거래와 모바일 결제 시장이 매년 성장하면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 갈 수 있는 사업이었습니다.
즉 국내 카드 결제 산업의 3가지 주요 주체인 카드사, VAN, PG 등이 10년이 넘게 해마다 전체 매출 규모가 성장하는 시장안에서 각 주체 내 외에는 경쟁자라 불리울 만한 주체들도 없었습니다. 카드사는 다른 카드사가 경쟁자였고 VAN은 VAN끼리, PG는 PG 끼리 경쟁을 해왔던 분야 입니다. 비록 경쟁을 했어도 해마다 시장 규모가 확대 되었기에 모두가 내년은 당연히 더 성장하리라 생각되어오던 흔치 않던 산업이었습니다. 무려 10년을 넘게 말입니다.
개인적으로 30대에 개발자로써 많은 고생도 했지만 주변의 다른 산업군의 사람들과 상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그나마 먹고 사는 걱정을 조금은 덜 하고 살아왔던 것은 운 좋게 이러한 성장하는 산업분야에 한 주체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제조업이나 다른 분야로 생업을 택했던 제 주변 사람들중 일부는 조금 더 일찍 어려움을 맞이하는 경우를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영원히 승승장구 할 것 같았던 카드 업계에 주체들이 모두 올해 말에 들어서면서 다소 어두운 전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산업의 피라미드에 정점에 있는 카드사에게 올해들어 닥쳐온 일들이 과거에 등장했던 위협들과 다른 무게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 입니다.
출처 : 여신금융협회 자료
사실 카드사들도 과거에 유사한 위협론을 말하기도 하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늘 그러한 수단들은 신용카드라는 수단의 편리함과 보편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사라져 갔습니다. 2000년대 초기의 전자화페들이 그러했고 우후죽순 등장했던 선불수단들, 휴대폰 결제는 여전히 소액 결제 수단으로만 묶여 있고 그나마 최근에 이야기 되던 비트코인과 같은 수단도 이젠 지나간 이야기가 되었고 삼성페이니 무슨 페이 같이 이름도 헷갈리게 많이 등장한 페이들 대부분은 결국은 신용 카드를 기반으로 한 결제 수단입니다. 그럼에도 2014년 초부터 부상한 핀테크 분야의 변화상은 마침내 국내에 카드 업계에 진정한 위협으로 떠오른것 같습니다.
오늘은 간단하게 카드사에 닥친 악재들 중 개인적으로 생각한 크게 3가지 정도를 간단하게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언제나와 같이 단지 카드 업계 귀퉁이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전체를 바라보는 전문적인 식견이 늘 부족합니다. 다만 좁은 제 시각 내에서 바라보는 의견에 불과함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수료 인하 압박. 정치권
전업계 카드사 일부의 매각 설이 나올 정도로 보다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는 부분은 바로 카드 수수료 인하 압력 입니다. 정치권은 이전 부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 가맹점의 부담을 덜어줄 해결책으로 영세 가맹점 수수료 인하를 내세우며 이에 대한 압력을 끊임없이 카드사에 가해오고 있었습니다. 결국 카드사는 이에 굴복해 영세 가맹점에 대해 평균 0.7% 정도의 수수료 인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매출 손실은 약 6천7백억원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세 가맹점의 수수료를 인하해 준다는 기본 취지 자체에는 불만이 없습니다. 다만 복잡한 경제 상황에 철저한 조사나 대책 강구 없이 표심을 의식한 성급한 밀어 붙이기식 정책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단통법을 위시한 최근의 정부 정책들을 생각하면 걱정스럽기만 합니다.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휴대폰 소비를 권장하겠다는 좋은 취지의 단통법... 이 정책은 결국 모두가 비싸게 휴대폰을 사게하고 이통사, 제조사, 유통 대리점을 위시한 관련 산업계의 위축만 가져왔습니다. 안전을 위해 시행하겠다던 광역버스 입석 제한은 제대로 된 사전조사도 없이 시행되어 제 개인에게도 몇개월 동안의 출퇴근 길 스트레스만 남기고 그나마 그 끝은 흐지부지 어떻게 되었는지 그 경과의 소식조차 불명 입니다. 성급하고 잘못된 정책으로 야기되었던 불편과 피해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 지지도 않습니다. 이와 같이 생각없이 탁상공론으로 시행된 정책들이 부작용만 남겼듯이 정해진 매출 안에서 조삼모사식으로 일단 이곳을 줄이자. 그 뒤는 모르겠다 라는 식의 개입이 개인적으로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정치권은 카드사 수수료 인하를 결정하면서 이를 VAN시장의 그 동안 혼탁했던 리베이트 수수 금지를 통해 VAN 수익을 개선하고 VAN 수수료 인하를 이끌어 내어 이를 통한 손실들을 채우라는 형태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카드사는 6천7백억에 달하는 예측 손실 중 일부를 VAN사 수수료 인하와 카드사 고객혜택을 줄여서 채우겠다고 합니다. 실제로 5만원 이하 무서명 거래의 수수료 인하를 포함하면 VAN사에서는 떠 맡아야 할 손실액을 약 4천억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매출규모로는 1/100, 이익규모로 1/10 인, 카드사 보다 한참 영세한 VAN에게 절반이 넘는 손실을 카드사가 넘기면 VAN사에서는 또다시 보다 영세한 하위 대리점등에 그 피해를 넘길테고 이는 다시 전체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영세 가맹점의 유무상 결제 서비스에 영향이 갈게 자명해 보입니다. 자칫 영세가맹점의 경우 카드사 수수료 인하의 이익보다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짐작만 하게됩니다. 뭐 언제나 늘 더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해 왔던게 세상인지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습니다.
