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를 자주 찾아 주시던 분들은 아마도 눈치 채셨을듯 합니다. 블로그 운영자가 점차 사진에 미쳐가고 빠져 들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지만 원래 글쓴이는 사진에는 눈꼽만큼도 관심이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시절 사진학개론이 학점 따기 좋다고 수강을 했다가 자유로운 주제로 사진을 촬영해 오라는 과제를 받아 제출기한이 다 되어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우연히 방목중이던 흑염소 한 마리를 아무 생각 없이 찍어갔는데 당당히 "C"를 맞은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카메라도 없어서 친구의 필름 카메라를 빌려서 사진을 찍었는데 평소에 사진이라곤 촬영해 본 적도 없었는지라 지금 되돌아보니 초점도 다 나가고 흔들린데다 아무런 감동도 재미도 없는 사진을 과제라고 제출했던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예전 싸이월드(아직도 안 없어졌어요~)를 들여다 보다 문득 오늘은 우리집의 카메라 변천사를 한번 풀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개인적이지만 우리집에서 사진을 찍는 손에 들린 카메라도 많이 변화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제가 카메라를 가지게 된것은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가 최초 였습니다. 그다지 즐겨 하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카메라가 생기니 몇장 정도는 사진을 찍게 된듯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조잡한 카메라들이었지만 그 전 시대에 카메라는 아예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고 있다 하더라도 장농 깊숙히 보관 되다가 무슨 날에나 필름을 사서 넣고 한컷 한컷 소중하게 촬영했던 그런 물건이었나 봅니다. 이제 스마트폰에는 과거와 비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컴팩트 카메라에 필적하는 카메라가 모두 달려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1인 1카메라 시대랄까요.
당시 조잡하긴 해도 휴대폰에 카메라가 생기면서 사진을 주로 찍던 피사체는 총각때 기르던 고양이들이었습니다. 그나마 이 사진은 그래도 카메라 픽셀이 백만 단위는 넘어설때 찍은 사진입니다. 그전의 사진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수도 없군요. 아마 휴대폰을 교체하면서 그대로 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신혼여행을 가기 전에 디지털 카메라 구입이 유행하던 붐을 타고 저도 캐논 익시를 구입했습니다. 이른바 내수용이라는 요상한 명칭이 붙은 이 카메라를 전자상가에서 조금 저렴하게 구입을 했었나 봅니다.
아마 요즘에 신혼여행 가면서 미러리스 하나쯤 장만하는 세태와 상당히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무려 50만원이나 했던 고가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재미있는게 요즘 신혼 부부들이 장만하는 미러리스도 50만원에서 100만원 미만이 적정한 듯 합니다.
그래서 그나마 몇 년간 이 카메라를 잘 썼습니다. 지금 보니 흔들린 사진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 그다지 사진을 찍을 일도 별로 없었습니다.
이 익시로 촬영한 10여년전 젊은 시절의 사진입니다. 좀 말랐었군요. 개발자의 길에 들어서면서 제대로 잠도 못자던 피곤한 시기를 보낸것 같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이던 시기이지요. 당시의 개발자는 누구나 그렇게 살았는듯 하고 지금도 역시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듯 해서 안타깝습니다.
토요일도 오전 근무(오전 근무라 읽고 5시쯤 퇴근하던)를 하던 시대라 몇일을 야근하고도 토요일 밤에는 아쉬움에 새벽까지 게임을 즐기던 체력을 가졌던 그 시절, 흔치않게 출근 안하고 집에 있던 일요일이라 아내가 그린티를 사주며 카페에서 찍었던 사진인것 같습니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익시는 다시 반짝 활약하긴 했지만 더욱 더 바쁜 시기를 보내면서 아쉽게도 서랍에 방치 되었다가 퇴장하게 됩니다. 이때는 드디어 DSLR 카메라의 바람이 불었지만 카메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우리 부부에게는 우리와 먼 이야기 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정도 자리잡은 회사에서 일하면서 인센티브의 일부로 회사 전체가 지급한 아이폰 3GS란 것을 손에 넣게 되었습니다. 지금껏 사용하던 휴대폰 카메라들에 비하면 꽤 괜찮은 사진을 뽑아주었던 카메라가 생긴샘입니다.
마침 아이도 3살이 넘으면서 이제는 데리고 다니며 사진 찍기에 좋은 날이 왔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사진을 찍다보니 내 아이를 찍는 즐거움을 알게되었고 마침내 누구나 다 그렇듯 아빠 사진사로 1차 각성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좀더 나은 사진을 찍어주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카메라 성능이 훨씬 좋아졌다는 아이폰 4S로 갈아타게 됩니다. 스마트폰 욕심도 있었지만 카메라에도 큰 목적이 있었습니다.
