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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왜인 승려의 황금 궤짝을 찾아서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1980년대 초 중반, 방학 때 마다 할아버지 댁에서 거의 시골 한달살이를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제주도에서 살이, 해외에서 한달 살기 같은 것들이 유행이라고도 하는데 어떻게 보면 시골 한달 살기를 한 셈이다. 이전 글에서도 한번 썼지만 어린 시절의 내 시골은 정말 다양한 전설과 소문이 있는 곳이었다고나 할까?

도깨비, 여우, 저승사자 등등 정말 다양하고 어린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아직도 내 어린 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떠올릴 때면 방학 때마다 보냈던 이 시골에서의 기억이 마치 고 해상도로 저장된 동영상처럼 사실과 꿈, 상상이 뒤섞여 플레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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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 두개의 달과 도깨비 불, 그리고 자갈 뿌리는 여우, 어린날의 환상에 대하여


서천 국립 생태원

 


왜인 승려의 황금 궤짝


지금은 돌아가신 큰 집 할아버지가 무더운 여름날 피워 놓은 모깃불을 툇마루에서 내려다보며 부채질을 하시다가 바닥에 멍석을 깔고 수박을 먹고 있던 나와 동생, 사촌 형제 2명을 물끄러미 보고는 갑자기 그 후로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를 꺼내셨던 것 같다.


큰 집 할아버지는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당시에는 60이 채 안 되셨던 것 같은데 무척 나이든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 요즘의 60은 청춘이라고 하는 걸 보면 예전 그 시대에 할아버지들이 외모상으로는 훨씬 더 빨리 늙었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동네 노인 특유의 뜬금없이 시작하는 이야기는 익숙해져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장난치고 노느라 귀에 들어 오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우리가 듣거나 말거나 큰 할아버지는 혼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시절 동성 촌인 내 시골의 할아버지들이 말하는 공통적인 특징이기도 했다. 누가 듣거나 말거나 독백처럼 이야기를 한참 풀어나가는 습관 말이다.


큰 할아버지의 동생인 내 할아버지도 때때로 아침 일찍 일어난 어린시절의 나를 무릎에 앉히고 앉아서 구수한 소 죽 냄새가 나는 아궁이 앞에서 여물을 끓이시며 늘 내가 듣거나 말거나 혼잣말 하듯 알아듣기 힘든 옛날 이야기를 하시곤 했었다. 때로는 6.25 때 공산군 이야기가 어떤 때는 여우 이야기가… 누가 형제가 아니랄까 큰 할아버지도 그런 습관을 가지고 계셨는데 보통 때처럼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그날따라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에 쑥 빨려 들어가고 말았나 보다.


큰 할아버지의 아버지, 즉 내게는 증조할아버지가 아직 젊던 시절에 갑자기 왜놈 병정들이 마을에 나타났었다고 한다. 그 때는 큰 할아버지가 막 태어나 아직 손가락이나 빨던 아기시절 이었다고 한다. 그 전까지는 읍내에서 순사는 본적이 있어도 왜인 병정이 마을까지 나타난 건 처음이라 마을 분들은 모두 무척 두려워서 집 밖을 나오지 않았는데. 하필 증조할아버지는 그걸 모르고 지게를 지고 나무를 하러 산에 가려 집을 나서다가 이들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증조 할아버지가 무서운 중에도 정신을 가다듬으며 훑어보니 병정 서너 명과 웬 왜인 승려가 같이 왔는데 나무로 잘 짜진 커다란 궤짝 4 개를 조선 사람이 분명해 보이는 지게꾼 4명이서 지게에 지고 옮기고 있었단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은 발을 다쳐서 걷기가 힘든 상태였다.


