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샤카 줄루(Shaka Zulu)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왕의 정식 이름은 발음이 어려워서 맞는지 모르겠지만 샤카 카센장가코나 (Shaka kaSenzangakhona) 라는 긴 이름입니다. 샤카 줄루라는 짧은 이름은 줄루족의 샤카 정도의 의미랄까요?
오랜만에 쓰는 왕 이야기입니다. 제가 샤카 줄루라는 이름을 듣게 된 것은 국내에서 TV 시리즈로 방송된 것을 보았을 때가 처음입니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히로인과 함께 구애의 춤을 추던 장면과 중간중간에 다양한 노래와 괴성들입니다. 1986년에 제작된 드라마인데 한국에는 몇 년도에 방송되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납니다.
드라마에서 줄루족 여성의 전통의상은 가슴이 그대로 노출한 장면들도 꽤 나와서 어머니가 애들 볼 게 아니라고 하면서도 너무 자연스러운 고증의 모습이다 보니 못 보게 까지는 안 하셨는데 시리즈 막바지에 스토리와도 별 관계없이 뜬금없이 드라마 속 화자 역할에 해당되던 백인 남녀의 베드신이 펼쳐지는 바람에 "애들은 잘 시간이다" 한마디와 함께 제 방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끝까지 다 못 본 아쉬움이 있는 드라마입니다.
어쨌든 오늘은 이 아프리카 원주민의 부족사회가 봉건 왕국으로 발전하는 단계였던 남아프리카 줄루 왕국의 지도자였고 개혁가(또는 모방자)였고 공포로 지배한 잔인한 통치자이기도 했던 샤카 줄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드라마 속의 샤카 줄루, 이미지 출처 : 앰엘비파크
드라마를 본 지가 오래되었고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주인공 보정이 필요한 드라마다 보니 해당 드라마에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부족에서 달아났던 어린 왕자, 샤카 줄루가 아프리카의 전통의 전쟁 방식인 의례적인(멀리서 서로 창을 던지며 도발하고 여자들이 전장 뒤편에서 응원의 춤을 추고 대표 전사가 1:1로 싸우던) 전쟁의 방식을 근접 살육전, 포위 섬멸전으로 바꾼 개혁가이자 영웅적인 왕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려냅니다.
전통적인 던지던 창, 아세가이를 좀 더 짧고 근거리 접전에 유리한 창날이 넓은 이클와라는 무기로 개조해서 아프리카의 부족 전쟁 방식 자체를 바꾼 천재적인 전쟁 전술가로도 그려 냅니다. 부족 사회에 머물던 남 아프리카의 부족 집단을 봉건적인 왕국으로 만들어 낸 혁명적 인물로 보기도 합니다.
나중에 샤카에 대한 자료를 보다 보면 뭐 드라마 주인공에 대한 버프가 있긴 하지만 일부는 명확한 사실이고 사실 일부는 좀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
스케치된 샤카 줄루의 모습
이미지 출처 : 영문 위키
드라마에서는 이클이라는 단창을 만들어 낸 인물이지만 사진에 그려진 이미지는 아세가이를 든 전사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에 긴 아세가이를 든 적군들이 육박해온 샤카의 부대와 좁은 전장에서 부딪쳤을 때 긴 창이 걸리적거려 대응하지 못하고 이클와에 사정없이 살육 당하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아세가이의 어원이 북아프리카 무슬림들이 쓰던 "아즈 즈가야"라는 아랍어에서 온 것과 달리 "이클와"는 몸에서 박힌 창을 빼낼 때 소리를 표현한 의성어에서 왔다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크! 와!" 라는 상대의 신음 소리일까요? 아니면 순수하게 창을 빼낼 때 살가죽이 터지는 소리가 그렇게 들렸던 걸까요.
이클와의 모습, 아세가이가 던지거나 방패 뒤에서 길게 내지르기 좋은 창이라면 이클와는 접근전에서 찌르고 베기 좋은 창이다.
이미지 출처 : 뻐스타고빠리가자 블로그
문명 게임에서 이클와를 든 모습으로 묘사된 샤카 줄루
앞서 샤카 줄루가 줄루족을 규합해 최초로 부족 사회를 국가 성립 단계로 발전을 견인한 시초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실은 샤카 이전에 딩기스와요(Dingiswayo)라는 음테트와족 부족장이 통일의 시작점이자 시초라 볼 수 있습니다.
