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마음의 부담 때문인지 긴 글을 쓰기가 어려워 꽤 오래 미루고 미루어뒀던 오다 노부나가 이야기를 이제야 맺어 보려 합니다,
지난 글
[Story of Kings] - 오다 노부나가 상경과 포위망. 왕 이야기 19-2
[Story of Kings] - 오다 노부나가 제육천마왕으로 불린 남자, 왕 이야기 19-1
두번째 이야기에서 다루었듯이 노부나가는 반 노부나가 포위망이 구성되어 여러 방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서서히 오미에서 승기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572년 음력 10월 그 동안 움직이지 않던 다케다 신겐이 아시카가 요시아키의 출병 요청에 호응하여 총공격을 개시하자 노부나가는 정말로 위기에 처합니다.
다케다 신겐
다케다 신겐은 아마도 많은 전국시대 팬을 거느린 매력적인 무장중에 하나가 아닌가 합니다. 풍림화산이라는 군기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변의 우에스기 겐신이나 호조와 같은 강대한 경쟁자들이 없었다면 어쩌면 조금더 빨리 천하를 노렸을지도 모르는 유력한 전국 무장입니다. 그와 우에스기 겐신의 호각을 다투는 전쟁의 연속은 천과지와 같은 영화의 소재로도 등장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가케무샤(影武者)를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습니다.
다케다 신겐
노부나가가 지금까지 상대했던 그 어떤 적보다 강대하고 군사적인 명성을 지닌 다케다 신겐의 총 공격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포위망 속의 오다 노부나가를 정말로 궁지에 처하게 만듭니다. 그가 현시점에서는 누구보다 적으로 돌리기 싫었던 인물이 아닐까 합니다. 다케다 신겐의 이 침공을 상경전이다 아니다. 여러가지 이설이 있지만 워낙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던 노부나가로서는 산 너머 산이란 말은 이럴때 쓰는구나 하고 느끼지 않았을까 합니다.
미카타가하라 전투
다케다 신겐은 미노 동부에서 아키야마 노부토모를 파견해 이와무라성을 함락하고 노부나가와 동맹이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에 총병력 3만으로 쳐들어와 급파된 오다군 원군 3천을 포함해 맞선 도쿠가와 군을 미카타가하라에서 격파하였습니다. 이 전투에서 오다, 도쿠가와 연합군은 전멸에 가까운 참패를 맛보았고 오다 원군을 지휘하던 히라테 히로이데는 전사하였습니다.
1573년에는 다케다 군은 여세를 몰아 미카와로 쳐들어갔고 음력 2월에 노다성을 공략 합니다. 신겐의 상경전에 호응하여 쇼군 아시카가 요시아키가 미요시 잔당과 마쓰나가 히사히데와 협력해 거병하였으로 노부나가는 정말 궁지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신겐은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이 시기에 급사 했거나 중병을 얻어 음력 4월에 다케다군은 가이로 회군하고 맙니다. 아마도 신겐은 혹 이후에 살아 있었더라도 곧 죽음을 맞이한것으로 보입니다. 궁지에 몰려있던 노부나가로서는 천운이 따라준 것이 아닐수 없습니다. 천하를 얻으려면 수명도 길어야 하나 봅니다
신겐 사후 노부나가는 음력 7월, 쇼군 요시아키를 공격하여 교토에서 추방함으로써 무로마치 막부를 역사에서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1573년 음력 3월에는 에치젠으로 원정하여 아사쿠라 요시아키군을 격파하고 아사쿠라를 자결하게 한 후, 음력 9월에는 아자이 나가마사의 거성인 오다니 성을 공격해 함락시켜 결국 아자이 나가마사를 자결하게 합니다.
