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오랜만에 그 동안 못본 TED 강연을 몰아서 보다가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다른 생물을 조종하는 기생 동물들을 주제로 한 강연이었습니다. 강연에서는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곱등이, 바퀴를 좀비로 만들어 조종하는 말벌등 어떻게 보면 SF의 주제로 삼을 만한 어떤 부분에선 끔찍하고 놀라운 기생동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제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 강연은 기생동물, 기생곤충으로도 알려져 있는(정확하게는 이런 기생동물들 중에 곤충은 드물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런 동물을 곤충(벌레)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물들의 생존 방식에 대한 강연이었습니다. Ed Yong 이라는 동양계 강연자의 강의는 그 주제도 흥미로웠지만 강연 도중의 적절한 유머와 비유로 인해서 집중력도 좋았고 결국은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프리젠테이션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새삼 생각하게 한 강연이기도 했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즐겁게(비록 내용중 그로테스크 한 부분도 있었지만) 본 강연 이었습니다. 혹 테드 강연을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잠깐 소개를 하자면 TED(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는 미국의 비영리 재단으로 정기적으로 열리는 기술, 오락, 디자인에 관련된 강연회를 개최하고 있는 비영리 조직 입니다. TED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등에서도 개최하고 있으며 TEDx란 형식으로 각 지역에서 독자적인 강연회를 개최하기도 합니다. 1984년에 창립되었고 1990년부터 매년 개최되었으며 특히 TED강연회와 기타 다른 강연회의 동영상 자료를 웹사이트에 올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강연의 수준이 매우 높은 강연들이 많아서 자주 보고 있는 편입니다.
보통 18분 내외의 강연을 하는데 강연 시간을 초과하거나 강연도중 문제가 생기는 경우 아래 영상과 같은 일들이 생기기도 합니다.
"TED 강연자의 악몽"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다분히 사전에 미리 짜여진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를 통해 TED는 예기치 않은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도 하고 있지만 정해진 강연시간을 지키지 못하면 같은 경우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트있는 경고의 의미도 담고 있는것 같습니다. 물론 퍼포먼스가 너무 흥겹다 보니 그다지 악몽은 아닐듯 합니다. 단 실제로 이런 경우를 당하면 발표자는 상당히 난감할것 같습니다.
사설은 이정도 선에서 줄이고 TED 강연의 내용과 따로 검색해본 자료들의 내용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이 기괴하고 가끔은 역겨운 생각이 들게하는 기생동물의 세계를 한번 살펴 볼까 합니다. 개미를 조정하는 창형흡충의 이야기는 너무 유명한 사례다 보니 제외 하였습니다.
사진의 일부가 곤충을 리얼하게 표현 하다보니 평소 벌레를 싫어 하시거나 징그러운 것을 못 보신다면 포스팅을 계속 보지 않는걸 추천 드립니다.
연가시
실제의 연가시라는 기생충의 특성에서 착안한 "연가시"라는 영화가 성공했기에 아마도 대부분의 분들은 한번쯤은 들어보신 이름일 듯 합니다. 곱등이와 같은 곤충에 기생하는 이 생물은 사실 충이라는 이름 때문에 곤충으로 여겨지지만 선형동물(원형동물)의 일종 입니다. 연가시는 전 세계적으로 2000여종이 있다고 추정될 만큼 그 다양성이 풍부한 종이며 몸 길이도 10~90cm로 다양한 크기가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주로 성체는 물속에서 서식하면서 수중에서 암수의 교미가 이루어 집니다.(유성 생식) 수십만에서 수천 만개의 알을 낳고 부화한 유충은 모기 유충에 우선 감염된 후 성충이 된 모기가 지상으로 이동한 후 사마귀 등의 숙주가 모기를 잡아 먹었을 때 체내로 이동하거나 유충이 물가의 풀에 붙어 있다가 메뚜기, 여치, 곱등이 등의 초식성 곤충에 섭취되어서 숙주가 될 곤충의 체내에 머물게 됩니다.
숙주의 체내로 이동한 연가시 유충은 4~20주 정도 면 성충이 되며 성충이 된 후에는 숙주의 뇌에 작용되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여 숙주를 물속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합니다. 숙주가 물에 빠져 죽게되면 숙주의 몸을 뚫고 나오거나 배설강(항문)을 통해서 빠져 나와서 수중에서 교미할 이성을 찾게되는 라이프 사이클이 시작됩니다.
