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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소년 마음을 닫다. 내가 겪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억압들

개인적으로 인생을 살아오면서 여러가지 폭력이나 억압을 접하며 살아왔던것 같습니다.


실제의 물리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성인이 되고 군대를 제대하고 나면 당할 일이 없어지긴 하지만 잘 드러나지 않고 때때로 더 무거운 힘으로 다가오는 억압적 폭력들은 이제 4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제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밝은 성격에 사람과 쉽게 친해지고 비교적 막 사귄 사람과도 이야기 잘하는 아내에 비해서 전 좀 입이 무겁고 조용하고 의심이 많아서 쉽게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물론 부산 출신답게 "욱" 하면 물불 안가리는 성격도 있긴 하지만 평소의 성격은 대개 그런 편입니다.

 

손들어! 너와 그 토끼는 사회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어느날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제 아내가 생각하기에 자기 남편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대해서 목에 핏대를 돋을 정도로 열변을 토하며 그 자리의 분위기를 어느 한쪽으로 몰아 가고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평소 남편에게 들은게 있어서 그런지 그 이야기에 무언가 심각한 오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게다가 그 몰아가는 분위기도 본인의 마음에는 안들었던 모양이구요.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는 저를 팔꿈치로 쿡쿡 찔렀는데 아마도 그건 "당신이 나서서 바로 잡아봐" 라는 의미였던것 같습니다. 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침묵을 지켰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보니 아내는 약간 화가 난 모양이었습니다. 결국 그 주장대로 모임의 주제의 방향이 결정된것도 마음에 안들고 충분히 분위기를 바꿀수 있다고 생각한 남편은 입을 꾹 닫았으니까요. 제가 입을 닫은 이유는 곰곰히 생각하기에 그자리의 이야기가 그다지 대세에 지장을 줄 만큼 크게 중요한 일도 아니었고 결국은 그런쪽으로도 한번 가봐야지 "아 이산이 아닌가봐?" 하고 다시 돌아오는 분위기가 만들어 질수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워낙 다수가 공감하고 강경한 분위기에서 다른 이야기를 해봐야 말 다툼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럴듯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아마도 나서서 어떤 귀찮은 잡음을 겪는걸 꺼려한것이 진짜 속마음 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잘 말하지 않게 된것은 사실 성장하여 겪었던 일들에 기인하기도 합니다. 필자는 기억력이 원래 좋은 편이긴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던 소년 시절에 생생한 기억이 두 가지 있습니다.

 

소년 마음을 닫다.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어느날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다가 콜럼버스가 세계일주를 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가 한 모양입니다. 전 아무 생각없이 "콜럼버스는 동인도 제도를 발견한 사람이고 세계일주는 마젤란이야 이 븅!" 과 같은 초딩적 잘난척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마젤란에 대한 책을 그때 읽었었나 봅니다. 하지만 이 한마디는 교실의 큰 파장을 가져왔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은 콜럼버스는 알아줘도 마젤란은 엄청난 듣보잡이었나 봅니다. 전두환 대통령 "각하"와 이순자 "여사"에 대한 호칭과 예우를 학교에서 배우던 시절임을 감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요즘 초등학생이야 워낙 입학전부터 집에 책을 쌓아두고 크지만 저의 1학년, 당시 명칭으로 국민학교 입학때는 반 아이의 절반 정도는 한글을 떼지 못하고 입학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저는 반 전체로 부터 콜럼버스를 모독한 아이가 되었지요.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콜럼버스

그래서 그가 발견한 지역을 중남미 지역을 동인도 제도라고 명명 하였습니다.

 

반 전체와 저 혼자의 힘겨운 싸움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입장하자 제게 새로운 희망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누군가가 벌떡 일어나 "선생님 세계일주를 한건 콜럼버스인가요 마젤란 인가요?" 하고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에선 선생님이란 모든것을 알고 있는 지혜의 샘이자 절대자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드디어 옥석을 가릴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했지만 선생님 입에서 나온말은 "글쎄 콜럼버스 아닌가?. 그런데 왜 그러니?" "XX가 혼자서 세계일주는 마젤란이래요", "XX가 뭔가 착각했나 보구나 자자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고 수업하자." 였습니다. 득의 만만하고 비난에 가득찬 반 전체 아이들의 시선들과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억울함을 느꼈던 기억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80년대 초에 부산 'ㅎ' 초등학교 3학년 4반 초딩들아, 세계일주는 이 양반이었단 말이다.

