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의 주인공은 지난 이야기의 사랑때문에 왕위를 버린 윈저공(에드워드 8세)의 동생인 조지 6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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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6 - [History/Movie/Drama] - 사랑때문에 왕위를 버린 에드워드8세(윈저공), 왕이야기 7
정식 이름은 앨버트 프레데릭 아서 조지 윈저 이며 재위 기간은 1936년 12월 14일에서 1952년 2월 6일 입니다.
재위기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세계 2차대전이라는 전시의 어려운 시기에 영국의 왕으로써 의무를 다하고자 노력하였고 그 중후함과 성실함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왕 입니다.
현재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아버지 입니다. 왕자 시절에는 앨버트 왕자로 불리었습니다.
어린시절
사진상의 외모는 형인 윈저공과 닮은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만 사교적이고 자유분방한 형과는 달리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부터 서로 다른 성격이 묻어나오는 느낌입니다.
잘생기고 말도 잘하고 사교적인 형(이른바 프린스 차밍 ?) 과는 달리 그는 어린시절 상대적으로 형을 귀여워한 유모의 방치로 인해 생긴 위염을 앓고 있었고 엄격한 아버지로 인해 왼손잡이였지만 오른손을 쓰도록 강제되었습니다. 안짱 다리를 부목을 대서 교정받아야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유아시절의 강압적인 경험 때문인지 그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을 해야 할때 말을 심하게 더듬는 증세를 가지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자신감 넘치는 형과는 달리 왕립 해군 사관학교에 재학중일때는 다른생도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고 성적도 최하위권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형과 늘 비교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로맨스와 결혼
하지만 그런 그도 형과 같이 로맨틱한 일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교 파티에서 만난 스코틀랜드 귀족가문의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에게 첫눈에 반하여 세번의 청혼을 하였는데 엘리자베스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도덕적인 분위기인 조지5세의 왕실이 자신의 자유로운 생활을 제약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두 번을 거절 하였습니다.
하지만 앨버트는 "엘리자베스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앨버트 왕자의 모친인 메리 왕비까지 나서서 그녀를 설득하여 결국 두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엄격하기로 유명했던 조지5세도 이 며느리에게만은 약해서 자상한 시아버지가 되었다고 하니 그녀만의 사람을 포용하는 매력이 있나 봅니다.
엘리자베스 보우스 라이언 왕비
즉위때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자녀도 없던 형과는 달리 앨버트 왕자는 부인인 엘리자베스를 매우 사랑한것은 물론이고 엄격한 분위기의 집안과 유모에게 맡겨져 길러져서 자신은 느껴보지 못했던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고 노력한 모범적인 가장이었습니다.
현재의 엘리자베스 여왕(장녀)과 마가렛 공주(차녀)와 함께한 가족 사진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
그의 공식적인 업무는 부친을 대리하여 탄광, 철도, 공장을 방문하여 노동자층과 유대를 형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도 열심히 해서 노동자의 복지 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외에는 사냥, 낚시, 테니스를 즐기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데 많은 관심을 가진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했던 왕자였습니다. 나중에 자신이 왕이 되지 않았다면 시골에서 개를 키우며 여생을 보내고 싶었다는 말을 남긴것만 봐도 참 소박한 성격의 왕 입니다.
앨버트 왕자는 말을 더듬는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보니 공식적인 자리를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조지 5세는 이 둘째 아들의 말더듬을 교정하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라이오넬 로그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라이오넬 로그는 이후 앨버트 왕자의 곁을 지키며 후에 왕이 된 뒤에도 그의 말을 더듬는 증세를 교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신분을 초월한 우정을 나누게 됩니다.
라이오넬 로그
이전글에서 언급하였듯 조지6세와 라이오넬 로그의 이야기는
"킹스 스피치" 라는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왕이 되다
하지만 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아버지로써의 삶을 추구하는 앨버트 왕자에게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는데 바로 사랑때문에 전격적으로 퇴위를 해버린 형 윈저공(에드워드 8세) 때문 입니다.