어느 정도 완숙해진 시장경제 체제에서 정부의 개입은 매우 신중해야 하는데 1970년대에서 한치도 나아지지 않은 정치권의 모습에 실망스러운 것은 일개 회사원에 부족한 글쓴이의 짧은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최근에 보게 된 정책의 결정 과정에서 기관들의 지나친 권위주의와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듣지 않는 태도들은 큰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및 관련 글 : https://sgsg.hankyung.com/apps.frm/news.view?nkey=9587&c1=01&c2=01
어찌되었던 이런 정치권의 표심을 고려한 성급한 시장상황의 개입들이 카드업계에도 폭풍을 몰고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글쓴이가 영세가맹점의 수수료 인하에 반대하는 건 아닙니다. 할려면 제대로 하라는 거지요. 포퓰리즘에 대충 하는척 해서 뒤는 책임지지도 않고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일을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뭐 요즘같아서는 내용의 이야기를 상당히 두리 뭉실하게 쓸 수 밖에 없음을 고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 정권 들어서 어슬픈 개입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것, 곧 현재의 정치권이 산업계 뿐만 아니라 카드사에게도 첫번째 큰 악재라는 개인적인 생각 입니다.
인터넷 은행의 출범 과 비 금융 IT기업의 금융 진출
지난 달 인터넷 은행 사업자로 카카오와 K뱅크(KT) 가 선정되었습니다. 현실 지점을 가지지 않는 인터넷 은행은 기존의 은행들에게도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을 의미하지만 카드사에게도 결제 수단이 신용카드외 다른 새로운 형태로 등장할 가능성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기존 PG사(이니시스)를 지급결제 수단의 컨소시엄에 동참시킨 K뱅크와 달리 카카오 뱅크는 앱투앱 결제라는 카드사, VAN, PG를 아예 배제한 결제 수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카카오 뱅크의 고객인 두사람의 경우 카카오톡 또는 다른 앱을 통해서 당사자인 두 사람이 앱투앱으로 이체가 이루어지는 마치 직불성 결제를 진행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좀 먼 이야기긴 하지만 비 금융 IT기업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어서 오랫동안 국내에서 불문율로 여겨지던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체는 서로의 영역에 법인을 소유하거나 병행 할수 없게 분리를 유지하던 정책)의 틀이 깨어지면서 이들 역시 여신을 창출해 낼 수 있는 기반과 자금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중요한 사실 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기술이 변화하는 시대에 여신 결제 수단이 꼭 신용카드 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 입니다. 또 IT 기업들은 서비스 측면에서는 기존의 금융권 보다는 훨씬 나은 퀄리티를 보일 것 이라는 예상 입니다.
텐센트와 알리바바의 MIM, SNS를 통한 이체/결제 서비스 개념도
출처 불명
이미 중국에서 성공을 거둔 알리페이의 사례를 보더라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미래입니다. 더군다나 알리페이나 텐페이, 페이팔과 같은 해외 글로벌 공룡들의 국내 진출도 카드업계의 악재가 될수 있을것 같습니다. 제가 대학생 때는 한글은 MS 워드 따위가 침범못할 영역을 구축한 독자적인 워드프로세스였고 그 외에도 국산 소프트웨어들이 선전하고 있었지만 글로벌 소프트웨어들의 웨이브가 밀려오자 모두 고사해 버렸던 일들도 있고 구글의 서비스는 국내의 허술하던 많은 서비스들을 고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앞으로 미래에는 직불성 결제 뿐만 아니라 여신의 창출과 결제수단이 꼭 신용카드사와 신용카드라는 수단이 아닐수도 있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아... 그러면 제 직업도 사라지는 걸까요? 심히 걱정이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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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시대에 드러나는 관료화된 조직의 느림과 무능
대기업에 잠시 머물러 보고 금융권의 회사들을 외부에서 겪어 보고 느낀 점은 큰 덩치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지만 잃어버린 기민함과 느린 의사결정이 빠른 기술 변화의 시대에는 늘 발목을 잡는 요인이 된다는 점 입니다. 꼭 대기업 뿐만 아니라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중소기업도 초기의 기민함이 사라지고 언제나 조직이 관료화 되고 딱딱하게 경직되는 것을 목격해 왔습니다.
