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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두개의 달과 도깨비 불, 그리고 자갈 뿌리는 여우, 어린날의 환상에 대하여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의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마치 오래되어 낡은 사진처럼 모든 것이 조금은 희미하고 불투명 하지만 그중에서도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몇 가지 기억들이 있다. 

 

이상하게도 이런 기억들은 세월이 지나가도 아주 가끔 더 또렷하게 떠오를 뿐 아니라 때로는 아련한 추억처럼 그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너무 많은 세월이 흘렀기에 나의 기억은 분명히 나도 인지 못하는 사이 윤색되고 보정 되었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오늘 하려는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런 오래된 어린시절 기억 속의 왜곡이거나 꿈과 환상이 뒤섞인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처럼 분명 나의 어린 시절 기억은 낭만과 고즈넉한 시골 밤, 유령, 도깨비불 그리고 종종 말도 안 되는 미스터리들로 가득 차 있었다.

 

비교적 기억속에 또렷한 어린 시절의 소풍 물놀이 사진. 맨 왼쪽 아이가 나다. 가운데가 그 당시 내 눈에 세상에서 가장 날씬하고 예쁜 선생님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선생님이다.

물론 안 예쁘신건 아니지만 세상에서 가장 날씬과는 거리가 먼... 지금 보면 살짝 복스러우시다. 이처럼 어린 시절의 시선과 인지라는 것을 세월이 흘러 명확한 사진으로 다시 보면 또 다른 것 같다.

 

나는 거의 부산에서 자랐지만 할아버지 댁이 경상북도 포항 주변의 바닷가에서 좀 떨어진 산골이다. 초등학교 무렵의 방학이면 거의 한달 가까이 시골에 가 있곤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린 시절 그 시골에 대한 추억이 많은 편이다. 아래의 이야기 들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며 좀 더 재미있으라고 대화 같은 경우에는 조금 양념을 가미해 보았다.

 

도깨비불

 

 

"그래 그날 아버지가 장에서 소를 못 팔았재, 대신에 장터에서 할배들 하고 막걸리 한 주전자 노나 마시는 바람에 해가 졌재. 어둑어둑한 밤에야 못 팔은 소에다 나를 태우고 아부지는 째매 알딸딸해서 밤길을 걸어서 산길을 넘어오는데..."

 

모깃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은 우리가 자기 이야기에 집중하는 걸 보면서 살짝 뜸을 들이시던 분은 우리가 자형이라 부르던 외사촌 누나의 남편이었다. 사촌누나라 해도 내 또래가 아닌 어머니보다 나이가 비슷하거나 조금 적거나 했던 걸로 기억한다. 

 

외할머니가 첫째로 외삼촌을 낳고 딸을 6명 내리 낳았는데 외삼촌이 3대 독자다 보니 17살에 장가를 갔다. 그러다 보니 막내 이모는 항렬로는 조카인 큰 사촌 누나가 업어서 키웠다는 농을 자주 듣는다. 아주 옛날 옛날이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같이 임신도 하는 그런 시절이었더랬다.

 

내가 막 초등학생이 될 무렵의 여름은 항상 외가 근처 바닷가에서 6명이나 되는 어머니 자매들과 또 6명이나 되는 사촌 누나들, 그 가족들이 텐트를 치고 왁자하게 노는데 재미를 붙였던 시절이었다.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30~40명이나 되는 대 인원인데 텐트도 10개 가까이를 치지만 그날 하룻밤에 버너에 구워 먹어치우는 고기의 양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날은 저녁을 먹고 나서는 모기를 쫓으려 모깃불을 피웠는데 이 나이 지긋한 자형이 모깃불 주위에 둘러앉은 우리를 보고 여름밤에 잘 어울리는 옛날이야기를 꺼냈다.

 

"갑자기 장터 쪽에서 산 너머로 커다란 불덩이가 휙 넘어오는 기라, 아부지가 훽 돌아보며 니 저거 봤나 라고 말하는데 또 불덩이가 휙, 휙 한 대여섯 번 지나갔재..."

