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 & Story of Kings

제환공 관중을 등용하고 날개를 펴다. 왕 이야기 15-2

전편에서 소백과 포숙아는 군위를 향한 경주에서 임치에 먼저 도착하여 대부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공자 규를 옹립하려는 노장공과 그 군사를 건시에서 매복을 통해 격파한 뒤 소백은 마침내 제환공으로 즉위 하여 제나라의 군주가 되었습니다.

 

이전글 : 제환공 춘추시대의 첫 패자 그리고 관중과 포숙아, 왕이야기 15-1

 

 

하지만 공자 규와 관중이 살아서 노나라땅 생두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이상 제환공의 자리는 항상 군위를 위협받는 후환을 남겨둔 상태였습니다. 포숙아는 제환공에게 이 처리를 자신에게 맡겨달라고 합니다. 물론 이는 관중을 구하기 위해서기도 했습니다.

 

관중이 등용되다

 

우선 포숙아는 제환공과 논의 하여 제환공이 노나라에 국서를 보내게 합니다.

국서의 내용은 당연히 공자 규를 죽여 목을 보내고 관중과 소홀(관중과 함께 공자 규를 보필한 신하)은 압송하여 친히 벌하여 죽이겠다는 내용이었으며 만약 받아들이지 않으면 노나라를 공격하겠다는 협박도 들어가 있었습니다.

 

비록 건시에서 패하였으나 녹녹치 않은 제후인 노장공은 제나라에 맞써 싸울 생각도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환공이 즉위하여 군위를 굳혔기 때문에 공자 규가 군위에 오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불필요하게 제나라와 싸워 나라를 전화에 휩싸이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현실을 직시한 노장공은 군사를 생두로 보내어 공자 규에게 제환공의 요구를 전했습니다. 공자 규는 자신의 운명을 깨닫고 군사들이 전한 극약을 먹고 자진하였으며 관중과 소홀은 압송 되었는데 노장공은 호의를 베풀어 옥안에 일부러 자진할 수 있는 흉기를 두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기회를 주었습니다. 이에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데 관중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순순히 제나라로 압송될 준비를 담담하게 하였습니다.

 

노장공의 신하중 하나인 시백은 이 모습을 보고 "관이오는 비범한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제나라가 그를 살려서 보내 달라는 것은 그를 죽이려는 것이 아니라 등용하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공자 규와 입국할때의 계책은 천운으로 제환공이 목숨을 빼앗지는 못했지만 성공했다면 매우 적절한 계책이었습니다. 그가 제나라에 등용되면 노나라의 화근이 될것이 분명하니 그를 죽여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관중을 죽일것을 노장공에게 간하였습니다. 이에 노장공은 관중을 죽이려 하였으나 이미 포숙아에게 언질을 듣고 온 제나라 사신은 펄쩍 뛰며 "그는 제나라 임금을 활로 쏜 자입니다. 우리 군주는 마땅히 살려서 데려와 젓갈을 담아 분을 푸시려 합니다. 시체만 보낸다면 그 풀리지 않는 분이 노나라를 향할 수도 있습니다." 라며 은근한 위협과 설득을 하였기에 노장공은 일리가 있다는 생각에 관중을 제나라 사신에게 맡겨 압송되게 하였습니다.

 

관중을 보내고 나서도 마음이 개운하지 못했던 노장공은 다시 군사를 보내여 제나라 사신이 급히 가고 있다면 관중을 죽이고 천천히 가고 있다면 그대로 보내라고 영을 내립니다. 노장공의 염려대로 제나라 사신은 어찌나 급하게 돌아갔던지 결국 노장공의 군사들은 국경에 다다를때 까지 제나라 사신을 따라 잡지 못하고 맙니다. 결국 제나라 국경에서 포숙아가 군사를 보내어 관중 일행을 맞아 들이자 노나라 군사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포숙아에 의해 함거에서 풀려나는 관중, 후대의 삽화

 

포숙아는 임치로 돌아가는 중에 당부에 이르러 일단 관중을 이곳에 머무르게 한 후 먼저 임치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말로 제환공을 설득 합니다.

"공께서 제나라를 다스리는데 만족하신다면 저 포숙아로 족할것입니다. 하지만 장차 정장공을 뛰어넘어 천하의 패자가 되려고 하신다면 관중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환공은 관중이 자신을 죽이려 활로 쏜 자이기에 불쾌한 감정과 분이 풀리지 않았었고 자신이 원하는 패자의 길에 꼭 관중이 있어야 하는지 의구심을 가졌습니다. 포숙아는 다음의 다섯가지를 들어 관중이 자신보다 나은점을 들어 끈기 있게 설득 하였습니다.

