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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2,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지난 글에서 위화도 회군을 통해 이성계가 최영을 제거하고 정권을 잡는 과정까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조선의 국가체계를 만들어냈다고 까지 표현할수 있는 정도전과 그의 라이벌 정몽주, 그리고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태종)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가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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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Kings] -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역사의 라이벌 최영과 정몽주 1

 

 

위화도 회군은 사실 이성계 혼자만의 쿠데타가 아닙니다. 주체는 이성계였지만 신진사대부들 역시 이를 이용하여 고려 조정내의 구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 정권을 장악 하는 계기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정도전, 정몽주등의 적극적인 지지로 내부의 반발을 무마할수 있었습니다. 즉 이성계의 회군시 정도전, 조준, 정몽주와 같은 신진 사대부세력의 거두들이 개경에서 회군에 대한 반발을 무마시키고 지지세력을 집결하는등의 활동을 통해서 이성계가 정권을 잡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성계는 우왕을 폐하여 유배하고 아직 9살에 불과한 창왕을 왕위에 세웁니다. 이는 대부분의 권력자들이 정권을 잡은 후 어린 왕을 세워 실권을 쥐는 과정에 다를바없는 행보 였습니다. 폐위된 우왕은 후세에 아둔한 인물인것처럼 종종 묘사되고 있으나 최영을 장인으로 영입하여 그의 힘을 빌려 이인임등의 권력을 누르려 했고 왕권을 회복하려 안간힘을 쓴 과정을 보면 비록 최영에 대한 의존도가 높긴 했지만 결코 어리석은 왕은 아니었던걸로 보입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몽주는 우왕과 이후 창왕까지 폐하는데 동의하고 공양왕을 추대하는 일을 지지하면서 이성계가 전권을 잡은 고려조정에서 많은 활약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점차 신왕조를 창건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는 움직임이 있자 처음으로 그는 이에 반대하며 같은 스승(목은 이색) 아래 동문이자 절친한 사이였던 정도전 과도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정몽주

 

이성계와 정도전

 

정몽주의 초상

 

정몽주는 경상도 영일현에서 정운관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고려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한 명문 가문이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훌륭한 선조들에 비해 출세하지 못해서 성균관 유생에 불과하였습니다. 어려서 부터 기억력이 좋고 영특했으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정몽주에게 그의 어머니 영천 이씨는 아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백로가 라는 시 한수를 지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기 흰 빛을 새울세라

청강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간신, 역적, 탐욕의 무리와 가까이 하지마라는 훈계를 담은 시인데 시의 작자에 대해서는 사실 정몽주의 어머니가 아닌 다른이라는 이설이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수재는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손에서 나오는것 같습니다. 또 한편 정몽주의 최후를 생각해 보면 시를 받는 시점부터 그의 인생이 이미 정해져 있었던것 같은 묘한 감상도 생깁니다.

 

 

후에 그는 목은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습니다. 정몽주, 정도전, 권근, 이승인 등 고려말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들은 대부분 이색의 문하에서 배출된 인물들입니다. 정몽주는 이중 정도전과 특히 마음에 맞아 정도전이 이야기하는 부패한 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으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사상(고려 말의 마르크스 주의?!!! 긴 역사를 통틀어 오랫 동안은 사람의 신분이 평등하지 않았기에 수탈을 자비롭고 백성을 어여삐 여겨 인간적으로 덜하는...으로 해석하시는게 나을 듯 합니다.)에 공감하였습니다. 이후 정도전과는 오랜 친구로 권문세족과 외척의 발호로 부패한 고려 사회를 성리학적 이상향으로 개혁하겠다는 사상적, 정치적 동지가 되었습니다.

