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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ory & ETC

늦은 나이의 이직을 하며 떠오른 생각들

IT 관련 개발자의 수명이 짦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요즘은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조금은 길어졌는지도 모르겠지만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으로 불혹을 코앞에 둔 저는 나이든 개발자에 속합니다. 그런 제가 많은 고민을 한 다음 이직을 결심하였습니다.

 

아마도 제 블로그를 자주 들려 주셨던 분이라면 글쓴이가 최근에 무언가 선택에 대한 고민이 있다는 것을 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언제 마무리해서 몇일 날 발행 할지 모르겠지만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은 9월 27일. 만 9년을 넘게 다닌 회사를 퇴사한 날 입니다. 다음 주에는 이직한 회사로 첫 출근을 하게됩니다. 문득 꼭 글을 적어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자려던 생각을 접고 PC 앞에 앉았습니다.

 

 

책상이 중간에 한번 새걸로 바뀌긴 했지만 9년 동안 집 보다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낸 공간 이었던 곳

 

어쩌면 평범한데다 나이도 적은 편이 아닌 한 개발자의 이직 이야기는 관리자나 경영자에게는 "왜 밑의 직원이 나갈까?" 하는 이유의 한 부분을 직원 입장에서 말해 줄 수도 있을 것이고 저와 비슷한 상황에 이직을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간접적으로 이직이란 주제에 대해 조금은 정보를 드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말로 표현하는 재주는 약해도 글로는 아주 조금은 표현이 가능한 제 생각과 감정을 남겨두고 싶어서 입니다. 또 혹시 제 블로그를 꾸준히 봐 주고 계실지도 모르는 회사 분들을 위해 남기는 일종의 변이기도 합니다.

 

 

이직하는 이유에 대한 변

 

현재의 직장은 방황기에 "아 이 산이 아닌가봐" 하고 금방 벗어났던 곳을 빼면, 즉 6개월 이상 다녔던 회사만 포함하면 3 번째 직장 입니다. 보통 9년을 다녔다면 회사에 어느 정도 자신의 자리와 영역이 있을 것이고 직장내에서 오래 같이 한 인간 관계도 깊을 것 입니다. 그런데도 낯설고 자신의 영역도 새롭게 만들어 내야 하며 새로운 인간 관계를 시작해야 하는 이직이라는 최후의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물론 안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개발자라는 직군의 일반적인 특성 상 대화로 자신의 불만을 전달하고 어필하는데 서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처음 이직을 생각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떠오르지만 그 시발점은 엔지니어의 영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니 아예 이해하려 하지 않는 기업 풍토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곳으로 옮기면 그런 점이 해소가 될까요? 그건 아닙니다. 제가 알기엔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런 점에서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어느 곳이나 비슷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차이라는 것은 존재합니다. 어느 순간 그 수위가 감내할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때 직원들은 일단 한 번쯤 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사회 생활을 하고 직장 생활을 그래도 좀 해 보았기에 어디나 경영자와 현업 직원은 서로를 이해 못하는 부분이 반드시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히 IT 개발자와 경영자, 임원은 그 괴리가 어디서 근무하던지 제가 느끼기에 상당히 컸습니다. 그래서 한쪽은 왜 문제를 만들었는지 화를 내고 한쪽은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왜 이해하지 못하지? 또는 그런 문제를 발생시킬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해 주지 않는것을 섭섭해 하고 원망하는 동상이몽을 서로 하게 됩니다. 더구나 비교적 명확하게 원인을 찾아낼 수 있고 단 한번의 실수가 치명적이 되는 IT 관련 개발자들은 일을 열심히 많이 하면 할 수록 한 번쯤은 실수를 해서 이른바 벌을 받을 확률이 높아 집니다.

 

[IT/Device/Game] - 휴먼에러, 개발자 에게 지워지기 시작한 책임론

 

다행히 9년 동안 큰 실수는 없이 보낼 수 있었고 실제 제가 징계를 받은적이 없지만 사람은 언젠가는 꼭 한 번쯤 실수를 할 수 있고 제 주변의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이 열심히 한 것에 대한 보상은 못 받고 작은 실수에 대한 벌만 받는 것을 접하게 되면 개인적으로 미래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됩니다. 자조적인 말로 개발은 정말 잘해도 본전이고 못하면 X망이다 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편견일지도 모르지만 IT 개발직은 나름 많은 고민을 하고 무언가를 해내도 전혀 그 일의 중요성을 전혀 이해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제가 만나 본 개발에 정말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을 잘 어필하는 재주를 가진 경우가 적었다는 점 입니다.

