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History & Story of Kings

제 양공, 먼저 인간이 되었어야... 왕 이야기 11

좀 오랜만의 왕 이야기 입니다.

그 동안 너무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많은 자료를 읽고 검증도 해봐야 하는 왕 이야기를 쓰기가 어려웠습니다. 좋아하는 주제다 보니 일단 시작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 매번 글이 너무 무겁고 길어지다 보니 쓸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나 할까요?

그럼 오랜만의 왕 이야기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춘추시대의 최초의 패자에 올랐던 제 환공의 선군이자 형이었던 제 양공 입니다.  원래는 이 글의 다음 왕 이야기에서 다룰 제 환공에 대한 글의 일부분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길어지다 보니 글을 따로 분리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패자라면 지배력이 약해진 주나라를 대신하여 제후국들과 회맹을 통해 맹주로써 그 우두머리 역할을 했던 제후국의 군주를 말합니다. 제 환공, 진(晉) 문공, 초 장왕,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이 일반적으로 춘추5패에 들어가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진(秦) 목공, 송 양공, 오나라 부차, 또는 정 장공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제 양공

춘추5패와 전국7웅

 

 

이 춘추 오패 중에 최초의 패자이자 으뜸으로 평가 받는 제 환공의 원래 이름은 소백으로 아버지인 제 희공의 3남 이었습니다. 희공 사후 군위는 희공의 장남이었던 양공(이름은 제아)이 물려받았습니다. 양공 뿐만 아니라 위로 형인 공자 규가 있어 정상적으로는 군위를 계승할 가능성이 희박하였지만 제 환공은 운명의 흐름과 자신의 능력으로 결국 제나라 군위를 얻게 됩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선군 이면서 형인 제 양공의 이야기를 다루어 보려 합니다.

 

 

제 양공의 업적과 무도함

 

희공의 장남으로 군위를 계승 했던 양공은 재위기간 초에 제나라의 강대해진 국력과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재능에 힘입어 위나라, 노나라, 정나라를 공격하거나 외교적으로 굴복 시켰었고 제나라와 원수 지간이었던 기나라를 멸망 시켜 병합하는 업적을 이뤘습니다. 

 

 

이러한 업적으로 제양공은 정 장공 사후의 힘의 공백기에 다른 제후국들을 제치고 제나라를 강대국으로 우뚝 서게 만든 업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양공은 성정이 거칠어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일들이 잦았고 자신의 친 동생인 문강과 세자 때 부터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 왔는데 이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다행히 문강이 노나라 환공에게 시집을 가면서 이러한 부적절한 관계와 추문에서 벗어나는가 했는데 문강 역시 오빠를 잊지 못하여 제 양공이 군위에 오른 몇 년 후 노 환공이 양공의 주나라 황실과의 혼인을 진행하는 일로 초청을 받아 제나라를 방문 할 때 자신도 친정을 방문하고 싶다고 조르면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오랜 만에 양공과 재회한 문강은 노 환공의 눈을 피해 오빠인 양공과 다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습니다. 이를 노 환공이 눈치채고 "군주를 초청해 놓고 부인을 욕보인 무도한 자"의 손아귀를 우선 벗어나려 도착한지 하루 만에 귀국하겠다고 합니다. 노 환공이 귀국하면 자신의 치부를 만 천하에 그대로 드러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양공은 환송 연을 베풀겠다고 하여 거절하는 노 환공을 억지로 초청하여 술에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힘이 장사이던 팽생으로 하여금 술 취한 노환공을 부축하는 척 하게 하여 틈을 타서 힘껏 껴안아 갈비뼈를 부스러뜨려 죽이게 합니다. 이런 콩가루 같은... 제나라와 같은 유서 깊은 제후국의 군주의 행동이라 차마 말하기 어려운 망나니 같은 짓들이 숨기려 한다고 숨길 수가 있는 일이 아니어서 노환공의 뒤를 이은 노 장공은 부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나라는 강대국이었고 쉽게 전쟁으로 굴복 시킬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기에 결국 신하들의 간언을 받아들인 노 장공은 일단 제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노 환공의 죽음의 원인을 따져 물었고 이대로 은근 슬쩍 넘어가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제 양공은 팽생에게 죄를 뒤집어 씌어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신속하게 죽여서 그 목을 노나라로 보냅니다.

