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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빨간 비디오 보던 날

아마도 학생이 되기 전 국민학교(초등학교) 6학년 겨울 방학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증조할아버지의 제사가 있어 나와 동생은 며칠 일찍 어머니 손에 끌려 버스를 타고 시골을 찾아야 했다.

 

당시에 우리 형제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는 할아버지 댁에 가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바닷가에서 얼마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첩첩산중에 둘러 쌓인 곳이다 보니 TV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난시청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야 시골은 항상 놀 거리가 많은 그저 재미난 곳이었지만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면서부터는 어르신들만 있는 시골이 점점 지루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만화방이나 오락실 하나 없는 시골의 지루함을 벗어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TV 밖에 없었는데 늘 뉴스나 딱딱한 방송만 하는 KBS1 만, 그것도 흐릿한 화면으로만 볼 수 있는 환경은 당시의 우리에겐 고문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 또래의 육촌도 우리보다 먼저 내려와서 머물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서울에서 내려온 이 녀석은 당시의 우리 부모님은 잘 사주지 않으셨던 게임기와 만화책 등, 우리를 즐겁게 해 줄 오락거리를 가방 하나에 가득 담아서 내려와 있었기에  1살 아래 동생과 나를 무척  무척 흡족하게 해 주었다.

최소한 2,3일은 이 녀석이 가져온 놀잇감들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매서운 바깥 날씨를 피해 따뜻한 동네 아무 집 사랑채 아랫목에 배 깔고 드러누워 고구마를 먹거나 귤을 까먹으며 만화책을 보며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때면 아무 집에서나 식사 상에 끼어 앉아 밥을 먹고 잠도 우리끼리 시시덕 거리며 저녁 먹은 집에서 쓰러져 잠들었다,

 

동네의 아무 집에서 밥을 얻어먹거나 노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이 동성동본촌이었던 나의 시골은 동네 전체가 모두 가까운 친척이었기 때문이다. 길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사촌이거나 육촌이거나 숙모, 큰 할아버지, 작은할아버지 아지아(아재의 지방 사투리)였다. 특히 아지아라는 말은 경상도 산골 시골에서 촌수랑 관계없이 삼촌들과 동렬의 친척들을 몽땅 싸잡아 부르는 말이었는데 대부분 20대의 건장한 시골 청년들이었지만 우리가 보기에 할아버지에 가까운 40대 중반의 아지아도 있었던 것 같다.

 

이처럼 온 동네가 모두 친척이면 모두가 자기 아이들처럼 챙겨줘서 좋은 점도 있지만 작은 잘못에도 퍼져나가는 평판이 무섭다는 점도 있다. 조금이라도 처신을 잘못하면 바로 험담이 동네에 돈다. "야야... 너그 아들이 말이다…. " 하고 잘못한 일들이 부모님 귀에 곧바로 들어가거나 내가 공부를 잘하는 착한 아이인지 말썽만 피우는 똥통인지 동네 사람들이 모두 알고 공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되었다,

 

그런 부분들은 생각보다 어린 우리를 숨 막히게 만드는 부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2,3일이 더 지나고 더 이상 게임기나 만화책에도 질려버리자 동네를 벗어나 30분 넘게 버스를 타고 나가, 동네 어른들을 마주 칠일 없는 멀리 떨어진 읍내에 가서 오락실을 가거나 만화방을 가는 일탈을 즐겼다.

 