아이폰 4S의 경우 햇빛 좋은 맑은 날에는 정말로 괜찮다고 생각되는 사진을 뽑아주기도 했더랬습니다. 지금 보면 물론 영 아니지만 당시에는 정말로 만족했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화면으로 볼때는 충분히 쨍해보이던 이 사진들이 어느 순간 부터는 무언가 불만스러워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그 시작은 이 사진들을 TV로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던것 같습니다.
거기다 둘째도 태어나면서 더이상 스마트폰 카메라정도로는 채워지지 않는 열망에 눈뜨기 시작합니다. 주변의 DSLR로 찍은 사진들을 접하면서 더 높은 사진레벨을 접하게 된것도 이유인듯 합니다.
결국 아빠 사진사는 2차 각성을 합니다. 늘 그렇듯 각성을 하게되면 응당 지름이 따라옵니다. 지금이야 가성비 카메라 소리를 듣지만 당시에 막 출시 되었을때는 캐논의 첫 미러리스로 관심의 대상이던 시기였습니다.
카메라 문외한인 저는 출시된지 1주일도 안된 90만원이나 하던 가격의 캐논 EOS M 번들킷을 지르게 됩니다. (난 호갱이었어!!) 1년만에 엄청난 욕을 먹으며 반값도 안되는 가격 하락을 하는걸 봐야했지만 원래 전자제품이나 카메라란 그런 것이려니 했습니다.
마침내 그럭저럭 제대로 된 카메라가 생긴 저는 2년이 조금 못되는 동안 아주 추운 겨울을 빼면 주말에는 항상 EOS M을 둘러메고 아이들과 야외를 전전했습니다. EOS M의 촬영 컷수가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1만 2천 컷을 넘겼으니 그럭저럭 구입시 덤터기 쓴 카메라 값은 뽑은 듯 합니다.
중간에 망원 렌즈도 장만하고 달라진 사진의 질에 만족해 하기도 했는데 역시 문제는 주변부에서 다가옵니다. 이직한 회사에서 카메라에 이미 많은 돈을 쓴 동료를 만났고 주말이면 카메라 둘러메고 아이들 끌고다니는 아빠들끼리 아이들을 모아서 뛰놀게 하고 사진을 찍는 모임을 가진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모임을 하고나면 보통 사진을 모아서 제가 사진 동영상을 만들어 공유하게 되었는데 이 모임의 사진들을 모아서 작업을 하다보니 제가 가진 카메라와 상당히 다른 사진을 보게 된것 입니다.
PC에서 작업을 하다 보게되는 그 쨍함과 아이들이 사진에서 튀어나올듯한 입체감이라니... 알고보니 D800 이라는 니콘계열에서 최상위급에 있는 카메라였습니다. 거기다 값비싼 렌즈도 한몫을 하더군요. 이렇게 눈은 강제로 업그레이드 되고 갑자기 카메라에 대한 열망이 다시 불타 올랐습니다. 하지만 외벌이에 아이 둘이나 있는 가장. 1, 2백 이라면 몰라도 렌즈까지 합치면 중고 차값인 동급 카메라를 장만할 엄두가 나질 않아서 속으로 꾹꾹 눌러 삭여야 했습니다.
잘 삭여지는가 했던 열망은 어느날 누군가가 블로그에 올린 만투(EF 85mm F1.2) 렌즈로 촬영한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재점화가 됩니다. "그래 내가 원했던건 이런 사진이야!". 결국 아빠 사진사란 인물사진을 주로 촬영하는 사람이고 인물 촬영에 최고봉이라는 만투(EF 85mm F1.2) 렌즈 앞에 불타오른건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사진 실력은 생각 못했습니다. 똑같은 장비를 맞추면 똑같은 사진 나오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것이 아빠 사진사 3차 각성이었는데 이제는 아실듯 합니다. 각성에는 지름이 따른다는 걸
결국 만투렌즈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다는 평을 보고 캐논 진영의 풀프레임 중급기 중에서는 최상위라는 오막삼을 렌즈캡 삼아 덤(응?) 으로 구입하게 됩니다. 제발 그 위의 플래그쉽 바디 까지는 지름신이 내리지 않기를 빌어 봅니다.
이렇게 아빠 사진사의 카메라 변천사는 막바지에 다다랐습니다. 이제 이걸루 끝이려니 했는데 요즘에는 살짝 신계륵(EF 24-70mm F2.8)의 뽐뿌가 좀 밀려오는 군요. 표준 줌렌즈 대역이 아쉬워서인데 이번에 출혈이 워낙커서 당분간은 마음속에만 담아 두려 합니다.
뭐 그래도 아이들을 더 예쁘게 찍을수 있어서 주말이 기다려지는 요즈음 입니다. 올 겨울은 자주 외출 할수 있도록 많이 따뜻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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