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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건릉을 가다

수원에 이사 온지 어느듯 5년이 흘렀습니다. 처음 이사 올때 누군가 수원은 생각보다 볼 것이 참 많은 도시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제와 돌이켜 보니 상당히 와 닿는 말입니다.  수많은 호수와 공원들 그리고 수원에 살게 되면 정조의 흔적을 많이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원 화성, 그리고 융건릉, 해마다 펼쳐지는 정조의 수원화성 행차 재현 등등 정조를 빼고 수원을 말할 수 없는것 같습니다.

 

이처럼 수원에 자신의 흔적을 많이 남긴 정조의 무덤을 가족들과 함께 찾아 보았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큰 아이가 정조의 무덤을 궁금해 한적이 있어서 좋은 기회가 될것 같았습니다.

 

위의 언급대로 지난 주말에 정조와 그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의 추존 묘호)의 융건릉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사도세자와 정조의 이야기는 얼마전 이 블로그에서도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 자세한 전말이 궁금 하시다면 이전 글 들을 참조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전 글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죽여야 했나? -1-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 -2-

정조, 조선의 22대 왕, 즉위까지의 험난한 길 -1-

정조, 홍국영과 규장각 -2-

정조의 업적과 그 죽음. 독살설에 대해서 -3(終)-

 

 

융릉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의 묘이고 건릉은 정조의 무덤을 말하는데 두 무덤을 합쳐 융건릉이라 많이 부릅니다. 사진은 장조(사도세자)의 묘인 융릉의 정자각 입니다. 왕릉의 정자각은 제사를 모시는 곳 입니다.

 

 

제 경우에는 오후 햇살이 따가운 날 들렀는데 사실 조금 걸어야 하는 구간들이 좀 있지만 대부분은 울창한 수목들로 그늘이 져서 시원한 편입니다. 하지만 융릉과 건릉 무덤 주변은 따가운 햇빛이 머리로 바로 내리쬐니 방문 하실때 시간과 날씨를 고려 하시기 바랍니다. 융건릉의 관람을 위한 입장 시간은 09시 부터 입니다. 개방시간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데 위의 이미지를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 관람요금은 성인기준 1000원 정도 입니다.

 

 

융건릉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는 조선시대 왕과 왕비의 릉(40기 북한지역 4기 제외) 전체가 2009년 6월 30일 등재된 시점 동시 등재된 것으로 세계 문화 유산으로 인정 받고 있는 조선왕릉 중 하나 입니다.

 

보통 융건릉을 방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방문하게 되는 융릉은 정조의 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의 무덤 입니다. 사도세자가 아버지인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혀 죽은 뒤 영조는 '사도'라는 이름을 내리고 애도 했다고 합니다. 최초 사도세자의 무덤은 현재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지역에 조성되었습니다.

 

이 무덤은 사도세자의 사당 이름인 "수은묘(垂恩墓)"가 무덤 이름처럼 사용되어 수은묘라 불리다가 정조가 즉위하면서 사도세자를 장헌세자로 바꾸며 무덤의 이름도 "수은묘"에서 "영우원(永祐園)"으로 바꾸었습니다. 1789년에는 영우원을 경기도 화성지역으로 묘를 옮기고 "현릉원(顯隆園)"으로 이름을 고쳤는데 "현릉"의 의미는 "낳아주고 길러주산 현부에게 융숭하게 보답한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정조의 효심을 담고 있는 이름 입니다.

 

하지만 정조 대에는 장헌세자(사도세자)는 왕으로 인정 받지는 못하였기에 왕릉이 되지 못했습니다. 현릉원이 융릉(隆陵)이 된것은 구 한말인 고종 때로 장헌세자를 장조로 왕으로 높이고 왕릉으로 격을 올리게 됩니다. 이러한 무덤에 대한 내용은 사실 아래의 융건릉 입구에 있는 역사문화관에서 얻게된 정보 입니다.
 