이 딩기스와요라는 인물의 이력이 참 재미있는데 음테트와족 부족의 추장의 아들이었지만 자식들이 자신의 권력을 노린다는 의심병이 많았던 아버지 때문에 목숨을 구하기 위해 젊은 시절 부족에서 도망쳐 백인들의 식민지 지역에서 유랑하며 백인들의 무기와 생활, 문화를 접하게 되었던 이력이 있습니다. 그의 이름 자체도 "방랑자", "문제가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이름 자체는 스스로 지어 바꾼 이름이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죽은 후 돌아와 추장이 된 딩기스와요는 젊은 시절 서구와 접하고 그 문화를 알게 되면서 어떤 면에서 부족 군장 사회에 머물러 있던 남 아프리카 지역에서 일종의 계몽 군주가 되었습니다. 백인 식민도시인 델라고아와 교역을 하고 소규모 전사단을 대규모로 묶어 공식적인 군대로 만들어 정복 전쟁을 시작한 인물입니다. 어떻게 보면 국가로 나아가는 단계의 초석은 바로 딩기스와요가 쌓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샤카 줄루도 초기에는 이 딩기스와요 부대의 전사 지휘관 중 하나였습니다.
줄루 왕국의 확장/활동 범위
이미지 출처 : 영문 위키
샤카 줄루는 남동 아프리카 웅구니족의 지파인 엘랑게니의 추장이던 센장가코나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인근 부족 추장의 딸로 정식 결혼을 통해 샤카를 임신하지 않았기 때문에 센장가코나는 샤카를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샤카는 일종의 하룻밤 실수 같은 혼외자, 사생아로 여겨졌기에 그의 어머니가 속한 부족에서 모욕을 당하던 그는 떠돌이로 떠돌다가 겨우 고모가 있던 음테트와족 휘하의 작은 부족의 부락에 정착할 수 있게 됩니다.
이곳에서 샤카는 음테트와의 추장인 딩기스와요의 아래에서 정복전쟁 중 전사로서 두각을 드러내는 전공을 여러 차례 세우고 결국 딩기스와요의 눈에 들어 그의 최고 전사가 되게 됩니다. 190cm가 넘는 큰 체격에 전사로써 신체 능력도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역시 어느 문화권에나 있는 정복/창업 군주에 대한 신화적인 무용담도 많습니다. 어릴 때 표범을 잡았다던가 1:1 로 상대의 최고 전사를 해치웠다던가 하는 것들 말입니다.
딩기스와요는 주변의 군소 부족들을 전쟁을 통해 정복했는데 샤카는 어느 시점엔가 앞서 언급한 이클와를 도입하였습니다. 연구자들은 비록 드라마의 묘사처럼 그가 이클와의 발명자라고 여겨지고 있지는 않지만 실제로 소속 부대를 이클와로 훈련하고 무장시킨 것은 샤카 줄루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이클와로 인해서 기껏해야 수백의 전사들이 멀리서 아세가이를 서로 던져대던 전통적인 전투가 아닌 대 부대로 접근하고 포위하여 치명상을 입히고 상대를 분쇄하는 형태로 아프리카 남부의 부족 전쟁의 방식이 변화하게 됩니다.
황소뿔 대형이라는 독특한 전투 방식을 만든것은 대부분의 연구가들은 샤카 줄루라고 보고 있다고 합니다. 임피라고 불리는 전사들 중 고참 전사들로 일종의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모루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양 뿔에 해당되는 전사들은 좀 더 젊고 발이 빠른 젊은이들로 이들이 마치 황소뿔처럼 모루에 해당되는 고참병이 버티는 동안 적을 양 옆에서 둘러싸고 포위 공격하는 대형이었는데 동 서양을 떠나 모든 문화권에서 사용되는 포위 섬멸을 위한 진형과도 비슷합니다.
줄루족 재연 모습
이미지 출처 : 말 위에서 천하를 논하다 블로그
그리고 그는 부족 전투의 규모가 아닌 대부대를 구성함으로써 근본적으로 아프리카의 전쟁을 "살인이 최소화된 도발적 성격의 전투에서 대량의 살육과 섬멸이 수반되는 것"으로 남아프리카의 전쟁 방식을 아예 바꾸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은 딩기스와요의 부하로서 대부대를 맡으며 주변 부족들을 정복하면서 적어도 샤카의 부대에서는 점차 구체화되고 자리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나중에 딩기스와요 사후 은드완드웨와 전쟁을 치루며 그 개혁은 줄루 전사 군대 전체에 자리 잡게 되었을 것이지만 말입니다.
일부의 연구가들은 샤카 줄루를 사실은 혁신가가 아닌 차용자로 보기도 합니다. 앞서갔던 딩기스와요 또는 주변의 잘 알려진 기존의 무기나 전술을 그저 효과적으로 차용하는데 불과했다는 주장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기존의 방법에 머물지 않고 어떠한 기술이나 전술의 장점을 듣고 그것을 버리지 않고 흡수하여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다면 그것이 혁신가라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생각이 다른 경우는 있는것이겠죠.