그런데 아마도 이 이야기는 그 후로도 한 대 여섯 번은 반복으로 들었던 모양이다 이야기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저거 도깨비 불이는구먼 보지 마라 홀린다 하고는 아부지가 말하는데 내사 그거 보는 순간부터 무서봐서 몸이 덜덜 떨리더라, 하늘로 날아안가고 우리한테 오면 우짤고 하는 맴에 소 타고 벌벌떠는 내를 아부지가 손 잡아주는데 아부지 손도 축축했재 어찌 허둥지둥 소 몰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도 그 불덩이가 휙 휙 하고 산을 몇 번 더 넘어가는기라"

 

자형의 어린 시절의 도깨비불 목격담인데 지금에 와서 저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UFO 같기도 하다. 

 

원래 어린 시절 책에서 배운 도깨비불은 묘지에 인이 자연발화 되면서 반짝이는 불빛 정도일텐데 산을 넘어다니는 커다란 불덩이라니.... 어린시절 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이다. 

 

나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는데 바로 이런 이야기에는 논리적인 해석으로 꼭 산통을 깨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마침 옆에 있던 다른 자형이 말을 꺼냈다.

 

"행님 그거 해병대 사격장에서 밤에 대포 쏜 거 아인교? 밤에 야간 사격하면 종종 산 너머 불덩어리 같은 거 휙휙 날아가더만...."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의견이다. 야간 사격으로 산너머에 훤하게 불덩이가 넘어가는 걸 어린 나도 본 적이 있다.

 

"아 대포 쏘는 거면 꽝 소리가 나재 내가 그걸 모리나? 불덩이 보이고 좀 있다 꽝! 하고 소리가 산에 쩌렁쩌렁 울리는데 그날은 아무 소리가 안 났다니까"

 

그것이 정말로 해병대 사격장의 포사격이었던 도깨비 불이었던 관계없이 그날 밤 나는 산을 넘어가는 커다란 불덩이 들과 그 커다란 불덩이가 나를 쫓아오는 꿈을 아마도 꾸었던 것 같다.

 

자갈 뿌리는 여우

 

 

모기 때문이 아니라 이상 번식이었는지 반딧불이가 너무 많이 날아들어서 온 방안이 반딧불 소굴 같이 되어서 툇마루에도 모기장을 쳤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 노란 전구 밑에서 툇마루에서 물에 담가두었던 수박을 꺼내와서 먹고 있는데 지금은 돌아가시고 없는 할아버지가 옛 생각이 나셨는지 곰방대에 담배를 채우시곤 불을 붙이며 옛날이야기를 꺼내셨다. 

 

할아버지 댁이 있는 시골은 바닷가 읍내에서 평소에는 말라서 자갈밖에 없는 큰 하천 바닥을 약 1km 정도 걸어올라 와야 있는 동성동본 촌인데 장에 가거나 바다가에서 생선을 사러 갔다 늦어지면 종종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어두운 자갈길을 홀로 자박자박 걸어서 올라와야 하곤 했다

 

아직 아버지도 아기이던 시절, 젊은 할아버지는 여름날 장도 보고 바닷가에서 생선을 사들고 올라오는 길이었다고 한다. 너무 더운 여름날이라 그런지 새끼줄에 꿴 생선에서 비린내가 좀 심하게 나서 얼른 집에 와서 손질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단다. 

 

그런데 자박자박 걸어가는 자갈길 등 뒤에서 어쩐지 작은 발소리가 자박자박 더 들리는 것처럼 느껴지셨단다.

 

"거기 누꼬?"

 

등골이 서늘해진 할아버지가 돌아보며 물었지만 칠흑 같은 어둠 속에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더랜다.

 

"사람이 가 귀신이가? 나올라면 나와뿌라!"

 

젊은 시절의 할아버지는 혈기왕성하고 겁도 없어서 자갈 바닥에 있던 나무 작대기 하나를 주워 들고는 아주 호기 있게 사람이든 귀신이든 나오라고 외치셨는데 아무 기척 없는 어둠 속에서 갑자기 파바박 하는 소리가 들리며 자갈들이 날아들었단다.

