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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제환공 패업을 이루다. 왕이야기 15-3

이전 글에서 제환공은 송나라까지 굴복시키고 그 힘을 떨쳤으나 정나라는 진심으로 따르지 않았고 남방에서 무섭게 성장해오고 있던 초나라는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전글 : 제환공 관중을 등용하고 날개를 펴다. 왕 이야기 15-2

 

 

초나라의 경우는 사실 중원의 제후국들에게는 남방의 오랑캐 취급을 받았고 주나라의 봉건 질서에 속하지 않고 칭왕을 하고 있었습니다. 초문왕이 식나라와 채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세력이 점차 중원의 남쪽을 잠식하자 정나라와 진나라 송나라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게 되어 초나라의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천하의 패자가 되다

 

이중 비교적 약소국인 진(陳)나라가 가장 두려움을 느끼고 떠오르는 패자인 제환공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제환공은 이에 중원의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시한번 견 땅에서 제, 송, 위, 진(陳), 정의 제후들이 모여 회맹을 갖고 이들 국가중 한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공동으로 대응한다는 요즘으로 치면 집단 안보체제 성격의 상호 방위 조약을 맺습니다.

 

춘추전국시대 지도, 출처 : http://blog.naver.com/eiblix?Redirect=Log&logNo=86512120

 

하지만 정장공이 패권을 가졌던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정정자는 제환공이 패자로 거듭나는 것을 아니꼽게 바라보았을 뿐만 아니라 약소국인 진나라와는 달리 세력이 강한 정나라는 초나라의 위협도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제환공에 대한 반감이 더 컸기에 정정자는 초나라에 접근하여 제나라의 세력확장을 저지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문왕은 이러한 정나라의 접근이 초에 대항하는 중원의 국가들의 단합을 깰 수 있는데다가 초를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굴복시켜 제나라와 중원의 제후 동맹을 깨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첫 시도는 우선 송나라를 굴복시키는 것이었는데 우선은 송나라의 속국인 예나라를 위협해 초와 정의 연합을 따를 것을 요구하여 굴복을 받아냈습니다. 하지만 송나라가 즉각 제환공에 구원을 청하고 주왕실까지 나서 구원군을 보내자 예나라는 다시 편을 갈아 탔습니다. 먼저 송을 침공하였던 정나라는 위나라까지 구원에 나서 송,위,제를 상대하게 되자 화친을 맺고 돌아가버림으로써 그 야심이 꺾입니다. 진격해오던 초나라도 정나라가 물러난것을 알자 회군해 버렸습니다.

 

정나라가 중원의 나라들을 배신하고 초나라를 따르자 제환공은 정정자와 군위를 다투었던 정여공에 병력을 지원하여 정나라의 군위를 교체하려 합니다. 적대국가의 내부의 적을 지원하여 정권을 전복시키는 전략은 사실 현대에서 미국도 종종 사용하였으니 수천년이 흘러도 유효한 전략인가 봅니다. 제환공의 지원을 입은 정여공은 정정자를 죽이고 군위를 차지하였습니다.

 

정여공이 즉위하자 제환공은 BC676년 유땅에서 중원의 제후들을 모아놓고 회맹을 열었습니다. 이번에는 첫 회맹과 달리 중원의주요국가인 노,송,위,정,진,조,허,활,등나라 등의 제후들이 참가를 했으며 제환공을 맹주로 추대하고 제나라를 도와 천하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맹세를 하였습니다. 이 회맹은 마침내 제환공이 실질적인 천하의 패자로 등극한 회맹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회맹 후에 제환공의 관중에 대한 신뢰는 더 확고해 졌습니다. 평민에서 패자의 재상이 된 영광된 나날을 보내던 관중은 어느날 연회에서 자리에 함께한 포숙아의 손을 잡고  1편에서도 언급한 관포지교라는 고사성어로 남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깁니다.

 

"일찍이 내가 가난할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했는데, 이익을 나눌 때 나는 내 몫을 더 크게 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가난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사업을 하다가 실패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았다. 세상 흐름에 따라 이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세 번 벼슬길에 나아갔다가 번번이 쫓겨났으나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시대를 만나지 못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내가 싸움터에 나가 세 번 모두 패하고 도망쳤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비웃지 않았다. 내게 늙으신 어머니가 계심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패하고 같이 보필했던 소홀은 자결하고 나는 살아 치욕을 당했지만 포숙은 나를 수치를 모르는 자라고 하지 않았다. 이것은 내가 작은 의를 지키는것보다 공명을 천하에 떨치지 못함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생아자(生我者) 부모(父母), 지아자(知我者) 포숙아야(鮑叔兒也)).”

 

아마도 포숙아에게는 친구의 이 찬사가 가장 큰 기쁨이자 보람이었을듯 합니다.

