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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정조, 조선의 22대 왕, 즉위까지의 험난한 길 -1-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22대 왕이된 이는 정조(이산, 李祘) 입니다. 원래의 휘호는 정종이었지만 후에 정조로 바뀌었습니다.


영조에 의해 뒤주에서 사사된 사도세자의 아들로 1752년 10월 28일 탄생 했습니다.


산실청 밖에서 깜빡 잠이들었던 사도세자는 용이 침실로 날아오는 꿈을 꾸고 붓을 들어 꿈에서 보았던 용을 그렸다고 합니다.


잉태에서 탄생까지 모든이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은 이 아들은 사도세자를 빼어 닳았으며 사도세자는 아들의 탄생에 한없이 감동하고 기뻐했다고 합니다.


왕위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길


정조가 때어나기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는데 영조는 첫돌이 되기전의 이 아이를 거처로 데려와 원손으로 책봉하고 귀여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세손은 3살의 어린나이에 병으로 죽게 됩니다. 상심한 영조는 세손에게 "의소"라는 시호를 내리고는 당시 정조를 임신중이던 혜경궁 홍씨를 위로하기 위하여 그녀의 친정 부모를 입궁시켜 며느리를 돌보게 했습니다.


손수 기르다시피 했던 첫 손자를 잃은 경험이 있는 영조는 이번에는 태어난 원손을 혜경궁 홍씨에게 일임 하였습니다. 아들인 사도세자 역시 100일이 지나자 생모와 떨어뜨려 정성왕후의 아들로 입적시켰을 만큼 자손들의 교육에 극성이었던 영조의 성격으로써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결국 정조는 어머니의 품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할수 있었고 아버지, 어머니 모두를 사랑했던 정조는 훗날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에 외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평생 어머니에게 극진한 효도를 다합니다.


정조가 건설을 명한 수원 화성의 동북각루와 그 주변 성벽

 

영특 하다던 말을 듣던 세손이 자라 가면서 일어난 사도세자와 영조의 갈등과 비극에 대해서는 지면상 이전에 포스팅한 글로 대체할까 합니다.

 

이전 글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나? -1-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 -2-

 

이 처럼 결국 뒤주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사도 세자의 사후, 당시 9세에 불과했던 세손은 세상이 자신에 대한 적의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외가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 할아버지인 영조도 그를 필사적으로 보호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항상 생명의 위협을 느꼈고 이 때문에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일들로 정조는 아버지가 느낀 울화증과 강박의 정체를 일찍이 공감하고 빠르게 철이 들어야 했습니다. 앞서의 글에서도 언급 하였던 정조가 사랑하였던 영조, 혜경궁 홍씨, 외할아버지 홍봉한 모두 사도세자의 죽음에 연루되어 방관하거나 주도했던 사람들 입니다. 그럼에도 이 세사람은 누구보다 세손인 정조를 보호하기 위해 필사적이기 까지 했던 사람들로 정조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원망도, 절대적인 감사도 할 수 없는 비극의 중심에 선 주인공이었습니다.

 

사도세자의 죽음 후 친정에서 돌아온 혜경궁 홍씨는 영조에게 세손이 경희궁에 머물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당시 혜경궁 홍씨는 창덕궁에 머물렀으므로 아들과는 생이별을 하는 셈이었으나 영조가 있는 왕의 거처인 경희궁에 살게 하는것이 세손인 정조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나은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 아침에 죄인의 아들이 된 정조는 주변의 적의와 위협들로부터 자신의 몸과 정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정의 정치에 눈을 감고 학문에 몰두하는 것으로 자신을 지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무예의 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아 정조는 활쏘기에 매우 능했다고 합니다. 그가 나중에 왕으로 즉위한 이후의 왕의 활쏘기 성적을 기록한 "어사고충첩" 에서는 정조가 50발을 쏘아 49발을 적중시킨 기록이 10여번 이상 존재할 정도였습니다. 

 

다행히 영조는 세손을 보호하기 위해 그를 동궁으로 삼아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하였으나 이미 연산군을 통해 피바람과 복수의 전례를 알고 있는 노론과 사도세자의 죽음에 관련된 자들은 이를 필사적으로 저지하려 할것이 분명했습니다. 어찌 되었던 정조가 왕위에 오르려면 죄인의 아들이라는 가장 큰 결격 사유를 벗어나야만 했습니다.