 

아마도 요즈음의 선생님이라면 초등학생들의 자발적인 역사 인물 토론에 뿌듯해 하며 "글쎄 그러면 수업끝나고 우리 같이 한번 알아보는게 좋겠구나"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뭐 하지만 당시는 초등학교 선생님 마저도 다소 권위적이던 시대입니다.

 

요즘의 초등학교에서는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아이들의 토론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고 합니다.

 

앞서의 일화에서 제가 말한 지식이 옳았는지는 틀렸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소수의 생각을 존중하지 않고 한 사람의 생각 정도는 다수가 가볍게 묵살할수 있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초등학교에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이었나 봅니다. 당시에 외가에서 우연히 들고나온 윈스턴 처칠의 위인전을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등학생 사촌형이 보던 책이었는데 어쩐지 그 책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책에서 히틀러가 공산당을 금지하고 마르크스주의자를 박해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TV나 영화에 나오는 독일군이나 히틀러, 일본군 같은 악인은 모두 똘이장군에 나오는 혹부리 돼지 수령, 공산당 악인으로 생각했던 초딩의 머릿속에서 마치 종이 울리는 깨달음을 주는 문구 이었습니다. 물론 초딩에게는 나찌는 공산당이랑은 또 다른 이름인 파시즘이라 불리는 악당이구나 정도 수준에 불과 했지만 말입니다.

 

이 일도 화근이 된것은 학교에서 점심시간에 히틀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마도 당시에 TV에서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하던 독일군과 싸우던 미육군 소대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저는 예전의 교훈을 잊고서 아이들이 떠드는 "히틀러의 공산당"과 싸우는 카리스마 넘치는 중위의 활약 이야기에 그만 끼어 들어서 히틀러는 나찌고 그건 파시즘의 일종이지 공산당이 아니라는 잘난척 커밍아웃급 발언을 또 해 버립니다. 이 논란도 결국 반 전체로 퍼져서 점차 반 전체와 제가 대립하게 됩니다. 역시 점심시간이 끝나고 선생님이 등장하자 누군가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왠지 그날 따라 기분이 나쁘셨던 선생님은 "공산당이나 히틀러나 그게 그거고 같은거야. 이제 모두 그만 떠들고 책들 펴라. 저기 계속 떠드는 놈 손들고 뒤로 나가" 하고 시니컬하게 논란을 중지시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이날도 저는 다수의 의견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소년이 마음을 닫게 된건 이 두 가지 사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부터 저는 어떤일에도 쉽사리 다른 생각을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게 괜히 튀지 않고 편안하게 삶을 사는 길이라는걸 은연중에 알게 된것이지요.

 

지금은 성숙한 토론문화 같은건 기대할수 없었던 주입식 교육과 군사문화의 잔재가 있던 시절이라고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수에 의해 소수의 의견이 묵살되는것과 비슷한 억압은 그 이후로도 제 삶에서 늘 목격되고 이어집니다.

 

대학과 군대

 

앞서와 같은 사회적 억압을 겪었던 소년은 커서 군대식 얼차려와 무서운 표정의 선배들이 군기 잡으며 맞아주던 첫 MT로 대학생활을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것을 겪으며 시작한 제 시절의 대학에서 선배나 교수님 의견에 자주 이견을 표하거나 불합리를 지적하는 친구에게 나 역시 다수의 편에서 "저 개념 없는놈 또 튀네" 라는 시선을 보내게 되었고 "그걸 누가 모르나 괜한 말 해서 쓸데 없이 분란을 일으키는 거야" 라고 동조 하기까지 하는 기존 사회와 대학문화에 훌륭하게(?) 적응된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거기다 저 역시 선배가 되고나선 내키진 않았지만 후배들을 맞은 첫 MT에서 제대후 군대에서 배워온 유격체조와 공포의 얼차려를 맛보여 주는데 앞장서야 했지요. 그때로부터 강산이 두번도 넘게 변했건만 가끔 터져나오는 뉴스를 보면 군대식 대학 문화는 변함없이 여전한가 봅니다.

