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주변에서 아이들 친구들이 하나 둘 개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댕댕이 키우자는 아이들의 땡강을 주말마다 들어야 했습니다. 저야 당연히 동물 키우는 걸 좋아하지만, 소싯적에 개나 고양이를 키워봐서 댕댕이를 키우기 위해 들어가는 노력과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진다는 것의 어려움을 충분히 알고 있어서 선뜻 허락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지금에야 키우기만 하면 아이들이 자신이 돌보겠다고 하지만 결국은 집에 있는 아이들 엄마의 몫이 될 거고 결정적으로 아이들 엄마는 동물 털 알레르기가 있습니다. 사실 이 알레르기에 대한 걱정과 엄마의 일거리가 늘어날게 뻔히 보이는 게 애완동물을 키우기 힘든 가장 큰 난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동물농장 장기 시청자이기도 하고 원체 대부분 동물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저 혼자 좋다고 동물을 키우겠다 결정하기에는 생각할게 많은 가장이기도 해서입니다.
이렇게 어른이 되는 것인가 봅니다. 옛날 같았으면 그냥 분양받아왔을 텐데...
그런데 어느 순간 평소에도 파충류를 너무 사랑하던 둘째가 어느 순간 애완용 도마뱀에 꽂혀 버렸습니다. 털도 없고 알레르기도 없지 않냐는 동물 키우기 불가에 맞서는 논리에는 정연하지만 사실 제 동물 사랑은 편협하게도 포유류에 한정되어 있어 심리적인 거부감이 컸습니다.
그리고 아내도 파충류는 너무 무서워하기에 "생각해 보자" 하고는 차일 피일 미루어 왔습니다.
그런데 결국 이리저리 애완용 도마뱀을 검색해 보던 아내가 마음을 바꾸어 먹었습니다. 자꾸 보다 보니 귀여운 면도 있고 키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아직 제 마음은 키울 수 있을까? 정도가 아니라 과연 파충류에 내가 손을 댈 수나 있을까? 하는 의문의 단계였지만 안방마님이 마음의 결정을 내렸으니 도마뱀을 분양받기로 했습니다.
지하철 성균관대역 근처에 "뉴런디엠지X거미랑"이라는 독특한 상호의 희귀 애완동물을 취급하는 곳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분양받으려는 도마뱀의 조건은 키우는 과정이나 환경이 까다롭지 않고 쉬울것, 그리고 밀웜이나 귀뚜라미 같은 곤충을 먹이지 않아도 될 것이었습니다. 이 먹이 곤충을 보관하던 집에 놀러 갔다가 귀뚜라미나 밀웜이 마구 튀어나오는 탈출극을 아내가 직접 목격했기에 이 조건은 변경이 불가능한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저도 벌레 못 만집니다... ㅡㅡ;
우리가 방문한 뉴런 디엠지의 경우 뱀과 거북이를 포함한 파충류, 거미와 같이 평소에 찾아보기 힘든 희귀 애완동물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는데 의외로 최근에 이런 매장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실 애완 도마뱀 시장에서도 카멜레온 같은 인기 파충류는 몸값 자체가 다릅니다. 아마도 우리가 분양받을 수 있는, 아니 대부분 분양가를 고려한다면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크레소티드 게코도 분양 선택지에 가장 많지 않을까 합니다.
일단 이렇게 인상 무서운 아이는 제가 엄두가 안 나서 SKIP, 몸값도 비싸지만 인상 자체가 너무 무서워 보이더라고요.
사실 이때만 해도 아예 핸들링 할 생각도 없었지만 혹시 사육장 탈출이라도 한다면 잡아야 할 텐데 외모 자체가 도저히 손댈 엄두가 안납니다.
밀웜들이 꿈틀거리는 걸 보는 건 악몽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자도 사실 벌레 싫어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집에서 벌레 나타나면 잡아야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지만... 아들이 좀 더 크면 맡겨 볼렵니다.
