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자면 글쓴이는 그릇에 대해서는 아는것이 별로없는 대한민국의 보통 남자입니다. 글쓴이와 같은 남자들은 그릇이야 잘 깨어지지만 않으면 되는것이고 음식을 잘 담을수 있으면 다른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않는게 보통이겠지요. 그런데 아내는 역시 그릇을 너무 좋아하는 주부입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확실치 않는데
어느날 마치 제가 아이폰이나 카메라를 보며 구입여부를 고심하듯 아내도 열심히 최저가를 뒤져보며 살까 말까 하다가 산 그릇이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에 가격도 꽤 되었던것 같은데 아내가 구입을 했기때문에 잘 알지 못합니다.
가장 비슷한 이미지를 구해 보았는데 대강 요렇게 생긴 그릇들 입니다. 솔직히 그릇에 문외한인 제 눈에는 도자기에 촌스럽게 꽃그림이 이리 많이 그려졌을까? 하는게 첫 인상이었습니다. 거친 남자의 설겆이가 있을것 같으면 아내는 이 그릇이 설거지통 안에 있으면 제게 설거지도 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이 그릇 셋트를 아끼는 모습을 보여서 "아 이거는 아내에게 내 아이패드나 카메라와 같은거구나" 요 정도로만 이해를 하였습니다.
이 그릇셋트의 이름을 알게 된것은 얼마전 드라마에서 신혼부부의 부부싸움이 나오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 우리집에 그 그릇과 똑같은 그릇들이 보입니다. 풀떼기 같은걸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꽃그림이 그려진 그릇들 "어 저거 우리집에도 있는거네" 생각하는 순간 신혼 부부는 과감하게 이 그릇들을 던져서 깨면서 신나게 싸우는 씬이 나옵니다. 그런데 옆에서 터져나오는 괴성 "아악 포트메리온!!! 저 아까운것..." 무엇 때문인지 박살나는 그릇들에 마치 자신의 그릇이 깨어지는것 처럼 안타까워하며 아내가 내지른 비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알게된 이 그릇의 이름, 포트메리온 살짝 인터넷으로 가격을 알아보니 걱정했던것 처럼 엄청나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대한 민국의 남자가 생각할수 있는 그릇 가격은 좀 넘어서는 가격이었습니다.
재미있는것은 집에 놀러온 아내의 친구들도 이 그릇은 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포트메리온 XX셋트네", "어 글쎄 이게 XX몰에서 엄청 할인을 하지 않겠어?" 이런류 대화입니다. 아마도 얼마전 드라마에서 누군가 들고 있는 카메라의 렌즈를 보고는 제가 "새아빠 백통이네" 이렇게 바로 알아보고 말하는것과 비슷한 경우가 아닐지요. 아무래도 집에서 쓰는 도구인 그릇에 대한 주부들의 애착은 어른 남자들의 장난감(?)에 대한 애착과 비슷한가 봅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그릇 브랜드 명칭도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가 최근에 장만한 그릇 브랜드는 "광주요" 입니다.
스톡사진 연습삼아서 찍어본 사진인데 아내가 연근튀김을 담은 투박하게 생긴 그릇이 광주요라는 브랜드의 제품입니다. 뭐 사실 투박하고 한국적인 느낌이 나긴 하는데 처음에는 왜 돈주고 이렇게 새 그릇인데도 낡은 느낌이 드는 그릇을 사는걸까 의아해 했습니다. 도대체 그릇이 없는것도 아닌데 왜 또 그릇을 사는걸까? 의아해 하긴 하지만 아내의 말로는 이런 그릇, 접시 도자기류에 대한 열망은 때로는 살때까지 잠을 못이루게 할 정도라고 합니다. 뭐 최근에 저도 카메라 때문에 잠을 못 이룬적이 있으니 이해는 갑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새었는데 어쨋든 꽤 호기심이 생긴 이 포트메리온라는 도자기에 대해서 구글링을 해보았습니다.
