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Story of Kings 썸네일형 리스트형 드라마틱한 삶, 헨리 8세와 6명의 왕비, 왕 이야기 영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헨리 8세만큼 이야깃거리와 드라마 소재가 적합한 왕은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영국 하면 떠오르는 전설상의 왕인 아더왕이 있지만 실체적인 기록이 명확한 왕으로 한정하자면 말입니다. 무려 6명이나 존재했던 왕비와 그중 두 명은 목을 날린 것으로도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소재가 될 듯하고 수장령으로 대표되는 영국국교회 성립으로 종교개혁을 했던 왕입니다. 근대에는 다른 나라들이 대응이 불가한 유명한 영국 해군을 실질적으로 강화시켜 영국을 헨리 8세 치세에 열강으로 떠오르게 만든 역사적으로도 한 획을 그은 왕이기도 합니다. 뭐 영국사에서 역사적인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 업적도 있지만 더 유명한 것은 복잡한 사생활과 결혼 생활로 인한 많은 소재거리들이 아닐까 합니다. 또한 후세.. 관우는 정말로 청룡언월도를 썼을까? 삼국지의 무기들 어렸을 적 삼국지를 처음 접했을 때 유비 관우 장비 의형제의 의리와 영웅적인 행적의 임팩트가 매우 크게 다가왔던 걸 기억합니다. 이제는 제 아들이 삼국지를 만화로 보고 있습니다. 삼국지의 유관장 삼 형제 중 가장 멋진 캐릭터는 관우가 아니었나 합니다. 비록 아들에게는 원펀맨이나 드래곤볼의 손오공에 비해 영향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관우 하면 역시 미염공이란 별명답게 긴 수염, 그리고 대춧빛 붉은 얼굴, 적토마가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그리고 항상 그의 손에 들려있는 82근의 청룡언월도야말로 관우를 대표하는 상징 중에 상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실제로 관우는 청룡언월도를 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언월도라는 무기 자.. 남 아프리카의 정복왕 샤카 줄루(Shaka Zulu) 2편. 왕 이야기 이전 글에서 샤카 줄루가 주변 부족을 통일하고 줄루라는 단일 기치로 왕국이 성립되는데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전 글 : 남 아프리카의 정복왕 샤카 줄루(Shaka Zulu) 1편. 왕 이야기 이 시기에 남아프리카에는 이미 유럽 백인들이 진출해 있었는데 네덜란드 출신 식민 세력인 보어인과 남쪽의 케이프 식민지와 영국인들이 그 대표적 세력이었습니다. 샤카는 줄루족을 통일하여 남부 아프리카 최대의 군사세력으로 성장한 이후에도 이러한 유럽 백인 세력들과 충돌은 거의 없었는데 이는 젊은 시절 유럽인 거주 구역까지 떠돌고 그 군대를 본 전임 딩기스와요의 안목과 조언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딩기스와요는 바다 건너에 큰 백인들의 나라가 있고 그들이 대포와 총의 위력, 주술 없이도 사람을 치료하는 백인들의 의료 기.. 남 아프리카의 정복왕 샤카 줄루(Shaka Zulu) 1편. 왕 이야기 흔히 샤카 줄루(Shaka Zulu)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왕의 정식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맞는지 모르겠지만 샤카 카센장가코나 (Shaka kaSenzangakhona) 라는 긴 이름입니다. 샤카 줄루라는 짧은 이름은 줄루족의 샤카 정도의 의미랄까요? 오랜만에 쓰는 왕 이야기입니다. 제가 샤카 줄루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국내에서 TV 시리즈로 방송된 것을 보았을 때가 처음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히로인과 함께 구애의 춤을 추던 장면과 중간중간에 다양한 노래와 괴성들입니다. 1986년에 제작된 드라마인데 한국에는 몇 년도에 방송되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드라마에서 줄루족 여성의 전통의상은 가슴이 그대로 노출한 장면들도 꽤 나와서 어머니가 애들 볼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운 .. 이븐바투타 여행기 - 물자와 술탄 에피소드 최근에 심심 할 때면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저도 살짝 역사 덕후 기질이 있는지라 이 시대의 인물이 자신의 시각으로(더구나 서구인이 아닌) 남긴 이 귀중한 자료를 종종 흥미롭게 바라봅니다. 물론 이게 정말일까? 생각되는 다소 신비하고 미심쩍은 이야기들도 가끔 있지만 그럼에도 귀중한 시대의 역사자료임은 틀림 없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모르코왕국 탕헤르에서 전통적인 이슬람 명문 사족으로 태어나 21세에 성지순례를 위해 메카로 떠난 이후로 30년간 당시의 전 세계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의 3대륙 곳곳을 여행하고 그 여행기를 남겼습니다.그 여행기는 원본은 유실되었지만 현재에 남아 있는 것은 이븐 주자이가 필사 요약한 저본이 남아 소중한 인류의 문화 유산이 되었습니다. 이 필사 요약.. 성종, 비극의 시작. 폐비 윤씨 -3(完)- 드디어 유교적 이상향 군주라 칭송 받고 신하들에게 사랑받았던, 그러나 후일 분란의 씨앗을 남긴 성종에 대한 마지막 글 입니다. 유교적으로 이상적이었던 군주 성종, 그는 간관들의 다소 불손한 언행들 마저 받아 넘길정도로 너그러움을 보인 왕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유교질서 안에서의 사대부에 대한 너그러움에 그쳤습니다. 실제로 그의 치세에 사대부들에 대한 유배는 있었지만 목숨까지 앗는 사사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의 잘못을 적당히 넘어가려 한 사례들이 보입니다. 이런점은 똑같이 유학에 통달한 군주지만 여성과 노비에 대해서도 궁휼한 마음을 가졌던 세종대왕과는 달리 성종의 경우 유교적 질서를 벗어나는 여성의 투기나 재가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더 엄격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한 부분이 드러난 일들은 재가한 과부의.. 성종, 사대부들이 꿈꾸던 완벽한 군주 -2- 성종의 이름은 이(李) 혈(娎) 입니다. 