 

위와 같은 이유들은 개발자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초기의 열정을 잃고 주어진 업무에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듭니다. 일을 열심히 많이, 그리고 잘 할 수록 보통 많은 업무를 맡게 되고, 많은 업무량에 치여 한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그럼으로써 진급이나 인사에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상식적으로 열심히 일 할 수록 개인에게 손해가 되는 이상한 구조가 되어 버립니다. 일을 하다 접해본 몇 몇 국내의 대기업들에서도 보신주의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는 개발자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적극적으로 주도적으로 일한 사람일 수록 책임을 지고 빨리 옷을 벗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은 모든것을 하청업체 등에 넘기고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약은 사람들만 바글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그렇지는 않고 적극적으로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것은 약간 속물스러울지도 모르지만 중요하거나 고생스런 업무를 보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인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금전적으로 연봉 1~200을 더 주는 것이든 아니면 꼭 금전적이 아니라 회사의 중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말이나 분위기로 지지해 줄때 가능 합니다. 군대에서도 수색대 같은 보직이나 이른바 한수 접어주는 각종 특수한 부대들은 옷에 부착된 마크 하나에, 다른 부대와 다른 모자형태에, 특이한 복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더 험한 훈련을 소화하거나 힘든 작전에 투입되거나 해도 지원자가 끊이지 않는것은 이러한 일의 중요성을 말해줍니다. 이러한 '인정' 받는다는 느낌이나 분위기가 사라지는 경우 보통은 남들 보다 더 손해보는 일을 더 남아서 일할 원동력을 잃게됩니다. 그런 상황이 계속 악화되면 그 조직은 정말로 딱히 갈곳이 없는 사람만 남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어디선가 읽은 경영 관련 글에서 회사가 잘 성장 하더라도 갑자기 직원의 1/3 이상을 짧은 기간에 새로 뽑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회사를 성장 가능하게 하던 기업 문화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던 회사는 지난 1년 사이에 인원을 두 배에 가까이 늘렸습니다. 그것이 잘 짜여진 성장 로드맵에 의한 것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그저 덩치를 키우라는 상위 계열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른걸로만 보입니다. 물론 이부분은 평범한 직원과 임원이 바라보는 시각차의 한계가 분명히 있음을 감안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런 새로운 인원의 유입에서 또 실감한 것은 조직이나 기업 문화도 많이 달라지게 만들지만 기존 직원과 새로 채용된 직원 사이의 대우 문제도 야기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려울때 채용하여 기존의 성장을 뒷 받침한 직원보다 회사가 잘 될때 새로 영입한 직원의 대우가 더 좋은 경우가 대부분 인것 같습니다.. 그것은 종종 기존의 직원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새로 영입된 직원이 회사에서 기존 인력 만큼 역활을 하기 까지는 꽤 시간이 필요하거나 때때로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채용으로 사람에 따라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기존 직원들이 느끼는 괴리감이 초기 1,2 년 사이에 더 커집니다.

 

조금 돌직구를 날리자면 짧은 시간 많은 새 인력을 스카웃하면 기존 인력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도 내가 많이 하고 지금까지 기여한 것도 내가 더 많은데 왜 막 들어온 저 사람이 더 좋은 대우를 받을까?" 새로 들어온 사람들 중에 물론 초기 부터 실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지 못하기에 고려해야 할 부분들 입니다. 더구나 이 차이는 중간에 대우 조정이 없는 이상 일반적인 회사의 승진, 연차에 따른 연봉 제도의 구조상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대우 차이를 만들어 냅니다. 회사를 구한 누구나가 인정하는 슈퍼히어로가 아닌 이상 이런 차이를 뒤집긴 어려운 구조이지요. 때때로는 완전히 적합하지 않은, 흔히 잘못 뽑았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처음의 대우 차이로 보통은 기존 인력 보다 계속 우위에 있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들은 개인의 발전에 큰 도움이 안되는 찌질한 생각이긴 하지만 관리자라면 이것도 또한 사람의 마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장황하지만 결국 제가 그만두게 된 이유는 곰곰히 생각해 보니 한 마디로 "인정과 대우" 에서 불합리 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시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극단적으로는 나는 회사에 있어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으로 여겨지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게 만들었고 그래서 이직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준것은 사직 의사를 밝힌 다음의 반응이었습니다. 고맙게도 기존 회사에서는 몇 차례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고 남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해주며 저를 붙잡으려는 노력을 보여 주었고 이직 하려는 곳보다 오히려 더 높은 조건을 제시해 주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은 우울한 위의 생각에서 벗어나 그래도 내가 가치있게 여겨지긴 했구나 하는 자체 힐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떠난다 했을때 전혀 붙잡으려 안했다면 조금 자신감을 상실하고 자괴감을 가진채로 떠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기존 회사의 사람들에게 고마운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아쉬운 것은 그런 느낌의 일부라도 제가 진작 느꼈다면 아마 이직 할 생각은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민의 순간

