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이란 동아시아 제왕의 묘호중 하나로써 분란을 끝낸 제왕이나 국가를 한층 발전시킨 왕에게 주어집니다.
조선시대의 숙종의 정치는 세 차례의 환국으로 대표됩니다. 대대적인 당파의 교체와 정치 국면의 전환을 환국이라 이야기 하지만 그 과정은 이른바 사화라 불리는 숙청과 크게 다를바 없는 많은 인명의 죽음등이 뒤따랐습니다.
사실 이 환국의 과정에서 발생한 장희빈, 인현왕후, 숙빈 최씨의 세 여인의 이야기에 가려져 막상 숙종의 이른바 환국 정치와 왕권 강화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가려져 있는 편입니다.
숙종
숙종의 글씨
숙종의 본명은 이순(李淳) 이며 현종 8년에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3세의 어린 나이에 부왕인 현종이 급서하여 즉위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영민하다는 평가를 받던 숙종은 수렴 청정을 받지 않고 직접 나라를 통치하게 됩니다. 숙종이 조선을 다스렸던 기간은 당파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로 당시의 남인과 서인의 대립관계가 주축이 되며 후에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되기 까지 합니다. 숙종은 이 당파간의 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일시에 정권을 장악한 당파를 몰아내고 다른 당파를 정치 수반에 등용하는 세 차례의 환국을 통해 강력한 왕권을 휘두릅니다.
경신 환국은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남인의 수반인 허적과 윤휴를 사사하고 일거에 서인을 정권의 요직에 임명한 사건을 말합니다. 서인의 수반 격이던 송시열을 최상의 예우로 맞이했으며 이듬해 인경왕후가 죽자 대표적인 서인인 민유중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는데 이가 바로 인현 왕후 입니다. 경신 환국의 계기는 영의정이던 허적이 총애를 믿고 비가 올때 쓰는 궁궐의 기름먹인 장막을 집안 잔치에 무단으로 사용하여 숙종을 분노케 했다는 설부터 허적의 서자인 허견의 복선군 옹립이라는 다소 믿기어려운 역모가 발각되어서라는 두가지 정도의 설이 있습니다만 다분히 숙종 개인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는 공통적인 의견이 있습니다.
기사 환국은 소의 장씨, 즉 장옥정, 훗날의 장희빈이 아들이 없어 노심초사 하던 숙종에게 왕자 출산을 알리면서 시작됩니다. 숙종은 이에 매우 기뻐하며 다소 성급하게 왕자를 원자(훗날의 경종)으로 삼고 장씨를 희빈에 책봉하였습니다.
이에 서인들은 국본을 정하는 일이 성급하게 결정되었다며 격렬하게 반발합니다. 그 이유는 장씨는 남인 계열의 사람이었고 만약 남인 계열의 빈에게서 태어난 아이가 왕으로 후사를 잇게되면 서인들이 자신들이 어찌 될지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반발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는 숙종의 마음을 돌아서게 합니다. 그는 서인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고 송시열도 관직을 삭탈당하여 외방으로 쫒겨났다가 결국은 사사 당합니다. 경신 환국시 극진한 예우로 모셔졌던걸 생각하면 참으로 권력은 무상한 법입니다.
인현왕후는 폐서인이 되고 희빈 장씨가 정비가 되어 이로써 남인과 희빈 장씨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남인은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집권에 적합한 굵직한 인물도 역량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더구나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숙종의 강력한 왕권 행사에 의한 환국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기에 숙종의 힘 밑에서 숨죽이고 3년 남짓한 시기를 누렸을 뿐입니다. 이러한 불안한 집권은 1693년 숙원 최씨 (뒷날의 숙빈)로 총애가 옮아가면서 결국 끝이나게 됩니다.
갑술 환국은 역모와 관련된 고변 중 장옥정의 오빠인 장희재의 역모 연관성에 대한 고변을 숙종은 믿지 않았고 숙빈 최씨를 독살하려는 음모를 장희재가 사주하였다는 고변도 숙종은 믿지 않는다고 위로를 하여 놓고는 다음날로 남인 세력을 모두 몰아내고 다시 서인을 기용하였으며 이 과정에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장씨는 희빈으로 다시 강등됩니다. 이 와중에 숙빈 최씨는 훗날의 영조를 출산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현재는 이 궁궐의 여인들의 암투와 숙종의 변덕에 의해 정권이 왔다갔다한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사실들은 실은 두여인의 붕당을 교대로 등용하며 그 힘을 약화 시키고자한 숙종의 의도로 본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남인과 서인의 굵직한 인물들은 환국을 거치면서 도려내어지고 사사되어 두 붕당이 큰 힘을 쓰지 못하고 숙종의 치세기간에는 왕권에 눌리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렇게 강화된 왕권으로 숙종은 대동법의 확대 시행과 상평통보의 발행, 청과의 경계비 확정, 국방 군역의 개편, 왜와의 통상등 굵직한 업적을 이루어 내어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의 사회를 수습하고 안정기를 맞이하게 한 치적이 있다는 평가도 받습니다.