 

 

 

 

 

큰 공간은 아니지만 아이들과 함께 들렀다면 꼭 역사 문화관에 들려서 융건릉의 배경과 조선 왕릉에 대해서 동영상 등을 보시기 바랍니다. 사전 지식을 얻을수 있고 훨씬 남는게 많을듯 합니다.

 

 

융릉으로 올라가는 길은 휴양림을 연상하게 할만큼 오래된 수목들과 녹음이 우거진 길을 따라 갔습니다. 울창한 수목들에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더운 날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가족 단위로 산책을 즐기러 나온 관람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융릉 안쪽은 능의 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이건 건릉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붉은 색 울타리는 능을 설명한 그림에도 없는 구조물이니 관람객의 출입을 막기 위해 둘러친걸로 보입니다. 그래도 멀리서 나마 석양 무석인, 석마등의 형체가 보입니다.

 

 

이곳은 곤신지 라는 연못인데 융릉 근처에 있는 연못 입니다. 융릉이 옮겨진 이듬해 1790년에 조성된 연못이라고 합니다.

 

 

이제 건릉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참나무가 우거진 기분 좋은 숲을 지나 15분 정도 걸으면 되는데 전 이 길이 참 좋았습니다. 나무에 둘러쳐진 것은 병충해를 막기 위한 끈끈이인데 가까이 가보면 날벌레와 파리가 잔뜩 붙어서 죽어 있습니다. 끈끈이 때문인지 숲속인데도 날벌레가 거의 없습니다.

 

건릉에 도착했습니다.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거의 융릉과 똑같이 생겼습니다. 수라간과 비각의 위치마저도 똑 같습니다.

 

 

 

이곳은 능 주인의 업적을 기록한 신도비를 모셔두는 비각 입니다. 건릉의 비각이니 정조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 입니다.

 

 

이 비각은 사실 소실되었다 복원된 비각이라 내용은 "대한 정조 선황제 건릉 효의선황후 부좌" 라는 고종때 황제로 추존되며 새겨진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효의왕후가 합장되어 있어 비각에 두 사람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상설도 해설을 보시면 조선시대 왕릉에 구조에 대해 공부가 될 듯 합니다. 저도 사진을 찍어와 나중에 기억을 되살리며 이 구조물이 그것이구나 하고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융릉과 건릉은 역사적으로도 좋은 교육의 장이 되는 곳이지만 무엇보다 너무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온다면 약 한 시간 정도 산책하며 숲 그늘 길을 걸으며 수목의 아름다움에 빠져들기에도 좋습니다. 우리집 아이들은 어려서 그저 숲속이 신기하고 뛰어놀기만 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비각을 들여다보며 저건 무슨 말이야 누구 무덤이야 같은 대답하기 좋은 질문들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아 역사에 좀 약하시다구요? 걱정 없습니다. 저라고 이런 왕릉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이럴때는 스마트폰으로 재빨리 검색하고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면 아이가 반짝반짝 "우와" 하는 눈빛으로 바라봐 준답니다.

 

 

건릉까지 보고 내려오는 길은 멋진 자연과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았습니다.

 

 

융건릉을 거니는 내내 유모차를 타고 컨디션이 안 좋은지 칭얼칭얼 대던 아들 녀석도 마지막 숲길은 씩씩하게 걸어갑니다. 무척 더운 날씨였지만 시원하게 그늘진 숲길은 걷기의 즐거움을 가르쳐 주는 느낌입니다. 참 융건릉 안은 물 이외의 취식물 반입이 안되고 돗자리등을 들고 들어갈 수 없는 곳 입니다. 입구에서 많이들 저지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출입제한 조건을 아시고 아예 가져가지 마시길 바랍니다.

 

융건릉은 정조와 그의 아버지 장조(사도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기도 좋은 장소이고 아름다운 숲길을 거닐기도 참 좋은 장소 입니다. 시간이 되면 조선 왕릉들을 한번씩 탐방 해봐야 겠다는 계획도 잡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