그 당시 우리들에게 공포의 존재는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작은 아지아 들이었다. 시골에 살면 빨리 늙는다고 했던가 지금 보면 현재의 내 나이대에 불과한데도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보였던 큰 아지아 들이나 숙모들은 우리를 반겨주고 먹을 것도 주고 재워주고 챙겨주었던 반면 청춘이 폭발하기 시작한 이 작은 아지아 들은 우리만 보면 못 잡아먹어 안달인 적대적인 사이었던 것 같다. 어른 들 몰래 밤에 몰려 나가서 술 한잔 먹고 불콰한 얼굴로 들어와 쉰내를 풍기며 대부분 자신들의 자는 방인 사랑채에서 잠자던 우리를 쫓아 내던 그런 달갑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사실 작은 아지아 들 입장에서도 우리는 달갑지 않은 시끄럽고 귀찮은 녀석들이었다. 슬슬 놀기에도 지겨워지기 시작 한 우리는 이 아지아 들이 낮에 읍내나 도시로 일하러 나가면 그들의 방에 들어가 뒹굴뒹굴하면서 이들이 빌려놓은 무협지를 마구 꺼내보거나 막 연예를 시작한 아지아들이 숨겨둔 일기나 여자 사진, 연애편지 등을 찾아내서 헤집어 보면서 키득거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가 확실히 우리보다 무엇인가에 빨리 눈뜬 육촌은 어느 조금은 노총각 취급을 받는 아지아의 방에 있던 군용 침대 아래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금발의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이 가득 담겨 있는 화보집 들이었다. 코밑이 이제야 조금 거뭇거뭇해가던 우리에게 이것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우아 이 아지아 장난 아니네... 애인 없어서 이런 거 모으나 보다?....... 더 뒤져 보자"


그렇다 우리는 이제 점점 못 말릴 말썽쟁이자 금단의 발굴자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침대 밑의 광활한 유적지에서 우리는 화보 외에 조금 더 색다른 것을 더 찾아내었다. 아무런 제목이 적혀있지 않는 비디오 테이프이었다.

 

빨간 비디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igiveall/140062358997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아마도 우리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벌써 반에서도 빠른 친구들은 이미 보았다는 이대근 씨나 이미숙 씨가 나오던 "뽕" 그런 제목의, 그런 류 성인 영화 이리라...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 그 "빨간 비디오" 임에 틀림없었다.

 

"우리 이거나 한번 볼까?"

 

이렇게 말한 당돌한 육촌은 그대로 아지아의 방에 있던 비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TV를 켰다. 우리는 저도 모르게 초 집중한 상태로 화면을 들여다보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가 기대했던 "옛날에는 호환 마마 전쟁이...." 어쩌고 하는  당시의 모든 국내 비디오에 의무적으로 실리던 홍보 영상이 아닌 "FBI WARNING"이라는 문구가 덜컥 떴던 것 같다. 당시에는 영어는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나 배우는 과목이라 무슨 소린지 모두 이해는 못했지만 "FBI" 만은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빨간 비디오

 

 

"에이 이거 FBI 나오는 첩보 영화인가 보다"

 

우리는 강한 실망감을 느끼고 비디오를 끄려던 순간 비디오에서는 외국 여성의 신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제야 코밑과 불알 밑에 겨우 솜털이 거실 거실 올라오기 시작하던 아이와 소년의 중간에 있던 우리들은 그만 어른의 세계로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던 모양이다.

 

"우엑 더러워"

"징그럽다"

 

사실 그것이 우리가 처음 느낀 솔직한 감상이었다. 어쩐지 구역질이 날 것 같은 불쾌감에도 아직 꼬꼬마 들인 우리들은 호기심과 허락되지 않은 어떤 금단의 문을 열어 본 기분으로 살짝 들떠 있었다.

 

처음으로 접해 본 외국 성인 비디오... 우리는 모두 생각과는 너무 다른 너무 적나라한 영상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비디오를 멍하니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거기다 이방의 주인인 노총각 아지아는 시내의 회사에 갔으니 우리의 경계도 많이 느슨해졌었나 보다. 우리가 이 금단의 문을 연지 채 3~5분도 넘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방문이 벌컥 열렸다.

 

그날따라 회사를 일찍 마친 노총각 아지아가 대낮에 귀가했던 모양이다. 애들을 별로 안 좋아하던 이 아지아는 워낙 험상궂은 인상에 우리만 보면 호통을 치거나 꿀밤을 먹이던 아지아들 무리 중 하나로 우리 역시 마주치면 슬슬 피하던 아지아였다.

 

문을 열고는 황당한 얼굴로 잠시 가만히 서 있다가 그제야 사태를 파악한 아지아의 불 호령이 떨어졌다.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내 생전에 그렇게 빠른 도망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동생도 그렇고 육촌도 그렇고 우리는 신을 신지도 못하고 겨우 줏어만 들고 맨발로 툇마루를 뛰어넘어 부리나케 달아났다. 겨우 동구밖에 와서야 신을 신고는 우리는 두려움에 휩싸여 일단 자주 놀러 가던 산속으로 올라갔다.

