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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통합본 책 소개 및 잡담

오래전, 그러니까 벌써 5년 전쯤인가 봅니다. 그때쯤 저는 정말 오랜만에 한가한 주말을 맞아서 IP TV로 볼만한 SF 영화를 찾고 있었고(아내가 처갓집에 갔습니다!!! 그것도 아이들을 데리고!!!) 우연히 무척 끌리는 제목의 영화 한 편을 보게 됩니다. 그 영화의 제목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였습니다.


워낙에 SF 물을 좋아하는지라 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난 후의 감상은 "와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생각보다는 꽤 재미있었다."였습니다. 물론 해당 영화평에는 혹평도 많았지만 제게는 매우 독특한 구성과 영국식 위트, 블랙 유머가 느껴지는 영화였습니다.


영국 드라마 중 비슷한 풍의 "닥터 후"라는 영국 SF 드라마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어쩐지 에피소드 하나를 길게 스토리를 늘이고 영화화 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 굉장히 익숙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가가 닥터 후의 일부 에피소드 극본에도 참여를 했더군요.)


이전 글 : 닥터 후, SF와 시간여행 매니아들을 위한 드라마


영화에 대한 인상이 강렬하다 보니 영화를 보고 이런저런 관련 글을 보다가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한국에도 출간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읽어야지 하다가 세상사가 다 그렇듯 까맣게 잊어버리고 산 모양입니다.


그러다 지난주에 우연히 도서 판매 사이트에서 SF 항목을 무심하게 검색해 보다가 이 책을 다시 발견하였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 표지


해당 시리즈의 전체 합본이고 가격이 꽤 비싼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를 살까?하고 뒤져 봤는데 책 물량도 충분하지 않은 듯, 중고 책과 새 책 가격이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주문을 했을 때 첫 번째 도서 판매 사이트는 해당 책 재고 물량이 없다며 결제 취소를 해 달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다른 한 곳은 아예 책 구매 페이지에 품절로 표시되어 있어 구매를 포기할 참이었는데 마지막으로 들린 사이트에서 재고가 있는 걸 확인하고 주문을 했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 외관


배송된 책은 정말 두껍습니다. 보기만 해도 읽기 시작하는 걸 망설여지는, 꽤나 심리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주는 두께입니다. 사실 저는 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포스트를 작성하는 지금도 책의 1/3 정도를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합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 뒷 표지


개인적으로 책의 텍스트를 읽어본 후의 느낌은 뒤표지에서처럼 코믹 SF라는 코믹적인 관점을 홍보하기보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뒤를 이은 유머와 환상의 향연, 현대인을 위한 SF 동화" 이런 문구가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풀 번역 판을 볼 때의 느낌도 듭니다. 영화에서도 영국식 블랙 유머는 잘 드러났지만 활자로 볼 때는 언어유희와 우리가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상황을 뒤집어 패러디하는 부분들이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마치 루이스 캐롤이 재버워크라는 시에서 그러했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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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는 분명 영국인이고 자기 나라의 위대한 작가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의 보고인의 시가 등장하는 부분에서 더더욱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재버워크도 그렇고 이 책도 번역본이라 얼마나 실제로 그 느낌이 유사한지는 다른 언어권의 저는 아마도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말입니다.


보고인의 시는 물론 우주에서 세 번째로 최악이다. 두 번째 최악의 시는 크리아 행성의 아즈고스인들의 시다.


- 중략 -


보고인은 시를, 자신이 고안해낸 역겨운 시구들을 낭송하기 시작했다.

"아 친망하는 징징버러지여.....", 그가 시작했다. 포드의 몸에서 경련이 일었다. 이것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지독했다.

"?...... 그대의 방뇨는 내개 / 말버리 철푸더크구 얼룩덜룩크하네."

"아아아아그그그그흐흐흐!" 한 무더기의 고통이 온 몸을 때리며 지나가자 포드 프리펙트는 머리를 뒤로 비비 틀며 비명을 질렀다. 옆자리에서 아서가 축 늘어져 몸을 비비 꼬고 있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이를 악물었다.

