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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수학시간에 수학사도 가르쳤다면 수학 5점을 받지는 않았을텐데

1990년대의 11월 대학입시를 위한 수학능력 평가, 글쓴이는 수학에 해당되는 수리능력1의 문제를 평소처럼 찍으려 하지않고 중요한 날이니만큼 이번 만큼은 직접 풀어보려고 애를쓰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잘찍으면 15점~20점 정도까지도 받을수 있었던 수리능력1, 그냥 평소처럼 잘 일렬로 찍을걸 무슨 바람에 직접 문제를 풀려고 애쓴 그날 결국 저는 3점, 2점 배점 2문제로 5점을 받았습니다.


완전 폭망했습니다.

 

오 마이 갓!

 

 

나에겐 끔찍 했던 수학이라는 학문

 

제가 고교 시절에 끔찍하게 싫어 했던 과목은 바로 수학입니다. 글쓴이에게 고교때의 수학시간이란 도대체 왜 배워야하는지 모를 미적분 공식들과 sin, cos,  tan 같은 기호들 리미트 같은 외계어들이 난무하는 전날의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시간에 불과했습니다.

 

이런것은 진정 외계인이 지구인을 괴롭히려 만든 것이 분명해!

 

앞서의 이야기에 이어서 부끄러운 과거를 조금 더 이야기 하자면 필자는 대입때 수학능력 시험을 본 세대입니다. 당시 수학에 해당되는 40점 배점으로 기억하는 수리능력1의 시험점수는 단 5점 이었습니다. 배점 방식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3점, 2점 배점의 2문제를 맞추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필자가 공부를 아주 절망적으로 못하진 않았습니다. 언어영역은 반대로 전체에서 1문제를 틀렸고 물리, 생물 등이 있었던 수리영역2는 2문제 정도만 틀렸던것 같습니다. 수리2와 함께 였는지 별도의 영역이 있었는지 명칭이 기억나지 않지만 국사, 세계사, 지리 등등 기타 과목들이 합쳐진 영역은 만점을 받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영어 울렁증이 좀 있다보니 영어 과목에 해당하는 외국어 영역의 성적은 아주 상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상위에 속하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수학을 1, 2문제 맞추었지만 어쨌든 대입에 과목당 과락은 없기에 전체 수능 점수로 재수하는 일없이 고향이었던 부산에 있는 국립 4년제 대학에는 진학할수는 있었습니다. 넉넉치 않은 집안 형편상 등록금이 저렴한 대학이어야 해서 선택의 여지가 많지는 않았는데 수학 5점으로 재수를 하지 않은 것을 신기하게 여기는 친구들도 있었던것 같습니다. 이것은 좋아하는것과 싫어하는것이 명백한 성격 때문이었는데 고교 3년동안 수학 선생님은 저를 매일 나머지 공부시켜야 할 절망적인 문제아 학생으로 여겼고 다른 과목들, 특히 국어 선생님은 절 정말로 모범적인 학생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제 블로그를 들려주신 분들이라면 아실지도 모르겠지만 제 직업은 IT 개발자 입니다. 특히 유닉스 서버에서 C언어라는 프로그램 언어로 개발을 해왔는데 컴퓨터나 공학관련 전공을 하셨다면 아시겠지만 사실 프로그래밍 언어나 전자공학등을 배울때 배열이나 공학수학등의 수학적 지식과 사고가 어느정도 바탕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 과정이 너무 힘듭니다. 다행이 고교때 수학을 너무나 싫어했던 저는 어떤일을 계기로 대학에서는 수학을 열심히 했었기에 전공을 이수하는데 어려움을 덜 겪을수 있었습니다.