다만 백성들의 민생은 그다지 나아지지 못했고 이를 대변하듯 숙종대에 활약한 장길산과 같은 대표적인 도적이 활동하였으나 끝내 잡지는 못하였습니다.
현재의 드라마에서, 또 얼마전의 "동이" 에서는 여심을 사로잡는 멋진 왕으로도 그려지지만 요즘의 평가와 해석은 왕권 강화를 위해 여인과 붕당을 교대로 교체하며 피를 뿌리기를 주저하지 않은 냉철한 제왕입니다. 어쩌면 숙빈 최씨가 마지막에 선택된 이유는 그녀의 신분이 낮다보니 비교적 당파에 휩쓸릴 사유가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역사적인 행보만으로 경솔하고 변덕이 심한 왕으로 비추어지지만 이와 유사하게 사화를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던 연산군이 왕위에서 폐립된걸 생각해 보면 환국을 통하여 당파를 약화시키고 성공적으로 왕권을 강화한, 결코 경솔하다고 보기만 힘든 인물 입니다.
드라마 동이에서 장희빈, 숙종, 최숙빈(동이)
최근 장옥정 사랑에 살다 드라마에서의 숙종(이순)역의 유아인
장희빈(장옥정)
그녀만큼 드라마나 문학작품등에서 널리 알려진 여성이 없을듯 합니다. 정확한 명칭은 희빈 장씨 이지만 통상적으로 불리는 장희빈으로 명칭을 통일 하겠습니다. 특히 사약을 마시는 강렬한 장면들로 매 장희빈 역마다 이 장면을 어떻게 소화하느냐가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장희빈은 장경과 그 후처이던 윤씨의 둘째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집안은 한미한 집안으로 숙부가 거부이던 역관 장현입니다. 사실상 역관은 중인이었지만 그 직무를 통해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고 이를 매개로 권력에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장현은 남인의 영수이던 허적의 서자인 허견과 결탁했던 복평군과 친밀한 사이였고 그녀가 남인에 가까워진 것은 이러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입궁하게된 이유는 동평군과 우의정 조사석의 힘을 빌어서인데 희빈의 어머니 윤씨는 조사석 처가의 종이었고 조사석과 사통한 사이로, 조사석이 동평군 이항에게 정부의 딸을 입궁시켜 달라는 부탁을 하게되어 나인으로 입궁하게 됩니다.
미모가 매우 뛰어났으므로 인경왕후 사후 숙종의 눈에띄어 승은을 입게 됩니다. 하지만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 왕후는 서인의 당파에 속해 있어 희빈과 연결되어 남인이 진출할 여지를 우려해 그녀를 궐 밖으로 쫒아냅니다. 그 사이 민유중의 딸 인현 왕후가 정비가 되었습니다.
명성 왕후가 3년 후 사망하자 거리낄게 없어진 숙종은 그녀를 다시 불러들여 총애하였습니다. 그녀의 오빠 장희재는 남인과 연합하여야 한다는 충고를 장희빈에게 했고 장희빈은 서인 세력인 인현 왕후에 대항하기 위해 남인을 정치적 동반자로 선택하게 됩니다. 결국 장희빈은 후사가 없던 숙종에게 왕자(훗날의 경종)을 안겨줌으로써, 앞서 이야기 했던 기사환국의 단초가 되어 결국 남인이 권력을 잡게되고 그녀 역시 인현 왕후를 몰아내고 정비의 자리를 차지하는 생애의 정점을 누리게 됩니다.
어릴적 제가 읽었던 책에서는 약 1,000일간 권력을 누리고 목이 잘린 영국의 헨리 8세의 2번째 부인인 앤 블린(천일의 앤)과 비견한 내용을 읽은적이 있었습니다. 장희빈 역시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권력을 남인과 함께 누렸으나 갑술 환국으로 그 정점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숙종의 총애가 숙빈 최씨에게 옮겨간 까닭도 있지만 한 붕당이 강해지면 주저없이 환국이라는 수단을 활용한 숙종의 정치적 한수에 희생된 부분이 더 커 보입니다.
결국 이후 인현왕후 사후에는 인현왕후를 저주하며 죽기를 기원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사약을 받고 사사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숙종의 처사가 늘 그렇듯 성급하게 사사하고 나서야 수사를 벌이는 등 당시의 조정에서도 장씨의 무고 여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그녀는 드라마 등에서 권력을 지향한 요부로 많이 그려졌지만 거기에는 사실과 왜곡이 뒤섰여 있습니다. 왕자를 낳은 모친으로써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한 궁궐내의 암투는 긴 역사를 봤을때 언제나 누구에게나 벌어지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장희빈 역에는 윤여정, 이미숙, 전인화, 정선경, 김혜수, 이소연, 김태희등 당대의 미모를 뽑내던 배우들이 한번씩 배역을 맡았던 자리일 만큼 많은 매력을 지닌 캐릭터가 아닌가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동이에서의 이소연씨가 맡은 장희빈을 좋아합니다
최근 동시간대 직장의 신에서 활약한 김혜수씨도 장희빈 역을 했었습니다.
