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Travel & Delicious

[영월 여행]낡은 시간과 따뜻한 나무 숨결이 머무는 곳, 영월 주천면 카페 '유목정903'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깊은 사색을 즐겼다면, 그다음은 작고 소박한 공간에 앉아 내면의 여운을 가만히 갈무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영월을 하다가 이제 이곳의 카페도 궁금해졌습니다.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숨은 지역의 멋진 카페 같은 곳 말입니다.

소개해드릴 카페가 바로 그런 곳 같습니다.

 

영월 한반도 지형에서의 경건했던 마음을 안고, 저는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겨 조용한 시골 마을 주천면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여행의 피로를 부드럽게 씻어내 준 아늑한 안식처, 카페 '유목정 903'입니다.

 

 

조용한 마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단정하고 힙한 레트로 감성을 풍기는 외관이 조용히 시선을 잡아끕니다. 오래된 두 건물을 터서 새롭게 생명을 불어넣은 공간이라고 하더군요.

이름이 꽤 독특해 그 의미를 찾아보니, 주인장께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동네 이름 '유목정'에 본인의 생일인 '903'을 더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뒤에 숫자가 붙어 있어 주소의 번지수인가 짐작했는데, 누군가의 어릴 적 향수와 태어난 날의 축복이 엮인 이름이라니. 그 사실을 알고 나니 공간이 한층 더 다정하고 애틋하게 다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짙고 따뜻한 나무 향이 먼저 코끝을 스칩니다. 목공방을 운영하시는 아버님의 솜씨를 빌려 선반부터 테이블, 카운터까지 매장 곳곳의 모양을 직접 정성스레 빚어냈다고 하더군요.

기성품이 주는 차가움 대신, 사람의 애정 어린 손길이 닿아 부드럽게 마감된 나무의 질감이 공간 전체를 묵직하고 차분하게 잡아줍니다. 과하게 꾸미지 않아 오히려 더 세련된, 편안한 인상입니다.

 

 

창밖으로 평화로운 시골 풍경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앉아 찬찬히 메뉴를 살펴봅니다. 이곳은 음료도 훌륭하지만, 정갈하게 내어주는 전통 디저트들이 꽤나 매력적입니다.

쌉싸름하고 달콤한 조화가 일품인 시그니처 '유목정비엔나'와 전통의 단맛을 살린 '개성주악', 그리고 바삭한 '앙버터 모나카'를 주문해 보았습니다. 정겨운 한국적인 디저트와 현대적인 음료의 조합이 이 오래된 공간의 분위기와 참 잘 어우러진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다림 끝에 내어진 음료와 디저트는 먹기 아까울 만큼 단정한 자태를 자랑합니다. 차가운 크림 사이로 묵직하게 치고 올라오는 비엔나커피의 향긋함, 그리고 한 입 베어 물면 기분 좋은 쫀득함이 퍼지는 개성주악의 달콤함까지.

공간에 어울리는 정성스러운 맛 덕분에, 꽤 오랫동안 책장을 넘기며 여유로운 한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머물 수 있는 다정한 배려, 그리고 이따금씩 고양이가 여유롭게 거니는 풍경마저 이곳에서는 완벽한 평화의 일부가 됩니다.

 

 

우리는 가끔 낯선 곳에서, 내 집보다 더 크고 깊은 편안함을 마주하곤 합니다. 나무의 따뜻한 숨결, 달콤한 커피 한 잔, 그리고 오래된 공간이 주는 너그러움. 영월에서의 여행이 이토록 여운이 길게 남는 이유는 필시 '유목정 903'이 내어준 이 다정한 쉼표 덕분일 것입니다.

강원도 영월 주천면을 지나시게 된다면, 부디 이곳에 들러 잠시 호흡을 고르고 가시길 권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