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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한 여름 밤의 기묘한 이야기. 여름 특집

연일 열대야가 계속되는 무더운 여름 밤입니다.

 

이번 주는 밤에도 PC 앞에만 앉아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입니다. 이런 무더운 날 보통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꼭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조금은 더위를 식히곤 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어쩌면 살아오면서 한가지씩은 기묘한 경험을 겪으셨을 듯 합니다. 제가 하려는 두 가지 이야기는 실제 이야기다 보니 만들어진 무서운 이야기 같은 반전이나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이야기가 주는 서늘함이 있으니 오늘은 제 이야기로 더위를 좀 식혀 보시기 바랍니다.

 

터프가이 이야기

 

첫 번째는 이야기는 제가 대학 3학년 여름 방학 무렵의 이야기 입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과 동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근처에 있던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같이 장례식장으로 조문을 가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평소 터프 한 언행과 남자다움을 풍기며 스스로 만들어 퍼트린 터프가이란 별명을 가진 친구였습니다. 항상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강건한 턱과 두상을 가지고 있어 복학생의 이미지를 물씬 풍겼습니다. 반면 저 역시 군대도 다녀오고 복학생이었지만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조금 콤플렉스이던 어려 보이는 외모로(세월이 흐른 지금은 어려 보이고 싶습니다. ㅡㅜ) 스트레스를 좀 받았습니다. 과제나 레포트로 밤을 새고 나면 수염이 덥수룩해지는 친구들과 달리 전 사실 30대 초반 까지는 면도를 거의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얼굴에 수염이 발달하지 않아서 수염 많은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상에서 면도가 가장 귀찮습니다. 어쨌든 이 친구는 자신의 터프 함을 자주 자랑하고 터프가이로 이미지메이킹 하면서 제게는 종종 여자같이 생겼다느니, 손이 너무 곱상해서 여자 손 이라느니 하면서 외모를 많이 지적하고 놀리곤 했던 친구라 사실 그 놈의 터프가이에게는 기분이 살짝 상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하튼 그 친구를 만나 부산 영락공원 입구에서 만난 시간은 이미 밤 9시가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따라 먹구름이 잔뜩 끼어 달빛도 없고 안개까지 자욱해서 몇 걸음 밖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터프가이답게 친구는 휘적휘적 앞장서서 영락공원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그때만 해도 영락공원 장례식장이 무척 가까운 곳 인줄 알았습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과 안개에 이슬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두 갈래 길 앞에서 길을 몰라 머뭇거리게 되었는데 오른편 길에서 불쑥 시커먼 형상이 나타나 터덜터덜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얼핏 보기에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처럼 보였습니다.

 

“영락공원 장례식장이 어딘가요?”

인적 하나 없는 곳에서 사람을 만났으니 반가운 마음에 제가 물어보았는데 그 아저씨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팔을 들어 손가락만 뒤로 했습니다. 자기가 걸어온 오른편 길을 .가르키는 듯 했습니다.

 

‘과묵한 아저씨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둘은 그 컴컴한 오른편 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이때까지는 장난도 치고 남자둘 이상 모이면 하는 여자 사람 이야기 하면서 떠들면서 꽤 그 길을 오래 걸었나 봅니다.

 

어느덧 비도 그치고 숨겨져 있던 달빛이 아주 잠깐 먹구름을 벗어났다 다시 숨었습니다. 신나게 이야기를 하며 걷던 저는 갑자기 조용해진 터프가이를 바라보았는데 무엇을 보았는지 표정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전 이 녀석이 장난을 치려는 줄 알고 그 녀석이 뚫어져라 보는 쪽은 쳐다보지 않으면서 “야 그러면 내가 속아서 쳐다 볼 것 같냐?” 라고 말하는 순간 터프가이는 후다닥 달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 야” 하고 제가 바라보니 사람이 놀라서 당황하고 몸이 굳어지는데도 달리려고 하는 경우, 몸이 말을 안 듣고 하면 어떻게 달리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터프가이는 발을 질질 끌며 뛰려고 노력하다 보니 몇 걸음 얼레벌레 뛰다가 깡총 뛰고 또 몇 걸음 가서 깡총 뛰는 모습이 마치 토끼 같더군요.

 

제가 뒤따라 뛰니 금방 따라잡을 정도로 제대로 뛰지도 못한 친구를 따라 잡고 “왜 그래” 하고 묻는 순간 달이 구름을 벗어났나 봅니다. 우리가 걷고 있던 길 주변이 갑자기 드러난 달빛에 반짝반짝 하는 수백 개의 물체들로 가득 찼습니다. 드디어 저도 보고 말았습니다. 그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체들은 모두 묘비였습니다.

 

 

낮이라면 이런 풍경이었을까요?

 

우리가 걸어왔던 길 양 옆은 공동묘지였던 것이었습니다. 모를 때는 그저 어둡고 긴 길이었는데 알고 나니 왜 그리 공포스럽던지요.

 

 

하지만 어쩐지 저는 터프가이의 얼굴을 다시 본 순간 공포에서 벗어났습니다. 언제나 남자다움을 강조하며 이른바 가오를 버리지 않았던 터프가이는 이순간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로 창백하게 질려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 온갖 강한 척을 다한 친구, 겁에 질려 있는 터프가이라니!. 무언지 모를 통쾌함이 공포를 걷어내 버렸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전 언제나 귀신의 존재 같은건 믿질 않는 성격이었는지라 공포심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야야 쫄지마 귀신이 어딨어. 걍 묘지야. 야 근데 너 오늘 뛰는 거 보니 완전 토끼던데 오늘부터 토끼소년이라 불러야 겠다.”