최근의 드라마에서는 김태희씨가 장희빈 역을 하고 있습니다.
인현 왕후
여양부원군 민유중과 은성부부인 송씨의 딸로 태어났으며 부모의 시호를 보아도 알 수있겠지만 서인 세력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숙종의 모후인 명성왕후의 추천과 서인 세력의 거두인 송시열의 추천으로 인경 왕후 사후 숙종의 중궁이 됩니다.
하지만 가례 초기 부터 숙종의 총애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숙종이 장희빈을 재 입궁시켜 총애하자 영빈 김씨를 후궁으로 입궁시켜 그 총애를 덜어내려고 했던 적이 있는 만큼 이전의 드라마에서 흔히 묘사된 것과 같은 너그럽고 질투하지 않는 현모양처의 이미지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장희빈을 매질하거나 그녀를 숙종의 활을 맞고 죽은 짐승의 화신이라고 폭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말년의 자신의 병세를 장희빈의 저주때문이라고 생각할 만큼 그녀를 싫어했고 아마 마음속에서 여성으로써 정치적으로 장희빈이 평생의 라이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앞서 언급했던 기사 환국에서 폐서인이 되어 쫒겨났다 갑술 환국으로 다시 중궁의 자리를 되찾습니다. 긴 시간 끝에 결국 정치적으로는 장희빈에게 승리한 셈인데 여인으로써는 숙종의 총애를 받지 못했기에 불운한 여인이기도 합니다.
SBS에서의 프로필을 보면 이번 드라마에서는 현모양처로만 그려지지는 않나 봅니다.
재미있는것은 예전의 인현 왕후는 김원희씨나 박선영씨 처럼 미모가 덜한(?), 물론 이분들도 미모의 배우들이시지만 어디까지나 장희빈 역과 상대적으로 미모가 덜한(?), 에잇 표현하기가 어렵군요. 미모가 덜한게 아니라 미모가 덜하게 분장하여 맡았다는 사실 입니다. ^^;;
숙빈 최씨
후에 영조가 되는 왕자를 낳았으며 숙종의 총애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여인이기도 합니다. 그녀에게로 총애가 옮겨가면서 장희빈의 몰락이 시작되지만 사실 지금까지 전례를 보면 숙종에게는 이 여인도 아들을 낳기 위한 수단이었을뿐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숙종의 여인 편력을 보면 그 총애가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고 애정이 사라지는 것도 올때만큼 급합니다.
그 출신 신분이 낮다는 장희빈과도 비교가 되지않을 만큼 원래 신분이 미천하여 7세에 침방 나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녀의 신분이 낮은것은 훗날 영조에게도 평생의 컴플렉스가 됩니다. 연산군이나 광해군의 자신의 어머니를 왕후로 추존하는데 성공한 반면 영조는 끝내 신하들의 반대로 자신의 어머니를 숙빈에서 왕후로 추촌하지 못하였습니다. 천한 핏줄을 왕으로 모시는것도 모자라 천한 핏줄의 왕후까지 종묘에 모실수 없다는 것이 당시 사대부의 보편적인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드라마 동이에서와는 달리 장희빈의 사사 후에는 외려 숙종의 총애도 식어서 결국 그녀는 아들인 연잉군(영조)의 사저로 나갈 것을 요청했고 숙종도 말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녀 역시 말년은 숙종에게 버림받아 쓸쓸한 삶을 삽니다.
와우! 아이돌이 숙빈 최씨 역이네요. 시대의 변화를 느낍니다.
맺으며
현대에 와서 기존의 사극 구도가 바뀌는 걸 보면 재미있습니다. 역사는 시대에 따라 새로운 해석이 나오고 시대적 관심사에 의해 관점이 바뀌는 걸 보면, 어쩌면 역사는 그 기록조차 절대적인 팩트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학문인것 같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는 숙종은 앞서 언급한 헨리8세 처럼 즉흥적이고 변덕적인 성격으로 3차례의 환국과 조강지처를 버렸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요부를 쫒아내고 다시 데려오는 못난 남자의 전형 으로 그려지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왕권과 관련한 새로운 해석들로 인해서 숙종 역시 재평가 되고 그녀 주변의 여인들 역시 재평가되고 있는것 같습니다.
조금 뒤져 보니 장희빈역은 이번의 김태희씨가 9 대째라고 합니다. 과연 이번의 사약 연기는 어떨지 기대가 됩니다.
이미지 출처 : KBS, SBS 드라마 소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