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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저는 괜찮습니다. 나의 웃기는 실수담 3가지

나는 차가운 도시 남자, 부드러워 보이지만 한 까칠한 성격이다. (유행 지났지만 이 문구 또 써먹는다.)

 

얼핏 모든 일을 계획하에 움직일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 나는 매우 불 같은 급한 성격이다. 그 탓에 살면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 중에는 정말 자려 누웠는데 갑자기 생각이 나서 이불킥을 할 만큼 웃기는 일들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덮고 가야 할 이야기들인데 블로그 소재가 오늘따라 떠오르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려 한다.

 

그래 한번 보고 웃어 주시는 분이 있다면 이 한 몸 희생해야지...

 

아마도 누구나 살면서 이 정도 실수는 할 것 같다.

 

(글의 몰입을 위해 다른 포스팅과 달리 해라체를 사용합니다.)

 

실수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여기 XX 받으세요

 

둘째를 낳고 약간의 고민 끝에 정관수술을 받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이 둘 이상을 키우기에는 부담스러웠고 부부금슬(琵琶) 이 좋아서(?) 혹시나 셋째가 생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도 정관수술, 칼이 없는 정관 수술이라는 의미지만 절개가 없는 건 아니다. 보통 레이저로 작은 절개가 이루어지는데, 병원의 설명에서 하나도 안 아프다고 했는데 수술받는 동안 나는 무척 아팠다. 나중에야 의사가 "마취가 잘 안 듣는 체질이시군요" 한마디 하더라. 수술 후에 그날로 돌아다닌다는 사람도 있다던데 나는 꼬박 하루는 가만히 누워있었고 이후에도 2, 3일 엉거주춤 걸어 다녀야 했다.


문제는 그 후로 사타구니 쪽이 뻐근하고 아픈 통증이 6개월 가까이 계속 있었다는 거다. 병원에서는 별 이상 없다고 하는데 나는 너무 아파서 종종 잠을 못 이루는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내 몸은 수술 같은 거 잘 안 받는 체질인가 보다. 남들 일주일 고생한다는 라섹도 그리 고생했던 기억이...

 

뭐 여하튼 수술을 받고나서 한달인가 두달인가 후에 잘 잠겼는지(?) 검사를 위해서 조그만 플라스틱 병안에 정액을 받아오라고 했다. 혹시나 수술에 허점이 있을까 봐 검사하는 절차인데 별생각 없이 작은 병을 받아서 들고 와서는 시간이 흘러 병원의 문자를 받고서야 이 검사를 받아야 된다는 걸 떠올렸다.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그래서 찾아본 플라스틱 병에 딸린 안내서를 보니 병원에서 채취하지 않았다면 채취 후 가능한 1시간 내에 검사실에 제출해 달라는 문구가 있었다. '어 집에서 병원까지 버스로 40분인데 좀 아슬아슬 한걸' 하고 생각을 했던것 같다. 그래서 진료예약 날 아침에 플라스틱 병에 조심히 담고(어떻게 담았는지는 묻지 말기를 바란다...) 바로 집을 나섰다.

 

사실 말이 한 시간이지 조금 넘으면 어떠랴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하는데 내가 생각해도 성격이 한 시간이다 하면 그 안에 제출해야 하는 좀 빡빡한 성격이다. 그날따라 버스가 평소 시간보다 늦게 정류장에 도착했고 가는 동안도 차가 좀 막혔다. 그래서 병원 정문에 도착한 시간은 채취 후 한 시간이 되기까지 약 5분전...

 

나도 모르게 마음이 급해졌다. 정문 앞에서부터 내달려서 허겁지겁 검사실이 있는 의료원 2층으로 한달음에 도착했다. 플라스틱 병을 제출해야 하는 검사실이 있는 곳은 바로 옆은 소아과 진료실이라 아이들과 아이 엄마들이 많이 대기하고 있는 곳이었다. 시간을 보니 2분 전... 사실 그거 시간 지키는게 뭐 대수라고 나는 상당히 조급해지고 있었다.


출처 : PixaBay 무료이미지


겨우 검사실 앞에 도착해서 간호사에게 급하게 다가가며 분명 머릿속은 이런 말을 하려 했었을 것이다.

 

"여기 검사시료 받으세요."

 

하지만 막상 내 입에서 튀어 나온 말은 이랬다.

 

"여기 정액 받으세요"

 

더구나 숨이 차서 이야기하다 보니 내 목소리마저 나도 모르게 좀 높았다. 크게 틀린 말을 한건 아닌데 주변 상황이 안 좋았다.

 

이런 젠장, 아이들과 엄마들이 앉아서 약간은 시끌시끌하던 소아과 대기실이 일 순간 조용해졌다. 돌아보지 않아도 수많은 시선들이 내 뒤통수에 꽂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별 생각이 없어 보이는 간호사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플라스틱 병을 받아들고 "검사 20~30분 걸립니다. 3층 비뇨기과 앞에서 대기하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차마 뒤돌아 보지 못하고 계단을 뛰듯이 걸어 올라가 비뇨기과 앞에 얼굴을 감싸 쥐고 앉았던 것 같다.

 

 

강렬한 박치기


파키케팔로사우루스, 출처 : wikipedia.org


대학시절 아직 부산에서 있을 때 그날따라 강의도 빨리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같은 과 동기와 집 방향이 같아서 둘이 나란히 서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오고 있었다. 내가 서있는 앞 좌석에는 약간 마른 몸의 아주머니 한 분이 앉아서 조금 심하게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와 친구는 당시 막 출시되어 핫하던 PC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느라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 같다. (공부 이야기는 안 하고...)