 

수학을 너무나 싫어했던 이유는 돌아보면 단 한가지 이 학문을 "왜 배우는지", "어디에 써먹을수 있는지" 몰랐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어느순간 미적분을 보면서 이걸 도대체 어디다 써먹는거야?, 어차피 고등학교 졸업하면 쓸데도 없는거 아니야? 하는 아주 짧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제 시대의 학교 교육이란 그 과목을 배워야 하는 필요성을 알려주기 보다는 무조건 시험에 나오니 외워라 시험을 치고 점수를 잘 받아야 대학을 갈 수 있으니 문제를 푸는 방법을 배워라! 같은 시험에 나오는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을 학교에서 배우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마도 사람마다 학생때 좋아하고 싫어했던 과목들이 달랐겠지만 글쓴이의 경우 수학외에 과목들 중에는 무척 좋아하는 과목이 있었습니다. 그런 과목에는 살아가는데도 상식이 되고 사회에서도 사용될 학문이라는 수학에 대한 생각과는 조금 반대되는 생각과 태도를 가지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수학에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대학 1, 2학년때 였는지? 기존의 그런 생각이 바뀌기도 전에 전공 필수이던 미적분을 수강했었고 당연히 필수인 출석 일수도 채우지 못해 F를 받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 시간에 프로그래밍 언어를 더 익히고 술을 배우고, 담배를 배우고, 춤을 배우고, 인생을 배우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도서관에서 책을 보다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다룬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우주에 대한 과학 이야기는 아주 좋아했던 터라 이 책을 보면서 아인슈타인이 자신의 이론을 증명한 수단으로 사용한것 역시 수학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 유명한 질량과 에너지 보존 법칙을 표현한 아름다운 공식

에너지 = 질량 x 광속의 제곱

E = 에너지, m = 질량, c = 진공 속의 빛의 속도

 

전자회로등의 수업을 들으면서는 파형이나 전기와 소자에 대한 것들처럼 제가 흥미를 느낀 지식의 결과물들이 모두 수학적 계산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루어 질수 없었다는것도 점차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수학에 대한 생각이 아주 조금씩 바뀌어 갈때쯤 군대를 갔고 아무 생각없이 끝날것 같지 않던 하루 하루를 군생활로 보내다가 여유가 많아진 말년에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내무반에 몇권 없던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책 제목이 너무 오래되어 기억나지 않습니다.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 그 책을 찾아보려했으나 찾을수가 없었습니다. 그리 유명했던 책도 아니거니와 국방대학원의 교수를 하고 있는 군인 출신의 학자분이 저술해서 군부대 정도에서 그 분의 후배들이 약간은 의리성으로 구입해서 내무반 책장까지 흘러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도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냥 잡은 이 책이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군대와 엮인 수학의 역사를 시작으로 후반부에는 근대의 전반적인 수학사를 다루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흥미진진 했습니다.

 

말년 병장이 겪는 제대전의 그 지루함은 교양 과학서를 정말 재미있게 읽게 만들어 줍니다.

 

프랑스 혁명기의 이후부터 자신이 황제가 되는 제정시기까지 연이은 전쟁에서 활약한 나폴레옹은 당시의 주무기인 대포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포 제작 및 포술의 정립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하는데 그 역시 당시의 사관학교에서 수학과 탄도학을 배웠다고 합니다.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던 소년은 나중에 커서 유럽을 정복합니다.

 

당시의 이런 대포를 다루기 위한 포술과 측량에 대한 수학지식이 밑거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반대로 1416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신무기인 대포를 이끌고 이탈리아 국경을 넘어 침공했을때 초기에 속수 무책이었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들이 적은 비용으로 효과적으로 대포의 파괴력을 줄이고 방어하기 위해서 수학적 계산을 통해 성채의 벽을 다각화 하고 포격의 완충을 위한 얼마의 높이와 양에 해당하는 흙을 쌓아 올려야 할지 계산을 해주었던 수학자와 공학자들의 활약도 흥미로웠습니다.

 

당시로서는 고가의 신무기인 대포를 앞세워 이탈리아를 침공했던 프랑스의 샤를 8세.