 

관련 글

연산군, 모정에 굶주렸던 폭군. 왕 이야기 9

 

노론도 사도세자를 역적으로 여기는 벽파와 그를 동정하는 시파로 쪼개어 졌으며 벽파의 경우에는"죄인의 아들은 임금이 될 수 없다" 라는 명분으로 세손을 동궁에서 폐위할 것을 영조에게 거세게 요구하였습니다. 궁지에 몰린 영조는 세손을 요절한 아들인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을 시키는 것으로 이들의 반발을 무마하려 합니다.


결국 정조는 죄인인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닌 효장세자의 아들로 동궁의 지위를 지킬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여든이 넘은 노쇠한 영조가 세손에게 왕위를 넘겨주기 위한 전 단계로 대리청정을 시켜려 하자 노론 벽파의 선봉에 선 홍인한 (외조부 홍봉환의 동생, 이처럼 당파는 정조의 외가 마져도 분열되게 하였습니다.)은 세손은 노론과 소론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알 필요가 없다는 이른바 삼불필지설(三不必知說)을 들어 반대하고 승지가 교지를 작성하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으며 방해할 정도로 불손 하였으나 이미 노쇠한 영조는 눈물을 흘릴뿐 이를 막을 힘이 없었습니다.

 

“ 임금이 이르기를,“근래 나의 신기(神氣)가 더욱 피로하여 한 가지의 공사를 펼치는 것도 역시 수응하기가 어렵다. 이와 같고서야 만기(萬幾)를 처리할 수 있겠느냐? ……


두 자를 하교하려 하나 어린 세손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렵다. 청정(聽政)에 있어서는 우리 왕조(王朝)의 고사(故事)가 있는데, 경 등의 의향은 어떠한가?”하니,


적신(賊臣) 홍인한이 앞장서서 대답하기를,“동궁께서는 노론과 소론을 알 필요가 없으며, 이조 판서와 병조 판서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조정의 일에 이르러서는 더욱이 알 필요가 없습니다.”하였다. 임금이 한참 동안 흐느껴 울다가 기둥을 두드리며, 이르기를,“경 등은 우선 물러가 있거라.”하였다. ”
 
— 조선왕조실록, 영조 125권, 51년 11월 20일(계사)

 

이때의 영조의 눈물은 왕위와 혈육에 집착했던 영조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면서까지 지킨 왕위를 혈육인 세손에게 물려줄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절망의 눈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노론 벽파의 홍계희, 김상로, 정후겸, 김지주 등도 힘을 합하여 세손인 정조의 대리청정과 즉위를 막으려 필사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늙고 힘을 잃었다고는 하나 50여년간이나 왕위를 지켜온 노회한 영조입니다. 홍인환을 파직하고 세자 시강원의 홍국영으로 하여금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흉들인 홍계희, 김상로, 정후겸, 김지주등 노론 핵심인력을 탄핵 하도록 한 후 결국 옥새를 세자궁으로 넘겨 대리청정을 성사시킵니다. 또한 순감군이라는 군사력을 세손에게 넘겨주고 문관의 임명권과 무관의 임명권을 뜻하는 수점권을 넘겨주어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온한 세력의 시도에 대비케 합니다.

 

결국 영조는 세손에게 "특히 김상로는 너의 원수이다" 라는 말을 하여 정조가 대비할 세력을 분명히 지적했고 대리청정 뿐 아니라 군사력과 관리 임명권을 모두 넘겨주어 장차 왕위를 승계할 힘을 미리 실어준 셈입니다.

 

1776년, 조선의 역대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하고 오랜기간 재위한 영조가 여든 두살로 승하 하자 노론 벽파의 계속된 방해 속에서 언제 실각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시기를 무사히 넘긴 정조는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의 나이 스물 다섯 이었습니다. 이 장성한 청년왕은 즉위 후의 첫번째 일성에서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분명하게 알리고 노론 벽파 세력들을 충격과 공포속에 몰아넣습니다.

 

“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 조선왕조 실록, 정조 1권, 3월 10일(신사)

 

정조의 이런한 천명은 죄인지자불위군왕(罪人之子不爲君王, 죄인의 아들은 임금이 될 수 없다)는 여덟자 흉언(凶言)을 유포시키던 노론 벽파 측에 정면으로 대응한 것이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세종대왕 이후 조선의 왕들 중 그에 버금가는 성군이라는 평까지 듣는 정조의 치세에 대해서 더 논해 보려합니다.

 

다음 글

[Story of Kings & History] - 정조, 홍국영과 규장각 -2-

 

참조

wikipedia.org

책 - 조선왕조 잔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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