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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Device Game

휴대폰, 스마트폰, 20년전에는 없었던 것들 2

 

카폰

 

휴대폰은 카폰에서 부터 발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차량용 카폰 서비스가 시작된것은 의외로 1961년 8월 부터라고 합니다. 그러나 한동안 국내 가입자가 80명 뿐인 매우 특별한 서비스였습니다. 


1984년 3월에 한국 이동통신 서비스 주식회사가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의 자회사로 설립되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카폰 서비스가 시작됩니다. 


당시 카폰의 가격은 샐러리맨의 연봉을 넘고 포니 승용차 값의 두 배나 되는 400만 원을 넘는 고가였으므로 일반인에게는 경제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매우 값비싼 서비스 였습니다.

 

1986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차량에 카폰을 설치하고 있는 모습

이미지 출처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413016004

 

거의 고위층이나 회장님 차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엄청난 사이즈와 무게를 가진 장비였습니다.

 

 

최초의 휴대폰과 국내의 휴대폰 서비스

 

1983년, 당시 통신 기술의 선두주자였던 모토로라는 세계 최초의 핸드폰인 다이나택8000X(이하 다이나택)을 개발하여 시판하기 시작합니다. 카폰과는 달리 차량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휴대할 수 있는(오늘날 기준에서는 힘들어 보이지만) 휴대폰이란것이 세상에 등장한 셈이었습니다.

 

최초의 휴대폰 모토로라 다이나택8000X

이미지 출처 : http://venma.tistory.com/91

 

이 최초의 휴대폰은 크기가 세로 33㎝에 무게는 1kg대에 이르러 ‘벽돌폰’이라 불렸습니다. 1kg은 사실 한 손으로 들고 통화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팔이 저려올 무게입니다. 최초의 가격이 4000달러에 달해다고 하니 가격 역시 엄청 납니다.

 

국내에서 휴대전화 서비스가 개시된 때는 1988년 7월, 서울올림픽이 개최되기 직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전국에서 이동 전화 서비스가 되었던 것은 아니며 너무나 비싼 가격으로 인해서 그런것이 있구나 하는 정도만 인식하였던 시절 입니다.

 

1993년 말에야 전국 74개 시·읍 지역에서 이동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고. 1996년 4월 신세기통신과 한국이동통신이 본격적인 경쟁 체제를 이루었다가 이듬해 1997년 10월부터 한국통신프리텔, LG텔레콤, 한솔PCS 등 3개사도 PCS로 이동전화 시장에 참가했습니다. 이때 많은 회사들이 경쟁에 참여하면서 비싸기만 하던 휴대폰 가격이 드디어 일반인도 개통 할 수 있을 정도로 낮아졌던 때인것 같습니다. 이때에 이르러 이른바 공짜폰이란게 처음 등장하고 휴대단말기를 뿌려서 각 통신사들이 점유율 전쟁에 나서던 시기입니다. 이로 인해 드디어 일반인들에게도 휴대폰이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로 기억 합니다.

 

당시의 이들 5개사는 모두 미국 퀄컴의 CDMA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기술적으로 동일했습니다. 1999년 말에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SK텔레콤이 신세기통신을 합병하고, 다음 해 6월 한국통신프리텔(KTF 현재의 KT)이 한솔PCS를 인수해 통신시장은 지금과 같은 3강 구도가 되었습니다.

 

 

삐삐

 

글쓴이가 대학생이던 1994년에는 사실 휴대폰을 가진 사람이란 우리와 거리가 먼 드라마나 이야깃속에만 존재하였고 직업상의 필요성을 넘어 대학생이던 우리들에게는 연락을 위한 삐삐 란 호출기가 확산 되던 시절 이었습니다.