초기 승승장구 했던 그는 성벽에 흙을 덧대어 쌓는 비교적 저렴한 방어책의 등장에 진격을 멈춰야 했습니다. 

 

중력에 대한 거시적 물리의 법칙을 수학을 통해 풀어낸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아이작 뉴튼과 거의 동시에 독립적으로 미적분학을 정립한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사이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뉴튼은 라이프니츠를 표절자로 여기기도 했지만 현재에는 두 사람이 각각 다른 방식으로 독립적으로 미적분을 발견 했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숨은 뒷 이야기들은 그토록 싫어하던 미적분에 대한 제 호기심을 자극하였습니다. 

 

거의 동시에 미적분을 발견한 뉴튼과 라이프니츠

 

위인전등을 통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뉴튼의 기행과 괴팍함에 대한 일화의 소개도 흥미로웠던 책이었습니다.

 

행성과 천체의 운동을 설명하고 당시 발견되지 않은 태양계의 행성의 위치에 대해 계산해낸 과학자들의 이야기들도 흥미로웠는데 비텐베르크대학의 수학 교수 티티우스(J. D. Titius)가 1766년에 발견하고, 베를린 천문대장 보데(Johann Elert Bode)에 의해서 1772년에 공표된 티티우스 보데의 법칙은 세레스, 천왕성, 명왕성, 해왕성등이 발견되기 전에 발표되어 행성의 대략의 위치를 대략적으로 찾거나 짐작하게 하게 함으로써 향후 행성들의 발견에도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현재는 세레스는 소행성대의 일부로, 명왕성은 왜소행성으로 태양계 행성의 지위에서 퇴출 되었습니다.)

 

 

1 AU(=1억 4,960만 km) 제 n번 행성의 평균거리 a

 

현재에 와서는 잘 맞지 않는 법칙이라고 종종 무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티티우스 보데의 공식은 천체물리학에서 태양계의 소행성들과 다른 행성들을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인류의 전 근대사에 걸쳐 수학이란 학문이 많은 학문에 바탕이 되어왔고 현대의 상대성이론, 물리적 발견들 역시 모두 수학과 함께 했다는 것을 알게되면서 그때까지의 제가 가졌던 수학에 대한 이유없던 혐오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었습니다. 사실 현재도 우리 주변에 수학의 도움을 받지 않는 학문이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음악이나, 언어의 연구도 수학과 관련성이 있다고 하니까요.

 

왜 배우는가? 에 대해서도 가르쳐주는 교육이 되었으면

 

그 덕분인지 결국 제대를 하고 재수강한 미적분은 많은 관심을 기울여 열심히 공부를 할수 있었기에 무탈하게 좋은 학점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돌아보게 된 생각은 어떤 학문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이 학문이 앞으로 어디에 쓰일것이고 과거의 역사와 현실에서 어떤일에 쓰여왔는지를 가르치는것도 소홀히 하면 안될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중 고교 시절 어떤 선생님도 그냥 외우라는 공식과 수학문제를 푸는 기술외에 이것이 어디에 쓰였는지? 지금은 어떻게 이용되는지? 무엇을 위한 학문인지?애 대해서는 수업시간에 여담으로도 이야기해 준 분은 안계셨던것 같습니다. 사실 선생님들도 자신이 역시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고 꼭 수학만 그랬던것도 아닌것 같습니다. 국어 교육 역시 문장이나 시의 아름다움이나 감상, 은유를 알게 해주는 수업이었다기 보다 밑줄을 긋고 해당 내용이 시험에 어떻게 나올까 알려주던 수업들이 아니었나 합니다.

 

이제와서는 조금 쑥스러운 과거의 수학 점수도 모두 추억이지만 만약 제가 중, 고교 수학시간에 수학과 관련된 역사를 1, 2 시간만 재미있게 배웠더라도 아마 제가 수학 5점을 맞는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미지 출처 및 내용 참조

http://blog.daum.net/nasica/6862360

http://blog.naver.com/dryice12/20036999738

http://ko.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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