 

"아이쿠야"

 

자갈에 맞은 할아버지가 정신이 없어 등을 돌려 뒤로 내 달리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길 앞쪽에서 파바박 하더니 자갈이 날아들었단다. 작은 자갈이라 많이 아프거나 하진 않았지만 달리는 방향 사방에서 자갈이 날아드니 보이는 것도 없고 정신도 없고 혼이 빠질 지경이셨다고 한다. 

 

결국 할아버지는 장본 물건들과 생선도 다 내 팽겨 치고 나무 작대기 하나 꼭 붙들고 정신없이 달려서 겨우 불빛이 가물가물 보이는 집으로 오실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날 날이 밝은 뒤 다시 가보니 내 팽개친 다른 물건들은 다 있는데 생선만 사라지고 없었더란다.

 

"큰 삵이구만 생선 탐나서 뒷다리로 자갈 파 뿌린 거 아이가?, 여기 김치 좀 내오소"

 

언제 오셨는지 뒷집 작은할아버지가 모기장을 걷고 소주병을 내려놓으며 툇마루에 걸쳐 않았다.

 

"아이다 그때도 벌써 큰 삵이 어댔노? 왜놈들이 총으로 다 잡았뿌서 그전에 벌써 없어졌재. 그거 뒷골 아재도 글케 당한 적이 있는데 도망가다 봤는데 그게 큰 삵이 아니고 꼬리 여러 개 달린 여우 더란다 그 요망한기 그렇게 자갈 뿌려서 사람을 홀린단다. 잘못해서 홀리면 밤새 길 헤매다 죽는다 안카나. "

 

두 할아버지는 소주로 얼콰해져서는 늦게 까지 그 여우 이야기를 나누셨던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방학 때 할아버지 댁에 오다 버스가 늦게 도착해서 어머니 손을 잡고 어두운 밤 자갈길을 걸어 올라갈라치면 문득 할아버지와 자갈 뿌리는 여우 이야기가 생각나서 자갈길 발소리 속에 혹시나 다른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나 귀를 기울이고는 했었던 것 같다.

 


뱀 아기

 

어느 여름밤 그래도 선풍기 바람에 겨우 잠을 청하는데 할머니가 마루에서 윗집 큰 할머니와 고구마를 먹으며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온다.

 

"지거에 사는 그 빨간 슬레이트집 있잖아 거 아들이 여 뒹골에도 논 부치는 거 알재? 원래는 형이 있었는데 뱀 알라였단다 카데"

 

"뱀 알라요?"

 

"어 그 집 댁이 첫째 아 벗을 때 밭매러 갔다가 고마 뱀한테 벅지(허벅지)를 물렸다 안 하나. 그라고 나서 다음 달에 아를 낳는데 아가 온몸에 비닐(비늘)이 있었단다."

 

"아고 무시라 진짜요?"

 

"그래 몸에 비닐이 있는 데다가 새(혀)도 낼름 낼름 하는 게 영락없이 뱀 인기라. 저 못골 행님이 아 받을 때 봤단다. 알라 태워 나고 여 의원 가도 모르겠다 하고 저 박수(무당) 가봐도 뱀이 씌었다고 했다 안켔나"

 

"근데 크면서 낮에 해만 보면 아프다고 울어 싸서 방에서만 키워서 사람들이 잘 못 봤다 아이가"

 

"그라문 그 아들보다 형이니께 인자 다 컸을 거 아닌교?"

 

"와 다 컸겠재, 근데 집에만 있고 지사(제사)고 맹절(명절)이고 코 빼기도 안 보이니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아이가"

 

그때 내 머릿속에는 온몸이 비늘로 덮이고 혀를 날름날름 하는 뱀 아이의 형상이 벌써 떠 올랐다. 그리고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어쩐지 섬뜩한 마음에 일어나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깼다 하면서 그냥 아침까지 참았던 것 같다.

 

그리고 몇 해 지나서였던가? 뱀 아기 이야기는 벌써 오래전에 잊었던 즈음 사촌들과 지거라 불리던 바닷가 마을에 내려가 해수욕을 했다. 할아버지 댁이 있는 마을이야 한집 건너 모두 친척이라 모두 아는 사이지만 지거 사람들과는 대면대면했었다.