 

길을 가다 "삐삐삐" 울리는 호출기 소리에 공중전화 부스로 뛰어가는 사람들은 흔히 볼 수 있던 풍경이었습니다. 약속 장소는 대부분 호출기가 울릴때 전화를 쓸 수 있는 커피숍이었고 조금 고급 스러운 카페에서는 "삐삐 치신분 XXXX-XXXX" 같은 팻말을 들고 카페안을 걷는 카페 직원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예 테이블마다 전화기가 달려있는 폰 카페도 잠시 유행이었고 약속 장소가 대부분 커피숍이다 보니 시내 중심가나 대학교 근처에는 수 많은 커피숍들이 성업을 했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공중전화 앞에 삐삐를 들여다 보며 줄을 서 있는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일명 삐삐라 불리던 휴대용 호출기

 

현대의 SMS의 조상이랄 수 있는 음성메시지 서비스도 제공하여서 소개팅 후 애프터 신청에 대해 지금 생각하니 밀당의 고수 였던 상대가 즉답을 피하고 음성 메시지를 남기겠다고 한 일이 기억납니다. 지금의 즉시 볼 수 있는 SMS나 카톡과는 달리 전화를 하고 비번을 넣고 "한개의 음성메시지가 있습니다."에 너무도 설레였던 느낌은 지금과 같이 모든것이 빠른 시대에는 느껴보기 힘든 아날로그적 추억의 감성을 자극하는것 같습니다.

 

번호를 한줄로 표시되는 화면에 남길수가 있었기에 486(사랑해), 8282(빨리빨리), 7942(친구사이) 같은 숫자로 표현되는 표현 방식도 유행 했었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SMS나 인터넷 약어 같은 거랄까요? 요즘도 술을 채워주지 않는 옆자리 사람에게 뭐라하면 "삐삐치지 그랬어"란 말을 아직도 쓰는 사람이 있는데 그 시절의 잔재가 여전히 술자리에 남아 있어 재미있습니다.

 

글쓴이가 군을 제대한 1997년, 이미 세상은 PCS 휴대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지만 IMF의 여파가 있던 당시로 저의 부모님도 어려운 시기셨기에 집안 생각을 해서 그냥 삐삐를 살려서 한동안 썼습니다. 이때만 해도 삐삐와 휴대폰이 어느 정도 공존 하였는데 결국 필자도 큰 아들 기 살리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어머니의 강요로 1998년 말 휴대폰을 장만하였습니다.

 

휴대폰을 개통하고 삐삐를 해지하러 방문하였던 당시 부산 서면에 있던 부일이동통신 사무실에 서비스 해지를 위한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무려 4시간 동안 기다려야 했습니다. 줄어들것 같지 않는 겹겹히 중첩된 긴 줄과 해지업무를 처리하는 직원의 지친 표정에서 마치 한 시대의 종말을 보는것 같아 조금 서글프게 느꼈던것 같습니다.

 

 

시티폰

 

이 삐삐와 휴대폰의 사이에 과도기적 서비스로 시티폰이란 것이 있었습니다.

 

삐삐 소유가 많아지면서 호출을 받으면 사람이 많은 곳이면 공중전화에 엄청난 줄 때문에 사실 연락 한번 하려면 너무도 오래 기다려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시티폰은 공중전화에 기지국이 설치되어 공중 전화 근처에서는 발신이 가능한 기기로서 삐삐를 받고 공중전화앞에 줄을 서지 않고 발신 통화를 할수가 있었던 틈새 상품입니다.

 

당시의 정말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김국진씨가 광고하면서 높은 PCS 휴대폰 가격대비 저렴한 가격으로 일시적으로 많은 판매가 있었지만 앞서 언급한 이동통신사의 점유율 경쟁이 시작되어 PCS 기기의 가격이 낮아지면서 이 공중전화 옆에서만 쓸수있고 그것도 발신만 되는 시티폰 서비스는 금새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cyworld.com/ljy3328-1/9101609

 

여담으로 이 시기에 부모님이 삐삐 판매점을 하던 고등학교 동창인 A와 B가 있었습니다. 삐삐가 매달 수만명씩 해지가 되면서 위기를 느낀 이 두 사람의 부모님은 살길을 찾아 A는 시티폰 대리점을, B는 SK텔레콤의 휴대폰 대리점으로 업종을 갈아탔습니다.