이처럼 포위망의 한축이던 아사쿠라, 아자이를 멸하고 또 곧바로 이세의 나가시마를 공격하지만 고전하여 함락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미 포위망의 한축이 무너졌고 전황은 노부나가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1574년 음력 7월에 노부나가는 3만의 대군으로 이세의 나가시마를 수륙 양면으로 포위하여 맹공을 가합니다. 이 전투는 워낙 치열해서 노부나가의 이복형인 오다 노부히로 및 여러 무장이 전사했고 결국 노부나가의 지속적인 공격과 병량이 떨어져 굶주리던 나가시마 성의 일향종 문도들은 항복하고 오사카로 배를 이용한 퇴거를 조건으로 항복합니다. 하지만 퇴거가 늦어지자 노부나가는 문도들이 탄 배에 사격을 가하였고 이에 격분한 문도들의 필사의 반격으로 노부나가의 동생 오다 히데나리가 전사합니다. 이후 노부나가는 다른 성에 남아서 농성하던 나가시마 문도들의 항복을 인정하지 않고 모두 2만명에 달하는 농성자들을 모조리 학살하였습니다. 아군이 많은 피해를 입은데 대한 보복이자 저항하는 다른 적에 대한 본보기로 삼으려는 학살로 생각 되지만 이는 마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노부나가의 악명을 더해주었고 그의 적들에게 지나친 공포심을 안겨주는 역효과를 준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나가시노 전투
1575년 음력 5월 다게다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는 신겐 사후에도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는데 다케다 가를 배신하고 도쿠가와의 가신으로 돌아선 오쿠다이라 사다마사를 벌하기 위해 1만 5천의 병력으로 나가시노성을 공격해 왔습니다. 이를 구원하기 위해 노부나가는 3만의 병력으로 기후를 출발해 도쿠가와군 8천과 합류하여 5월 21일 나가시노 근교에서 다케다군과 전투를 벌여 완승을 거둡니다. 이 전투에서 다케다 군은 야마카타 마사카게, 바바 노부하루 등 신겐 대 부터의 다케다 군의 핵심을 이루던 여러 가신들이 전사하여 회생하기 힘든 치명적인 타격을 입게됩니다. 이후 노부나가는 에치젠에서 봉기를 일으킨 혼간지 문도들을 제압하고 에치젠을 시바타 가쓰이에의 영지로 삼게 하는등 주변의 세력들을 차차 제압하고 그 세력기반이 탄탄해집니다.
2차 포위망과 우에스기 겐신
우에스기 겐신
이후 노부나가는 미노와 오와리를 적장자 오다 노부타다에게 물려주고 오미에 아즈치성을 축성하여 새로운 거성으로 삼고 일본 통일에 더욱 매진하였는데 1576년에는 이시야마 혼간지가 다시 거병하고 단바의 히타노 히데하루도 반기를 드는등 다시금 반 노부나가 세력이 결집하기 시작 합니다. 이에 음력 4월에 노부나가가 이시야가 혼간지의 거성인 오사카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전세는 그다지 유리하지 못하여 노부나가 자신이 부상을 입을 정도로 매우 고전 하였던 걸로 보입니다. 게다가 혼간지의 동맹인 모리의 수군이 노부나가의 수군을 격파하고 오사카에 병량을 공급함으로써 포위전도 여의치 못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앞서의 다케다 신겐과의 전쟁에서 호각을 겨루던 에치고의 우에스기 겐신이 혼간지와 화친하고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파기하였습니다. 우에스기 겐신 역시 수많은 전국 팬을 거느린 유력 무장입니다.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다케다 신겐이 꼼꼼하고 치밀한 전략가라면 우에스기 겐신은 변화하는 전투의 흐름을 읽고 단숨에 승기를 잡는 천재형 무장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 겐신을 맹주로 모리 데루모토, 이시야마 혼간지, 히타노 히데하루등이 결집하여 2차 노부나가 포위망이 결성됩니다.
하지만 역시 그 중심에 선 세력은 우에스기 겐신이었습니다. 우에스기 겐신은 1577년 9월 노토의 나나오성을 함락시키고 9월 말에는 3만의 병력으로 출진한 시바타 가쓰이에의 군을 테토리 강에서 참패 시킵니다. 후군을 이끌고 오던 노부나가는 이 패배를 알고는 겐신과의 회전을 피해 아즈치로 귀환해 버렸습니다. 겐신의 출전 소식에 지금이야 말로 기회라고 생각한 배신의 아이콘 마쓰나가 히사히데가 다시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돌아와 있던 노부나가는 오다 노부타다를 총대장으로 히사히데의 거성인 시기산성을 포위하게 합니다. 결국 히사히데는 성에서 자폭을 택하여 자결하고 맙니다. 이 히사히데 만큼 여러차례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들었는데도 매번 용서를 받은 인물도 없는듯 합니다. 이 음모와 배신의 상징이 된 노인은 어지간히 남의 밑에 있을 성격이 못되나 봅니다. 하지만 그도 결국 이번만은 모든것을 포기하고 폭사를 택하고 맙니다.
운도 반복되면 실력이라고 생각해야 할듯 합니다. 신겐 이후 노부나가에게 가장 큰 압박을 가하던 우에스기 겐신도 1578년 3월에 급사하고 맙니다. 가장 강대한 적들이 알아서 수명을 다해주니 역시 천하를 얻으려면 훗날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처럼 수명도 길어야 하는것 같습니다. 겐신의 죽음으로 2차 노부나가 포위망도 붕괴되었고 에치고의 후계자 다툼을 틈타 노부나가는 우에스기령의 가가, 노토를 오히려 공략해 탈환하게 됩니다.