다양한 취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북이까지는 공감이 가는데 거미와 뱀은 아직도 제게는 허용범위 밖입니다.
사육장도 골랐습니다. 잘 몰라서 추천받은 대로 구매했습니다. 탈피를 할 때와 숨을 곳 제공에 도움이 된다는 코르크 보드도 샀는데 이건 잘 산 것 같습니다. 며칠 후 이 코르크에 탈피 흔적이 있는 걸 목격했거든요.
이름은 용용이라 지었습니다. 사실 이 이름으로 안착하기까지 개코, 지코, 코모, 크용이 등 다양한 이름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용용이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속 눈썹처럼 보이는 돌기와 갈라지지 않은 빨간 작은 혀가 어쩌면 도마뱀도 귀여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슈퍼푸드를 급여하는 날... 난리가 났습니다. 저는 맨손으로 핸들링 할 자신이 없어서 비닐장갑을 꼈는데 이 활달한 녀석이 제 어께까지 쑥쑥 타고 기어 올라온 겁니다. 그리고 점프는 어찌 그렇게 잘 하는지... 비명까지 지르진 않았는데 식은땀이 납니다. 그래도 어찌어찌 살짝 잡고 슈퍼푸드를 먹여보니... 아 이 녀석 빨간혀로 낼름 햝아먹는 게 꼭 아기 새에게 이유식 급여 할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듭니다. 아 따지고 보면 진화적으로 포유류보다는 가까운 친척인가요?
그렇게 우여곡절 속에서 슈퍼푸드 급여를 한 번하고 나니 어느 순간부터는 믿을 수 없지만 이 녀석이 귀엽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오픈마켓에서 밥그릇을 사고, 유목을 좋아한다고 해서 유목도 주문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은 잘 키우고 싶어서 이렇게 책까지 사게 되는군요. 아들과 같이 읽어보려 주문했습니다.
크레소티드 게코는 눈 위의 특징적인 부속물로 인해 눈썹/볏도마뱀붙이라 불리며 원래는 뉴칼레도니아섬 남부와 부속 섬에 서식하는 도마뱀붙이의 일종으로 국내에서는 영명인 '크레스티드 게코'나 줄임말인 '크레'로 부르기도 합니다. 원산지에서 멸종한 줄 알고 있다가 태풍이 풀고 난 어느 날 다시 발견이 된 종이기도 합니다.
곤충을 먹일 필요 없이 슈퍼푸드만으로도 잘 자라며 23~25도 사이 정도 온도면 특별히 온도를 신경 쓸 필요 없어서 키우기가 쉬어 애완용 개체로 많이 퍼졌다고 합니다. 몸의 색상과 무늬의 변화에 따른 여러 폴리모프들이 다양해서 더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유목과 밥그릇을 넣고 보니 사육장이 좁아 보입니다. 조만간에 사육장도 좀 확대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이 유목은 넣고 나니 크레소티드 게코가 많은 시간을 이 유목 위에서 보낼 정도라서 잘 샀다는 생각이 듭니다.
슈퍼푸드를 이렇게 걸쭉하게 물에 타고 부족하기 쉬운 칼슘제를 조금 첨가해서 주사기로 코와 입 부근에 짜주면 날름 날름 잘 핥아 먹습니다. 거식하는 개체도 있나 보던데 우리 집의 용용이는 늘 잘 받아먹습니다.
이 슈퍼푸드는 양을 보았을 때 어쩌면 몇 달을 먹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개체가 크면서 먹는 양도 늘어나겠죠?
이렇게 핸들링도 첫날부터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도마뱀도 귀여울 수 있구나 하고, 기존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크레소티드 게코는 생각보다 수명이 긴 편이라서 사육 환경에서 10년 또는 그보다 더 길게도 산다고 합니다.
저처럼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아이들 애완동물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비교적 키우기 쉬운 편이고 귀염성도 있는 크레소티 게코도 고려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