 

한편 친 오빠와의 불륜으로 남편을 죽게 만든 문강은 자신의 죄가 두려워 노나라로 가지 못하고 노나라와 제나라 사이의 국경인 작 땅에 머물 수 있도록 아들인 노 장공에게 부탁합니다. 노 장공도 아버지인 노 환공의 죽음에 어머니인 문강의 죄가 있음을 알고 있었고 문강이 노나라로 귀국하면 어머니인 문강을 자신의 손으로 단죄해야 할지도 모르기에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양공의 위신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양공은 이런 자신의 폐륜적인 부분을 희석시키고자 마침 정변이 일어난 정나라의 군위를 바로 잡음으로써 대의를 아는 군주로 이미지 변신을 꾀했습니다. 당시 정나라에서는 정변으로 공자 미가 군위를 차지하였는데 양공은 정나라와 친교를 맺고자 한다는 모략으로 회견을 요청한 뒤 회견에 응한 공자 미와 정나라의 군신을 모두 죽여서 정나라의 군위를 바로잡았다는 명분을 얻었습니다. 그 후에는 선대의 원수였던 기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에 병합시키는데 성공하여 대외적으로도 강력한 제나라의 위용을 과시함 으로서 명망을 얻었습니다.

 

이만하면 군주의 위신을 세웠다고 생각한 양공은 기나라를 멸망시킨 후 노나라 국경을 따라 이동하면서 문강을 불렀고 문강 역시 오빠의 부름에 한달음에 달려와서 이 부끄러움을 모르는 남매간에 부적절한 관계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기나라를 멸망시킨 위세를 이용해 노 장공을 불러서 양공의 갓 돌을 넘은 딸과 약혼을 시킵니다. 노 장공으로써는 아버지의 원수와 어머니가 한 처소에 자는 것을 보는 것도 피를 토할 만큼 분한 일인데 갓 돌이 지난 원수의 딸과 혼인하라는 강요에 어이가 없었지만 현명한 노 장공은 이 수모를 잘 참아내고 원한을 마음 속 깊이 잘 숨겨 둡니다.

 

양공은 이제 거리낄 것 없이 문강을 방문하거나 때때로 제나라 도성으로 불러들여 잠자리를 같이 하는 등 스스로 부도덕함을 만천하에 공개하고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나름은 사생활과 대외적인 군주로서의 위신과 역할을 분리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무도하고 인간으로써의 최소한의 법도도 모르는 양공은 정치적, 군사적 재능만은 뛰어나서 군위에서 쫓겨나 망명 중이던 위 혜공을 복위 시켜서 위나라 마저 제나라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했습니다. 결국 주변 제후국들을 부추겨서 위나라를 같이 공격하였는데 위나라의 군주는 당시 명목상으로는 제나라와 위나라의 종주국인 주나라 천자의 사위여서 제나라의 죄를 묻고 위나라를 돕기 위해 주나라는 원군을 보냅니다. 양공과 제후 연합군은 천자이던 주나라의 원군까지 격파하여 결국 위 혜공을 복위시키는데 성공 합니다. 이로써 제 양공은 위나라 마저 제나라의 지배력 하에 두는데 성공하지만 정 장공에 이어 주 왕실의 군대를 제후국이 다시 격파함으로써 주나라 왕실에는 씻을 수 없는 모욕을 주고 정 장공에 한번 꺽인 후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주나라의 제후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완전히 사라지게 만듭니다.  이와 더불어 노나라 성 땅의 반란을 진압해주고 그 땅을 욕심 내어 차지해 버린 일도 있어 후대인 제 환공이 명목상으로나마 주 왕실을 받들었던 것과 제나라 땅을 떼어주고서라도 제후들과의 신의를 지키려 했던 것과 대비 되는 부분입니다.

 

관련글 : 살아서 황천에서 어머니를 만난 정장공, 왕 이야기 6

 

 

 

이와 같이 양공은 제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제나라가 정 장공 사후 제후국들을 주도하는 중원의 1인자가 되게 하는 업적을 이룬 부분이 있으나 친 동생인 문강과의 천륜을 어기는 무도함으로 비난 받았고 눈 앞의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 주변 제후국들과 주나라 왕실에 모욕을 주거나 원한을 사는 것도 개의치 않고 이득을 취하였습니다. 또한 위나라를 영향력 하에 둔 후에는 자만심에 빠져 정치를 멀리하게 됩니다. 여동생인 문강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사치스럽게 즐기면서 이로 인해서 제나라의 재정은 파탄이 나고 정사를 제대로 살펴 처리하지 않다 보니 엉뚱한 사람에게 벌을 내려 부당하게 사람을 죽이는 일이 잦았습니다. 대신들을 서슴없이 속이는 말을 하거나 명을 내리다 보니 군주의 명을 스스로 어지럽혔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동안은 나라의 위신을 높이고 외국을 격파하는 업적에 가려져 있었던 불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소백(훗날의 제 환공)이 적어도 문강과의 부도덕한 관계만이라도 정리하게 하려고 양공에게 간언하였다가 양공의 노여움을 사게 됩니다. 이 일로 후일에 화가 미칠까 두려워진 소백은 학문에 정진하겠다는 핑계로 거나라로 달아났습니다. 사실상 거 나라로 망명을 한 셈입니다.