포트메리온은 영국의 미술 학도였던 수잔 윌리엄스 엘리스와 경제학자인 그의 남편 유안 쿠퍼 윌리엄스에 의해 1961년 설립되었습니다. 소규모 도자기 장식업체인 A.E.그레이(A.E. Gray)사를 매입하고, 커크햄(kirkhams) 도자기 회사를 인수 합병해서 포트메리온이라는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한 것이 그 시작이었습니다. 수잔 윌리엄스 엘리스는 자신의 디자인을 입힌 도자기를 선보였고, 아름다운 색감과 패턴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뛰어난 제작 기술과 손으로 직접 그려낸 그림을 고온에서 변질되지 않게 처리하여 생생한 생감을 표현해내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포트메리온은 디자인적으로 독특함을 가지고 있는데 ‘토템(Totem)’ ‘매직시티(Magic City)’ ‘매직가든(Magic Garden)’과 같은 다양한 콘셉트의 디자인을 출시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1972년에 디자인된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은 이전의 딱딱했던 디자인 대신 생기 있는 꽃 장식을 넣어 산뜻하고 캐주얼한 분위로 선사해 오늘날까지 수십 년간 브랜드의 대표 디자인이 되고 있습니다. 흐음 과연 그러한 그림을 저는 촌스러운 꽃그림으로 여겼으니 일단 그림이나 디자인보는 눈이 제게는 없는것은 확실 합니다. 현재는 그 디자인과 기술력으로 홈웨어산업에서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으며 영국을 넘어서 세계의 도자기 산업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포트메리온의 매출은 70%가 수출에서 얻어지는데 미국의 수출 비율이 40%로 1위이고 놀랍게도 그 다음 2위가 한국 입니다. 인구 비율로 따지자면 한국 사람들이 특히 선호하는 브랜드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 포트메리온의 그릇들은 사실 본 차이나(Bone china)라는 도자기의 일종 입니다. 이른바 좋은 도자기는 고등학교때 지리시간에 한번쯤 우리나라에서도 고령토(카오리나이트)라는 광물이 많이 포함된 흙으로 만든 도자기의 품질이 좋다는 내용을 보셨을듯 합니다. 영국에서는 이 고령토를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의 도자기 품질과 경쟁하기 위하여 도자기에 뼛가루와 장석을 섞어 만들어낸 도자기를 본차이나라고 합니다.
본 차이나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토마스 프라이라는 영국인으로 1748년 도살장에서 나온 소뼈를 이용한 도자기를 만들어 마침내 중국등에서 수입되던 도자기의 품질과 경쟁할수 있게 되었지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1793년 조지아 스포드가 이 개념을 더 발전시켜 뼈가루를 6으로, 차이나 스톤(장석과 약간의 화강암이 섞인 것)을 4로, 그리고 고령토를 3.5 비율로 하여 모든 본차이나의 특징이 되는 기본을 확립하였습니다. 그가 세운 스포드사는 제조공정과 사업 모두에서 성공을 거두어 영국의 도자기 업체들로 확산되었으며 20세기 후반까지도 본 차이나는 영국에서 거의 독점생산되다시피 하던 주요한 상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것은 2009년에는 이 스포드사도 포트메리온에 인수되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구글링을 하다보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그릇, 도자기라 생각했던 것들도 많은 기술력과 독창적인 디자인이라는 많은 요소들과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지는구나 하고 생각이 들긴 하지만 역시 보통 남자가 그릇을 이해한다는건 쉬운 일이 아닌것 같습니다. 사실 아직도 저는 보타닉 가든(Botanic Garden) 이라는 컨셉의 디자인이 왜 멋지고 인기를 얻는것인지 이해가 잘 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제 눈에는 날렵하고 현대적인 느낌을 주는 그릇들이 더 좋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릇은 주부의 고유 영역! 아내가 제 태블릿이나 카메라에 대해 침범하지 않듯 저도 침범하지 않는게 가정의 평화를 생각할때 좋을듯 합니다.
그나저나 몇일전에는 레녹스라는 브랜드의 그릇 셋트가 또 한 박스 택배로 배달되는걸 목격했습니다. 주부 여러분 혹시 카메라에 빠진 남자들이 단렌즈나 용도에 따라 렌즈군을 장만하듯 그릇도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것인지 무척 궁금해 집니다. 아 아닙니다. 아무래도 남편들은 더이상 궁금증을 가지면 안되는 영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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