다케다 멸망
가장 꺼려하던 두 상대인 다케다 신겐과 우에스기 겐신이 알아서 퇴장하자 노부나가는 다방면의 소소한 적대 세력들을 제압하고 자신의 가신들에게 영지를 주어 주면의 적들을 독립적으로 공략하게 합니다. 이제는 그만큼 그의 세력이 커지고 기반이 탄탄해져 여력이 생겼기 때문임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쿠마 노부모리와 사쿠마 노부히데 부자를 혼간지와의 전투에서 부진했다는 이유로, 하야시 히데사다, 안도 모리나리는 이전에 모반을 꾀했으며 그의 친지들이 적과 내통했다는 다소 궁색한 이유를 들어서 영지를 몰수하고 추방합니다. 이는 천하 통일이 가시적으로 다가옴에 따라 내부적인 숙청을 진행하며 권력기반을 공고히 하는 단계로 들어선 걸로 보입니다. 아마도 필자가 보기에 그는 멀리 내다보고 일을 진행하는 사람이지만 생각이 나면 바로 추진해야 하는 매우 급한 성격을 가진 천재형 인물로도 보입니다. 이런 유형의 리더들은 사실 주변인의 마음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조치들이 아케치 미쓰히데와 같이 명석한 무장들에게는 지나친 의심과 불안감을 심어주는 이유가 되지 않았나 짐작합니다.
1982년 음력 2월에 신겐의 아들 다케다 가쓰요리의 과도한 공납 요구에 기소 요시마사가 반기를 들어 노부나가에게 돌아서자 이를 계기로 노부나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호조 우지나오 등과 연합하여 총 10만이라는 병력을 동원하여 다케다령을 순식간에 공략 하였는데 동시 다방면에서 대군으로 공격을 받은 다케다 군은 제대로 대응도 못하고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흔히들 몰매에 버티는 장사 없다고들 하는데 항상 상대를 고립시키지만 자신은 고립되지는 않았던 그의 아버지의 전략적 재능은 물려 받지 못한 가쓰요리 였던것 같습니다. 결국 가쓰요리의 일족은 도주하며 떠도는 곤궁한 신세가 되어 병사들이나 주변인들도 거의 이탈하여 달아나자 결국 식솔들 모두가 자결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 시절에 가이, 시나노, 쓰루가, 고즈케 일부, 미노 일부등 5국에 걸쳐 이룩한 넓은 영토, 강대한 세력을 자랑하던 가문의 위세를 생각하면 너무나 허망하고 덧없는 최후였습니다.
적은 혼노지에 있다,
이제 노부나가는 차례 차례 주변을 정복해 가면 되는 거칠것이 없어 보이는 시기를 맞이 하였습니다. 누군가 말했듯 "미완의 것이 아름답다" 랄까요? 역사의 매력적인 인물들은 모든 것을 이룬 사람들 보다는 항상 그 뛰어난 재능에도 끝까지 이루지 못했거나 이루어 내기 직전에 사라져간 인물들인것 같습니다. 제갈량이 그렇고, 모짜르트가 그렇고, 넬슨이 그렇고, 이순신 장군이 그렇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원래 아사쿠라의 가신이었으나 나중에 노부나가가 스스로 쇼군으로 세웠다가 추방하는 아시카가 요시아키를 영입한 공로로 노부나가의 가신이 되었습니다. 노부나가의 후대를 받아 오다 사천왕으로 일컫어질 정도로 출세를 한 인물입니다. 그가 왜 모반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많은 설들이 있지만 확실한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요. 일반적으로 전통과 권위, 천황제를 중시하는 아케치와 전통을 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드려는 노부나가와의 성격상, 입장상의 충돌 등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많지만 평범한 회사원인 제가 부족한 의견을 그 설에 보태 보기위해서 무사들의 지배체제를 "오다 종합상사"라는 회사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아케치 미쓰히데의 위치는 비유하자면 오다 사장 직속의 유능한 임원일 겁니다. 필자가 임원이 되어볼 나이도 아니고 경험도 부족하지만 샐러리맨은 누군가의 밑에서 눈치보는 생활을 하기 마련이고 그러다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 나름의 이해를 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능력있는 상사 밑에서는 원래 무능한 상사 밑에 있는것 보다는 보람도 있지만 역시 무리를 하고 혹사를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만큼 보상을 받는다면 보람있고 멋진 직장 생활이 되겠지요. 하지만 오히려 많이 인정 받았던 사람일수록 상사의 작은 변화에 민감 해질수 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 상사가 회사의 성장기가 끝나고 체계가 잡혀 감에 따라 불필요한 인원을 정리 해고하여 회사를 쇄신 할 기미를 보인다면? 뭐 불쌍한 회사원들이야 더 납작 엎드리던가 반기를 들고 이직하거나 능력이 있는 사람은 나가서 자기 회사를 차리겠지요?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를 보면 다음에 언급하는 두가지에 해당하는 경우 대부분 알아서 나갑니다. 첫째는 자신보다 어리거나 하위 직급의 사람 밑으로 가라는 것으로 자존심에 상처를 주어 그러한 일들을 더욱 부추키는 일이지요, 두번째는 연봉 동결, 감봉 같은 직접적인 불이익 또는 팀장에서 팀원으로 역활을 옮기는 등의 직급을 낮추는 것 같이 대우를 변경하는 일입니다.