만약에 올해 10%의 매출을 더 상승시킬 거리와 미래 2,3년 후 쯤 회사의 먹거리를 책임질게 분명하게 보이는 사업이 있다면 당신이 CEO나 임원진 이라면 어떤 일에 매진 할것 같습니까? 꼭 그런건 아니지만 글쓴이가 목도한 많은 의사결정들은 당장의 매출에 집중하는 결정들이 내려졌습니다. 주식회사의 체제에서는 당장 올해 매출이 떨어지면 임원진들의 목을 보전할 수 없기 때문 입니다. 내가 2,3년 후 까지 있을지 모르는데 무슨 2,3년 후의 회사 먹거리를 고민하겠습니까. 재벌 오너 일가거나 애초에 충분한 지분과 힘을 가진 독재형 CEO가 아니라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늘 시장의 새로운 기술과 패러다임이 많은 인재와 인력을 가진 대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스타트업이 인수되거나 크게 성장하는 일은 그래서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몇개월 단위로 새로운 기술의 트랜드가 등장하고 초기 몇개월 사이에 이미 승자승 독식체계가 만들어지는 IT 서비스 전쟁의 빠른 흐름속에서 사원이라면 상위자인 과장 정도급과 협의하고 보고서를 2~3주 작성해서 ->팀장->부장->본부장->임원->CEO까지 결재를 올리면서 다시 보고서를 중간 임원의 좀 입맛에 맞게 고치고 어쩌고 하면 1~2개월, 심하면 결제까지 3, 4 개월이 훌쩍지나가 버립니다. 게다가 중간의 결재 단계의 관리자들의 생각이 개입되어서 애초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변질되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국내에서는 오랜동안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이러한 일들의 부작용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낸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살아남기가 참 척박한 환경입니다. 사업의 아이디어나 기획서를 대기업에 제안했다가 아이디어를 그대로 카피 당하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들이 아니고 카피해 갔으면 제대로 해야 하는데 앞서의 문제들 때문에 결국 크게 성장했을 사업을 망쳐 버리기까지 합니다. 재벌 위주의 성장정책에 대한 논리로 오랫동안 세뇌되어서 아직도 낙수효과를 운운 합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성장전략이 효과적인 시대도 분명히 있었겠지만 시대가 참 많이 변했습니다.
아래는 레알뻘짓블로그 라는 한국 현대사를 다루는 유명한 파워블로그에서 1970년대 성장위주 정책 내용을 이미지로 일부 발췌해 보았습니다. 거의 40년이나 지났는데 현재도 크게 달라진것 같지 않습니다.
발췌 내용 출처 : https://blog.naver.com/alsn76/220483229590
발췌 내용 출처 : https://blog.naver.com/alsn76/220483229590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샜는데 카드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많은 전업계 카드사들이 이렇게 성장한 재벌 기업의 계열사이거나 보수적인 조직문화를 가진 금융권, 은행권에서 출발한 회사들 입니다. 덩치와 힘이있는 만큼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지만 IT 관련은 모두 아웃소싱 하던 관행으로 인해서 스스로는 기술을 주도할 역량이 없어 보입니다. 이 때문에 때때로 무능해 보이거나 무기력해 보이기 까지 하는 조직을 가진 카드사들도 있습니다. 물론 일을 하다보면 모든 일에서 빠릿빠릿한 예외인 카드사도 분명 있긴 합니다. 그럼에도 결제의 흐름이 IT 기술로 넘어간 시대에 비 금융 IT 기업의 전문성이나 성장하는 스타트업 들의 속도와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맺으며
개인적으로 생각해본 카드업계, 특히 그 정점에 있는 카드사가 맞닥뜨리고 있는 악재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 수다가 길어졌습니다. 막상 적고 보니 카드업계만의 악재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당부 말씀은 이 글은 기사 같은 것이 아니라 회사원이 바라본 좁은 시각을 개인 블로그에 적어본 것으로 부족한 내용이나 전문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틀린 내용이나 이견이 있으시다면 댓글을 남겨주시면 참고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