 

군대 이야기는 따로 할 필요가 있을까요? 필자의 경우 그곳에서 확실히 까라면 깐다라는 한국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독특한 정신 무장을 하고 나오게 되었습니다. 요즘 저는 군대예능 이라는 진짜 사나이의 군대 무식자 헨리를 보면서 껄껄 웃으며 재미있어 하다가도 어떤 부분에서는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왜 쉬는 시간에도 병사들끼리 마저도 웃지도 못하게 해야할까? 왜 묻고 싶은말 하고 싶은말도 굳이 못하게 해야 군기가 서는걸까? 군대는 분명 그 성격의 특성상 군기라는 부분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군인도 분명 사람이거늘 여전히 대개의 부분에서 쓸데 없는 군기에 집착하는 모습이 제가 군생활 한이후로 20년이 가깝게 세월이 흘렀지만 별로 변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입니다.

 

군 시절에 미군과 같이 합동 훈련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제 보직은 통신병이었고 같이 훈련을 했던 미군들도 통신병 이었습니다. 우리가 VHF 안테나를 치기로 한 장소는 도착해 보니 생각보다 땅이 고르지 않은데다가 딱 봐도 앞에 야산으로 막혀 있어 통신에 지장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장소는 이미 지시 받았고 까라면 까라는 곳이 군대입니다. 고참의 고함 소리를 들으며 정신없이 땅을 야전 삽으로 고르고 대형 안테나를 세우고 위장막 치고 하다가 옆의 미군들을 보니 장교를 둘러싸고 짝다리(우리는 상상도 할수없는)를 짚은 사병들이 껌을 씹으며 자유롭게 뭐라고 뭐라고 떠들어 댑니다. 한 2, 3분을 자기들끼리 떠들어 대더니 장교가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멀찍이 차량을 옮겨서 다른 장소에 안테나를 쳤습니다. 그 곳은 땅도 평평하고 산의 음영에서 벗어난 지형이었습니다. 안테나를 설치하는 과정도 휘파람을 불며 여유있게 설치하고 누가 명령하지 않았는데도 두명은 알아서 위치 잡고 사주 경계를 합니다. 결국 안테나는 우리가 10분이나 먼저 세웠지만 결국 산에 가려서 음영 때문에 무전 상태가 너무 고르지 못해 통신을 중계하는데는 실패 하였습니다. 나중에 한국식 전투식량이 그리웠던 카튜사(통역병)와 전투식량을 교환하면서 들은 이야기에 어쩐지 부끄러웠습니다. "아저씨들 참 답답하다 딱봐도 무전 안 터지겠더만 왜 거기다 굳이 안테나 치냐고 미군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더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위에서 지시한대로 정해진 위치에 까라면 까야지 하는 정신으로 안테나를 쳤지만 저들은 2, 3분의 자유로운 토론끝에 통신이 더 잘 터질 위치로 변경해서 안테나를 친 것입니다. 그냥 생각해 봐도 전쟁터에서 통신병의 기본적인 목적은 통신을 중계하기 위한것이지 지도를 보고 책상위에서 지정한 장소를 한치도 어기지 않고 안테나를 세우는것이 아니었지요. 하지만 한국 군대에서는 생각이란 것을 하면 피곤해 집니다. 거기다 의견이란것을 말하면 남은 군생활이 꼬입니다.

 

회사와 사회

 

예전의 테러를 다룬 영화에서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이 자유롭게 둘러앉아 테러 대응에 대한 회의를 하던 장면 묘사가 굉장히 신선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리를 꼬고 앉아 대통령에게 삿대질을 하며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던 참모들의 모습이 참 낯설었습니다. 한국의 국무회의 분위기라면 모두 미동도 않고 엄숙하게 앉아 대통령이 혼자 야단치듯 이야기하는 모습만 어쩐지 상상이 됩니다.

 

미국 국가 안전보장 회의

 

2009년도 국무회의 풍자만화

출처 : http://blog.ohmynews.com/dalkbal/306176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아가서 겪은 일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겪은 직장 에서의 회의란 대부분 팀장이나 부장이 혼자 이야기 하거나 묻거나 야단치거나 질책합니다. 그러다 의견을 말하라고 하면 모두 고개를 숙인채 수첩만 끄적이고 있습니다. 결국 "생각을 안해, 생각을" 하며 상사의 답답해 하는 소리를 들으며 회의가 끝납니다. 이미 고참 직원들은 경험으로 압니다. 괜히 의견이랍시고 이야기 해봐야 한마디 더 까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진정한 생산적인 의견은 회의가 끝난 후 편한 사이끼리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면서 오고 갑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차이가 현실에선 어떤 차이를 가져올까요?