그런데 이 심하게 졸던 아주머니, 이제는 상하로 꾸벅이고 돌리는 고갯짓이 더 심해지는 게 무척이나 피곤하셨나 보다. 거의 상모를 돌리는 수준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 막 게임 이야기에서 캐릭터에 대한 사랑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친구 이야기에 잠시 집중하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퍽"

 

갑자기 모골이 송연해지고 하늘이 노래졌다.


인간의 몸에는 많은 치명적인 급소가 존재합니다.

출처 : wikipedia.org


알고 보니 아주머니가 졸면서 상모처럼 돌리던 머리가 원심력을 더하며 거의 시속 100km의 속도로 내 사타구니에 박치기를 해버린 것이다. 잠이 덜 깬 얼굴로 멍하니 나를 쳐다보는 아주머니 앞에서 나는 천천히 무너졌다. 갑작스러운 엄청난 통증에 체면이고 뭐고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버렸던 것이다.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던 낮의 지하철이다 보니 이 상황을 목격한 몇몇 사람들은 "큭큭" 거리며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참느라 애쓰고 있었다.

 

"야 괜찮냐"

 

나를 보며 이야기하느라 그 상황을 똑똑히 눈으로 목격한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물었다.

"정말 엄청 쎈 박치기였지..." 나중에 담배를 피며 친구가 그 상황을 떠올리며 던진 말이다.

 

말이 안 나오는 통증이란 이런 상황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나는 쥐어짜내듯이 겨우 말할 수 있었다.

 

"C...으... 그...으... 몰라 터진 것 같아..."

 

별생각 없이 한 이 한 마디가 그만 다른 이의 불행에 웃지 않으려, 최선을 다해 참고 있던 사람들의 감성을 크게 터치해 버렸나 보다. 지하철이 대폭소로 뒤엎어졌다. 다행히(?) 정말로 터지지는 않았었기에 겨우 몸을 추스른 나는 친구가 잡는 걸 뿌리치고 절뚝이며 다음 정류장에 혼자 먼저 내려야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만원 버스를 타고 다니는 퇴근길은 늘 피곤하다. 무척 춥던 어느 겨울날, 그날도 난 피곤해서 손잡이에 매달려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여느 때처럼 버스 안은 콩나물시루처럼 사람들이 빽빽히 차 있었고 제발 자리가 나서 앉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 내 앞에서 누군가가 내리고 나는 냉큼 그 자리에 앉아 겨우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을 꾸벅꾸벅 졸면서 가는데 버스가 갑자기 코너를 돌았던 모양이다.

"어머 어머 어머"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내 쪽으로 무언가 넘어오는 것 같아서 눈을 뜨면서 무의식중에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팔을 뻗어 받으려 했다.

 

아 이런 나는 코너링 하는 버스 때문에 내가 앉은 좌석 쪽으로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지던 한 아가씨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잡고 받아 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무안한 상황, 그 아가씨는 얼른 몸을 일으키고 나도 얼른 손을 떼었다. 그 처자, 워낙 추운 날이고 겨울이라 두꺼운 롱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넘어질 뻔한것도 있지만 좀 당황스러운 상황이 되었는지라 얼굴이 홍당무다.


어이쿠, 뭐 이런걸 다...뭐...이렇게 받은 듯

출처 : Pxhere 무료이미지


나도 잠도 덜 깼지만 이 상황을 지나가기 위해서는 위로차 뭐라도 말을 한 마디 던져야 할 것만 같았다.

 

'옷이 두꺼워서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아 이건 말이 좀 이상하고... 뭐라고 하지?... 내 쪽으로 넘어질 뻔했지만 나는 괜찮다 이럴까?... 아! 그래 그냥 괜찮으세요? 묻고 상대가 "네" 답하고 지나가는 정도가 딱 적당하겠다...' 짧은 시간 내 머리가 고속 회전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방금 전 상황을 스므스하게 무마하고자 (나름 친절한 표정을 지으려) 씨익 웃으며 "괜찮으세요?"라는 말을 던지려 했는데... 말이... 그만 헛 나왔다.

 

"괜찮네요."

 

순간 순해 보이던 처자의 얼굴이 '뭐야 이 ㅅㄲ... 뭐가 괜찮다는 거야?' 이런 의미를 노골적으로 풍기는 썩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니, 그게... 아니고... 저는 괜찮았습니다... 아니 아니... 그...",

 

하.... 이 뭐. 병. 말실수를 무마하려 "전 괜찮습니다" 말을 하려다가(이 말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좀 이상했을 듯) 이조차 당황해서인지 말이 또 헛 나왔고 샐쭉하니 경멸의 표정을 지으며 그 아가씨는 자리를 다른 곳으로 피해 버렸다. 다른 쪽으로 자리를 피하고 나서도 입으로는 뭐라 뭐라 하며(아무래도 변태ㅅㄲ... 어쩌고 하는 것 같았다) 내 쪽을 흘깃흘깃 본다.


아니 이렇게 억울할 데가... 나는 졸다가 깜짝 놀라 깨는 바람에 평소와 달리 언어 중추가 제대로 작동을 못 했을 뿐이다.

그날 퇴근길은 집까지 오는 동안 그날따라 실수 연발인 주둥이를 원망하며 난 눈 감고 자는 척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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