기쁠 혈(娎) 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할머니 정희왕후와 어머니 인수대비 그리고 신하들, 이들 모두를 기쁘게 만드는 존재 였습니다. 단 폐비 윤씨와 아들 연산군을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시법에 "백성을 편하게 하고 정사를 바로 세운 것"을 成이라 하는데 성종의 사후 시호는 이러한 뜻을 지닐 정도로 성종의 치세는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효성스러우며 유교적 군주의 덕목을 갖춘 왕으로 후대에도 평가되어 왔습니다. 그런 성종도 앞의 글에서 다루었듯이 왕위에 오르는 과정은 의문스러운 점이 많은 즉위 과정 이었습니다. 이전 글 [Story of Kings & History] - 성종, 연산군이라는 파국을 잉태한 성군 -1- 원칙적으로는 왕위를 이을 수 없었던 계승 서열 3위의 자.. 성종, 연산군이라는 파국을 잉태한 성군 -1- 성종은 그 치세에 신하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사랑 받은 군주였습니다. 율곡 이이는 "그 영특함과 슬기로움이 우리나라 천년에 우뚝 솟아오를 만큼 참으로 성스러운 주상" 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극찬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연산군은 조선 역사에서 최초로 반정으로 폐위된 폭군의 상징이기도 하고 성종 본인도 현대에 와서는 신하들에게 성군으로 추앙 받지만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은 왕으로 그 리더십이 의심받고 있는 양면성을 가진 왕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이번 왕이야기는 조선의 사대부가 사랑한 성군이지만 폭군이라는 연산군을 잉태하게 된 이 성종에 대한 이야기를 한번 다루어 볼까 합니다. 성종은 세조의 왕비였던 할머니 정희왕후와, 세조의 공신이었던 장인 한명회, 그리고 어머니 인수대비.. 후한 영제와 십상시, 역사는 돌고 도는 것 오늘은 저 유명한 삼국지의 시대를 연 원인 중 하나인 후한의 영제와 십상시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부제로 "암군과 문고리 권력을 쥔 간신들" 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간신의 등장하고 활약할 수 있는 멍석은 항상 암군이 깔아주는 법이라는 생각 입니다. 재미있게도 역사는 시대가 바뀌어도 늘 반복되고 뛰어난 임금 밑에서는 두드러지지 못하고 숨죽이던 간신. 척신들도 늘 폭군이나 암군이 등극하면 활개를 치기 시작합니다. 환관은 정치에 참여하는 세력이라기 보다는 왕의 신변을 측근에서 보좌하고 궁의 일들을 관리하고 감독하는 내직에 종사하는 거세된 남자를 뜻합니다. 하지만 절대 권력자인 황제나 왕의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이들이다 보니 때때로 암군을 만나 권세를 얻어 한 나라, ..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 자한 인도에 여행을 갈 일이 생긴다면 꼭 가서 한번 쯤 눈으로 직접보고 싶은 건축물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타지마할 입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어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무굴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그의 왕비인 뭄마즈 마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지은 이 궁전식 묘소는 뭄마즈 마할이 죽은 뒤 6개월 후 부터 건축을 시작해 완공되는데 무려 22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완공된 직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들지 못하게 하기 위해 공사에 참여한 모든이의 손목을 잘랐다는 무시무시한 뒷 이야기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아름다운.. 영국의 황금기를 연 처녀 여왕(The Virgin Queen) 엘리자베스 1세 스물 여덟번째 왕 이야기는 두 번째 왕이야기에서 다루었던 "블러디 메리" 의 동생이며 헨리 8세와 앤 블린의 딸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 입니다. 그녀는 재위동안 반 에스파니아 정책을 통해 저 유명한 에스파니아의 무적 함대를 격파하고 추밀원을 중심으로 균형적이고 집단적 지성을 통한 정치와 중상주의 정책을 통해 잉글랜드가 대영제국으로 성장하는 계기를 만든 왕입니다. 같이 불행한 과거를 겪었지만 다소 어두운 면을 가진 언니 메리 1세와는 달리 천성적인 밝은 성격과 활기찬 태도로 인해 주변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격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복 자매 사이인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성격 만큼 상반된 치세를 상징하는 단어들도 극명하게 갈립니다. 언니인 메리 1세가 블러디 메리(Bloody Mary)로 불리우며 .. 효종은 정말로 북벌을 꿈꾸었나?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왕자 시절엔 봉림대군으로 불리웠습니다. 인조의 첫째 아들인 소현세자가 죽은 후 세자로 책봉되었습니다. 이전 글조선의 가장 무능했던 왕 인조 1, 인조 반정인조 2, 끝까지 준비되지 못했던 왕, 이괄의 난과 피어오르는 전운인조 3,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인조(終), 소현세자의 죽음과 꽃들의 전쟁 효종, 즉 봉림대군 역시 형인 소현세자와 같이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로 끌려가 볼모 생활을 해야했는데 이때 형인 소현세자가 북경에서 천주교 사제들과 만나거나 새로운 문물 습득에 열심이었던 반면 그는 복수심을 불태우며 청나라를 정벌할것을 다짐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부왕인 인조에게도 전달이 되었습니다. 먼저 귀국했던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2달만에 의문의 죽.. 이전 1 2 3 4 ···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