왜인 승려가 지게꾼 중 한 명을 시켜서 증조 할아버지를 보고 다리 다친 사람 대신 지게를 지고 가주면 큰 돈을 주겠다 했다. 마을 뒤편에 있는 산들을 타고 가면 있는 장소까지 상자를 옮겨 주면 된다고 하면서… 마침 큰 할아버지도 막 태어났던 시기이고 산후 조리중인 증조 할머니 몸보신 시킬 고기를 살 돈이 필요하던 참이라 증조 할아버지는 다친 사람 대신 상자를 받아서 지게에 지고 이들을 따라 나섰었다.


동내 뒷산의 험한 산길을 따라 구비구비 있는 계단식 논들을 지나서 점점 인적이 없는 깊은 산길로 반나절 넘게 걸어 갔는데 그만 할아버지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면서 지고 있던 궤짝이 땅에 떨어지면서 뚜껑이 살짝 열렸는 모양이다.


“누런 금땡이였제. 상자 안 가득 금땡이가 있었다고 하셨제”


항상 이 대목에 오면 큰 할아버지는 눈 앞에 금덩이가 있는듯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 채, 묘한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리듯 말 했던 것 같다.


왜인 승려가 큰소리 소리를 치며 황급히 궤짝 뚜껑을 닫고는 넘어진 할아버지를 지팡이로 마구 때렸다고 한다. 겨우 지게를 추스려서 궤짝을 다시 메고 가다가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기분이 ‘쌔’ 한 것이 이 궤짝을 다 나르고 나면 왜놈들이 자기을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서 맨 뒤로 쳐졌던 할아버지는 틈을 봐서 돈이고 나발이고 하는 마음으로 지게도 그대로 내 팽개치고는 그 대로 산길을 뛰어 달아났다고 한다.


왜놈 병정들과 승려가 뭐라고 고함도 치고 총을 드는 철커덕 드는 소리가 들렸는데 증조 할아버지는 정신없이 뛰며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치느라 뒤에서 병정들이 총을 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단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항상 그 궤짝을 짊어지고 도망치셨으면 우린 모두 다 부자일 텐데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큰 할아버지는 “금땡이 같이 무거운 거 들고 못 도망가제, 못 띠제, 총 맞아 뿌렸겠제…” 라고 웅얼거리면서도 입맛을 다시시곤 했다.


무사히 달아난 증조 할아버지는 왜놈 병정들과 왜인 중이 마을로 잡으러 다시 올까 무서워서 산속에서 이틀을 더 숨어있다가 너무너무 배도 고팠고 힘들어서 결국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와 마을로 돌아갔다. 마을에서도 증조 할아버지가 왜놈들에게 끌려가고 이틀이나 오질 않아서 사람들이 많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특히 증조 할머니는 밤잠을 못 자고 걱정하고 있을 정도였다고…


그 후로도 며칠을 증조할아버지는 집안에 숨어서 밖으로 돌아다니지 않았는데 다행이 왜인들이 할아버지를 잡으러 다시 오지는 않았단다. 그래도 혹시 나중에 증조 할아버지를 잡으러 올까 걱정되고 겁이 나서 증조 할아버지네 가족은 몇 달 정도 증조 할머니네 친정으로 도망가서 숨어 살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해방이 되고 왜인들이 없어지고 나서야 증조 할아버지는 금이 가득 찬 궤짝 생각이 나서 큰 할아버지를 데리고 갔던 길을 따라 산을 올라가봤는데 도망쳤던 곳에서부터 아무리 이리저리 뒤져봐도 궤짝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단다.


“어짜면 뒹골 뒷산에 금땡이 네 짝이 여즉 있을지도 모르제…”


큰 할아버지의 이야기 끝은 항상 이렇게 뒷말을 흐리셨는데 덕분에 어린 우리는 종종 뒹골 뒷산에서 황금이 가득 찬 궤짝을 찾아내는 상상을 하거나 꿈을 꾸는 일도 있었던 것 같다.