 

 

정몽주는 1357년 감시에 합격하고 1360년 10월 문과에서 3번의 시험에 장원급제 하여 관직에 나아갑니다. 이 당시의 고려는 외침에 시달리던 시기로 비록 문관이지만 그 역시 종군하여 여진족과 왜구 토벌등전에 참여하였습니다. 1364년에는 이성계를 따라 여진을 치는데 종군하고 돌아왔으며 이 시기에 이성계의 인품에 감화되어 그와 정치적인 노선을 같이하게 됩니다. 이후 성균관 박사로 재직하며 유교 경전을 강의하였고 1367년에는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해박한 경전의 해석 능력과 강의로 고려의 성리학 정착에도 많은 기여를 하였던 인물 입니다. 당시 조정에서 권력을 잡고 있는 이인임이 주장하던 배명친원 정책의 외교정책을 반대하였으며 이인임 일파들을 탄핵하였으나 이러한 정치 활동은 반격을 받아서 1375년 오히려 정몽주와 정도전을 포함한 신진사대부 세력은 21명이 죽거나 유배당하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유배에서 복귀한뒤 정몽주는 학자와 정치가로서 뿐만 아니라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외교적인 활동과 왜구를 토벌하는등의 군사적 활동에도 공을 세웠습니다. 

 

 

정몽주의 인생을 통틀어 보면 그는 성리학적 이상향 구축의 꿈을 버리지 않은 "혁명가" 로서의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역성혁명이라는 과격한 수단은 아닌 고려의 신하로 어디까지나 고려라는 틀 안에서 개혁을 하려했던 비교적 온건한 개혁가로 보입니다. 한때 정치적 동료였던 정도전의 고려를 뒤엎고 새로운 왕조와 새 시대를 만드려는 과격한 정치적 노선과는 방향이 조금 달랐던것 같습니다. 정몽주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찬동하여 회군을 지지하고 우왕 및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추대하는데 많은 힘을 보태어 주었으며 국가운영을 주도하던 이성계에 협력하여 이 공로로 조정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고려사에서는 이성계가 출전할때면 매번 정몽주와 함께 나갔고 여러번 천거하여 국가의 재상과 같은 지위에 올랐다고 할 만큼 이성계가 왕이 되고자 하는 뜻을 내비치기 전까지는 정치적 동료이자 든든한 지지자였습니다. 

 

 

이성계 일파가 이씨가 나라를 얻는다는 목자득국(木子得國 : 나무 목자가 이라는 성씨에 있는것을 빗대어 이씨가 나라를 얻으리라는 뜻)의 노래와 말을 시중에 유표하는등 역성혁명의 뜻을 노골적으로 내비치기 시작하자 정몽주는 마침내 이들과 결별하여 정적이 됩니다. 그는 우선 한때 절친한 동료였지만 이제는 역성혁명파의 거두가 된 정도전을 탐욕스럽다고 비판하고 탄핵합니다. 더구나 정도전 집안의 혈통을 공격하면서 감정이 상한 정도전은 정몽주를 원수로 여기게 됩니다. 이를 시작으로 이성계 주변인물들을 지속적으로 탄핵하고 공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392년에는 이성계가 사냥하다 낙마하여 황주에서 병석에 들자 이 기회에 이성계와 그 일파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그날 밤 이성계를 개성으로 돌아오게 함으로써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정몽주는 고려 조정의 요직에 있으면서 이성계와 정도전의 가장 큰 적이 되었으나 이성계는 그럼에도 정몽주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걸로 보입니다. 이는 이성계는 아들인 이방원에게 정몽주를 설득하여 자신의 세력으로 다시 끌어들일것을 지시하였던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이방원이 정몽주에게 자택에 방문해줄것을 요청하자 정몽주는 이성계의 병문안을 핑계삼아 이성계의 병세와 정세를 염탐하기 위해 이성계의 집을 방문 하였습니다.

 

 

이때 이방원은 하여가 라는 시를 지어 마지막으로 정몽주의 속 마음을 떠 보았고 정몽주는 단심가로 자신의 굳은 마음을 표현하며 확실하게 거절 합니다. 이방원과 정몽주가 시조를 주고 받는 이 장면은 어린시절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사극에서 처음 보았던 기억이 있는데 어린 마음에도 아직도 기억에 남을만큼 임팩트를 준 명장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번의 드라마 정도전에서도 이 장면을 어떻게 그려낼까 사뭇 궁금해지는 부분입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그 어떠리

우리도 이같이 얽어져 백년을 누리리라

-이방원 <하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 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 <단심가>

 

 

이성계와 정도전

 