 

이직을 준비 할 때 보다 막상 더 심각한 고민을 해야했던 순간은 이직 의사를 밝히고 난 후의 몇 주간이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듯이 옮기려는 곳보다 더 좋은 대우를 약속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이직하려는 사람들은 사실 여러가지 이유로 머무르게 되는데 남자들에게 회사 동료란 사실 친구보다, 가족보다 더 자주 오래 보던 사람들이고 이 인간관계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부분도 쉽지 않은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저 같은 경우에 기존 동료들, 상사와의 인간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오래 같이한 시간으로 인해서 공사를 구분하여 업무상 거리를 두려하는 내 성향에도 불구하고 동료 이상의 감정들을 가진 분들이 많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이직 하려는 곳이 대기업이다 보니 축하해 주시는 분들도 많았지만 생각이 깊은 많은 분들은 심도있게 조언을 주셨듯이 이른바 대기업의 기수 문화, 그리고 라인이라는 문화 속에 굴러온 돌이 느끼게 될 소외감이나 왕따 같은 것도 사실 현실적으로 걱정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너무나도 익숙한 환경에서 모든 것이 낯선 환경으로의 생활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도 컸습니다. 이러한 여러가지들을 생각 하다보니 처음 이직을 고려하던 시점에 다가온 스카웃 제의에 응한 그 결정을 할 때보다 더 많은 생각들을 해보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블로깅을 1주일 가까이 쉬기도 한 후에 쓴 글이 바로 아래의 글이기도 했습니다.

 

[Story of Kings] - 주사위는 던져졌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결국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하게 된 이유는 제 나름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한가지 기준을 적용시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앞으로 꿈을 가질 수 있는가?" 였습니다. 나이에 비해 다소 감상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람마다 분명한 자신의 기준이 있는 법입니다. 어쩌면 장래에 되돌아 보면 가려는 곳 보다 더 나은 대우를 약속해 준 기존의 회사에 남는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후회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초 이직하려던 사유인 대우와 인정에 대한 불만도 어느정도 해소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익숙한 환경속에서 안주하고픈 마음이 가장 큰 고민의 원인이 되었던것 같습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떨치고 다시 열정을 가지고 꿈을 가져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이가 들면 새로운 기회에 도전하지 못했던 것에 후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느 책에서 평온한 인생을 산 60, 70 대의 노인들이 가장 후회하는 부분 중 하나가 인생에 도전의 기회가 왔을 때 도전 해보지 않고 안정을 택했던 것이라는 글도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현실적으로 모든 도전이 해피 엔딩으로 끝나진 않는다는것 쯤은 알고 있는 나이 입니다. 하지만 해보지도 않고 후회하기 보다는 결국은 해보고 후회하는 삶이 회한이 없을것 같습니다. 도전을, 그 선택을 해피 엔딩으로 만들기 위해 지금 보다 더 힘든 시간을 감내해야 겠지요. 어떤 선택이든 그 결과는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그 선택이 올바른 선택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조금은 더 열심히 살것 같습니다.

 

맺으며

 

여러가지 떠오르는 상념들이 많다 보니 글이 너무 장황 해졌습니다. 새로운 회사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블로그에 지금 보다는 조금 소홀해 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이 좀 뜸해 질수는 있어도 취미인 블로그는 현재의 생각으로는 계속 가지고 갈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감상에 젖어 늘어 놓은것 같은 생각도 있지만 블로그는 어떤 한 사람의 이야기로 간접 경험을 주기도 하는 것이니 양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음 메인에 올랐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을 적은 글이라 조금 쑥스럽습니다. 읽어주시고 추천 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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