"꾸룩 내 그대에게 애원하네. 나의 족발루구 치달리오구리." 인정머리 없는 보고인은 계속해서 낭송했다.

그의 목소리는 열에 들떠 귀에 거슬리는 고음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호망컨디 찌거덕굴레망치로 나를 익졸라주우 / 아니면 내 오대방몽이로 그대 왕여드름을 찢어발기리, 내가 못할 줄 알아?"


사실 제가 책을 읽으면서 초반부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부분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바로 아래의 부분입니다. 이 책을 읽을지 말지는 아랫부분의 인용문을 한 번 보고 마음에 드신다면 책을 읽고,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든다면 조금은 순화(?)되고 이해의 범주 안에 스토리를 재 구성한 "영화"로 보시길 권합니다.


사물들이 항상 겉보기와 항상 같지 않다는 것은 중요하고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지구 행성에서 인간들은 항상 자신들이 돌고래보다 지능이 높다고 생각했다. 인간들이 바퀴, 뉴욕, 전쟁 등 엄청난 일들을 성취해내는 동안 돌고래들이 한 일이라고는 물속에서 빈둥거리며 재미나 보는 것밖에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반대로 돌고래들은 자신들이 인간들보다 훨씬 더 지능이 높다고 항상 믿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정확히 똑같았다.


대단히 흥미롭게도 돌고래들은 지구 행성이 곧 파괴된다는 사실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인간들에게 그 위험을 경고하려고 여러 시도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의사소통 노력은 대부분 재미있게 축구공을 차올리려고 한다거나 물고기 한 토막을 얻어먹어보겠다고 휘파람을 부는 것으로 잘못 해석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경고하기를 포기하고, 보고인들이 도착하기 직전에 자신들만의 수단을 통해 지구를 빠져나왔다.


돌고래들의 마지막 메시지는, 뒤로 두 번 공중제비를 돌아 고리를 통과하면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휘파람으로 부는, 놀라울 만큼 정교한 묘기를 보여주려는 것으로 오인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안녕히, 그리고 물고기는 고마웠어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 옆면


지은이 더글러스 애덤스


작가인 더글라스 애덤스는 히치하이커로 유럽을 여행하다 오스트리아의 어느 지방 들판에서 술에 취해 누워있다가 해당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1978년 라디오 드라마로 히치하이커 시리즈를 시작했고 이후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텔레비전 드라마, 연극, 음반, 게임등의 다양한 버전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작가의 말중에 있는이 행성을 떠나는 법도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드는 드립입니다.


이 행성을 떠나는 법


1.  나사NASA에 전화하라. 전화번호는 (713) 483-3111이다. 당신이 지금 당장 떠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2. 그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백악관 - (202) 456-1414 - 에 있는 아무 친구에게나 전화해서, 나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 좀 해달라고 하라.

3. 백악관에 친구가 하나도 없으면, 크램린에 전화하라 (0107-095-295-9051로 전화해 국제 교환수에게 크램린을 대달라고 하라). 그 사람들도 백악관에 친구가 없기는 마찬가지지만(적어도 남들에게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친구는 없다), 영향력은 좀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시도해볼 만하다.

4. 그것도 안 되면, 교황에게 전화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라. 교황의 전화번호는 011-39-6-6982다. 내가 듣기에 교황의 교환수는 절대로 잘못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카톨릭에서 교황은 '절대무류'라고 간주되는데 이를 둔 말 장난)

5. 이 시도가 모두 실패로 돌아가면, 신호를 해서 지나가는 비행접시를 정지시킨 다음, 전화 요금 청구서가 날아들기 전에 이 행성을 벗어나는 게 엄청나가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하라.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 속 표지



책의 주 줄거리는 우주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서 지구가 강제 철거되는 어이없는 설정으로 지구는 멸망하고 주인공 아서 덴트는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던 포드 프리펙트와 함께 히치하이킹으로 보고인의 우주선에 올라타게 됩니다. 이렇게 타의로 우주를 여행하게 되는 것이 시작인 이 시리즈는 머리가 두 개인 외계인 자포드, 자포드를 따라 지구를 떠난 트릴리언, 그리고 무척 매력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우울증 로봇인 마빈 등이 함께  순수한 마음 호를 타고 여행하며 겪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흑막인 조그만 존재들과 모든 일의 시발점인 생각하는 컴퓨터...