 

그때를 기억해 보면 할아버지의 시골 마을과 이쪽 마을 사람들은 거의 왕래도 없고 그다지 친하지 않은 동네였던 것 같다. 

 

누구는 왜정 때는 우리 마을이 더 잘 살았는데 해방되고 군사용 해안도로가 나고 나서 그쪽 땅값이 올라 지거 사람들이 더 부자가 돼서 그렇다고도 하고 동성동본촌인 우리 마을과 달리 토박이 아닌 여기저기 외지인들이 모여 사는 여러 성씨 촌이라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분명 1km도 채 되지 않는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 치고는 정말 서먹한 사이의 마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해수욕을 마치고 사촌들과 솔밭에서 뛰어놀던 나는 문득 이상한 사람을 발견했다. 비쩍 마른 몸의 아저씨처럼 보였는데 한 여름 더위에 긴팔을 입고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양봉할 때 쓰는 검은 망이 덮여 있었다. 

 

당시 시골에는 벌을 치는 집들이 많았기에 처음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한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마도 나는 분명하게도 망이 덮인 그늘 사이로 비치는 그 얼굴에서 비늘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머릿속에는 번개가 치듯 몇 년 전의 뱀 아이 이야기가 떠 올랐고 나는 나도 모르게 "뱀 인간이다. 도망쳐 잡아먹혀" 하고는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멋도 모르던 사촌들도 공포심에 사로잡혀 나의 뒤를 따라 후다닥 같이 달아났다 보다. 한참을 도망을 가다 뒤돌아 보니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도망가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이 정말 얼굴에 비늘이 있었을까? 하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긴 하다. 어쩌면 그물 망이 햇빛에 그늘져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어 냈을지도 모른다. 

 

당시에도 그런 의심이 문득 마음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럼에도 그 후로 한참 동안은 같이 가는 어른 없이는 혼자서 지거에 내려가 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윗집 할머니가 이야기하던 뱀 알라였을까? 아니면 어린 내가 그저 벌 치는 사람을 보고 무언가 착각을 한 것일까? 내 기억에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 나는 뱀 인간이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소 타고 가다 본 검은 사람

 

운보 김기창 화백 소와 소년


"앞 골 아재가 돌아가실 때 말이다. 그날 아파서 꼼짝도 못 하던 양반이 벌떡 일어나서 문 밖에 검은 옷 입은 저승사자가 와 있다고 못 들어오게 하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 그 아들이 문쪽을 보고 와서 거 아무도 없십니다. 아부지 라고 했는데 아니라고 나 데리러 왔다고 못 들어오게 소금 뿌리라고 난리 쳤지 않나. 근데 그날 밤에 자다가 진짜로 조용히 갔다 아이가"

 

 

언제쯤 여름 방학이었는지 모르지만 중간집 숙모가 여러 숙모들과 제사 음식을 만들며 둘러앉아 풀은 이야기를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서 자는 척하면서 다 듣고 있었다. 

 

그 후로 전설의 고향 같은 TV프로를 보면서 검은 옷에 갓을 쓴 창백한 얼굴의 저승사자 이미지가 어린 나에게도 확실히 자리 잡았던 것 같다. 지금 보면 참 허술한 분장이지만 꼬마였던 나에게는 꽤나 무서운 이미지였다. 거기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 다시 떠 올라 자꾸 사립문 쪽을 힐끔 거리게 되었던 것 같다

 

7~8살 때쯤이었던 것 같다. 술 잘 드시고 발끈하는 한 성격에 곧잘 싸움도 마다치 않는 성깔 있는 노인이었지만 손주들은 무척 예뻐하셨던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는 딱히 일이 없는 날에는 나를 소에 태우고 윗 골로 설렁설렁 올라가 소는 풀어 풀을 뜯게 하고는 계단식 논에 물이 잘 대어지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하셨다. 

 

평소에는 도시에서 자라다 보니 자주 볼 수 없었던 커다란 가재를 개울 바위틈 사이에서 잡아 불에 구워 주시기도 하고 메뚜기를 잡아주거나 지금 생각하면 징그럽지만 논물과 핏물이 섞인 검은 고무신에 담긴 꿈틀거리는 거머리를 담아서 보여 주시기도 했었다.