 

관련 글 : 보스와 부하가 평등하게 토론하는 이스라엘 조직문화 

 

위의 관련 글에서 "만약 한국에서 과장이 임원에게 그건 멍청한 생각 입니다. 라고 말하면" 어찌 될까? 라는 물음이 와 닿습니다.

 

어찌 되긴 너에게 내일은 없는 거지

출처 : http://blog.hanwhadays.com/1969

 

과거에 어떤 개발부서의 과장이 프로그램 개발 일정을 3개월 정도로 보고하자 보고 받던 영업 출신의 임원이 1개월 정도에 무조건 완료하라고 지시를 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뒤에 "이것들은 꼭 일정을 질질 늘여서 이야기 한단 말이야"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글쎄요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인 프로그램 개발을 진행할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그 담당자의 말을 믿지 못하면서 어떻게 일을 하려고 하는 건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재미 있는것은 그 개발부서 과장 역시 그 상무는 모든 일정을 검토없이 1/3로 깍는다는 정보를 경험으로 알고 항상 3배로 일정을 늘려서 보고 했다는 사실 입니다. 이 무슨 불 필요한 촌극인지 모르겠습니다.

 

위에서 다룬 두가지 종류의 억압, 즉 다수의 의견이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는 폭력과 권위적 의사 전달로 아랫사람의 의견은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억압 이 두가지는 아직도 우리사회 주변에 만연해 있습니다. 결국 하나로 보면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억압적 폭력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수로 소수를 누르거나 위에서 아래를 누르거나의 차이일뿐입니다. 이러한 폭력적 업압들은 한국 사회에 여전히 만연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불합리와 억압들은 과거의 그런 문화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의 잔재이고 그러한 세대들이 점차 사라지면 우리사회에서도 점차 사라지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부분은 최근 인터넷에서 접하는 현상들을 보면서 새로운 세대들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베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무리지어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알바로 몰아가거나 심지어 신상을 털거나 하는 경우도 보았지만 보통 일베라고 표현되는 필자가 보기에 제 정신 아닌것들의 행태도 많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집단은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인간으로써 갖추어야 할 사회적 소양을 가지지 못한 집단이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 여성에 대한 공격과 비하, 특정 지역이나 계층 비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적개심, 광주 사태에서 죽은 사람들을 모독하는 언사나 합성 사진등 유가족이 들으면 피가 꺼꾸로 솟을 자기들 끼리 낄낄거리는 철없는 농담들... 어떤 정치적 성향을 지지하든, 자신들이 주장하는 정치적 이상을 가지고 있든, 기본적으로 지켜야할 사람의 품성은 가져야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필자 역시 이러한 사회를 살아오며 그런 문화에 길들여지고 나도 모르게 그러한 억압을 행사했을지도 모르기에 그러한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죽은이의 관을 보며 낄낄거릴 농담을 만들어낼 정도로 인간이하의 경지까지는 떨어져 본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5.18 택배 조롱 일베 회원의 공판을 보도한 뉴스

출처 : http://www.nocutnews.co.kr/news/1174436

 

재미있게도 그러한 행태들은 히틀러의 나찌당의 초기 모습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입니다. 파시즘 역시 유태인이나 집시 같은 민족에 적개심과 그에 대한 공격이나 비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고 조롱하는 행위들로 서서히 인기를 얻어 결국 1차대전 이후의 독일의 정권을 장악하기 까지 했습니다. 그 뒤에 그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자국민에게까지 안겨준 고통, 어떤 홀로코스트와 전쟁을 치루었는지는 굳이 여기서 따로 다룰 필요도 없을듯 합니다.

 

이자들은 주변국뿐만 아니라 결국 자국민에게도 심대한 고통을 준 사람들 입니다.

 

맺으며

 

그럼에도 제가 희망을 보는것은 최근에 사회의 그러한 불합리나 억압에 대해서, 또는 다수의 억누름에 대해서 당당하게 생각을 밝히고 반대하는 글들과 사람들을 많이 보게되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 작게는 댓글이나 욕설, 비난 같이 아직도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공감을 하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어느 사회에나 그런 부류는 존재하지만 그런 잘못된 것들에 대해 올바른 생각을 갖는 이들의 견제가 제대로 동작한다면 아직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에서 삶을 영위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어보고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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