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하기 전 아직 가산디지털 단지에서 일하고 있을때 전일 야간 시스템 작업을 지원하고 오전 11시쯤 일찍(?) 퇴근하기 위해 회사 나섰습니다. 그런데 지하철 역 앞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쳤습니다. 세상이 참 좁은게 딱 마주친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외부 업무 회의를 갔다오는 길이었습니다.
저는 이른(?) 퇴근중이고 이 친구들은 회의 갔다와서 시간이 좀 여유있는 편이라 같이 간단하게 커피를 한잔 하자고 했습니다. 편의상 친구 A, B로 호칭하겠는데 둘다 어릴적 동네 친구로 초, 중, 고 를 같이 다녔습니다. A는 서울와서 업무 협의차 나간 회사에서 마주친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구로디지탈 단지에서 근무 했었는데 3년전쯤 가산디지털 단지에 있는 게임회사로 옮겼다고 합니다. B는 음원회사의 웹 개발자로 있다가 적성에 안 맞았는지 때려 치우고 기술 영업을 하다가 A가 있는 회사에 마케팅 부서로 2년전쯤 옮겼더군요.
거의 2, 3년을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지하철 역에서 내렸는데 이제야 마주친게 신기했습니다. 둘이 같은 회사에 있다는 사실도 세상이 좁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기억에 A는 어릴때 부터 집에 컴퓨터가 있어 이른바 컴 도사로 통하였던 친구였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휴대폰 게임 회사에서 일하다 지금은 저도 다운로드 받은 기억이 있는 꽤 알려진 스마트폰 게임회사의 개발자로 여전히 일하고 있습니다. B는 원래 인문학 쪽 전공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IT 붐을 타고 IT학원을 수료한 후 웹 개발자를 몇년 정도 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영업쪽으로 전직한 친구 였습니다. 저는 아시다 시피 신용 결제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개발자 입니다.
현직 개발자 2명과 전직 개발자 1명이 만났으니 화제는 자연스레 IT 개발자의 삶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30분 정도 나눴는데 기억을 더듬어 대화를 재 구성하였으니 당시에 나눈 이야기와 똑 같지는 않지만 대화의 요점은 거의 같으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IT개발자들이 만나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A
요즘 야근의 연속이다. 영업은(B를 가르키며) 쥐어 짜면 되는 줄 안다. 몇일까지 무조건 IOS와 안드로이드버전을 두개다 완성해야 협력사에 제출 할 수 있다고 하는데 거의 불가능한 일정이다. 내 밑의 팀원들과 이번 주에는 새벽 3시전에 집에 간적이 없다. 집에가서 3~4시간 자고 다시 출근이다. 오늘도 회의끝나고 나면 들어가서 달려야 한다. 영업이 나쁜건지 XX사 X끼들이 나쁜건지 모르겠지만 주말도 없고 죽겄다.
B
나도 어쩔수 없다. 요즘 알다시피 게임은 주기가 짧다. 빨리 빨리 후속작을 내 놓지 못하면 회사가 어려워진다. 먹고 살려면 레이스를 계속할 수 밖에 없다. 나도 개발자 할때는 영업과 많이 싸웠고 그런 고충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적과 회사의 미래를 생각하면 봐 줄 수가 없다. 어젠 나도 게임 컨셉 검토하고 완성도 검토하느라 새벽 1시에 들어갔다.
A
과거에도 납품에 시달렸지만 그때는 한 건하면 잠시 쉴 짬이 있었는데 요즘은 게임을 완성해서 잘 되면 일부 인원을 패치 작업에 대비해서 남기고 바로 새 게임 개발에 들어가야 한다. 최근 계속 이런 행태가 반복 되니 팀원 모두가 지쳤다. 너는 어떠냐?
나
금융이나 결제쪽 개발직도 일반 사무직에 비하면 야근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금융사에 일시적으로 SI로 투입된 인력이 아니면 정규 직원은 그래도 특별히 일이 몰리는 기간이 아니면 주말이나 휴일은 그래도 챙겨서 쉬는 편이고 퇴근도 IT개발자 직종에서는 그나마 빠른 편이긴 하다.
B
연봉도 금융쪽 개발자가 높은편으로 알고 있다. 내가 과거에 00 은행에서 SI로 투입되어서 몇일 밤을 새며 웹 개발을 했었는데 당시 은행의 정규직 개발자 연봉을 듣고 내 처지가 비교되었다. 당시에는 사람 사는게 아니었다 그런데도 연봉이 작은데다 무엇보다 인상이 되질 않아서 그만 두고 영업을 하게되었다.
나
연봉 부분은 일정부분 사실이다. 그래봐야 월급쟁이들 월급 얼마나 차이나겠는가. 거기다 우리도 은행 같은 이른바 진짜 금융 기관과 연봉 비교하면 비참해 진다. 다 상대적인 부분이 있다. 게다가 결제쪽은 남들이 잠자는 심야나 추석같은 명절에 작업이 많다. 무엇보다 실수하면 엄청난 돈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대규모 적용을 위한 프로그램 컴파일 할때는 엔터를 치기 전에 입안이 바짝 마르고 체온이 떨어지고 손이 떨리는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장애라도 나면 그야말로 대역 죄인이 된다. 게임은 버그가 있어도 빠른 패치를 하면 되지만 우리는 한번 적용해서 수억이 잘못되면 다시 되돌리기 힘들다.
