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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투어리즘 제주 알뜨르 비행장, 섯알오름

제주에는 다크투어리즘 여행 코스가 있습니다. 다크투어리즘이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 재해 현장을 둘러보는 여행을 말합니다.

 

제가 다녀온 곳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알뜨르 비행장과 4.3 사건 이후 어이없이 벌어진 양민 학살의 장소인 섯알오름입니다.

 

제주에 왔으니 그냥 관광지만 둘러보고 갈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현대사 교육의 측면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둘째 날 코스에 이곳을 잡았습니다. 알뜨랑 비행장과 섯알 오름은 간단하게 주차장과 기념 조형물 정도만 있으나 남아있는 격납고와 추모비 등을 통해서 조금은 당시의 아픈 역사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일제 수난기에 지어진 알뜨르 비행장과 제주역사의 큰 아픔인 4.3 항쟁의 여파로 6.25 개전 후에 인근 주민과 예비 검속자들을 합법적인 절차없이 학살하는 일이 있었던 섯알오름의 학살터는 올레길 코스로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알뜨르는 제주 방언으로 아래 벌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군요.

 

다크투어리즘 제주 알뜨르 비행장, 섯알오름

알뜨랑 비행장 파랑새 조형물

 

산방산 전경

 

이날 오후 여행은 제주도 서 남부에 있는 곳들이었는데 재미있게도 아래 사진에 보이는 산방산이 어디를 가도 시야에 보였습니다. 이번 여행 코스에는 잡지 않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 주변이 다 평평한 지형이라 저렇게 산방산과 우뚝 솟아 구름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이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알뜨랑 비행장 주차장 소녀상

 

주차장이 무척 넓은데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서 주차하기에는 편리합니다. 화장실 외 별도의 다른 편의 시설은 전혀 없으니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조형물인 파랑새는 쪼갠 대나무를 엮어 만든 9m 높이의 대형 조형물입니다. 파랑새를 안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습니다. 대나무는 동학 농민군들이 사용했던 죽창에서 영감을 얻은 재료이지만 작가인 최평곤 씨의 표현은 둥글고 긴 원통형으로 평화의 메시지를 나타내고자 했다고 합니다.

 

알뜨랑의 제로센 안내문

 

알뜨르 비행장은 일제가 중국 대륙의 남경 폭격을 위해 1926년부터 10년 동안 건설한 비행장입니다.

 

패전으로 기울던 1944년 미국의 일본 본토 진공 루트 7개를 예상하고 만들어진 일제의 본토 방어 계획중에서 가미카제에 쓰일 전투기를 보호하기 위해 격납고 벙커를 지었으며 콘크리트 구조물로 38개 중 20개가 거의 온전하게 남아있습니다.

 

알뜨랑 비행장 격납고 안내문

 

다크투어리즘 제주 알뜨르 비행장, 섯알오름

 

비행기를 숨기던 격납고 중 한 곳에는 제로센을 실물크기로 형상화한 작품이 있습니다. 박경훈, 강문석 작가가 만든 "알뜨르에서 아시아를 보다" 출품작 중 하나라고 합니다.

 

알뜨랑 비행장 제로센 조형물1

 

알뜨랑 비행장 격납고

 

지금은 논 밭인 벌판 여기저기 남아있는 벙커가 일제가 벌인 태평양 전쟁의 잔상을 남겨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알뜨랑 비행장 격납고1

 

알뜨랑 비행장 격납고들

 

알뜨랑 비행장 격납고2

 

알뜨랑 비행장 주차장

 

이 알뜨르 비행장 바로 옆에 섯알오름 예비검속 학살 장소가 있습니다.

 

다크투어리즘 안내판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이 발발하자 당시 이승만 정부는 후방에서 북한군과 결탁할 수 있다는 구실로 예비검속 령을 내렸는데 이 예비검속령으로 4,3 사건이 있었던 여파로 제주에서만 1,000여명 이 단속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실적을 채우기 위한 것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즉 이승만 정권이 생각하기에 이른바 빨갱이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미리 체포하여 산이나 절간과 같이 특정한 장소에 수용해 두라는 지시였습니다.

 

대부분 주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강제 연행되어 수용되었는데 전선이 낙동강 지역까지 밀리게 되자 예비검속된 250명을 적법한 재판이나 절차 없이 막무가내로 학살한 장소가 바로 이곳입니다.

 

예비검속 섯알오름 학살터 안내판

 

유족들은 시신이나마 수습하려 했으나 당시 군은 이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유족들에게조차 위협을 가하는 횡포를 부렸다고 합니다. 정말 억울한 죽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60년 4.19 이후 진상조사, 명예 회복 탄원서를 제출하였으나 1961년 군사정권하에서는 경찰에 의해서 기존에 만들어졌던 묘지마저 해체하고 위령비도 파괴하였다고 합니다. 2007년에야 국가지원에 의해 정비 사업을 시행하고 2015년 대법원의 판결로 67년 만에 희생자들은 불명예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연을 지닌 예비검속 섯알 오름 학살 터는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한국 현대사의 가슴 아픈 흔적이 남은 장소입니다.

 

산방산

 

이 모든 아픔의 시대와 역사를 산방산은 내려다보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섯알오름 학살터 추모비

 

증거인멸의 장소 섯알오름

 

무고한 제주 도민들을 대상으로 이런 대학살을 벌이고 증거인멸을 위해서 유품들을 태웠던 장소에도 비가 서 있습니다.

 

불법주륙기 비석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추모비

 

지금이라도 추모비가 세워지고 사실이 밝혀져서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들을 저지른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은 도대체 벌을 받기나 했을지 답답한 마음이 듭니다.

 

학살터 추모석

 

탄약고 터



이 학살 터는 구덩이는 원래는 일제시대 탄약고로 쓰이던 장소인데 미군의 폭격으로 파괴되어 호가 생긴 이곳에서 잔학한 학살을 벌이고 시체를 밀어 넣었다고 합니다.

 

탄약고 터

 

추모비

 

희생자분들이 지금이라도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푸시고 영면하길 기원해 봅니다.

 

고사포 진지

 

이 학살터 뒤 편에는 일제 패망 시기에 고사포 진지 터가 남아잇습니다. 학살 터 뒤편 산의 정상에 있고 안내문도 있지만 사람들이 찾지 않아 인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은 여기까지 오지는 않는 모양입니다.

 

역사의 아픔이 있는 제주 알뜨르 비행장과 섯알오름 예비검속 학살 터를 아이들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아픔의 역사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를 좋아하고 즐겨 읽는 제 입장에서는 이런 일들은 꼭 한국이 아니라도 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언제나 반복되어 왔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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