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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 Story of Kings

이반 뇌제, 명군과 폭군 사이의 엇갈릿 시각 -1-

23번째 왕 이야기의 주인공은 흔히 이반 뇌제로 번역되는 러시아의 차르 이반 4세로 실제 이름은 이반 바실리예비치 입니다. 그는 러시아를 강대하게 만든 명군으로도 러시아를 피로 물들인 폭군으로도 회자되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양면성을 가진 인물이며 아들을 자신의 손으로 때려죽인 비극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러시아어로는 이반 그로즈리, 즉 잔혹한 이반이란 의미인데 의역인 뇌제(雷帝)라는 표현이 일본과 한국에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벼락처럼 두려운 군주라는 이 의역이 어쩐지 이반 4세의 정체성을 잘 드러내주는 번역 같기도 하여서 이 글에서도 그를 뇌제로 칭하고 있습니다.

 

왕 이야기에서 최근 인조편 부터 아들을 죽인 왕들을 연작으로 다루고 있는데 첫번째 주인공인 인조나 영조와는 달리 그는 자신의 아들을 죽일 마음은 전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 아들을 죽이게 된 비극을 겪게 된 것이 이 시리즈의 왕들과의 좀 다른 차이점 입니다.

과연 이반 4세, 즉 이반 뇌제는 어떤 사유로 무엇때문에 아들을 죽이게 되었을까요?

 

이반 뇌제, 명군과 폭군 사이

일리야 레핀 작, 이반 4세 아들을 죽이다

 

유년기

 

아버지인 바실리 3세가 일찍 죽었기 때문에 이반 4세는 불과 3살의 나이에 모스크바 대공으로 즉위합니다. 그의 어머니 엘레나 글린스카야가 5년간 대공비로써로 아들을 대신하여 섭정을 행했는데 권력을 확고하기 위해 이반 4세의 삼촌들을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어린왕이 즉위하면 어디나 권력의 다툼이 일어나는법, 엘레나 글린스카야도 결국은 러시아의 고급 귀족층인 보야르들에게 독살당하고 모스크바 대공국은 슈이스키, 벨스키, 글린스키 세 귀족 가문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이며 정권을 농단하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보호막이나 다름없던 어머니가 죽은 뒤에는 이반과 그의 선천적인 장애로 말을 못했던 동생은 보야르라 불리는 힘있는 러시아 귀족들에 의해 허수아비 대공 취급을 당하는것도 모자라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경우에는 많은 학대를 받아야 했습니다. 겨우 7세에 불과했던 이반 4세는 그를 괴롭히며 즐거움을 느끼는 보야르들에게 밀실로 끌려가 고문을 당하기도 하고 먹을것이 없어 누더기를 입은채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해야 했습니다. 그가 대공으로 대우받는 날은 왕실 행사가 있는 날뿐으로 그날 만큼은 누더기를 벗기고 씻겨져서 대공의 옷을 입고 행사에 참석하는 잠시의 경우 뿐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왕실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살인 음모등을 여과 없이 듣고 보고 자랐으며 보야르들의 변태적인 학대까지 받아야 했던 그는 유년기에 영구적인 심각한 인격적 손상을 입게 됩니다. 이반 4세는 어릴때 동물들을 높은 성 꼭대기에 찔러서 떨어뜨리는 놀이를 하기도 했으며 후에도 분노를 잘 제어하지 못하는 인격 장애를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명군으로 평가받는 치세 전반기의 국정 운영에서 보여주는 그의 명석함에도 불구하고 후에 일어나는 잔혹함이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표출된 광기의 원인이 된것으로도 추측됩니다.

 

이반 뇌제, 명군과 폭군 사이

후에 발굴된 두개골로 복원된 이반 뇌제의 흉상,

광기와 잔혹으로 종종 표현되는 그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흉상이라는 평이 있습니다.

 

왕의 권력을 찾다

 

그가 15살이 되던 해 그래도 공식적으로 러시아 대공의 위치였기에 보야르들과 식사를 하게되었는데 이 와중에 두 귀족들이 다툼이 일어 격투를 벌이자 이반이 조용히 할것을 명하였으나 어린왕은 안중에도 없었던 귀족들이 계속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반은 비밀리에 시종들에게 경호용 개를 데려 오게해서 이들을 물어뜯게 하였고 얼굴을 심하게 물린 귀족들은 두문 불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이 에피소드는 그의 잔혹함을 드러내고 권력을 찾는 과정으로 소개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위의 이야기보다 다른 버전의 아래에 서술한 기록이 훨씬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아마도 실제로 일어난 일에 그의 잔혹한 성격을 드러내도록 부풀려 지고 살이 붙은 에피소드 인것 같습니다. 아래에 소개할 사례도 조금씩 서로 다른 기록들이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아래와 같습니다.