 

"첫째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백성들을 어루만지는데 신은 관중보다 못합니다.

 둘때 나라를 다스리는데 근본을 잃지 않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셋째 충성과 믿음으로 백성을 단결시키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넷째 예를 지키고 이를 사방에 펴는 것이 그만 못합니다.

 다섯째 군문에 서서 군사들로 용감하게 싸우게 하는데 있어 그만 못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포숙아는 제환공이 그저 관중을 용서하고 등용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길일을 잡고 제환공이 목욕재개하고 관중을 자신과 같은 상좌에 읹게 예우하며 대부로 임명하여 맞아들이게 까지 하였습니다. 이로써 포숙아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스스로 관중의 다음 위치인 2인자로 물러나기까지 한것을 보면 자신의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국가의 미래만을 생각하는 참된 대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관중을 등용한 제환공은 말년에 몇몇 실수가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신하의 직언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가 패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역시 관중의 힘만은 아닌 셈입니다. 뛰어난 신하들을 거느리고도 옳고 그른 직언을 판단하지 못하여 패망하는 경우가 역사에는 비일비재 합니다. 이 일로 제환공은 관중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활로 쏜 역도 마저도 예를 다하여 받아들이고 포용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의 내란으로 분열된 제나라를 통합하고 반대편에 섰던 뛰어난 인재들도 버리지 않고 모두 얻게 됩니다. 제환공이 관중을 등용하는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역사에서 대업을 이루는 일에는 반드시 인재를 어떻게 등용하고 쓰느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것 같습니다.

 

 

제환공과 제나라의 비상

 

관중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의 구현을 위해서는 평민 출신인 자신이 대부의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그 힘을 얻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환공이 자신을 먼저 대신들의 가장 윗자린 "상경"에 임명하게 하고 나라를 개혁할 수 있는 자금을 내리고 공실의 제압하기 위해서 "중부(仲父)"라는 호칭을 주어 공족의 가장 우두머리에 세우게 하였습니다. 이때 부터 관이오는 관중이란 호칭으로 불리우게 됩니다. 이러한 권력을 요구한 신하나 들어준 임금이나 대단한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일을 맡기려면 그일을 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되새겨 볼 만 합니다.

 

힘을 얻게된 관중은 마침내 제나라의 개혁에 착수합니다. 그는 우선 인재를 발굴하여 자신도 평민에서 상경이 되었듯 신분에 관계없는 등용정책과 인재를 보는 안목으로 적재 적소에 인재를 임명하고 일단 임명하고 나면 신뢰와 권한을 주어 소신있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내치에 힘써 제나라의 국력을 부강하게 하고 군제를 개혁하여 삼군을 정비하여 강력한 제나라 군을 양성하였습니다.

 

비록 초반에는 관중의 말을 듣지 않은 제환공은 두차례나 노나라와 싸워 노장공에 패배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노나라와의 전쟁에 반대하고 전쟁의 경과를 예측한 관중이 제환공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제나라에 두 차례나 승리하여 패자를 향한 장도에서 노나라는 제나라에 앞서 있는 상태였지만 관중은 때를 기다리며 내치에 힘써 제나라의 국력은 나날이 강해져 가고 있습니다.

 

마침 송나라에서는 남궁장만이 군주를 죽이고 난을 일으켰다가 결국 진압되고 송환공이 즉위하자 때를 기다려온 관중은 제환공에게 제후들을 모아 북행에서 회맹을 열어 새로운 송나라 군주를 주천자에게 승인하도록 하자고 합니다. 얼핏 보아 제나라에 아무 이득이 없어 보이는 이 일은 우선 이미 유명무실해진 주나라의 권위를 세워주고 그 권위를 이용하고자 하는 패자의 길을 가는 관중과 제환공의 계획의 첫 단추 였습니다.

 

하지만 제나라와 제환공의 힘은 아직 미약했으므로 강대국인 노, 위, 정, 조의 군주들은 이를 무시하고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제환공이 모임의 주관자이자 맹주가 되어 회맹을 주제하는 계기가 됩니다. 작위상으로는 송환공이 제후들 중 가장 높았으나 송환공 자신의 공위를 인정받는 자리이니 만큼 송환공은 사양하였고 다른 강대한 제후들이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절로 제 환공이 맹주가 된 것입니다. 이 아무 이득이 없어 보이는 회맹의 주최는 제환공을 명분상으로나마 최초로 제후들의 회맹의 맹주가 되게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맹 직후에는 송환공도 제나라가 제후들의 맹주로 그 힘을 휘두를 것을 염려하고 기분이 상해 인사도 없이 돌아가 버립니다.

