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는 우리집 카메라 변천사를 한번 풀어 보았습니다. 결국은 그 글에서도 이야기 했듯 대부분의 아빠 사진사들이 도달 한다는 장비의 끝인 풀프레임 바디에 인물렌즈의 최고봉이라는 만투(EF 85mm F1.2)로 기변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 사용하던 카메라는 2년 동안 1만 2천 컷을 넘게 촬영하다 보니 제 손에 익어서 눈 감고도 다룰수 있었던 카메라 입니다. 바로 미러리스 카메라인 EOS M 입니다. 뭐 요즘도 이런저런 논란이 많은 카메라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2년동안 우리집의 모든 사진을 책임지던 카메라였습니다.
지금 사진을 다시봐도 맑은날 야외에서의 사진은 다른 고급기종들과 크게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사진도 그럭저럭 잘 뽑아주던 카메라 입니다. 흐린날, 좀 어두운 시간대의 사진은 물론 차이가 많이 느껴집니다. 그런 부분이 아마도 가격의 차이를 만드는 거겠죠. 거기다 DSLR 보급기와 같은 APS-C 크롭센서에 1800만 화소로 화질도 그다지 나쁘지 않은 카메라였습니다.
물론 불안정한 AF와 셔터랙 때문에 이 카메라를 사용한 2년 동안은 아이들이 뛰어가는 사진 같은건 거의 없습니다. 항상 아이들이 잠시 멈추서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하는 카메라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단 1초도 멈추지 않고 계속 뛰는것은 또 아니니까요. 게다가 비록 미러리스 전용 렌즈긴 하지만 22mm 단렌즈, 18~55mm 표준 줌, 55~20mm 망원렌즈로 그럭저럭 괜찮은 화각대와 용도에 따른 렌즈군도 조금은 갖추어져 있어 풀프레임 바디에 만투를 들이고도 내치지는 않고 서브카메라 용도로 또는 가볍게 외출하는 경우에 사용하려고 남겨두었습니다.
사실 중고로 팔아봐야 몇푼 건지지도 못할게 뻔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란것이 대개 그렇지만 새로 장만한 카메라에만 자꾸 손이 가고 이녀석이 거의 완전히 방치되어 손이 잘 가지 않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그 동안은 사진에 거의 관심이 별로 없어보이던 아내가 이 방치된 불쌍한 EOS M에 손을 뻗더군요.
그리고는 그대로 사진에 재미를 붙여 버렸습니다.
결혼 한지 10여년 동안 부부가 같이 할만한 취미를 찾아 보려했지만 둘다 흥미를 느끼는 대상을 찾기란 쉽지 않은일이었습니다.
제가 흥미있어 하는건 아내가 별로였고 아내가 흥미있어 하는것들은 제가 재미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야 둘다 재미있어하는 일을 마침내 찾은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으면 집에 머무르며 밀린 드라마를 본다던가 하면서 휴식을 취하던 아내가 아이들과 외출 준비하고 카메라 메고 나서면 어느새 본인도 카메라를 들쳐메고 따라옵니다.
거기다 카메라에 대한 지식은 거의 없는데도 조금이나마 더 아는 제가 이야기 하는걸 열심히 듣고 이해하려 하고 기능도 배우려 하는 모습이 조금 신기하기도 합니다.
거기다 여성 특유의 감각이 있다보니 사진 구도 같은 것에서 제가 이전에는 생각 못하던 독특한 시도도 많이 해봅니다.
의자 사이로 위 사진처럼 아이를 촬영하길래 얼마전에 블로그에 실은 사진을 저도 같은 구도에서 촬영해 보았는데 재미있는 사진이 나왔습니다. 아이들 촬영하는것에만 흥미를 느끼지는 저와는 달리 풍경이나 주변 사물에 대한 촬영에도 관심도 많아서 이런 저런 실험을 많이 해보는 군요.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지고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것은 결혼 전에는 당연히 그럴수 있겠지 하고 생각 했지만 사실 그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란걸 결혼 생활 하면서 느꼈습니다. 10년을 같이 살고나서야 같이 의견을 나누고 때로는 진지하게 토론도 할 수 있는 같은 취미를 마침내 가지게 된것 같습니다.
새로운 카메라를 사느라 사실 꽤 많은 재정적 출혈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사진 취미를 가진 든든한 동료를 만든셈이고 그게 아내이니 돈으로 따질수 없는 가치를 얻은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훌륭한 지름(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좀 지나친 지름 합리화 같긴 한데 원래 세상일은 명분이 먹고 들어가는거라고 예전 직장 상사분이 이야기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어찌 되었던 우리집 아이들은 자신들의 사진을 엄청나게 많이 남기는 아이들이 될것 같습니다. 저 혼자서 2년 동안 1만장이 훌쩍 넘는 사진을 남겼는데(물론 지금 보면 버려야 할 사진이 태반이지만) 이제 둘이서 사진을 남기니 과연 몇장이 될런지요? 조만간에 사진 보관용 이동식 하드를 하나 더 장만해야 될것 같습니다.
사진은 부부가 취미로 같이 하기에 참 좋은 영역인것 같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처녀 시절에 직업으로 포토샵을 했었는지라(물론 사진보정은 그것과는 또 다른 분야지만) 제가 포토샵을 안 배워도 앞으로 보정은 걱정이 없을 듯 하기도 합니다.
올해 여름즈음에 의왕 자연학습장에서 머리가 하얀 노부부가 DSLR 카메라를 나란히 메고 같이 손녀들 사진을 찍고 또 삼각대를 두개 놓고 각각 풍경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참 보기에 좋다고 느낀적이 있습니다. 어쩌면 글쓴이 부부도 그런 멋진 노후를 기대할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꼭 사진이라는 취미가 아니더라도 부부가 같은 취미를 가진다는건 꽤나 이상적인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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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의 글이 다음 메인에 올랐습니다. 블로그를 찾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