정리하면 물속에서 교미->모기유충이나 직접 물가의 지상으로 이동->숙주에게 섭취됨->숙주를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함->숙주의 몸을 뚫고 나와 물속에서 교미. 라는 사이클을 이룹니다.
연가시에 간염된 곱등이
출처 : TED
물속으로 뛰어들어 자살한 곱등이의 몸 밖으로 나오고 있는 연가시
출처 : TED
영화 연가시는 이처럼 숙주를 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게 만드는 연가시의 특성을 소재로 삼아 만든 영화 입니다.
연가시는 원래 곤충류에만 기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77세 환자의 비뇨기계나 개의 구토물에서도 발견이 되어 포유류에 감염이 가능한지 여부가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앞서의 의심 사례 외에는 포유류에 감염된 정확한 증거나 사례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보석 말벌 (Ampulex Compressa)
알을 품은 보석 말벌의 암컷은 바퀴벌레를 찾아 다니다가 한 마리를 찾게 되면 자신의 침으로 바퀴벌레의 머리를 찌릅니다. 그리고 그 침으로 바퀴벌레의 머리 속을 휘저으며 바퀴의 뇌를 찾아낸 다음, 뇌 속에 독을 주입합니다. 이 독은 바퀴벌레를 죽이거나 마비시키지 않습니다. 다만 바퀴벌레가 달아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즉 바퀴벌레가 위험에서 달아나려 하는 본능이나 의식만을 날려버리는 셈입니다. 마치 옛 아이티섬의 이야기속의 좀비를 떠올리게 하는 상태가 된 바퀴벌레는 말벌이 마치 강아지를 산책시키듯 더듬이로 위치를 지시하며 자신의 굴로 데려갈수 있게 됩니다.
바퀴벌레를 조정하여 자신의 굴로 데려가는 보석 말벌
출처 : TED
자신의 굴에 바퀴벌레를 데리고 온 보석 말벌은 그 몸 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말벌의 유충은 바퀴벌레를 몸속에서부터 갉아먹으며 자라서 성체가 되어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출처 : TED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쓰레기나 죽은 동물 사체를 먹고 사는 바퀴벌레의 몸은 수많은 세균이 득시글 거리는 세균의 온상 입니다. 그런데 바퀴벌레의 몸안에서 부터 자라는 보석 말벌은 어떻게 수많은 세균 감염의 위협으로 부터 무사할 수 있을까요? 보석 말벌은 입에서 강력한 항균성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바퀴벌레의 몸을 몸안에서 부터 소독하면서 먹어 치웁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숙주의 몸 속에 침투해서 다 자라면 몸을 뚫고 나오고 매우 강한 산을 분비하는 영화속의 크리쳐인 "에일리언"의 설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영화 에일리언의 한 장면
촌충
아르테미아라는 새우의 몸 속에 기생하는 촌충의 한 종류는 해당 새우에게 매우 특이한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
아르테미아 새우
출처 : TED
무릇 생물이란 스스로 몸을 보호하려 애쓰기 마련인데 이 촌충은 새우에 기생하면서 그 영양분을 흡수하고 투명하던 몸을 붉게 물들게 만듭니다. 게다가 보통은 홀로 생활하는 아르테미아 새우를 모여들게 하여 엄청난 군집을 이루게 만듭니다.
촌충에 감염된 아르테미아 새우의 군집
출처 : TED
촌충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긴 여행의 목적지인 홍학(플라밍고)의 몸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군집과 색상은 홍학에게 너의 먹이가 여기 있으니 어서 와서 식사하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 입니다.
홍학(플라밍고)
출처 : TED
홍학에게 아르테미아 새우와 함께 섭취된 촌충은 홍학의 몸 속에서 번식을 하게 됩니다. 이들은 홍학의 몸 속에서만 번식할 수 있도록 진화 하였습니다. 아르테미아 새우는 촌충들에게 조정되어 홍학이 잡아먹기 쉽도록 몸의 색상도 바꾸고는 어서 빨리 와서 나 잡아 먹어줍쇼! 신호를 보내며 군집을 이루어서 촌충이 홍학의 몸안으로 들어 갈수 있도록 해주는 자가용이 되어 줍니다.