“뭐 그래도 터프가이? 이제 정신이 돌아오나 보네 그럼 우리 무서운 이야기 하면서 걸을까?”

“싫다고? 그럼 넌 오늘부터 토끼소년 하자. 뭐 그래도 터프가이? 이야 안되겠다 무서운 애기 하나 해야겠네 나 군대 있을 때…”

 

조금 심했나요? 그래도 저 밖에 의지할 사람이 없었는지 바짝 기대어 걷던 이 터프가이, 아니 토끼소년은 저 멀리 장례식장이 불빛이 보이자 다시 토끼처럼 뛰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너무 웃겨서 껄껄 웃으며 따라갔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이 와글거리는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겨우 생기가 살아난 모습입니다.

 

무사히 장례식장에 도착해서 조문을 하고 나온 과 동기들과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오는 길에 있었던 기묘한 모험담을 풀었는데 예상대로 “토끼소년” 이야기에 모두들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의 터프가이는 졸업할 때까지 터프가이 외에도 토끼소년이라는 다른 별명도 얻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친구는 토끼소년이라는 별명을 무척 싫어했지요.

 

“그런데 아까 그 입구에서 걸어오다 처음 만나는 왼편 길은 아주 조금만 올라가면 공원 내부 순환 버스 정류장인데 버스 타고 오지 왜 하필 그 길로 걸어 왔지?”


“아, 그 길로 온 아저씨가 이쪽길이라 알려줘서”


“그 쪽은 뒷문 쪽이고 원래 낮에도 혼자서는 사람이 잘 안 다니는 길인데 이 밤에 사람을 만났다고?”

 

그러고 보니 그 아저씨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너무 어두워서 터덜터덜 걷던 걸음걸이 때문에 아저씨라 생각했지만 아저씨인지 무언지 모를 그 사람은 우리에게 보통사람이라면 오싹해 할 그 무시무시한 길을 알려주었던 걸까요? 그러고 보니 사람이었던 건 맞긴 한 걸까요?


갑자기 그제야 저도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어둠 속의 눈동자

 

제가 군대에 있을 때의 이야기 입니다. 막 일병을 달았을 무렵 산속에 있는 통신소에 파견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12명 정도의 인원이 산속에 상주하며 경계근무를 2명씩 돌아가며 섰는데 그날 저와 상병 고참이 근무를 나갔습니다. 그런데 근무 나간 지 얼마 안되어 초소 앞 개활지를 지나 있는 숲 속에서 수상한 부스럭거림이 포착되었습니다. 이곳은 평소에 사람이라곤 전혀 없는 산속이다 보니 유난히 겁이 많던 그 고참은 갑자기 겁을 먹고 제게 확인해 보고 오라고 했습니다.

 

군대를 다녀온 분은 아시겠지만 최전방이 아니면 경계 근무 시에는 빈 탄창을 끼고 경계근무를 합니다. 물론 그곳은 GOP와 가깝다 보니 탄띠에는 공포탄 두발과 실탄 몇 발이 든 탄창을 가지고는 나왔지만 꽁꽁 테잎으로 감아서 봉인되어 있어서 별일 아닌 일에 봉인을 뜯었다가는 영창을 갈지도 모릅니다. 결국 빈 총을 든 저는 주춤 주춤 숲으로 다가서서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화랑(암구어)” 하고 외쳤는데 움직임이 딱 그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어두운 숲 속에서 기절할 만큼 놀랄 것을 보고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슬금슬금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것은 컴컴한 숲 속에서 빛나는 안광을 봤기 때문 입니다.

 

이런 위에서 내려다 보는 느낌?

 

제 이야기를 들은 고참은 즉시 소대장인 소위를 전화로 호출했습니다. 임관한지 얼마 안된 소대장은 헐레벌떡 초소까지 뛰어올라왔습니다.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러는 동안에도 고참은 숲 속에 눈을 떼지 못하고 빈 총일 지 언정, 잔뜩 긴장해서 지향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저도 언제라도 봉인을 뜯을 수 있도록 탄창을 더듬어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 뭐가 있다는 거야?”

겁이 없는 건지 단순한 건지 소대장은 랜턴을 비추며 저벅저벅 숲 쪽으로 다가섰는데 갑자기 그것이 숲 속에서 후다다닥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격렬하게 나뭇가지를 꺽으며 왼편 산비탈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내려가 버렸습니다. 너무 빨라서 달려갔다기 보다 산비탈을 굴러갔다는 느낌이랄까요.

나중에 낮에 보니 그 주변 허리 높이 즈음에 풀과 나뭇가지가 모두 꺾여 달려간 길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소대장도 너무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3명 다 한참동안이나 아무런 말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소대장은 그것을 노루로 몰아가 버리려 했지만 직접 안광을 본 제 입장에서 절대 노루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는 곰이 아닐까 했지만 그렇게 체격이 좋은 느낌도 아니었다고 할까요? 그리고 제가 본 안광은 평범한 사람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었습니다. 도대체 그날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후로 한동안 온갖 설이 있었습니다. 가까운 북파공작원 부대에서 침투 훈련을 한 것이라는 것부터 나중에는 돌연변이 짬 타이거(군대에서 남긴 잔반을 풍족하게 먹고 엄청나게 덩치가 거대해진 고양이들을 일컫는 말)라는 설, 외계인 설까지 한동안 소대의 화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도 때때로 그 안광이 생각나면 궁금해 집니다. 그것은 도대체 어떤 생명체 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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