 

이 당시 제후들의 회맹은 물론 시대가 다르고 그 형태는 다르지만 G20 과 비견할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때까지 패권을 다투던 노나라를 천자가 명한 제후들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아 벌한다는 명분을 얻게된 제환공은 노나라의 죄를 묻기 위해 노나라의 속국인 수나라를 쳐서 항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이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조말이 이끄는 노나라 군을 문수에서 격파해 버립니다. 지난 2차례의 패배 때와는 달리 제나라군이 몰라보게 강해졌음을 증명한 전투였습니다. 자신을 얻은 제환공은 노나라 도성을 공격하길 원했으나 현실적인 관중은 노나라의 굴복만이 목적이며 첫 술에 배부를 수 없음을 들어 반대하고 노나라가 화친을 청해오길 기다렸습니다. 결국 노장공은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죄를 사과하는 사신을 보내고 가 땅으로 와서 제 환공의과 맹약을 맺기 위해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맹약을 위해 두 군주가 대에 오른 순간 문수에서 패배했던 노나라 장수 조말이 갑자기 뛰어들어 제환공의 목에 칼을 들이댑니다. 모두가 놀라고 당황하였지만 제환공은 침착하게 조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목숨을 걸은 조말은 제 환공에게 아래와 같이 제나라가 빼앗은 영토에 대한 반환을 요구 합니다.

"제나라는 강대하고 노나라는 약한데 제나라가 노나라를 핍박함이 너무 심합니다. 진정한 맹약을 위해서 이번 전쟁에서 빼앗은 문양땅을 돌려주십시오."

제환공은 관중을 증인으로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그제서야 조말은 칼을 치우고 대 위를 내려갔으며 제환공과 노장공은 삽혈하고 맹약을 마쳤습니다. 비록 목숨을 협박받은 상태에서의 약속이었으니 제환공은 관중의 의견을 따라 그 맹약을 지킴으로써 비록 조그마한 영토는 잃었지만 신의를 지키는 군주라는 명성을 얻게되었습니다.

 

노장공은 감복하여 제나라에 신의를 지킬것을 맹세했고 이 소문이 퍼지자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던 위나라와 조나라도 제환공에 사과하고 이후의 회맹에 참석하겠다고 알려옵니다. 만약 제환공이  작은 영토에 연연하여 협박에 의한 맹세이므로 지키지 않겠다고 하고 조말을 죽였다면 결코 얻을 수 없었던 일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관중의 다음 목표는 회맹중에 돌아가버린 강대국인 송나라 였습니다. 왕명을 온전히 받들지 않고 돌아간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주나라에 송나라 토벌의 원군을 청하였습니다. 주희왕은 천자의 권위를 세워주겠다는 이 요청에 기뻐하며 군사를 보내 주었습니다. 이미 그 힘이 쇠약해질대로 쇠약해진 주나라 군사가 필요할 이유가 없었지만 이는 제환공에게 천자의 명을 받들어 역도를 토벌한다는 명분을 주었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도 군대를 보내와 합류하여 연합군을 이끌고 제환공이 송나라를 공격하자 두려움을 느낀 송환공은 사신을 보내 굴복하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송나라 토벌이 피를 흘리지 않고 마무리 된것도 제환공이 적이었던 관중을 등용하고 협박에 의한 맹약도 지키는 신뢰를 보여주었기에 처음에는 끝까지 저항하려 마음먹었던 송환공도 제나라 사신인 영척이 위의 예를 들며 설득하자 마음을 돌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견 땅에서 북행의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던 송, 위, 정, 주왕실이 보낸 선백이 참석하여 회맹을 열고 삽혈하였습니다. 회맹에는 참석하였지만 정나라만은 온전히 굴복할 마음이 없는 태도를 계속 취했습니다. 이 회맹으로 사실상 제환공은 노와 송을 굴복시킴으로 인해 정나라와 남방의 초나라를 제외한 대부분의 제후국들로부터 패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다음편에 계속-

 

다음글 : 제환공 패업을 이루다. 왕이야기 15-3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