A
그 정도의 스트레스가 있는 줄은 몰랐다. 하지만 게임상의 버그도 발생하면 정말 피곤해진다. 최대한 빠르게 패치를 내놔야 하는데 버그를 잡는 그 과정도 힘들지만 IOS쪽은 패치버전도 등록에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 동안 올라오는 욕을 고스란히 먹고 있으면 살맛이 안 난다. 나도 일찌감치 B 처럼 영업을 할것 그랬다.
B
영업은 쉬운줄 아나? 2:1 이라 내가 못 이길것 같아서 말을 안 하지만 영업도 쉬운일이 아니란 걸 꼭 알려 주고 싶다.
A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래도 나는 게임 개발이 좋다. 그래서 이 일을 그만 못 두나 보다, 게임을 하나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이 있는데 그 느낌 때문에 이 짓을 계속하는것 같다. 그런데 그 뿌듯한 느낌도 10년이 넘어가니 요즘은 무감각해지는것 같다. 아니면 너무 지쳐있어서 일 수도 있다.
B
우스갯 소리로 이곳 가산이나 구로 디지털 단지의 70년대 수출의 역군 미싱공의 역활을 지금 개발자가 대체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70년대 미싱공도 잦은 야근에 시달리고 능력이나 대우에 따라 스카웃되어 이 공장, 저 공장 옮겨다녔다고 한다. (웃음)
나
결국 우리에게 시간과 여유로움을 보장할만한 만족한 삶을 위해서는 로또밖에 없나 보다.
A,B
우리도 매주 산다.
나
그런데 요즘은 쓸만한 신입사원을 뽑기가 너무 힘든것 같다. 우리팀 평균 연령이 38세다. 어쩌다 공고를 해도 지원자도 없고 설령 어렵게 뽑아도 너무 기본이 안되어 있어 쓸 수가 없거나 조금 일 하다가 금방 도망간다. 결국 뽑아도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들 뿐이다. 풋풋한 친구들은 다 어디 간 걸까? 그래도 게임쪽은 젊은피가 수혈되지 않나?
A
내가 근무하는 팀도 노후화 되고 있다. 최근에 이직해온 친구 나이가 34세인데 우리팀 막내다. 요즘에 졸업하는 친구들은 IT 개발자가 3D 직종인 걸 다 안다. 요즘에 똑똑한 친구들은 다 고시원에 있다더라
그 후의 이야기는 아이들 이야기로 빠져서 딸 바보, 아들 바보들의 자랑질로 이야기가 샜습니다. 결국 저는 야근 후의 졸음이 밀려와서 자리를 파하자고 이야기 하고 헤어졌습니다.
위의 대화를 글자 그대로 보시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원래 남자들이 모이면 자기가 있던 군대가 가장 힘들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젤 힘들다는 배틀이 붙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위의 이야기 속에는 IT개발자들의 속 사정도 분명히 있습니다. 최근에 이직을 결심하고 퇴직전에 인사를 다닐때 스태프 부서의 한명은 그래도 IT개발자들은 회사가 마음에 안들면 경우에 따라 더 큰 회사로 이직이나 스카웃도 되고 대우도 올려서 가는 경우가 있는 걸 보면 부럽다는 늬앙스의 말을 한 걸 보면 분명히 상대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은 상대적인 애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아니 샐러리맨뿐만 아니라 자영업을 하던 제 동생도 자영업을 접고 다시 취업한걸 보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월급쟁이가 아니라도 녹녹치 않은 삶의 터전인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돌아서는 친구들의 뒷 모습을 보니 모두 모두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들의 힘찬 등짝을 보는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야근과 휴일 근무 같은 격무에 시달리며 그 와중에도 어쩌다 쉬는 날에는 피곤 할텐데도 아이들과 놀러가 찍은 사진들을 자랑하는 걸 보니 왠지 짠 한 마음도 듭니다.
최근에 한 블친님의 글을 보고 이런 힘들다 타령도 일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에게는 가진 사람의 푸념으로 여겨 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부러움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물론 저는 혹시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라면 그 상황이 큰 인물의 긴 인생의 일시적 상황이라 생각합니다. 저 유명한 카이사르도 40세에 가깝게 요즘으로 치면 빛만 수억인 백수였으니까요. 저도 한때 취업이 되지 않아 백수 생활도 해보았고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의도치 않게 장기 휴가(?)를 보낸 시절도 있었습니다. 결국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 글에서는 다양한 IT 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을 인맥을 총 동원해서 만날수 있으면 만나서 여의치 않으면 메일로 인터뷰를 해보고 글을 실어 볼까 합니다. IT 관련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들에게 어쩌면 조금은 정보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직 후의 적응의 여파로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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