당시에 보물섬이라는 보물을 찾는 소년의 모험을 그린, 특히 외다리 실버라는 걸출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오던 TV만화가 있었다. 비록 해적이 숨긴 보물은 아니지만 일본인 승려가 숨긴 보물을 찾아내는 이야기는 충분히 상상만으로도 매력적인 모험이었다. 아직 국민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저학년이던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소년이 왜인 승려가 숨긴 보물을 찾는 상상으로 각색되어 언제나 우리들의 보물찾기 놀이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내린 후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바람 한점 없던 무덥던 어느 여름날 점심 무렵 그나마 머리가 굵던 육촌 형 중 한 명이 우리에게 낡은 종이 한 장을 들고 왔다. 오래된 앉은뱅이 나무책상 서랍 속에 있던 종이를 찾았다는데 종이가 누런 색으로 변색되어 있어 한 눈에도 꽤 오래된 종이 같았다. 게다가 종이 자체에서 시큼털털 한 간장 냄새가 났는데 우리는 종이에 그려진 원과 선에 시선을 빼앗기는 바람에 다른 것은 잊고 말았다.


종이에 그려진 것은 대강 대강 선이 그어진 한 눈에도 어설퍼 보이는 그림 지도였다. 마을 주변을 늘 돌아다니며 뛰어놀던 우리는 얼핏 봐도 X자로 표시된 장소가 마을 뒤편의 뒹골에 있는 산들 중 하나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보물지도다”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왜인 승려의 보물 궤짝을 머리속에 떠올렸던 것 같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기이한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였다.


나중에야 육촌 형이 실토를 했지만 그 지도는 우리를 한 번 놀려주려고 종이에 직접 그림 지도를 그리고 오래된 종이처럼 보이려 모서리를 적당히 구긴다음 물을 탄 간장에 한번 담갔다 꺼내서 누렇게 변색시킨 나름 제작에 공을 들인 가짜 지도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워낙 꼬꼬마들이다 보니 지도의 진위 여부에 아무도 의심하지 않고 곧바로 보물찾기 원정대가 결성되었다. 누군가는 어디서 났는지 장난감 나침반을 챙겼고 깊은 동굴이 있을지 모른다고 플래시도 챙겼다. 그리고 삼촌들이 나무를 깎아 만들어준 나무 칼들을 허리띠에 끼운 다음 보물찾기 원정대는 기운차게 뒹골을 향해 출발했다. 막상 지도를 찾아냈다는 육촌형은 날씨가 너무 덥다며 손사래를 치며 방학숙제 해야 된다고 가버려서 일행은 나와 동생 육촌 형제를 포함해 3명으로 줄어 있었다.


기운찼던 출발과 달리 우리는 뒹골의 첫번째 산 중턱 즈음에서 무더위로 이미 대부분 탈진해버렸다. 떠올려보니 아무도 물을 들고 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타는 듯한 갈증과 무더위에 30분도 안되어서 우리는 다 집어치우고 그저 집에 가서 시원한 물을 먹고 싶은 생각만 가득했다.


다행히 산 중턱 사면에 뽕밭이 있었는데 말라비틀어지고 다 떨어진 오디들 사이에도 철 지난 오디 몇 개가 남아 있어서 그걸 허겁지겁 따먹으며 급한 갈증을 조금 해소했던 모양이다. 대신에 뽕밭안 득시글거리던 모기들에게 엄청나게 헌혈을 해야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우리는 좀 더 전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산골짝에서 졸졸 내려오는 맑은 물을 발견해서 할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나뭇잎을 접어 컵을 만들어 물을 원 없이 마셨다. 우리는 그제야 완전히 기운을 차려서 작은 산 하나를 넘어갔다. 지도에서는 두번째 산 중턱쯤 X 표시가 되어있었는데 무더위와 땡볕에 땀을 비오 듯이 흘리면서도 우리는 보물 발견의 희망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 된 후 문중 벌초를 위해 이곳을 다시 찾은 적이 있는데 머나먼 모험 길이었던 그 곳이 어른 발걸음으로 20여분 남짓 밖에 안되는 거리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허탈한 웃음이 나왔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의 거리 감각이란 그런 것이리라.


