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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아버지와 스마트폰

제 아버지는 명절 전까지만 해도 요즘은 보기 힘들어진 폴더형 피처폰을 사용하셨습니다. 주변 분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바꾸는 시기에도 한 손으로 걸고 숫자키를 명확히 누를 수 있는 자그마한 휴대폰을 선호하셨습니다.

심지어 번호도 이제는 찾아보기도 어려운 017로 시작되는 번호를 고수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이제 주변에는 피처폰은 아무도 없는 상황에다 5년 넘게 사용하다 보니 슬슬 액정 상태가 안 좋아지는 휴대폰을 이제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드셨나 봅니다. 하지만 혼자 휴대폰 대리점에 들려도 요금제 설명이나 가격 설명 이해하기도 힘든 데다 당췌 뭐가 좋은지 결정하기 힘드셨다고 합니다.


이번 명절에 부산에 내려가니 아들이 부산에 온김에 폰을 바꿔야겠다는 이야기를 꺼내셔서 설 전날 휴대폰 판매점을 찾았습니다. 부산에서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오래된 주택단지인 그 동네는 이제는 노인 인구만 남았습니다. 제가 입학했을때 10반에다 오전 오후반이 있던 초등학교도 이제는 학급수가 많이 줄였다고 하는군요. 뭐 한 학급의 수업 학생수 줄어든건 당연한 일일거고 말입니다.


제가 아버지와 들린 판매점의 직원은 복잡한 설명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노인분들에게도 제가 볼 때 거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여러 번 설명하고 미소를 유지하는 게 대단해 보였습니다.


노인과 스마트폰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지속적으로 스마트폰 필요 없다던 아버지가 이번에는 스마트폰을 써야겠다 마음먹은 계기는 무엇일까요? 의외로 그건 카카오톡 같은 MIM 같은 모바일 인터넷 메신저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SMS도 잘 보내시지 않는 아버지 시지만 문자를 읽기는 하십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받을 수 없는 카톡 메시지 등이 모임 같은 곳에서 본인만 소외되고 전달된 경우가 몇 번 있으셨나 봅니다.


스마트폰 개통할 때도 다른 건 신경 안 쓰셨는데 카카오톡은 설치가 되었냐고 여러 번 물으셨습니다.



스마트폰

출처 : pixahere 무료이미지


늘 평소에 휴대폰비 많이 나가는 걸 경계하셨던 터라 어머니가 쓰시던 것과 동일한 다소 저렴한 기종을 처음에 추천드렸는데 분명하게 싫다고 하시고 더 비싸지만 삼성 갤럭시 기종을 고르셨습니다.


평소 아버지를 알던 제 예상과는 달라서 조금 의외의 결정이긴 했습니다.


여하튼 명절 전날 개통을 하고는 이번에는 처음 스마트폰을 쓰시다 보니 계속 질문 폭탄이 이어졌습니다. 문제는 오전에 이야기 드렸던 부분을 오후에 또 묻고, 다음날 아침에 또 물으시는 겁니다. 아마도 이 생소한 사용법이 아무리 들어도 손에 익지 않으신가 봅니다. 평소 익숙하시던 일은 나이가 들었어도 꼼꼼하게 잘 알아서 하시는 편이고 젊은 시절에는 기계도 잘 만진다는 소리를 들으셨고 복잡한 일도 금방 쉽게 잘 이해하셨다는데 스마트폰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으시는가 봅니다.


그런데 이 모습에서 어쩐지 제 아들 모습이 살짝 오버랩됩니다. 약간은 다르지만 5살 때 쯤에는 똑같은 질문 또 하고 또 하고 같은 책 또 읽어달라고 하고 같은 애니메이션 계속 틀어달라고 하고... 나이가 되면 아이가 된다는 옛말도 그래서일까요?


처음에는 전화를 걸어도 한참은 전화를 받지 못하셨습니다. 전화가 걸려오면 전화기 모양을 슬라이드 바를 밀어서 받아야 하는데 계속 누르기만 하십니다. 물론 이미 이전에 몇 번 설명을 드렸던 부분입니다. 개통하고 저녁때가 되어서야 이제 한 번에 받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최근에는 저도 여전히 PC는 잘 다루지만 최근에는 쇼핑이나 영화관 앱들은 원하는 것들을 잘 찾지 못해서 아내에게 핀잔을 듣곤 합니다. 물론 아직 스마트폰 설정 같은 부분은 자신 있지만 특정 분야의 앱들은 제 직관으로는 있어야 할 곳에 메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런 종류의 앱의 메뉴나 필요한 기능을 찾는 데는 거의 달인 수준인 걸로 보아 제가 해당 앱들의 나름만의 직관적인 구성에 익숙하지 않아서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그런 낯선 UI나 직관 때문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제 정말 나이가 있으셔서 그런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서늘해지기도 합니다. 항상 같은 모습, 같은 정정함을 유지하실 것 같았던 부모님들이 간혹 노인의 모습을 드러낼 때 묘한 먹먹함이 밀려오는 기분입니다.


혹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중 대부분이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이 여러 번 묻고 귀찮게 질문하는 걸 잘 참아 내시듯 혹시 부모님이 스마트폰 관련해 여러 번 질문을 하시더라도 귀찮아하지 말고 늘 매번 새로 가르쳐 드리는 마음으로 잘 가르쳐드리시길 바랍니다.


분명 저와 여러분이 아주 어렸을 때 우리 부모님들은 때론 우리 때문에 짜증 나는 순간에도 많은 참을성을 가지고 잘 받아주셨을 것을 떠올리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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