 

어린 나는 물이 들어찬 논에서 올챙이를 잡거나 할아버지가 나무통에 담아오신 도시락을 나뭇가지를 꺾어서 쥐어준 젓가락으로 먹기도 하면서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것 같다. 

그렇게 놀다가 어둑어둑 해지기 시작하면 할아버지는 하루 종일 놀아서 피곤해진 나를 소 등에 태우고 호롱불에 불을 붙여 들고 코끝을 살짝 찌르는 기름 타는 냄새를 풍기며 터덜터덜 산길을 걸어 내려오곤 했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조금의 빛이 남아 있는 하늘은 때때로 구름 사이가 붉게 물들어서 그 기막힌 노을에 취하고 쩔그렁 소리를 내는 소 방울 소리와 호롱불의 호롱 호롱 깜빡임, 소가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터벅임에 그만 나는 소 등에 묶인 나무 울대를 움켜쥐고 몰려오는 졸음에 흔들거리곤 했다.

 

그러다 깜빡깜빡 꿈인지 현실인지 몽롱함이 몰려올 무렵 어느새 소는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아무리 눈을 뜨려 애써봐도 그 무거운 눈꺼풀이 시야를 뿌옇게 만들어 버릴 때쯤 마을 어귀에 있는 큰집 할아버지 댁 앞에 온통 검은 사람 형상이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큰 할아버지 댁 대문 앞에 서 있는 것 같은데 어쩐지 어린 내게도 느껴지는 서늘한 느낌에 눈을 뜨려 애써 보았지만 여전히 눈앞은 뿌옇고 잘 보이지 않는다. 맞은편에서 역시 소를 몰고 오던 마을 아재가 할아버지에게 "아재요 식사하셨는교?" 하고 묻고 할아버지는 "오야 이제 집에 가서 묵을끼다" 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이상한 것은 동성동 본촌인 나의 시골은 모두 친척이라 어디서 누구라도 마주치면 인사는 나누는데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면서도 큰 할아버지 댁 문 앞에 서 있는 검은 옷 사람은 마치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본체 만 체도 않고 지나치는 게 어린 내게도 이상하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고 눈을 뜨니 다음날 아침이었다. 그런데 아침부터 할아버지와 식구들이 부산했는데 바로 그날 새벽에 큰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나는 문득 떠오른 큰 집 앞의 검은 사람 이야기를 하려 했지만 모두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응, 응" 하는 어른들이 아이의 말을 흘려들을 때 쓰는 답변들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아마도 시골의 장례를 보았던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누런 베옷을 입은 할머니들과 숙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아이고아이고" 곡을 하던 모습이 내 어린 눈에도 이상했던지 그 모습이 사진 촬영을 한 듯 내 머릿속에 뚜렷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내 기억은 마치 빨리 감기를 한 것처럼 혼란스럽던 큰집 할아버지 마당의 천막들과 삼베옷의 물결, 고인의 옷을 태우던 모닥불 연기 등이 오버랩되어 지나가고 "아이고아이고" 하고 들려오던 곡 소리, 딸랑딸랑 종소리와 날리던 지전과 아재들이 어깨에 맨 꽃상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어야~" 하던 후렴구 등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러다 문득 장지에서 나는 할머니 손을 잡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꽃 상여를 태우는 연기와 산속에서 그날따라 부는 바람에 아마도 난 이빨을 딱딱 마주치며 이상한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 떨었나 보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작은 할머니가 "아 아픈 거 아이가?"라고 말을 할머니에게 말했고 할머니는 그제야 내 상태를 알아보고 이마를 짚어 보시더니 둘러업고 읍내의 가짜 의사집으로 내 달렸나 보다.

 

의사 면허가 없어서 가짜 의사라 불렸지만 주사도 놓고 침도 놓고 하던 읍내 의원은 오한에 벌벌 떠는 내게도 주사 한방을 놓아주었던 것 같다. 

 

집으로 돌아와 이틀을 내리 끙끙 앓고야 겨우 열이 내렸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도 가끔씩 나는 흔들리던 소 등에 앉아 있고 소 방울이 절그렁 절그렁 울리고 호롱불의 기름 타는 냄새를 맡는 꿈을 꾸었다. 