 

다른 기록에서는 13세가 되던 해의 벌어졌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반 4세는 그래도 명색이 러시아의 대공 이었으므로 국정을 장악한 유력 보야르들이자 섭정 가문인 슈엘스키, 벨스키 가문의 회의의 주재자로써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금은 우발적인 듯한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한 회의에서 이반은 보야르들이 일을 잘못 처리하고 낭비를 했다고 가볍게 비난을 했는데 이로 인해서 보야르들간에 말 다툼이 일어납니다. 패를 갈라 다툼을 벌이는 보야르들을 지켜보던 이반이 갑자기 일어나서 어린시절 자신을 학대했던 보야르 중 한명이자 섭정이던 안드레이 슈이스키를 지명하며 그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립니다. 원래는 안중에도 없었던 어린 왕의 명령이고 상대는 정권을 쥐고있던 섭정중 한명이어서 모두가 우물쭈물하며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몰랐다고 합니다. 우습게만 여기던 어린 왕이 자신을 체포하라는 명을 내리자 잠시 어리둥절 하던 안드레이 슈이스키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감을 깨닫고 황급히 달아나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반의 신임을 받던 개사육관이 그의 뒤를 뒤쫒아와서 곤봉으로 후려쳤고 그만 안드레이 슈이스키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죽은 슈이스키의 유해는 수습되지 않고 방치되었으며 사냥개들이 그의 시신을 물어뜯어 먹히도록 2시간이 넘도록 내버려두었다고 합니다.

 

이 우발적인 사건으로 인해서 이반 4세는 뜻밖에도 왕으로써의 운신의 폭과 입지를 어느정도 회복되게 됩니다. 보야르들이 이 어린 왕을 두려워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고급 귀족인 보야르에 눌려있던 하급 귀족세력과 러시아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길 바랬던 상인집단과 같이 보야르의 반대세력들이 이 어린 왕을 주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사건이 많은 기록들에서 이야기 하듯 우발적인 뜻밖의 사태였을까요?

글쓴이는 이반 4세의 나이가 겨우 13살(크리스마스 즈음에 벌어졌으므로 거의 14살에 가까웠지만) 이라는 어린 나이였다는걸 고려하자면 사실 조금 꺼림칙 하긴 하지만 이 살해가 그가 늘 접촉하고 신임하던 몇 안되던 인물들중 하나인 개사육관에 의해서 일어났다는 점, 죽은 뒤 사냥개에게 시신이 물어뜯기고 먹히도록 방치했던 점, 섭정이던 슈이스키의 사후 그의 일파에 속하던 귀족 30여명이 신속하게 체포되어 숙청되어 뿌리가 뽑혔다는 점에서 마치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숙청을 보는듯한 생각을 지울수 없습니다. 슈이스키를 살해하고 그 일파를 순식간에 뿌리뽑아 버린것은 도저히 13세의 소년의 솜씨로 보기에 어려워 보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궁정의 암투와 암살을 보고 자랐으며 학대나 고문등의 고난을 겪으며 살얼음판 같은 정세속에서 동생과 목숨을 이어가야 했던 이반 4세는 어쩌면 신체적 나이보다 좀더 정신적으로 빠르게 성숙한 어른이 되었던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권력 다툼에만 열중하느라 힘이 분산된 보야르들 사이의 분열의 틈을 잘 활용하고 보야르들에게 수탈을 당하던 하급귀족과 러시아 전체에 정치적인 통일을 원하던 상인들의 지지를 받은 이반 4세는 16세이던 1546년 12월 사실상 친정체제로의 전환을 선언하는 발언을 하게됩니다. "내년에는 결혼을 할것이며 더 이상 모스크바 대공이 아닌 차르(황제)로써, 전 러시아의 지배자로 즉위 하겠다" 라는 선언이었습니다.

 

1547년 1월 16일 이반 4세는 모스크바의 크레물 우스펜스키 비잔틴 사원에서 러시아 차르로 즉위하여 전 러시아를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습니다. 러시아 최초의 차르이자 뇌제의 탄생이었습니다.

 

즉위식 3주 후에는 아나스타샤 로마노프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로마노프 가문의 이름과 "아나스타샤"란 여성의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본 기억이 있으실 듯 합니다. 훗날 러시아의 제위는 로마노프 가문이 차지하게 되었으며 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 정부에 의해서 일가가 몰살을 당하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가 바로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로마노프입니다. 그 황제의 딸로 비운의 공주로써 훗날 여러 가지 이야기와 생존설의 주인공으로 잘 알려진 공주의 이름도 이반 4세의 황제비와 같은 아나스타샤 였습니다.

 

이반 뇌제, 명군과 폭군 사이

1997년 폭스사의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 "국내에도 개봉되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banihoho89.blog.me/120202211964

 

이반 뇌제, 명군과 폭군 사이

실제 공주의 어린시절 모습. 후대에 제기된 생존설과는 달리 정설로는 소비에트 정부는 이들의 뼛조각도 남는것을 싫어하여 총탄을 퍼붓고도 숨이 붙어 있어 신음하자 총검으로 마구찔러 살해한 후 황산으로 시신을 녹이고 200L의 석유로 뼛가루 흔적도 없이 태워 버렸다는 참혹한 사실이 정설로 인정 받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blog.naver.com/nbwldpel123/10186826815

 

오늘은 학대와 고난을 겪던 이반 4세, 즉 이반 뇌제가 러시아의 차르로 즉위 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보았습니다. 다음 포스팅에서 차르로써의 러시아를 강대하게 만든 그의 업적과 광기와 잔혹으로 표현되는 이반 그로즈리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는지, 또 그의 아들은 어떻게 죽게 되는지를 본격적으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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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이야기를 다루어 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이반 뇌제의 이야기 후에는 조선의 22대왕 정조의 이야기로 이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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