일랑게니족의 추장이자 샤카 줄루의 친부인 센장가코나는 어느 시점에 이미 딩기스와요에 항복해 복종하고 있었는데 샤카 줄루를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매몰차게 내쳤던 것 때문에 샤카가 딩기스와요의 심복으로 큰 힘을 가지게 되자 전전긍긍합니다. 하지만 샤카 줄루는 그의 생부가 살아있는 동안은 일랑게니 부족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음테트와의 선봉장으로 여러 부족과 이곳저곳에서 정복 전쟁을 치루느라 무관심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만 속에 칼을 품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1816년에 센장가코나가 사망하여 이복 동생에 해당되는 시구자나(Sigujano)가 추장이되자 샤카는 딩기스와요이 허락을 받고 시구자나를 암살해 버리는 일종의 쿠데타로 스스로 엘랑게니 부족의 추장에 오릅니다. 딩기스와요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심복이자 수하가 단순한 군대의 지휘관이 아닌 추장이 되는것이 더 달가왔을 것입니다. 샤카 줄루는 자신의 부족을 이끄는 추장이며 딩기스와요를 대군주로 따르게 됩니다. (서양식 개념에서 보자면 제후왕과 황제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구한말 대한 제국의 황제의 정식 칭호도 "대군주"였습니다. 그래서 황제 보다는 적당한 번역으로 느껴져 사용했습니다. )
이글의 제목에서는 샤카를 검은 나폴레옹에 빗대었고 실제로도 그런 비유가 많지만 샤카 줄루에 대한 역사 자료를 읽다 보면 제 개인적으로 더 많이 떠오르는 인물은 바로 칭기즈칸입니다. 배역이나 성격은 명백히 다르지만 샤카에게 징기스칸처럼 왕칸이나 자무카와 같이 세력을 이룰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한 인물은 바로 음테트와 족의 추장 딩기스와요로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이 인물은 어느 정도 체계를 잡고 분열을 통합하여 통일의 기반을 닦은 상태에서 암살로 퇴장 당한다는 점에서도 완벽한 영웅의 전임자 역할을 합니다. (일본 전국시대의 오다 노부나가도 통일을 기반을 닦고는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반란으로 퇴장했고 왕칸이나 자무카도 훨씬 유리한 입지에서 스스로의 뻘짓으로 칭기즈칸에게 대업을 물려주고 맙니다.)
딩기스와요는 샤카와 자신의 심복들로 주변 부족들을 거의 다 정복해 나갔지만 아직 북쪽에는 은드완드웨(ndwandwe)라는 라이벌 부족 집단이 건재해 있었고 이들의 왕이던 즈와이드(Zwide) 칼랑가는 1817년에 암살자를 보냅니다. 정복지를 시찰하고 돌아오던 딩기스와요는 매복해 있던 암살자들의 급습에 의해 그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딩기스와요가 살해된 후 은드완드웨는 침공을 개시해 침공해 왕을 잃고 혼란에 빠진 음테트와를 몰아붙일 수 있었습니다. 기존 침공했던 은드와드웨의 정복지들로 부터 완전히 밀려나고 거꾸로 침공당해 위기에 처해있던 음테트와는 샤카와 동맹을 맺었고 2년 동안의 전쟁 끝에 침공해 온 은드완드웨의 군대를 Gqokli Hill 전투에서 방어해 내고 Mhlatuze 강 전투에서 다시 은드완드웨 군을 완벽하게 격파한 뒤 이후 역으로 북으로 진격해서 즈와이드(Zwide)와 그의 소수의 추종자들과 달아나게 만듭니다. 이후 그는 달아난 후 재기하지 못하고 결국 얼마 못가 사망하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딩기스와요의 복수를 위해 즈와이더의 어머니 은툼바지(Ntombazi)를 그녀의 집에 가두고 자칼과 하이에나를 집어넣어 물려 죽게 만드는 잔혹한 복수를 했습니다. (또는 그저 집안에 가두고 불을 질러 불태웠다는 설도 있습니다. 어느쪽이나 매우 잔혹한 복수였습니다.)
이렇게 주군의 복수를 하고 주군의 유산을 계승하는 케이스는 이미 여러 역사의 사례에서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은드완드웨를 완벽하게 물리친 1820년 결국 샤카는 주변 부족 전체를 기존에 존재한적 없던 가장 통일된 군사 세력의 아래로 통일하게 됩니다. 줄루(Zulu)는 샤카의 부족인 엘랑게니의 다른 명칭이기도 했는데 이제 샤카가 정복한 모든 지역이 마침내 줄루(Zulu)라는 단일 세력의 기치아래 통합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끝내고 싶었는데 또 글이 길어지는 나쁜 버릇이 나왔습니다. 다음 2편 글에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참조 :
영문 위키 Shaka
살육과 문명 - 빅터 데이비스 핸슨
전쟁사 - 김성남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