몽롱한 꿈속에서 어디선가 어야, 어야 하는 소리도 먼 곳에서 들려오듯 희미하게 들렸었던 것 같다.

 

꿈에서도 큰집 할아버지 댁 대문 앞의 검은 형상은 아무리 눈을 부릅뜨고 보려고 애써도 그저 초점이 맞지 않는 카메라 영상처럼 희미하고 흐릿한 검은 형상만 모습만 보여주었고 그러면 여지없이 그날 밤은 가위에 눌리곤 했다.

 

 

두 개의 달이 뜬 밤

 

초등학교 고 학년이 되면서부터는 여름 방학 때 할아버지 댁을 가는 건 여전했지만 고조할아버지가 도깨비를 만나 밤새 씨름을 했는데 아침에 보니 홍두깨였다는 등, 집채만 한 이리떼가 마을에 내려와 증조할아버지의 형을 물고 가는 바람에 증조할아버지가 종손이 되었다는 이야기, 왜놈 승려가 왜정 때 마을 뒷산 동굴에 돈이 가득 찬 커다란 궤짝들을 숨겨두었다는 소문, 훈련 나왔다가 오발 사고로 머리에 총을 맞은 군인 귀신이 떠 돌아다닌다는 마을 어귀 솔밭과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늙지 않고 살아왔다는 뒷산 암자 비구승 같은 이야기들이 점점 예전만큼 흥미롭지 않게 되어갔던 것 같다. 

 

사실 점점 머리가 굵어지면서는 남자아이들은 무리 지어 다니며 만화책 보고 게임을 하거나 조금씩 살짝 다른 영역에도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이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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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비디오 보던 날

 

예전에는 눈을 반짝이며 들었던 그 미스터리한 마을의 온갖 소문과 옛 경험담들을 어떨 때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하고 낙후된 시골의 미신들 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그래서 마을 젊은 아지아(삼촌뻘을 칭하던 경북 사투리) 중 한 명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을 때도 피식 웃었던 것 같다.

 

"읍내 한삼이 하고 기분 좋아 술 먹다 보이 살짝 초뺑이가 되었재, 날도 덥고 체기도 올라오고 해서 옷통 벗고 재갈(자갈) 길 올라오다가 논둑에 오줌을 싸는데 하늘이 그날따라 아무래도 이상한 거라. 뭐가 이상할꼬 하고 하늘을 한참 봤지, 그게 이상하게 달이 두 개였던 거라. 그거 보고 나니까 갑자기 술이 확 깻재"

 

'아이코 술을 떡이 될 정도로 많이 자셨구려, 왜 자갈 바닥은 일어나 덤비지 않았소?'라는 말을 속으로 꿀꺽 삼켰던 것 같다. 이 아지아는 어른들 없으면 종종 우리를 몰래몰래 쥐어 박기도 하던 성깔 더러운 아지아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다른 아지아들도 내 생각과 같았는지 낄낄 거리며 "와 니 고추는 두 개 아니더나?"라고 그 아지아를 놀려댔는데 사뭇 진지하게 진짜 그랬다고 우겨대던 그 아지아를 나도 모르게 다소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나 보다. 

 

얼굴이 벌게져 씩씩 거리던 아지아는 괜히 "니는 뭘 쪼개노?" 하고 내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는 낄낄 웃음소리들을 뒤로하고 사랑방을 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음 해였던가 아니면 또 그 다음 해 였던가 다시 할아버지 댁을 찾은 나와 동생은 무더운 여름 어느 날 사촌들과 바닷가로 내려가 실컷 물놀이를 하고는 자갈길 어귀의 솔밭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게 되었다. 

 

지나가던 할아버지들은 멀쩡한 집 나 두고 왜 한 데서 천막 쪼가리에서 자냐고 한 번씩 혀를 차고 갔지만 아이들은 텐트 안에서 만화책도 보고 뭐가 그리 재미났는지 밤늦게까지 깔깔 웃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결에 하나 둘 쓰러져 잠이 들었는데 문득 한 밤중에 눈을 떴다. 아마도 그날 밤 우리는 산 모기들에게 진수성찬이 되어 주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물놀이를 하고 놀았던지라 하품이 계속 나고 피곤함에 계속 잠이 몰려오는데 온몸이 가려워 미칠 지경이었다. 팔다리를 긁으며 누운 채 텐트 망 사이로 마주 보이던 길 너머의 커다란 당목 위를 쳐다보다가 문득 강한 위화감을 느꼈던 것 같다.

