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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생일날의 추억. 부모님 귀가 30분전의 공포

지금도 가끔 그 때를 떠올리면 식은땀 나던 기억이 있었다. 이제는 많은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 키우는 나이가 되다 보니 어찌보면 웃기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에 느꼈던 서늘한 공포는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내 기억에는 중3 즈음의 내 생일날이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기에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 3명과 연년생인 내 동생까지 5명이 조촐하게 생일 파티를 하기로 했다. 생일파티라고는 해도 요즘같이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거나 실내 놀이터를 빌려 하는 그런 거창한 생일 파티가 아니라 집에서 음식이나 과자 챙겨 먹고 하는 그런 생일 파티가 80년대만 해도 보통이었다.

 

더구나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에는 집에서 친구들과 짜장면 시켜먹고, 케잌 하나 사다가 먹으면서 노는 정도가 생일파티였다.

나 역시 그 정도 생일 파티의 범주에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아침에 오늘 좀 늦는다며 친구들과 밥 사먹고 케잌도 하나 사라고 돈을 주고 가셨다. 짜장면 시킬돈은 건들지 않았지만 우리 나이에 이미 생일 케잌은 좀 시들한 소품이었다.

 

우선은 밥은 먹어야 하니 짜장면을 친구들과 맛있게 먹었다.

 

 

생일날의 추억

 

그리고 당시 많은 아이들이 그랬듯 케잌살 돈으로 쵸코파이 몇개와 생일초 1개를 샀고 남는돈으로 친구들과 오락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썻었나보다. 그래도 돈이 조금 남아서 그 돈으로는 비디오를 빌리기로 했다.

 

근데 아무리 내 친구지만 어떻게 감안하고 잘 봐주려 해도 타고난 노안으로 도저히 중3이라기 보다는 적어도 해병대 군인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외모의 한 친구가 비디오 테이프를 빌리는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비디오 제목은 "뼈와 살이 타는 밤". 우와! 뼈와 살이 탈 정도라면 엄청 잔혹만 고어물임이 틀림없다 보다 :-), 우리는 이 친구의 노안을 그 날만은 영웅처럼 경배했다.

 

토요일이고 그날 따라 어머니는 추가 근무로 늦어지실거라서 우리는 매우 느긋했다. 친구 중 한 녀석이 간 크게 자기 집에 있던 아버지가 담은 더덕주 작은 병을 몰래 들고 나왔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한번씩은 이미 마셔보았지만 나는 아마 처음 마셨던 술이었나 보다. 양이 많지 않아 한잔씩 정도만 마셨지만 무척 알딸딸 한게 기분도 좋고 대담해 졌었나 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호기를 부려 뒷 생각은 하지 않고 아버지가 찬장에 숨겨 놓았던 양주 한병을 들고 나와서 따 버렸다.

 

호기롭게 마셔본 양주는 마치 뱃속을 뒤집고 유황 불이 올라오는 듯 했다. 처음 마셔본 술인데다. 술도 약한 체질인 내가 버텨 낼리가 없었다. 아마도 난 곧 기절을 했고 그래도 버텨낸 다른 녀석들은 곧 "뼈와 살이" 어떻게 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비디오를 집어 넣고 보기 시작했다. 

 

기절했던 나는 두 시간쯤 지나서야 간신히 일어났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골이 빠개질듯 아픈 상황에서도 방안에 아무렇게 흩어져있는 술병과 술잔들을 부모님 오시기 전에 빨리 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끼시던 양주는 어쩌지?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그걸 꺼내 왔을까?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내가 기절한 사이 더 심각한 문제가 벌어져 있었다. 친구들과 동생, 모두 우왕좌왕 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비디오 테이프가 데크에 완전 꽉 끼였던 것이다. 당황한 녀석들이 나름 꺼내려고 돌려감기 등을 해버리는 바람에 테이프가 더 엉켜 버려서 잘라내도 도저히 꺼낼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뭐 비디오 테이프가 끼인 건 문제가 아닌데 그 안의 내용물이 바로 "뼈와 살이 타는 밤" 이라는게 문제다. 이거 부모님께 걸리면 그 순간 정말 내 뼈와 살이 타버릴지도 모른다.

 

시계를 보니 벌써 부모님이 오신다는 시간에서 30분전 이었다. 나는 눈앞이 캄캄해 진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낀것 같다. 거의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생일날의 추억

ㅅㅂ, 아무래도 나 ㅈ된거 같지?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이를 해결할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비디오 전원을 빼고 비디오를 들고 바로 근처의 시장통에 있는 수리점으로 바로 달려갔다. 

 

코가 빨간 수리점 아저씨는 초조함에 발을 구르던 우리와 달리 느긋하게 휘파람을 불며 비디오를 분해 하기 시작했다. 결국 테잎을 꺼내더니 테잎의 제목을 흘깃 보았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서 있던 우리는 혹시 불벼락이 떨어지지 않을까 잔뜩 쫄아 있었다. 그때만 해도 동네 아저씨들도 중학생이던 고등학생이던 남의 아이들을 거리낌 없이 혼도 내고 야단치던 시절이었다.

 

"뼈 삭는다 이것들아"

 

다행히 수리점 아저씨는 피식 웃더니 이 한마디만 하고 말았다. 그리고 서비스로 테이프도 말끔히 말아주었다. 그래 아저씨도 남자였다. 잠시 술병으로 코가 빨간 아저씨에게 세대를 뛰어넘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우리는 황급하게 "뼈와 살이 타는 밤" 을 대여점에 반납하고 비디오를 들고 집으로 헐레벌떡 달려갔다. 살면서 그렇게 빨리 달렸던적은 그 때 이후로는 없는것 같다. 친구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간신히 부모님이 들어오기 2, 3분전에 집에 도착했고 빠른 속도로 비디오를 다시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문을 열고 같이 들어오신 부모님은 방안을 들여다보고는 노성을 터뜨렸다. 

 

"아니 이녀석들 이게 뭐야!"

 

비디오에 정신이 팔려 있느나 몰랐었는데 뒤돌아 보니 방안은 술병 2개가 굴러다니고 술잔도 널브러져 있었다.

 

"아이고 내 양주!!!"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순간 난 이제 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비디오는 걸리지 않았다는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왜냐하면 둘다 분명 박살나게 혼날 일이지만 만약 "뼈와 살이 타는 밤" 쪽이 들켰더라면 아무리 부모님이라고 해도 너무나도 쪽팔렸을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분노한 아버지의 빗자루로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내 마음 한편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이후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그 당시 30분 동안 겪었던 불안과 초조 공포만큼을 이후에도 결코 겪어본적이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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