 

"니 때문이다 아이가... 괜히 그런 거 찾아가지고"

"그람 내가 보자고 할 때는 와 가만있었노?"

 

겁에 질린 우리는 서로를 탓하며 산속에서 대책 회의를 했는데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마도 우리가 내려갈 때쯤이면 온 동네에 싹퉁머리 없는 되바라진 것들로 소문이 다 났을 것이고 우리 부모님들은 "이 싹수 노란 것들..." 하고는 부지깽이를 들고 매 타작 준비를 마쳤을 것이 틀림없었다.

 

몇 해 전 명절날 문구점에서 팔던 폭음탄을 아이들 한 무리가 짚더미에 던져 불이 나서 온 동네가 불을 끄느라 난리 법석을 피웠다. 불을 낸 주범인 육촌 형이 빗자루를 든 아버지를 피해 맨발로 도망가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그리고 공부도 못하는 게 말썽만 피운다는 평판이 동네에 쫙 퍼졌던 게 바로 얼마 전의 일이었던 시기였다.

 

사실 우리는 아예 산을 내려가지 않고 싶었지만 겨울 산의 추위는 도저히 1시간 이상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산속에서 이리저리 궁리해도 방법은 없고 두려움을 간신히 누르고 산을 슬금슬금 내려왔는데 의외로 마을은 평온했다. 할아버지 댁에 들어서도 별 다른 반응이 없다. 게다가 할머니는 여전히 웃으며 우리를 반겨준다.

 

"추운데 어데서 그래 놀다가 떨다오노,... 야야 어서 밥부터 묵으래이"

 

아 밥 먹이고 혼내려나 보다... 의심을 풀지 못했지만 추위에 허기가 졌던지라 일단 밥을 우걱우걱 먹어치웠던 것 같다. 그런데 저녁이 되고 밤이 되어 잘 시간이 될 때까지도 별 다른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오히려 더 불안에 사로잡혔다. 혹여 그 아지아를 마주칠까 밖에 나가지도 않고 봤던 만화책을 보고 또 보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은 피할 수 없는 날이 왔다. 제삿날 아침은 온 동네의 남자는 꼬마 아이들까지 와서 절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느릿느릿 제사가 치러지는 큰 할아버지 댁 마당으로 갔다. 역시 그 노총각 아지아도 와 있었는데 다행히도 제사를 지내는 동안에 우리를 본체만체해주었다.

 

어떤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아직은 들키지 않은 범죄자의 심정으로 무척이나 조마조마한 시간이었나 보다. 제사를 마치고 밥을 먹고 나오는데 우리는 골목에서 담배를 태우던 그 노총각 아지아와 그만 딱 마주치고 말았다.

 

겁에 질려 굳어진 우리를 멀끔히 쳐다보더니 노총각 아지아는 한껏 내리 깔은 목소리로 한마디를 던 졌다.

 

"하이 고오~ 요 고추도 안 여문 것들이.... 너거 또 그런 거 보다가 내한테 걸리면 국물도 없다 알것제?"

"네 절대 안 그랄께요... 아지아"

 

"카악 퉤~ " 하고 크게 가래침을 뱉고, 담배를 밟아서 비벼 끄고 가는 아지아의 옆모습에서 어쩐지 "피식" 하는 웃음을 보았다고 느낀 건 어쩌면 내 착각이었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우리는 이 짧은 대화로 아지아가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일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급격히 몰려오는 안도감과 비밀을 공유한 것 같은 연대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평소 험상궂은 상판이라 생각해오던 그 아지아에게서 어쩐지 친구 같은 친근함이 느껴질 정도였던 것 같다.

 

"야 우리 읍내에 만화방이나 갈까?"
"오락실도 가자"

 

그렇게 그 추운 한 겨울의 제삿날 아침 우리는 대가리에 핏기가 아주 조금 더 마른 말썽쟁이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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