 

시골의 당목. 지역에 따라서는 이 당나무 아래 고인을 운구할 때 쓰는 상여를 보관하기도 했다.

출처 : https://cafe.naver.com/bongpyoung39/555

 

눈을 비비며 다시 보니 세상에 당목 가지 위로 둥근달이 두 개가 떠있는게 아닌가? 놀란 나는 더 보지 않으려고 그만 돌아 누워버렸다. 그래도 머리속은 내 등 뒤로 계속 되고 있을 달이 두개가 뜬 섬뜩한 풍경이 계속 상상되어 동생을 흔들어 깨우려 했다. 그런데 동생도 그렇고 발치에 자고 있어서 발로 몇 차례 걷어차도 사촌들 역시 잠에서 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두 개의 달에게서 등을 돌린 채 필사적으로 다시 자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래 아침되면 다 괜찮을 거야 꿈꾼거 같을거야'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이상하게 미칠것 같이 가렵던 모기에 물린 곳들도 이제는 가렵지도 않았고 차가운 밤 공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 등 허리에 느껴지는 서늘함이 그저 꺼림칙하기만 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두개의 달에 등을 돌린채 나는 꽤 오래 대치를 했었나 보다. 다시 돌아보고 한번 더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무엇인가 큰일이 일어날 것 같은 막연한 불안감에 나는 결국 돌아눕지 못했다.

 

밤을 꼴깍 새울 것만 같았는데 아무래도 나는 너무 피곤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공포심보다 졸음이 더 강해서 생각했었던 것보다 오래 대치를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기껏해야 10분쯤 되었을까? 결국 나는 다음날 해가 텐트로 들어와 얼굴에 작열하는 바람에 눈을 떴다.

 

아침이 되어 동생과 사촌들에게 간 밤의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던 그 아지아의 억울함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결국 다음날 밤에도 동생과 사촌들은 텐트에 가서 다시 잤지만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안방에서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달이 두 개가 뜨는 풍경은 그 이후로는 역시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 그건 무엇이었을까? 정말 달이었을까? 아니면 비몽사몽간에 본 환상에 불과했을까?

 

 

어린 시절의 추억

 

이렇게 시골과 얽힌 나의 추억은 도깨비불, 자갈 뿌리는 여우, 두 개의 달이 뜨던 밤, 뱀 아기와 같이 신비하고 미스터리한 기억들이 그 한편을 견고하게 차지하고 있다. 왜놈 승려가 숨겼다는 돈이 가득 찬 궤짝이 있는 동굴을 찾겠다고 지도를 그려서 마을 뒷산을 샅샅이 뒤져보기도 하고 머리에 총을 맞은 채 터덜 터덜 떠다닌다는 군인 귀신을 보려 한 밤중에 사촌들과 솔밭을 가보기도 했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나는 또래의 친구들과 달리 그저 밤에도 환하기만 한 도시의 환경 대신 감수성이 풍부하게 자극받는 시골에서의 생활을 매년 여름, 겨울 방학마다 해 볼 수 있었던 행운을 가졌었나 보다. 어린 시절 내 상상 속에는 늘 도깨비, 구미호, 삵, 뱀, 귀신, 이리, 저승사자가 같은 존재들이 풍부한 재료로 등장하곤 했었으니 말이다.

 

가끔은 머리 부서진 군인 귀신을 보려고 했던 밤이 기억난다. 랜턴을 들고 사촌들과 서로 도망 못 가게 손에 손을 이어 잡고 솔밭으로 내려가던 그 길에서 깜빡이던 반딧불이, 구수한 소죽 냄새, 짚이 타는 냄새, 풀벌레 소리, 부엉이 소리 등이 귓가에 아직도 들리는 듯 그 시절이 아련하게 때로는 사무치게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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