아케치 미쓰히데는 아즈치성을 방문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접대하는 역활을 하던 도중 모리의 대군으로부터 공격을 받던 하시바 히데요시(훗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구원하라는 명을 받게 됩니다. 더구나 기존의 영지는 반납하고 아직 모리의 영지인 지역을 빼앗아서 영지로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얼핏보면 전쟁에 이긴다면 얻을 영지가 더 크긴 하지만 이것은 앞서 말한 두가지를 모두 만족시킵니다. 자신보다 밑이라고 생각했던 하시바 히데요시의 휘하로 가라는 것, 기존의 영지를 반납하고 만약 전투에서 패한다면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모리의 영지를 취하라는 점 입니다.
어쩌면 노부나가가 단순하게 생각하고 하시바가 해당 전선에 있어서 모리와 싸운 경험이 있으니 도우라는 의미로 내린 명령 일수도 있고 새로 출발하는 마음으로 영지를 얻기 위해 열심히 싸우라는 독려일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진심이 미쓰히데의 숙청일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노부나가 자신이 출진하려고 준비했던것을 보면 후자쪽은 아닌것 같습니다. 어느쪽이든 해당 지시를 들은 아케치 미쓰히데에겐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 명령이었다는 점 입니다.
결국 아케치 미쓰히데는 1582년 음력 6월 2일 모리에 대한 원정 준비로 상경하던 노부나가가 소수의 수행인원과 혼노지에 숙식중인것을 알고 하시바의 원군으로 가던 군사를 동원해 혼노지를 급습합니다. 이때 했던 저 유명한 말이 "적은 혼노지에 있다" 입니다. 이말은 사실 한국에서도 일본 만화나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잘 알려진 말이지요.
게임 신장의 야망의 혼노지의 변 이벤트
소수의 수행원으로 결국 수세에 몰린 노부나가는 결국 혼노지에 불을 지르고 자결을 하는 최후를 맞게 됩니다. 향년 49세로 그가 즐겼다는 아쓰모리의 한 구절 처럼 50년에 가까운 인생을 보냈습니다.
이별 이노라!
개인적으로 소리마치 다카시 라는 배우가 노부나가역을 연기했던 "토시이에와 마츠" 라는 일본 시대극에서의 노부나가의 최후가 아직도 혼노지의 변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입니다. 짧은 상황신이었지만 이 배우가 연기한 노부나가가 가장 잘 어울렸던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노부나가의 사후는 하시바 히데요시가 발빠르게 회군하여 결국 아케치 미쓰히데를 격파하고 승리하여 주군을 시역한 역적을 토벌했다는 후계자에게 필요한 명분을 얻게됩니다. 이후 빠르게 경쟁자들을 제압하고 일본을 통일하여 관백이라는 공경의 우두머리로 지배체제를 정립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치하게 됩니다. 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통일후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계를 이어가기에는 너무 어린 아들을 남겼으며 결국 히데요시 사후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하를 차지하여 도쿠가와 막부를 개창하게 됩니다. 역시 오래 살아야 천하도 차지 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한때 근현대 한국의 권력자들의 삶을 이 3인과 빗댄 경우가 있었는데 아마 측근에게 암살 당한것과 그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이 유사했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권력의 속성이 유사할 따름이지 사람이야 어디 비슷하기야 하겠습니까?
앞서도 말했지만 시대가 흘러도 권력의 속성은 비슷합니다. 노부나가의 경우 그 잔혹함에 대해서는 마왕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고 그 비범함은 또 후대에 과대포장된 부분도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노부나가는 구 시대를 파괴하고 새로 만드는 역활을 한 인물이며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임은 틀림이 없는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길었던 오다 노부나가에 대한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지면상 많은 생략이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