 

 

짧은 시기 잠시 유행했던 시티폰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thaitour?Redirect=Log&logNo=60145324345

 

초기에는 고가의 PCS 폰 대리점이 그다지 실적을 올리지 못해 B의 부모님이 정말 힘들었지만 A의 부모님은 김국진 CF이후 꽤 많은 가입자 유치를 하며 B의 부모님이 말을 잘 못 갈아탔다며 후회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란 말이 있듯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B의 SK텔레콤 대리점은 날개 돋친듯 가입자를 유치하기 시작했고 A의 부모님은 마치 삐삐의 예와 같이 날마다 해지 처리를 해야 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B의 부모님은 휴대폰의 대중화와 발전기에 큰 돈을 만지시고 지금도 부유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B역시 이제는 대리점을 물려받아 친구들 중 몇 안되는 외제차 타는 사장님입니다. 안타깝게도 A는 연락이 끊어져 버렸습니다. 다른 동창들 하고도 연락이 안된다니 인생에서 단 한번의 선택이 참 중요 하다는 생각을 때때로 하게 만듭니다.

 

 

휴대폰의 시대

 

본격적인 휴대폰의 시대에 들어서며 휴대폰은 빠르게 그 모양과 모습을 바꾸며 발전해 나갑니다.

최초에는 흑백 화면에 바형 휴대폰이 대중적인 휴대폰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저가의 보급형으로 널리 퍼졌던 바형 휴대론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u2won2?Redirect=Log&logNo=110034402222

 

그러다가 주머니 속에서 더 이상 버튼이 쉽게 눌려지지 않는 플립형 휴대폰이 역시 많이 보급됩니다.

 

역시 저가의 보급폰으로 다음 세대를 이끈 플립형 폰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anti010/46270

 

필자는 상당히 늦게 휴대폰을 장만하다 보니 이 바형과 플립형을 건너 뛰고 당시로는 최신형이던 폴더 형인 모토로라의 스타택 단말기가 첫 휴대폰 이었습니다.

 

필자의 첫 휴대폰 모델이었던 모토로라 스타택 단말기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kyj5071?Redirect=Log&logNo=30149008948

 

당시만 해도 플립과 바형이 많았더 시기라서 꺼내 놓으면 어께를 으쓱하게 했던 최신형 단말이었습니다. 이후 몇년동안은 폴더폰의 전성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폴더 겉에 기본 표시창이 추가된 형태와 화면이 컬러로 변화하고 벨소리의 표현 화음수가 점점 높아지고 나중에는 MP3 벨소리를 넣을수 있거나  영화를 인코딩해 넣을수 있는 휴대폰으로까지 발전하고 가로 본능과 같은 새로운 아이디어와 형태가 실험되었습니다.

 

외부 표시창이 달리기 시작한 폴더폰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phonecomm/3523

 

독특한 형태의 실험이었던 가로본등 폰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goustsm?Redirect=Log&logNo=26768707

 

그러다가 슬라이드 형태를 가진 새로운 폰들이 등장하여 폴더폰과 함께 취향을 양분하며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휠을 가졌던 독특한 슬라이드 폰이 특징이던 스카이 모델

이미지 출러 : http://blog.naver.com/goustsm?Redirect=Log&logNo=26768707

 

마케팅적으로 권상우 폰, 이효리 폰, 문근영 폰, 송혜교 폰 같이 연예인의 이름이 붙은 휴대폰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고 다양한 형태와 룩을 가진 휴대폰들이 속속 등장하였던 시대였습니다. 덕분에 기존의 휴대폰이 금방 구형폰이 되어서 휴대폰 교체 주기가 짧아지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지금 생각하니 당시에도 이미 휴대폰은 2년을 쓰지 못했던것 같습니다. 참 좋은 시절로 기억되던게 잘만 노력해서 찾으면 공짜에 가까운 기기 가격으로 저렴한 개통이 가능도 하던 시기 입니다.

 

최초의 휴대폰에서 점점 작아진 휴대폰의 크기

이미지 출처 : http://venma.tistory.com/91

 

휴대폰의 사이즈도 극단적으로 작아졌다가 슬라이드 이후 부터는 서서히 화면은 다시 커지고 얇게 만드는 경쟁에 불이 붙어 세련된 형태로 진화한 바형이 다시 등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얇은 휴대폰을 표방했던 6mm 두께의 울트라에디션 시리즈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todaysppc?Redirect=Log&logNo=60036882268

 

어떻게 보면 현재의 스마트폰들도 모두 휴대폰의 첫 시작 모양인 바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스마트폰에도 플립 스타일 케이스가 등장하고 그 케이스에 외부 창이 뚫린 일명 뷰커버가 등장하니 약간 형태는 바뀌었지만 디자인의 역사 역시 돌고 도나 봅니다.