첫번째 야산을 지나고 두번째 산으로 향하는 사이에 정말 큰 할아버지 이야기속처럼 푸른 벼 들이 펼쳐진 계단식 논 사이의 구불구불한 길을 지났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지도가 정확하게 맞다고 이제 완전히 확신을 하고 있었다. 보통 때도 멀리 놀러 다녔지만 이렇게 멀리 나온 건 처음이라서 약간의 불안감이 일기도 했지만 보물을 찾는다는 희망이 더 커서 그런 불안감을 눌러 버렸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뭉친 모험 파티가 늘 그러하듯 두번째 산을 오르기 전에 우리는 가벼운 다툼을 벌였다. 너무 사소해서 뭐였는지조차 기억 안 나는 이유로 나는 계속 칭얼거리는 동생을 한대 쥐어박았고 토라진 동생은 배도 고프고 집에 가고 싶다고 하며 오던 길을 멋대로 돌아가 버렸다. 나와 동갑 육촌 한 명만 남아서 탐험을 계속해야 했는데 산길을 땀 범벅이 되어 오르고 오른 다음 우리는 겨우 X표가 된 장소라 생각되는 지점에 도달했었다.


그 곳은 숲사이에 제법 넓게 트여진 공터였는데 우리는 그 장소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오기전에 상상했던 보물이 숨겨진 미로 같은 깊은 동굴도 없었고  나무칼로 애꿎은 땅만 여기저기 찌르고 파헤쳐 보았지만 땅속의 꾸물거리는 이상한 벌레들만 많이 만나 보았을 뿐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결국 수색 범위를 좀 더 넓혀 주변을 한참을 뒤졌는데 육촌이 갑자기 뭔가 있다고 소리를 질렀다. 즉시 달려간 내 눈에도 그것이 눈에 띄었는데 시커먼 작은 무엇인가의 형체가 땅에 반쯤 묻혀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보기에도 그 모양이 상당히 꺼림칙했다. 우리는 가까이 다가가보지 못하고 서로를 가 보라고 한참 동안 보채기만 했던 것 같다.


가위바위보! 결국 운이 없었던 내가 슬금슬금 다가가서 나무칼로 그걸 뒤집는 순간 기절할 듯 놀라서 소리치며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나는 처음에 그것이 사람의 발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너무 놀라 기절할 듯 정신이 혼미 해졌던 기억이 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땅에 아래부분 일부가 묻힌 검은색 고무 장화였던 걸로 기억한다. 마을에서 논에 나갈 때 흔히 어른들이 싣던 그런 검은색 장화였다.


그런데 후다닥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내 육촌은 이미 꽁지가 빠져라 달려서 도망가고 있었다. 뭔가 멀리서 내가 넘어지고 놀라는 걸 보고 단단히 겁을 먹었나 보다. 혼자 숲 속 공터에 남겨진 나도 갑자기 무서움 증이 확 몰려왔다. 나 역시 일어나 육촌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모험을 하는 동안 시간이 흘렀는지 이미 해가 산 중턱에 걸려 넘어가고 있었다. 이미 따갑던 햇볕은 사라지고 시원한 골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늘에는 붉게 노을이 졌고 주변이 온통 석양의 황금빛 햇살로 빛나는 통에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햇살 때문에 이제는 황금색으로 보이는 계단 논 벼들이 넘실대는 사이의 좁은 길을 뛰었다. 올 때는 한참 걸렸던 야산 하나를 금 새 넘어서 육촌의 뒷모습을 따라잡으려 황금빛 가득한 논 밭 사이로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때의 눈부신 석양 속 풍경과 턱 끝까지 차오르던 숨이 아직도 내게는 생생하게 어린시절 보물 찾기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누군가가 혹 왜인 승려가 숨겨둔 황금을 찾았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나는 그 황금색으로 빛나던 들판을 달리던 기억 속의 이미지를 떠올릴것 같다.

그것이야 말로 바로 내 어린시절의 황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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