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추석 전후하여 사정상 긴 휴가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낮에도 종종 TV를 보게 되는데 낮에 하는 SBS의 아트 훔쳐보기라는 프로에서 에드가르 드가라는 프랑스 화가의 여성 혐오증에 대해 다룬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미술에는 사실 그다지 조예가 있지 못하여 이 화가에 대해서는 마치 사진을 찍은 듯한 상세한 소묘 기법과 발레리나 나 무희 같은 여성들을 모에하여 즐겨 그린 작가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트 훔쳐보기" 라는 SBS의 방송을 보니 드가는 여성 혐오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Edgar De Gas(1834~1917), 영어 식으로 에드가 드가로도 불립니다.
그러한 주장의 근거로 그의 그림들에 여성의 얼굴들이 전혀 예쁘지 않게 묘사된 것과 대다수의 발레리나을 그린 그림의 여성 얼굴이 뭉개진 듯 보이거나 기괴한 부분을 들었습니다. 또 유명 작가 부부를 그리며 그의 부인을 예쁘게 그리지 않아 작가가 화를 내며 부인 얼굴이 있는 부분의 그림을 찢어버린 것을 예로 들며 드가의 여성 혐오증을 설명한 프로였습니다.
인터뷰을 한 인물도 그러한 견해를 뒷받침 해주는 이야기를 해 주며 그 근거에 대해 무게를 더 실어 주었습니다.
즉 스스로 여성을 혐오하고 고독을 자처하여 예술가로서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프로에 따르면 드가가 여성 혐오를 가지게 된 부분은 이국적인 미모의 어머니가 아버지의 동생, 즉 드가의 삼촌과 불륜 관계를 가진 것에 기인 합니다. 더구나 드가에 대해 찾아본 글들 중에서 그의 아버지는 그런 사실을 알고도 부인의 미모를 사랑하여 묵인 했다고 하는 군요. 어머니의 부정과 그 사실을 묵인하는 아버지,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아들의 심정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갈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드가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근래의 TV 프로들, 대표적으로 서프라이즈와 같은 프로처럼 꽤나 자극적인 소재의 단편적인 부분들의 이야기에 집중하여 자극적 소재로 어떤 인물이나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경우가 워낙 많기에 실제로 그럴까? 하는 생각에 드가의 그림들을 찾아서 한번 보았습니다.
이 그림에서 뒤편에 검은 남자는 무대에서 여자를 고르는 남자를 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당시에는 대다수를 차지 하던 춤을 추는 가난한 집 딸들에 대해 후원이란 명목으로 몹쓸 짓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실제로 몇 점의 그림들을 보니 특히 발레리나 등이 등장하는 작품들에서 여성의 얼굴은 또렷하지 않고 무언가 뭉개진 듯한 느낌마저 줍니다. 물론 아트 훔쳐보기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쁘지도 않았습니다.
이 그림에서도 그런 불순한 후원자 들이 묘사된 것일까요?
어쩌면 이 정도면 드가는 여성 혐오증이 있는게 맞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트 훔쳐보기에서 주장하는 대로 그는 정말 의도적으로 여성에 대한 혐오로 여성들의 얼굴을 이렇게 못 생기거나 흐릿하게 그렸던 걸까요? 그렇다면 반대로 왜 이렇게 무희나 여성들을 다룬 그림을 많이 그렸을까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그래서 더 찾아보니 이런 그림도 있었습니다. 이 그림을 보면 그가 모든 여성들을 못생기게 그린 것만은 아닌 듯 합니다.
그가 평생을 친구로 지냈다는 여류화가의 그림도 처음에는 역시 일부러 못생기게 그린 여성 그림 중 하나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여류화가가 스스로 그린 자화상을 보면 실제로 보이는 인물의 생김새를 그대로 가져다 그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드가는 어쩌면 여성들의 얼굴을 그저 자기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던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나서 이 꽃을 든 무희를 그린 그림을 다시 보고 나니 에드가르 드가가 30대부터 시력이 지속적으로 나빠져서 말년에는 거의 실명에 가까운 상태였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근시가 좀 심한 편인데 이 그림을 보면 마치 제가 안경을 벗고 공연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실제로 안경을 벗고 본다면 저라도 저런 형태의 빛 번짐이나 얼굴 윤곽밖에 보이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저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건지 아래 링크의 글에서처럼 드가의 시력과 그로 인해 색이 과하게 표현되는 부분에 대한 글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http://blog.naver.com/guarneri?Redirect=Log&logNo=30052029903
이 그림의 여성의 얼굴도 다시 확대해 보니 인물들의 얼굴의 흐릿함 이나 빛 번짐 현상 같은 표현으로 다가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보려고 생각 해서 일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정말 혐오하는 대상이라면 아무리 생계를 위해 그림을 그리더라도 저렇게 생동감 있고 빛나는 장면들을 그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가 그린 작품에는 또 유난히 여성들이 많습니다.
또 다르게 보자면 드가가 발레리나나 무희들에게서 포착하고 집중한 부분은 얼굴이 아니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생동감 있는 발레리나의 동작들과 화려한 의상들에 빠져들어 그들의 얼굴은 아무래도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드가가 여성을 혐오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 입니다. 다만 내성적인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다가서는 것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그런 것들에 서툰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그런 경향을 보이고 실제로 드가는 소수의 지인들과의 조용한 교류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필자의 성격도 약간 내성적이고 많은 사람들을 사귀고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소수의 지인과 가족들 정도의 좁은 교류만으로 충분한 성격이다 보니 어느 정도 많은 공감이 가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 "아트 훔쳐보기"라는 프로그램을 비난 하려고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드가가 여성 혐오증이라는 인식은 드가 생전에도 이미 있었고 이후로도 분명히 드가에 대한 인식의 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TV 방송에서는 거장의 여성 혐오증을 다루는게 분명히 관심을 끄는데 효과적이기 때문 입니다. 저 같은 미술의 문외한도 이 방송을 보지 않았다면 드가의 그림을 이렇게 열심히 찾아 보지는 않았을 테니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방송 프로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고 봅니다.
어쩌면 드가는 여성 혐오라기 보다 어머니의 부정에서 기인한 인간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방송 말미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를 최소화 하면서 얻은 "고독"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지속하는 원동력으로 삼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술가들의 생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고독"이나 스스로의 괴팍함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운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의 오디션 프로들에서도 나이가 어리지만 인생의 질곡을 겪은 출연자들의 목소리에서 더 나은 기교를 가진 친구들 보다 어떤 공감과 짙은 감동이 더 느껴지는 것처럼 음악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그런 인생의 질곡이나 고통이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슈퍼스타K가 방송되는 날이군요. 아내와 함께 즐겨보는 프로이고 오늘도 음악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이만 글을 맺고 얼른 보러가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