 

 

패업을 이루다

 

이후로도 제환공은 다시 한번 반기를 든 노장공과 싸워 노나라의 속국이던 수나라를 병합하였으나 노나라와 지속적인 적대관계를 맺기보다는 결혼을 통해 노나라를 수하가 아닌 동반자 개념으로 받아들여 가장 신뢰할만한 동맹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융족이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 왕이 전투에서 죽임을 당하는 등의 위기에 처하자 군사를 동원하여 조나라를 구원하고 사직을 보전해 주었습니다. 연나라가 산융의 공격을 받자 당시로써는 머나먼 산융의 땅까지 원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구원에 감사하며 제나라 영토까지 따라온 연장공에게는 당시의 제후의 환송은 국경을 넘지않는다는 예를 지켜주기 위해 50리의 땅을 떼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위나라가 적족의 공격으로 무너지자 구원하여 위나라를 다시 일으켜 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계기로 현재의 미국이 동맹국들과의 조약을 통한 안전보장체제를 구성하듯 제나라를 정점으로한 중원의 제후국들과의 동맹을 통해 북방의 이민족과 남방의 초나라에 대비하는 집단 동맹 체제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러한 구성은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아닌 관대한 리더쉽을 보여주고 안전을 보장해주어 중소제후들이 스스로 안전보장의 체제안에 들기를 원하는 구도를 만든 샘입니다.

 

더구나 명목상이나마 제환공은 주왕실을 존중하였으므로 BC 667년 주왕실은 정식으로 칙서를 내려 제환공을 제후들의 우두머리인 "백" 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과거 중국에서는 왕실을 대신하여 지역제후들을 통솔하는 백이라는 지위가 있었습니다. 주왕실의 시조라 볼 수 있는 희창도 은나라의 서쪽의 제후들을 다스리는 "서백"이었습니다.

 

제환공의 패자로의 정점을 찍은 위업은 초성왕의 정나라 공격에 7국 제후 연합군을 구성하여 초나라의 진출을 막은 일입니다. 이 과정은 현명한 사람들의 외교협상을 보여주는 예 와도 같습니다. 실제로 두나라는 맞붙어 자웅을 결하지는 않았습니다. 제환공의 관중과 초성왕의 굴완은 현실적인 재상들이었기에 초나라는 주나라 왕실에 예물을 보내어 명목상의 굴복을 했으나 실제적으로는 왕을 칭하는것을 버리지 않았으니 크게 달라진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초나라가 주왕실에 조공한 셈으로 제나라는 초나라를 주왕실의 봉건 질서에 편입 시켰다는 명분을 얻고 초나라는 약간의 예물을 보내는 정도로 전쟁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으니 실리를 얻은셈 입니다.

 

최종적으로는 초와 제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정나라 마저 결국은 굴복함으로써 당시만 해도 변방이던 진(秦) 과 진(晉)을 제외한 중원의 국가들은 제나라를 중심으로 한 패자의 질서에 편입되어서 제환공은 사실상의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관중의 죽음과 수조, 역아, 개방

 

하지만 영웅의 시대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법입니다. 세월이 흘러 관중이 병이들자 걱정이 된 제환공은 관중을 병문안합니다.

관중의 병세가 회생이 어렵다고 본 제환공은 관중에게 후사를 물었습니다. 1편에서도 언급했듯이 관중은 포숙아가 아닌 습봉을 후임으로 추천합니다. 하지만 습봉이 지병을 가지고 있어 오래가지 못할것을 안 관중은 습봉의 후임으로는 결국 포숙아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환공에게 자신이 죽고나면 수조, 역아, 개방을 멀리하라고 유언을 남깁니다.

 

그러면 수조,역아,개방은 어떤 인물들이었기에 관중은 유언으로까지 이들을 멀리하라고 했을까요?

 

역아는 제환공이 총애하는 요리사 였습니다. 한번은 제환공이 농담 삼아 자신은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보았으나 아직 간난아이 삶은 고기는 먹어본적이 없다고 합니다. 이에 역아는 자신의 어린아들을 삶아서 제환공에게 바쳤습니다. 사실을 알게된 제환공은 경악하였으나 이를 충심에서 비롯된 일로 이해하고 넘어갔습니다.

 

수조는 환관으로 제환공 곁에서 일을 보기위해 스스로 거세를 했습니다. 이 시대만 해도 제후국들에는 환관제도가 없었는데 수조는 제환공의 내궁일을 보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제환공이 믿고 신뢰할수 있게 한것입니다.

 

개방은 원래 위나라의 뒤를 이을수있는 공자였으나 제환공을 옆에서 보필하기 위해 태자의 자리를 버리고 15년동안 충실한 신하로 지낸 사람이었습니다.