인터넷을 뒤져보니 과거에 제가 어린 시절, 사극을 좋아하던 어머니 곁에 무릎을 베고 누워 같이 보았던 드라마는 1983년 KBS 대하드라마 "개국" 이었던것 같습니다. 요즘의 꽃보다 할배에 출연중인 신구, 백일섭씨 같은 중견배우 분들도 보이고 이성계가 정말 잘 어울렸던 임동진씨와 단심가를 읊으며 어린 제게도 그 기백이 와닿게 연기했던 정몽주 역의 송재호씨도 멋있었습니다. 노국공주역의 선우은숙씨와 너무 앳되어 보이는 반야(우왕의 어머니)역을 소화한 금보라씨를 보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

 

 

위와 같이 정몽주와 시조를 주고 받은 이방원은 그의 마음을 돌릴수 없다는것을 알게되고 정몽주를 죽이겠다고 마음을 굳히게 됩니다. 그 전에는 정도전 또한 정몽주를 설득하려 했지만 그의 마음을 돌릴수는 없었습니다. 흔히 알려진것과 달리 정몽주는 자신에 대한 암살계획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392년 4월 4일 이성계의 집을 방문하여 병문안을 핑계로 정세를 파악하기 전에 이미 그는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수도 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는지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기고 이성계의 집을 방문합니다. 결국 정몽주는 이성계를 방문하고 돌아오던 중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와 무사들에 의해 내려쳐지는 철퇴와 몽둥이, 철편에 맞아 죽음을 당합니다.

 

 

그가 죽을때 흘린 피가 개성 선죽교의 돌의 일부에 묻었는데 오래도록 그 흔적이 있었고 선죽교의 피묻은 돌틈에서 대나무가 솟아나 정몽주의 충절을 나타냈다는 전설이 남았습니다. 선죽교라는 이름은 이 유명한 암살 사건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아이러니 한것은 그를 죽이도록 사주한 이방원이 나중에는 비록 정도전을 폄훼하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역적으로 규정 되었던 정몽주를 충렬의 상징으로 복권 하도록 주도했다는 후일담 입니다. 정몽주가 남긴 유언을 보면 이미 이성계와 역성혁명의 대세를 거스리기 힘들다는것을 이미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자신의 묘비를 세울때 반드시 고려의 관직을 남기라고 유언 했으면서도 자식들에게는 혹 새로운 조정이 관직을 내린다면 사양하지는 말라고 유언합니다. 그 자신이 이미 시대를 되돌리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만의 신념을 꿋꿋하게 지키기 위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것으로 생각 됩니다. 현대에도 이렇게 죽음을 예감하고도 자신의 정치적인 신념을 꿋꿋하게 지킬만한 정치인이 과연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성계는 정몽주의 죽음을 전해 듣고 이방원에게 "우리 가문은 대대로 충효한 가문인데 나라의 대신을 함부로 죽였다"며 노했다고도 하는데 사실 그것이 과연 진심이었을지는 의심스럽습니다. 아마도 왕권을 얻기 위해 도덕적 손 씻기의 제스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지 더 미루어 짐직할 수 있는것은 태조 이성계는 후에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 없었다는 점 입니다. 왕위에 오를 사람은 도덕적인 결점이나 오점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 당연히 유리합니다.

 

이성계가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을 왕위 후보로 생각했다면 아마도 정몽주를 암살하는 일을 시키고 그 책임을 전가하는 등의 일을 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전이라 제목도 기억나지 않은 느와르 소설에서조차 범죄 조직도 차기 두목이 될 후보군에는 살인등과 같은 험한 일을 시키지 않는다는 말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성계 역시 자신을 꼭 닮았지만 한층 더 야심찬 아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속마음 때문에 그에게는 불행스럽게도 자식들간의 골육상쟁으로 피를 뿌리게 되는 1,2차 왕자의 난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지난 글이 너무 길었었나 봅니다. 제 글의 비교적 충실한 독자인 아내도 지난번 글은 너무 길다며 읽다가 패스 해버리는 충격적인(?)일을 겪고 나니 원래는 2편으로 끝내려한 글이었지만 조금 더 쪼개어 야 할듯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이제 최대의 걸림돌이던 정몽주를 제거한 이성계와 정도전의 개국과정과 말년을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되도록 3편에서 마무리를 할 예정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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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of Kings] -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정도전 3, 한잔 술에 그만 허사가 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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