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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노화에 대한 두려움, 노화에 대한 잡담

제 입으로 말하긴 껄끄러운 감이 없지 않지만...ㅋ...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꽤 오랫동안, 한 30대 중 후반까지는 자주 동안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흰머리가 늘고 얼굴에 주름이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 현상을 심적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습니다.


한참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은 아직도 젊은 것이... 쯧쯧 하는 반응을 보일 수 있지만 제 생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나도 늙어가는구나! 라는 실질적인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은 아마도 40대 중후반 무렵이 아닐까 합니다.


이때부터는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하던 사람들도 건강에 적신호가 오거나 멀쩡하던 몸도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머리도 하얗게 세어가기 시작합니다. 치아도 임플란트까지는 아니어도 때운 이가 점점 늘어나고 안경을 썼든 안 썼든 원시가 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코앞에 디밀어 보던 스마트폰을 한참 앞으로 쭈욱 내밀어서 보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를 맞다 보니 어라? 나도 이제는 늙은 거야? 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늙은 손


영원히 청춘일 줄 알았던 닝겐이 분명히 저 만은 아니었을듯 합니다. 누구나 늙고 사고나 치명적인 질병이 없다면 노화로 인한 자연사를 하게 됩니다. 그래도 이것에 저항감이 드는 이유는 늙어간다는 것에 아직은 익숙하지 않는 중년인가 봅니다.


우스개소리인 "라떼는..." 이라는 꼰대 전용 말투도 저도 모르게 튀어나오곤 하니까요.


늙어가는 나이


그래서인지 생전 바르지 않던 로션도 아침에 바르기 시작하고 축 처진 눈 밑 주름을 보며 나도 박명수처럼 눈 밑 지방 제거라도 해야 하나? 하는 이전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들도 해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노인의 얼굴


이전 글 : 인간 수명의 한계, 헤이플릭 한계와 불노불사와 관련된 세포이야기, 텔로미어, 텔로머라제


링크한 이전 글에서 인간 수명의 한계에 대한 이론 중 하나를 과학적 호기심에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오늘 글은 아래의 글에서 미처 이야기 못했던 생각들의 후기/후일담 같은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복습하자면 생명체의 수명은 결국 세포 분열을 하며 짧아지는 염색체의 꼬다리인 텔로미어가 50~60 회 이상 분열되면 소모되어 더 이상 세포분열이 되지 않는 "헤이플릭 분열 한계"를 맞게 됩니다. 그 때문에 더 이상 되지 않는 세포 분열로 우리는 노화하게 되고 정해진 수명을 살 수밖에 없다는 이론 입니다.


노화라는 건 모든 생명체가 겪는 일이고 이미 정해진 염색체의 텔로미어의 길이에 따라 정해진 헤이플릭 한계로 진행되는 것이라는 무미건조한 단어로만 모든 것을 표현하기에는 실제로 노화가 시작되는 시기에 있는 주체에게 꽤나 가혹한 일인 것 같습니다.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과정


과학의 발달로 언젠가는 이 텔로미어를 보충하는 기술이 생기고 언젠가는 인간은 늙지 않고 수명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이야기 같습니다. 사실 이전에 블로그에 소개한 부분은 인간의 수명과 노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물학적 이론중 유력한 하나입니다. 제가 판단하기에 가장 영향력 있고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는 이론이라 소개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개인에는 불행한 이 노화라는 것이 사실은 생명체 종의 생존과 진화에는 도움이 된다는 설도 있습니다.


저명한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즈가 1957년에 처음 제안한 노화의 길항적(antagonistic) 다면발현(多面發現; pleiotropy) 이론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이론에서는 어떤 유전자가 젊은 시절에는 이익을 주지만 늙어서는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성숙 전에는 칼슘을 침착시켜 뼈를 굳게 하지만 노년기에는 혈관에 칼슘을 침착시켜 동맥 경화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고 합니다.


윌리엄 D. 해밀턴이라는 저명한 학자는 논문에서 없던 엄격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 개체의 생존률과 생식률의 곱과 노화 속도가 반비례한다는 점을 명확히 보였습니다. 그는 노화의 이러한 측면을 "Live now, pay later"라 간결하게 표현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말들을 제가 이해한 내용 기준으로 최대한 단순하게 표현하면 노화가 있는 개체의 생물군 자체가 자손을 더 많이 남기며 번성한다는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해석을 덧붙이자면 정해진 유전자를 가진 개체가 오래 변화 없이 생존하는 것보다 생식과 노화를 반복하며 자연 선택을 받음으로써 생존에 유리한 진화를 계속 지속 해나가가는 것, 즉 종의 수를 늘리고 다양한 유전자 풀을 지속적으로 만드는 것이 생물군에는 꼭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생명체 군 전체의 관점에서 볼 때 생물 개체의 노화와 죽음이 필연적으로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노화와 죽음이 없다면 그 생물체의 생존에 필요한 환경안의 한정적인 자원 역시 쉽사리 빠르게 바닥이 날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최초로 사지가 생긴 물고기가 어느 날 노화하지 않게 유전자의 변형과 생체 현상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면 과연 우리는 현재 시점에서 인간의 출현과 사지를 가진 동물들의 다양하게 분화된 진화의 가지를 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아마도 지구상의 환경 변화로 육상 동물로 진화하지 못하고 사지를 가진 동물은 모두 사라졌거나 또는 그 진화의 속도가 더뎌져 아직도 양서류와 파충류 정도에 멈춰 서있는, 진화 속도나 시간 자체가 늦추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입니다.

육지동물로의 진화

이미지 출처 : 고기 도감


진화의 갈래

이미지 출처 : Life 블로그


환경의 변화에 빠르게 적응 진화하지 못한 생물종들은 급격히 멸종이라는 길로 접어드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을 보면 전자인 멸종에 더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원래 잡담은 곁가지로 새는 법입니다. 과학 이론 이야기로 이야기가 샛길로 빠졌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노화, 즉 늙어가고 죽음을 향해가는 건 어쩌면 자연의 섭리이자 인간이라는 생물종 전체의 미래를 볼 때 어쩌면 당연히 진행되어야 할 과정 같은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나는 노화가 시작되었고 결국은 언젠가 어느 시점에는 노화로 인한 죽음을 맞게 될 것입니다.


다만 어느새 키가 엄마하고 같아진 딸을 보며 어쩌면 나의 자손들이 생물종으로 계속 진화해 나가기 위한 필연적인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노화하기 시작하는 걸 막연히 슬퍼하고 두려워할 일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노화하고 늙어가는 나를 받아들이고 내 개인의 헤이플릭 한계에 도달하는 그 시점까지 열심히 행복하게 사는데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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