 

마치 폴더폰의 외부 표시창이 다시 돌아온듯한 느낌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anycallusershow/1821874

 

 

스마트폰의 등장

 

세월이 흘러 마침내 휴대폰은 다시한번 한 단계 변신하여 이른바 스마트폰이란 것으로 진화 합니다.

단순히 통화기능만이 있는것이 아닌 진정 손안의 컴퓨터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것으로 재 등장하게된 것 입니다.

 

이전부터 이러한 시도들이 많았지만 사실상 성공적인 스마트폰은 아이폰 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7년에 등장한 최초의 아이폰 모델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clubj309/218377

 

 

동시기에 한국의 인기 휴대폰 순위

 

 

당시 한국의 휴대폰 산업은 최첨단으로 평가되고 실제로 삼성과 LG가 저가폰 판대대수를 앞세운 노키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점유율 2,3위를 차지하고 있어 자만심 가득한 "세계 휴대폰을 지배하는 한국" 같은 다큐멘터리도 만들어 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아이폰 3GS가 도입되며 이른바 "아이폰 쇼크"로 인해서 독점적 지위로 인해 변화를 꽤하지 못하던 우물안 개구리였나가 확인되기도 하였습니다.

 

다행히 구글의 안드로이드란 대안으로 그나마 빠르게 제 위치를 찾아 돌아올 수 있었고 오히려 노키아의 몰락을 통해서 국내 업체가 세계 1위의 점유율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도 스마트폰의 특성상 OS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현실에서 하드웨어 제조 부분에만 머물고 있다고 보여지는 불안한 1위라는게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

 

국내에 이른바 "아이폰 쇼크"를 가져왔던 아이폰 3GS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iphone/193

 

아이폰 킬러(?)로 일컫어 졌던 당시의 대항마 옴니아2

이미지 출처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014&aid=0002245488

 

 

IOS 플래그쉽 모델인 아이폰5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kumholine?Redirect=Log&logNo=60171168406


 

안드로이드 진영의 플래그쉽 모델인 갤럭시S4

이미지 출처 : http://cafe.naver.com/mgui/5099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사실 현재도 진행형인 이야기니 아직은 많은 이야기를 남길 필요가 없을듯 합니다.

 

 

맺으며

 

마치 벽돌과 같았던 최초의 휴대폰에서 어디에서나 인터넷을 하고 컴퓨팅을 하는 스마트폰까지 휴대폰의 기술 진보도 놀랍지만 이 글에서 많이 다루지 않았지만 휴대폰이 우리의 삶에 끼친 영향이 더 큰것 같습니다. 편지로 소식을 전하던 시대에서 집의 전화로 연락할 수 있게 되었고 어떤 장소에 있던 바로 음성과 문자 소식을 전할수 있던 휴대폰의 시대에서 어디서나 인터넷과 컴퓨팅을 할 수 있는 스마트폰의 시대로 변화 하는 동안 우리의 삶은 분명 20년전과는 달라진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스마트워크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일을 하는 방식이나 손쉽게 연락하고 소식을 알 수 있는 편리함도 얻었고 스팸문자나 피싱, 해킹과 같은 부정적인 것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모든 기술에는 명암이 있다는 말이 새삼 와 닿습니다.

 

미래에는 우리는 어떤 연락 방식을 가지게 될까요? 20년 전과 지금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화했듯 20년 후의 미래에는 어쩌면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편리함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결국 휴대폰은 사람과 사람간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고 기술은 사람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기 위한 것 입니다. 어떤 미래가 되던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가장 중요함을 잊지 않아야 겠습니다.

 

부족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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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4 - [20 years ago] - 인터넷, 20년전에는 없었던 편리해진 것들 1

 

얼마전 달라진 다음뷰에 아직 적응을 못해서 추천글에 오른줄 몰랐습니다.

Pick가 아마도 예전에 BEST 같은것 인가 봅니다. 추천 주시고 읽어주신 모든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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