톡소포자충
지금까지의 예시들은 주로 곤충을 조정하는 기생동물들의 사례였지만 포유류 역시 이러한 기생동물들로 부터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톡소포자충은 인체에도 간염되는 주요한 기생충 중 하나입니다.
출처 : TED
포유류의 몸에 침입한 톡소포자충은 즉시 면역체계의 공격을 받게 되고 이들은 면역체계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포자라는 주머니를 만들어 그 속에만 머물게 됩니다. 면역체계가 보았을 때는 그들을 일정한 공간의 감옥에 가두어둔 셈이니 승리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이들은 면역체계가 약화되면 종종 포자를 빠져 나와서 염증을 일으킵니다. 포자가 있던 장소가 뇌였다면 뇌종양등과 같은 큰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신체 일부에 포자를 만들어 스스로 갇힌 포자충
출처 : ars.usda.gov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쥐와 같은 소형 포유류는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감염된 쥐는 고양이의 소변 냄새를 맡게 되면 마치 "치명적인 유혹"에 빠진 것 처럼 그 곳으로 달려가게 됩니다. 고양이와 마주쳐도 달아나거나 무서워하는 성향이 훨씬 덜 해져서 결국은 톡소포자충이 고양이로 가는 길의 버스가 되어 줍니다.
출처 : TED
고양이는 톡소포자충이 마지막으로 도달 하고자 하는 종 숙주 입니다. 톡소는 고양이의 몸안에서만 번식할수 있고 고양이의 배설물을 통해서 알을 배출합니다. 이 배설물을 먹은 쥐의 경우는 고양이에 대한 "치명적인 유혹"을 느끼는 사이클이 다시 시작됩니다.
그런데 포유류의 뇌를 조종하는 기생충의 사례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톡소포자충은 사람에게도 감염되는 주요한 기생충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앞서 말했습니다. 사람이 고양이에게서 감염되는 사례는 매우 드문 경우 입니다. 사람이 고양이의 대변을 먹을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요. 또 사료를 먹는 집 고양이들의 경우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가능성도 매우 낮아서 이 글로 인해서 쓸데 없이 고양이를 멀리 한다던가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람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는 경우는 감염된 돼지나 양의 고기를 섭취함으로 인해서 감염이 많이 됩니다. 미국에서 육회를 통한 감염이 많다는 조사결과를 볼때 음식을 날것으로 먹는일이 주로 인체 감염의 경로가 되는것 같습니다..
사람에게 톡소포자충이 감염이 되면 가벼운 감기 몸살과 같은 증상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별다른 증상 없이 지나가게 되므로 감염 사실을 모르고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 입니다. 실제로 전 국민의 5% 정도는 톡소포자충에 감염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최근의 학계에서는 약간 무서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한 앞서 소개한 TED 강연의 마지막에서도 유사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플레그르 라는 체코의 학자는 학술지에 다음과 같은 발표를 하였습니다.
1. "톡소포자충에 걸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2.6배 교통사고를 더 냈다."
2,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은 톡소포자충에 양성인 비율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3. "남자의 경우 톡소포자충에 걸리면 친구가 없다."
적어도 1, 2번의 경우는 고양이에게 가기 위한 행동의 일부로 해석 할 여지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고양이 냄새를 좋아하게 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톡소감염이 정신분열의 위험 인자라는 논문도 있다고 하니 만물의 영장으로 기껏 기생충 따위에게 조정 당하는 일은 없다는 생각들이 무너진 것으로 보입니다. TED 강연에서도 역시 톡소에 감염된 사람의 경우 설문등을 할 때 그렇지 않은 사람들과 다른 답변을 선택 하는 비율이 높았다는 사례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전에 대해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맺으며
흥미로운 기생동물에 대해서 TED 강연내용과 호기심에 찾아본 정보들로 포스팅을 해 보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의 톡소포자충의 이야기에 조금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숙주를 조정하는 기생충들의 이야기가 사람에게도 적용 된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들 중 가끔 멍해지거나 위험을 자초하는 일들을 저지르는 이유가 혹시? 하는 살짝 두려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직도 세상은 우리가 잘 모르고 신비로운 일들이 가득한 세상인것 같습니다.
참고 자료 :
TED 강연 "자살 곱등이, 좀비 바퀴등의 기생물 이야기"
네이처 : Wasp larva disinfects its roach meal from wit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