 

얼핏 보면 충성스러워 보이는 이 세사람을 내치라고 충고한 관중의 말에서 우리는 이러한 인간 군상들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역아는 자신의 아들을 죽여 임금의 총애를 받으려고 한 자입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자식을 귀여워 할터인데 자식조차 사랑하지 않는 인물이 어찌 주군을 사랑하여 충성하겠사옵니까? "

"수조는 임금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거세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는 자가 어찌 주군을 아끼겠사옵니까?"

"개방은 위나라의 공자로 제나라에 벼슬하며 한번도 부모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부모를 돌보지 않는자가 어찌 주군을 끝까지 돌보겠습니까?"

 

관중의 사람을 보는 안목을 여실히 드러내 주는 말들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진의를 숨긴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현명한 사람들이면 사탕발림속에서도 관중처럼 이러한 진면목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입안의 혀처럼 구는 이런 사람들을 내치기란 쉬운일은 아니겠지요.

 

관중이 세상을 떠나고 제환공은 이 세사람을 내 쫒았으나 결국은 다시 불러들이고 맙니다. 관중의 유언을 들며 충고하던 포숙아는 제환공이 자신의 말을 듣지않자 병들었다는 핑계를 대고 은퇴하였습니다. 포숙아는 물러갈 때와 나아갈 때를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영웅의 비참한 최후

 

결국 세월이 더 흘러 포숙아가 늙어 죽고 제환공도 병이들어 회생이 어려워 보이자 수조와 역아는 제환공이 정해둔 세자인 소가 아니라 무휴 공자를 군위에 올리고자 하는 생각을 품게됩니다. 이를 위해서 병중의 제환공을 가두고 제환공의 영이라 하여 대신들의 출입도 막아버렸습니다.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던 제환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숨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궁에서 궁녀들마저 쫒아내버렸기 때문에 인적없는 을씨년스러운 궁에서도 제환공이 계속 살아 있자 수조와 역아는 곡기를 끊고 제환공의 침상 주변에 높은 벽을 쌓아 아예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아버렸습니다.

 

결국 천하를 호령하던 이 영웅은 불러도 사람하나 오지 않는 벽안에 갇혀서 비참하게도 굵어죽고 말았습니다. 제환공은 죽은 후에도 시신이 수습되지 못하고 무휴와 다른 공자들의 다툼속에서 방치되었습니다. 보다 못한 대부들이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왔을때는 이미 시신이 썩고 구더기가 들끊고 있었다고 합니다. 세자 소는 송나라로 달아났다가 송양공의 후원을 얻어 제나라로 쳐들어왔고 잠시 군위에 올랐던 무휴는 이를 피해서 달아나다가 백성들에게 맞아죽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 공자들도 다시 난을 일으켰기 때문에 송양공이 다시 군사를 이끌고와야 했고 결국 소가 군위에 올라 제효공이 되었습니다. 이 과정이 8개월이나 걸렸으므로 제환공은 비참한 죽음을 맞은지 8개월이나 지나서야 겨우 장례를 치룰수 있었던 셈입니다.

 

 

맺으며

 

제환공은 군위에 올라 35년간 천하를 누비며 패업을 이루었습니다. 관중과 포숙아, 습봉, 영척등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을 잘 활용하여 그 누구도 쉽게 이룰수 업는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말년에는 잘못된 사람들을 총애하여 영웅의 최후에 걸맞지 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 하였고 이후 후계자의 내란과 다툼속에서 쇠약해진 제나라는 다시는 패자의 지위는 갖지 못하였습니다.

 

제환공의 생애를 보면 어떤 일을 이루려면 적합한 인재를 얻어야 하고 인재에게는 한번 일을 맡기면 신뢰하고 권한을 줘야 한다는 것을 사실을 알게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맡겨 놓고도 의심하고 믿지 못하거나 충분한 권한을 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만약 제환공이 관중에게 그러했다면 어쩌면 제환공도 평범한 제후로써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건강하고 사리판단력이 있을때는 좋은 인재 같이 보이지만 수조, 역아, 개방 등과 같은 인물들의 진면목도 볼 줄도 알아야 하는것 같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때때로 회사에 충성을 다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가족도 돌보지 않고 어떤 일의 달성을 위해 아랫사람을 혹사시키는 경우도 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어쩌면 회사나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충심을 다하는게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저 자신의 야망에 충성하는게 아닐까요? 관중의 말들로 가만히 관찰해 보면 이런 인물들을 가려낼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수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의 삶은 크게 달라진것 같지 않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하고 정치체제가 변했어도 결국 모든일은 사람으로 이루어지고 사람으로 굴러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제환공 끝-

 

길고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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