영화에서는 그저 우울하고 실의에 찬 대사를 하는 로봇이었던 걸로만 기억하는데 소설을 읽다보면 이 마음을 지닌 우울한 로봇 마빈이 꽤나 많은 것을 해결하는 캐릭터라는 걸 알게 됩니다.


은하계 대통령 자포드를 체포하러 쫒아 온 경찰들의 우주선이 갑자기 동력을 끊는 바람에 경찰들이 모두 생존 유지 장치의 중단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처럼 모두 체포되거나 총에 맞아 죽을 위기는 경찰관들이 갑자기 죽어서 해결 되는데 이어지는 부분에서 왜? 그랬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 줍니다. 


포드는 남아서 계속 블라굴론 우주선을 조사했다. 그는 걸어가다가, 차가운 먼지 속에 고개를 쳐박고 누워 있는 맥 빠진 강철 물체에 걸려 넘어 질 뻔했다.

"마빈! 뭐 하는 거야?" 그가 소리쳤다.

"절 아는 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목이 막힌 듯한 목소리로 마빈이 청승맞게 말했다.

"괜찮아. 강철인간?" 포드가 말했다.

"매우 우울해요."

"무슨 일 있었어?"


-중략-


"저 우주선이 날 미워해요." 그가 경찰 우주선을 가리키며 풀 죽어 말했다.

"저 우주선?" 포드가 갑자기 흥분하며 말했다. "저 우주선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 알아?"

"말을 걸었더니 절 미워했어요."

"네가 말을 걸었다고? 말을 걸었다니 무슨 소리야?" 포드가 외쳤다.

"간단해요. 전 너무 지루하고 우울했어요. 그래서 이곳에 와서 외부 컴퓨터 플러그에 저를 연결했죠. 전 컴퓨터에게 오랜 시간 동안 우주에 대한 제 견해를 설명했어요." 마빈이 대답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컴퓨터가 자살해버렸어요."

마빈은 이렇게 말하더니 순수한 마음 호를 향해 터덜터덜 걸어갔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분명 매력적이고 블랙 유머와 위트가 넘치는 소설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1970년 대와 1980년 대의 문체로 쓰여진 소설이다 보니 현대의 짧고 간결한 문체에 익숙해진 요즘의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지나치게 늘어지고 지루하게 느낄 수도 있는 책입니다.


사실 저는 책보다는 영화로 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접해 보시길 권합니다. 그러고 나서 취향에 맞는다고 생각하면 책에 도전해 보는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히치하이커 시리즈는 영화화가 되었는데 비록 소설의 전반부 정도의 스토리로 내용을 축약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자칫 지루 할 수도 있는 긴 내용을 심플하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풍기는 병맛 느낌과 블랙 유머도 어느 정도 충분히 살리면서 이 시리즈의 분위기를 잘 표출했습니다. (책에서 중요한 요소로 설명하는 타월 같은 것도 영화에서 표현은 하고 있습니다.)


다만 마블 히어로물이나 트랜스포머같이 헐리우드 대작 SF의 화려한 CG와 액션신을 보려는 분들에게는 분명 혹평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영화입니다.


블랙유머, 한국식이라면 병맛을 충분히 즐기는 분이라면 추천입니다.


이미지 출처 : 씨네21


예고편 부터 상당히 병맛스럽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영화를 한번 다시 봐야겠군요. 너무 내용이 길어서 다 읽을 때쯤이면 앞 부분을 까먹게 만드는 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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