저번 이야기에서 다루었듯이 사랑을위해 왕위를 버린 로맨티스트로 볼 수도 있습니다만 이번 이야기에서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대영제국의 입헌군주로서의 무거운 의무를 개인적인 사랑때문에 무책임하게 던져버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결국 공식행사를 싫어하던 앨버트왕자는 평생 공식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조지6세로 즉위하게 됩니다.
건강하고 젊은나이에 왕이 되었던 형이였기에 자신이 왕이 된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해본적이 없던 조지6세는 왕위계승자로서의 수업을 전혀 받지 못해, 3주간의 간단한 준비만을 거친 후 즉위하여 왕의로써의 공식적인 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그는 라이오넬 로그와 함께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말더듬 증세를 고치려 하였고 성실하고 끈기있게 노력하여 많은 개선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게2차 대전과 존경 받는 왕
당시 유럽에서 파시즘과 나치즘이 팽배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독일의 히틀러가 가장 위협적인 존재가 되어 자칫 전쟁의 조짐이 보이자 조지6세는 국민을 1차세계 대전때의 고통속으로 몰아넣을수 없다는 생각에 처음에는 체임벌린 수상을 지지하여 평화적인 방법을 모색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히틀러가 끊임없는 영토에 대한 탐욕으로 결국 폴란드를 침공하자 라디오 방송을 통해 영국 및 영국 연방 전역에 전쟁선포의 연설을 하게 됩니다. 2차세계 대전의 시작을 알리는 이 유명한 연설은 말더듬이 왕과 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의 노력의 합작품이기도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 앞에 높인 이 암울한 시간이 어쩌면 역사의 가장 중요한 시기가 될지도 모릅니다. 저는 오늘 이 땅과 해외에 나가 있는 영국 국민들에게 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 이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방문하여 한 명 한 명에게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은 심정 입니다.... 중략...
이 땅의 모든 국민 여러분, 멀리 해외에서 듣고 계신 국민 여러분, 마음을 모아 주십시오. 침착하면서 결연한 자세로 다 함께 고난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이후에도 전시의 여러 연설을 통해 영국국민에게 전시를 견뎌 나가는 힘과 용기를 주었고 버킹검 궁에까지 독일군의 폭격으로 인한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런던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 중 조지6세는 곳곳의 전장을 방문하며 영국군을 격려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전에는 진중을 방문하여 병사들을 만나 격려하였습니다.
장녀인 엘리자베스 공주(현 엘리자베스 영국여왕)는 1945년 20살이 되자 여자국방군에 입대하여 구호품전달서비스부서에 배속됩니다. 나중에는 전투 지원 업무인 탄약등을 운반하는 군용트럭을 모는 운전사로 복무하여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보여주었습니다.
조지 6세는 전쟁이 끝난 후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시 흑인들과의 악수를 막던 백인 경호원들을 게슈타포라 표현하고 분노할만큼 깨어있는 정신을 가진 왕이기도 했습니다.
입헌 군주로서 행한 왕과 왕실의 노력은 영국인들에게 왕과 왕실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지 않을수 없는것 같습니다.
현 영국 여왕인 엘리자베스2세의 즉위모습
형의 갑작스런 퇴위로 엉겁결에 왕위를 물려받은 이 성실하고 끈기를 가진 말더듬이 왕은, 끊임 없는 노력으로 이를 극복하여 국민들을 단합시키고 용기를 주는 많은 연설을 행하였고 1952년 전쟁의 스트레스를 달래려던 흡연으로 인한 폐암으로 사망할때까지 많은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왕 이었습니다.
-뱀다리-
이전 이야기에서 윈저공을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로맨티스트로 표현하였는데 이번글에서는 영국왕의 책무를 저버린 무책임한 사람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생각의 변화가 있어서가 아니라 보는 관점에 따라 한 인물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네이버 이미지
참고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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