 

 

제 양공

 

춘추시대 제나라의 화폐였던 도폐

 

 

제 양공의 최후

 

제양공은 위나라를 정벌하고 혜왕을 복위 시키면서 연칭과 관지보에게 위나라에 가까운 요충지인 규구에 주둔하게 하여 혹시 모를 주나라의 공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이 때 먼 변경에 주둔해야 하는 두 사람에게 오이가 익는 1년 후에는 교대시켜 주겠다는 약속을 하였습니다. 군주의 약속이라 이를 굳게 믿었던 두 사람은 1년 후에도 양공이 약속을 지켜 두 사람을 교대 시켜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양공의 사촌인 공손 무지에게 접근하여 양공을 시해할 계획을 세우고 기회를 엿보게 됩니다.

 

마침 양공이 패구로 사냥을 나갔다가 팽생을 닮은 멧돼지를 만나 놀라고 두려움에 떨며 달아나다가 신발 한 짝을 잃게 됩니다. 제 양공을 놀라게 한 멧돼지는 양공의 신발을 물고 달아납니다. 이때 기회를 엿 보던 연칭과 관지보가 군사를 이끌고 와 양공의 숙소를 공격하려고 염탐하다가 신발을 잃은 죄로 양공에게 채찍을 맞고 나오던 시종 비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시종 비를 붙잡아 양공의 위치를 물어보았는데 채찍을 맞아 피로 얼룩진 등을 보여 주며 자신도 양공을 죽이려 한다며 양공의 위치를 먼저 염탐해 오겠다는 비의 말에 그를 풀어주며 양공의 숙소로 돌려 보냅니다. 비록 매를 맞았지만 자신이 모시는 군주에게 신의를 지키려 한 시종 비는 이를 양공에게 알려 양공은 숙소안의 숨을 수 있는 장소에 몸을 숨기게 됩니다. 비에게 속은 것을 알게된 연칭과 관지보가 숙소를 지키던 병사들을 죽이고 난입하였으나 양공을 찾지 못하여 주변을 뒤지게 하였습니다. 우연인지 죽은 팽생의 복수 인지 양공이 숨었던 장소의 문 앞에 잃어버렸던 신발 한 짝이 놓여 있어 안을 수색한 두 사람에 의해 결국 양공은 끌려 나와서 목이 잘리게 됩니다. 양공을 시해한 두 사람은 공손 무지를 군위에 세웠으며 이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워진 공자 규도 외가인 노나라로 달아났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인품이 따르지 못했던 제 양공

 

제 양공을 보면 분명히 정치, 외교, 군사적으로 뛰어난 감각과 능력을 가진 군주였습니다.

다만 친 동생인 문강과 관계를 가진것은 연칭과 관지보가 난을 일으킬때도 내세웠던 명분 중 하나인 누이와 간음한 폐륜 군주라는 멍에를 스스로 만들었고 큰 성과를 거두긴 했으나 연이은 대외 원정으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구나 후반기의 폭정으로 무고하게 죽은 사람을 많았습니다. 탐욕으로 인해 주변 제후들에게 원한을 산적도 있고 신하들에게도 신의를 지키지 않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군주 입니다.

 

양공의 비참한 최후를 보면 통치자는 능력뿐만 아니라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게 해 줍니다. 참 저열한 인품을 가진 이 왕은 나름 업적이 있으나 친 동생인 문강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역사적으로 더 유명해 졌고 많은 억울한 사람들도 만들어냈습니다. 이 제 양공을 보면 최근의 고위직 인사에 논란이 되었던 인물 처럼 젊은 여성들을 동원하여 약물과 부적절한 파티를 접대 받아 즐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왜 고위직에 올라서는 안 되는지를 역사적인 사례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능력은 있으나 도덕적으로 흠결이 있고 개인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정치를 하는 위치에 서게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결국 신하들에게 죽음을 당한 폐륜아 양공의 가장 큰 업적은 다음 이야기에 등장하는 제 환공이 등장 할 수 있는 운명을 만들어 준게 아닌가 합니다.

 

이어지는 글 : 제환공 관중과 포숙아, 왕이야기 15-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